동포 아직 젊은 우리들
- 빌레펠트에서 29주년 재유럽오월민중제 알차게 열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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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자유로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5,077회 작성일 09-05-22 08:25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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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올해 오월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지난 15일에서 17일까지빌레펠트 자연의 집 (Naturfreundehaus)에선 29회 재유럽오월민중제가 열렸다.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이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시 화창했다. 추모식과 강연과 즐겁고 다양한 생활이야기와 따뜻한 정이 오갔다. 국내정세에 대한 우려와 함께 결의문을 채택했다.
<고슴도치가 만든 웃음바다>
첫날밤은 고슴도치 연출 때문에 웃음바다로 시작했다. 머리와 귀에 바늘을 꽂은 이들이 나타났다. 베를린에서 이비인후과 개업을 하고 침술도 겸하는 이민자 박사가 가려움증, 두통 같은 증세를 호소하는 참석자들에게 침을 놓은 것이다. 카메라와 비디오 세례가 쏟아졌다. 고슴도치 머리 <조선미남> 김대천 선생은 대스타처럼 대꾸했다.
고슴도치 연출로 인한 흥분을 가라앉히고 본 영화는 62분짜리 다큐영화. 로베르타 장 감독이 만들었다. 하와이 사탕수수밭으로 떠나간 구한말 노동자들의 이야기였다. 빛바랜 사진과 자녀와 손주들의 증언을 통해 다른 시간과 공간을 건너 우리에게 다가왔다. 식민지가 된 조국을 위해 실천의 길을 찾으며 살던 이주민들이 분열되고 상처를 입는 과정이 잘 담겨 있어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했다. 영상관람 후에는 이곳에서 이주민으로 활동가로 산 생활사를 정리할 문제에 대한 이야기라든가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잠시 자유토론 한 후에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돌아와요 부산항>, <비내리는 호남선>, <꽃동네 새동네>, <송아지> 등 각양각색 옛노래와 동요가 흘러왔다. 가무를 좋아하는 민족의 흥이 한창일 때 빌레펠트의 밤이 쏠쏠하니 깊어갔다.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추모식에선 오월영령과 돌아가신 재유럽민주통일인사와 과잉진압 때문에 돌아가신 용산참사희생자에게 분향했다. 누구에게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생명과 생활이 어처구니 없는 폭력과 권력에 의해 무참하게 파괴된 사실을 다시 기억하고 생명과 생활을 지키는 인간미래에 대한 결의를 다졌다.
알차고 흥미로운 강연이 이어졌다. 뷔텐 대학 경제학 박사과정을 마친 강정수 선생이 <위기의 금융자본주의, 한국경제의 길을 묻다>란 주제로, 채명수 박사 (법학)가 <해외동포가 바라보는 한반도의 위기>란 주제로 강연했다. 강정수 선생은 지난 2007년 <서프라임 모기지>란 전문용어로 인구에 회자한 <비우량부동산위기>와 <세계금융위기>의 근간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기초지식을 쉽고 재미있게 풀이해 주었다. 경제이론에 관심 없던 분들도 잘 이해할 수 있었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강사 본인도 지적하듯 현재의 위기에 대해 어느 누구도 그 규모를 정확하게 내다볼 수 없다는 사실이 여운을 남겼다. 채명수 박사는 <이명박 정부의 대내외 정책 개관>, <국가보안법의 유래>, <로켓과 미사일에 대한 구별법>, <경쟁개발의 원인> 등에 대해 분석했다. 현재 한국상황에서 언론권력의 현상을 개관하고 언론권력의 미래상을 내다보기도 했다. 편안하고 구수하게 풀어내는 강사의 화법에 분위기가 한껏 화기애애했다. 하지만 생각과 생활의 자유롭고 다채로운 발전을 방해하는 국가보안법의 폐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방안이 제시되지 못해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삶이 그러하듯>
함부르크에서 온 박성식 선생은 몇 시간 줄기차게 불고기를 구워내고 민중문화모임과 재독여성모임 등 여러 주관단체가 준비한 김치찌개와 각종 찬과 떡으로 토요일 저녁을 즐겼다. 연설과 노래소리가 들리더니 베를린 세종학교 지원 모금 운동이 즉석에서 펼쳐졌다. 홀 안에서는 요가와 타이치와 춤이 진행됐다.
삶이 그러하듯 <재유럽오월민중제>에는 즐거운 시간과 뜻깊은 시간이 함께하고 비장함과 유쾌함이 교차한다. 역사와 실천의 무거움이 있으면서도 생활이야기와 정이 오간다. 처음 와보는 한국인이나 옆에서 구경하는 독일인들 모두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올해 <재유럽오월민중제>에 처음 와 보았다는 어떤 참석자는 <재유럽오월민중제>에 진작 와 보지 않은 점을 아쉬워했다. <자연의 집>에 수련온 독일청년들이 호기심을 보일 때는 한민족 유럽연대 이종현 선생의 부인 우줄라 선생이 모국어로 잘 설명해 주었다.
29년 전 아직 청년이었을 법한 대부분 참석자들의 머리칼은 희끗희끗해졌다.그래도 마음은 29년 전의 청춘, 정열도 마찬가지다. 손잡고 계단을 천천히 오르내리는 백발 부부의 뒷모습이 지극히 평화롭다. 내년 30주년 <재유럽오월민중제> 준비를 두고 장시간 토론하고선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다. 작별인사에 인사를 거듭했다.
<재유럽오월민중제 준비위원회>
연락처: woonsup@yoon.de
2.
결 의 문
오월민중항쟁 29돌을 맞이하여 유럽에 거주하는 우리 재외동포들은 오늘 독일 빌레펠트에 또 모였다.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한 5월 투쟁에서 이름없는 들꽃처럼 사라져간 수많은 애국영령들의 자취를 추모하고 그들의 뜻을 이어 나가기로 또 다시 다짐한다.
빛고을 광주에서 전두환 군사독재의 총칼 앞에 용감이 일어난 오월민중항쟁은 1895년 동학민중혁명에 이어 민족사에 길이 남을 또 하나의 시민혁명이었다.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유신정권이 막을 내리자 전두환 등 신군부가 자신들의 정치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애국시민들을 총칼로 무자비하게 살해하였다.
그러나 오월의 불꽃은 험악한 군사정권의 폭압 속에서도 꺼지지 않고 전국으로 타올랐다. 이는 민주주의정권을 창조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이 새로운 역사발전에 우리 유럽 동포들도 적극 참여하여왔다.
30여 년이 지난 오늘 조국의 현실은 우리에게 큰 실망과 분노를 주고 있다. 시민의 기본권리인 언론과 집회의 자유를 국가권력의 이름으로 막아버리고, 분단을 해소하고 평화와 통일을 위하여 애쓰는 애국자들을 무차별하게 체포하여 구속하고 있으며 용산상가 강제철거로 무고한 시민을 죽게 하였다. 이러한 실상을 보면서 현 이명박 정부는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인 5공시절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우리는 금할 수가 없다.
우리는 수많은 희생으로 이룩한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운동이 이명박정권에 의해 산산히 무너져 내리는 현 상황을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이명박정부에게 민주주의파괴행위와 공안통치를 즉각 중단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만약 우리의 정당한 요구를 무시하고 이를 계속한다면 지난 오랜 세월동안 조국의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 노력해온 전통에 따라 해외의 민주민족인사들은 모두 단결하여 국내의 양심세력들과 연대하는 것은 물론이며 평화와 자유를 사랑하는 세계의 여론에 이명박 정권의 실정을 호소할 것이다.
5.18 민중항쟁을 기념만 하기에는 조국의 현실은 너무 긴박하기에 아래와 같이 결의한다.
1. 광주영령들의 고귀한 뜻을 기리며 실천해 나아갈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한다
2. 우리는 힘을 모아 민주주의와 민족의 자주 평화통일을 위해 투쟁할 것을 결의한다.
2009년 5월 17일 독일 빌레필트 재유럽오월민중제 참가자 일동
연락처:E-Mail: woonsup@yoon.de
3.
2009년 5월 15일 금요일 오후, 피는 꽃, 지는 꽃의 화려함과 천연함의 조화도 깊어가는 연녹색에 잠겨버리는 독일 중부지역 빌레펠트 시 외곽에서 종일 내려 쬐는 햇살을 비껴 쏟아 붇는 굵은 비 속을 뚫고 낮은 산자락 오솔길을 숨가쁘게 자동차들이 오르고 있다. 오월 그날이 오면 20여 년을 한결같이 오르는 길이다.
산중턱 너른 잔디밭 가에 원래 그 자리에 있어야 했던 건물마냥 숲과 하나가 된 청소년 수련원 “자연의 집(Naturfreundehaus; Detmolderstr. 738, Bielefeld, Germany)”은 이제 활기를 띠어간다. 80년 광주 오월민중항쟁을 이어받는 제 29차 재유럽오월민중제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대강당 옆 식당과 회의장을 겸한 아담한 건물에 한국인들이 도착했다. 성성한 백발의 노인과 아직도 검은 머리를 가진 청년 같은 장년인 10여명이 내린다. 타고 온 차문을 열고 둥근 것, 네모난 것, 각양의 플라스틱 통을 부엌으로 들어 나른다. 두 개의 커다란 냉장고는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차곡차곡 채워져 가고 바닥에는 벽을 따라 음료수와 먹거리 등이 차례로 놓여진다. 중년을 훌쩍 넘긴 어머니들은 팔을 걷어 부치고 상차림에 분주하다. 멀리서 오는 반가운 식구들을 맞을 준비에 보훔 한국민중문화모임(회장 최태호) 회원들은 언제나 한 발 먼저 온다.
1980년 오월 그날을 어찌 잊을 것인가? 사랑하는 부모형제 다 고향에 두고 오로지 자신의 건강한 젊음만을 믿으며, 이역만리 타국까지 와, 한 푼이라도 더 벌어 대를 물리는 가난을 이겨보려고 병원에서, 탄광에서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오던 간호사와 광부들이 갈갈이 찢어지는 가슴을 안고 통곡하다 거리로 뛰쳐나오던 그날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던가? 대검에 찔려 경련하며 죽어가는 시민들을 군화발로 짓이기고 개 끌듯 끌고 가면 아스팔트 위에 검붉은 피가 낭자하게 흩어지던 것이, 이곳 저곳에서 죽은 시민들을 짐짝보다 더 험하게 군용트럭에 집어 던져 싣고 어디론가 사라지던 그 끔찍한 장면이 우리 조국 대한민국이라는 것은 믿어지지 않았다.
독일 텔레비전에서 계속해서 보여주는 이 처참한 학살을 보고 간호사와 광부, 유학생들은 누가 먼저인지 알지도 못하고 거리로 뛰어나와 제발 살려달라고 울부짖으며 서로 껴안고 통곡하였다. 그날 베를린에서 프랑크푸르트에서, 뮌헨에서, 괴팅겐에서, 함부르크에서, 광부들이 몰려 살던 루르 지역에서, 아니, 한국인이 살고 있는 독일의 모든 지역에서 가슴을 쥐어짜며 모두들 울었다. 한 숨과 눈물로 단식투쟁을 시작하였고 “찢어진 기폭”이라는 연극을 만들어 공연을 하면서 성금을 모금 하고, 베르린 시내에서 데모를 하면서 전세계 여론에 알리고 호소하였다
이 형제들은 억울하게 죽은 선량한 시민들을 폭도라 몰아 부치며 살인마 전두환을 영웅으로 찬양하는 한국언론의 추악한 진면목을 보고 치를 떨며, 이역만리에서나마 그 원혼을 달래고, 조국의 민주화와 만 악의 근원인 분단을 끝장내려고 재유럽오월민중제를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자기들이 살고 있는 각 지역에서 광주학살의 진상을 밝히고, 김대중과 양심수를 석방하고, 민생을 해결하며 반외세자주평화통일을 외치며 오월민중제를 시작하였다. 독재의 총칼 앞에 억눌려 위축되었던 국내 운동을 대신하여 유럽에서 이 저항운동은 활발히 진행되었다. 국내에서는 보기는커녕 들을 수 조차 없었던 그 처절한 장면을 먼저 보았고, 그들이 대부분 간호사와 광부인 노동자들이기에 받은 충격과 슬픔은 더욱 컸다.
해를 거듭하며 각각 지내던 오월민중제는 힘을 합하여 하나가 되었다. 모임의 편의를 위하여 거리상 중간지점인 빌레펠트 시 외곽에 있는 “자연의 집”으로 장소를 정하고 해마다. 재유럽오월민중제는 개최 하였는데, 어느덧 제 29주년이 되었다. 2007년 5월 5.18기념재단과 공동으로 베를린에서 재유럽오월민중제를 개최한 것을 제외하면 줄곧 이곳에서 개최한다.
재유럽오월민중제는 고국을 떠난 이곳 동포들에게는 설날 고향을 찾는 것과 다름이 없다. 고된 일손을 멈추고 많이 모이는 해는 200여명 모여 2박3일 오월민중제를 거행한다.
이번 제29주년 오월민중제는 그 의의가 더 크다. 광주민중봉기가 일어난 지도 한 세대인 30여 년이 다 되어가는데, 용산에서 가진 것이 없다는 죄로 공권력에 의하여 가난한 시민이 무참히 학살당하고, 민생은 파탄으로 치닫고 있으며, 남북관계는 날로 악화되어 전쟁위기까지 치닫고 있다. 유럽 동포들은 분노의 가슴을 부여 안고 빌레펠트로 오고 있다. 이제 비극은 끝내야 한다.
한 시간여의 준비가 마무리될 무렵인 오후 4시가 되자 형제자매들이 속속 도착 한다. 성(姓)도 틀리고, 나이도 틀려도 모두가 얼싸안고 반기다가 늘어나는 백발을 손을 바꿔 쓸어본다. 다시 얼굴도 비벼보고 등도 두들겨 준다. “어이 내 새끼! 어이, 내 새끼!”하며 말을 못 잇는 늙은 어머니의 바로 그 모습이다.
은빛의 커다란 합승버스가 도착했다. 베를린에 살고 있는 식구들이 도착했다. 문이 열리기도 전에 우르르 몰려가 버스에서 내리기 전부터 반겨 안는다. 초로의 얼굴 속에 젊은 형제들이 어울려 내려온다. 내일을 이어갈 젊은 식구들이다. 재유럽오월민중제의 새 주인공들이다.
차와 음료로 한담을 나누다 오후 6시쯤이 되니 길이 막혀 늦는다는 식구를 제외하고 거의 모두 도착했다. 된장국에 김치, 오이김치, 떡, 묵, 산나물에 각종 무침이 가득한 상위에 문밖 숯불에 구어 내는 고추장돼지불고기가 올라오고, 오월민중제의 명품인 “창원 홍어무침”이 별미다. 함부르크에 사시는 박성식 씨의 자랑이다. 누가 혹시 “함부르크 홍어회”라고 하였다가는 식사 후 술안주로 나오는 독일순대는 맛도 못 본다. 숯불구이는 그의 전권이다. “함부르크 산 홍어를 경남, 창원이 고향인 이 박성식이 무쳤는데, 왜 ‘함부르크 홍어회’라고 하노?” “내가 홍어만도 못하노?”하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귀와 손등, 얼굴과 정수리에 고슴도치가 무색하게 침들을 꽂고 아프지도 않은지 서로 보고 웃는다. 이민자 의학박사의 걸작품이다.
저녁 식사 후에는 언제나 영화감상을 한다. 이번에는 <국민회: The Korea American epic – Kook Min Hur, The Korea national association; Director Roberta Jang, USA/ Doku, DV color 62 min)이다. 대한민국의 건국에, 특히 초대 대통령 이승만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기회가 되면 한번은 보아야 할 것이다.
영화를 본 뒤에는 흥겨운 여흥과 술잔을 나눈다. 목소리 가다듬는 노래에 젓가락장단도 맞추며 술잔을 높이 들고 “통일”을 외친다. 자정이 지나 밤이 깊어도 몇 명은 자리를 뜨지 못한다. 무슨 할 이야기들이 그리 많은 지.
이종현 전 한민족유럽연대 회장님의 부인 우줄라 리 여사는 한국 동요를 즐겨 부른다. 우줄라 리 여사는 교정에서 만난 한국인에게 첫눈에 반하여 그를 붙들어 잡고 결혼하였다. 자기 나라인 독일에서 살면서 김치를 닮고 즐겨 된장국을 끓여 같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면 그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할 수 있다. 한국여성보다 더 한국적이다. 그 곱던 아가씨도 이번 7월이면 할머니가 된다.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산토끼” “송아지” 등 우리 동요들을 계속 부르면 모두들 일어나 깡총깡총 뛰며 초등학교시절로 되돌아 간다. 한번도 거르지 않고 부부가 29년을 한결같이 오월민중제에 참여한다.
재유럽오월민중제에는 해마다 국내인사들이 초청된다. 연대운동을 하는 단체와 인사들이다.인권사랑방의 서준식 선생, 박원순 변호사와 참여연대 일꾼들, 차병직 변호사,이창복 전민련의장, 청와대인사참모 정찬용, 홍성담화백, 한통련 곽동의 의장, 명진 스님, 강신석, 정기열 목사, 이우갑, 이동화 신부, 노동,여성 농민운동가 동학혁명계승사업회의 일꾼들, 518광주 부상자회와 유족회 관계자들, 518기념재단 윤광장 이사장과 이사진 위인백 전 5.18민중항쟁동지회 회장 ,전 국회의원, 해외민주인사. 세월이 흐른 만큼 오신 분들이 많아 일일이 다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모두들 금요일 밤의 여흥에는 감탄을 하였다.
금년에는 국내 이주노동자 운동 관계자들을 초청하여 함께 토론을 하기로 하였으나 국내사정으로 오지 못했다. 2007년 12월 재유럽오월민중제의 식구 11명이 국내를 방문하여 몇 개 도시를 순회하며 열악한 국내이주민의 처우를 개선하고자 광부와 간호사, 또 그들의 2세로서 독일에서 겪은 이주민 생활과 투쟁경험 및 성과를 소개하고 개선책을 모색하였는데, 이 운동을 계속하고자 하는 것이다. 아쉬움을 남기고 내년 제 30주년 오월민중제에 참석하기로 하였다.
5월 16일 토요일 아침 7시 30분, 찬 공기를 밀어내며 개량한복을 입은 선생들의 지휘로 이슬 젖은 잔디밭에서는 기공이 시작된다. 뼈가 없는 듯 부드러운 몸놀림에 정신을 팔다 보면 언제인가 그대로 멈춰있다. 베를린에서 침술과 자연치료 개인 전문치료실을 운영하고 있는 서의옥 선생의 기공은 독일인들도 보고 감탄을 연발하고, 신옥자 선생의 요가는 모든 시선을 사로잡는다.
아침식사 후 10시부터 김진향 선생의 사회로 추모식이 거행됐다. 재유럽오월민중제를 대표하여 한민족유럽연대자문 위원 이종현 선생의 <추모사>를 한국민중문화모임 최태호 회장이 낭독하고, 518기념재단(이사장 윤광장), 615 공동선언 해외측위원회(이사장 곽동의),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의장 손형근) 지구촌동포연대 (배덕호), 전 5.18민중항쟁동지회 회장 (위인백)이 보내준 <연대사>가 낭독되었다.
이어서 앞줄부터 일어나 행사장 앞에 모신 <오월영령>들께 분향하고, 앞 옆면에 모신 <재유럽민주통일인사>들에게도 분향했다. 해마다 늘어나는 현위를 보며 모두들 숙연해졌다. 올해에는 특별히 <용산참사희생자>를 모시고 분향을 하였다. 또 다시 비감과 분노가 솟구친다.
분향 후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잠시 휴식시간을 갖고, 재독한국여성모임 유정숙 박사의 사회로 뷔텐대학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마친 강정수 선생이 제 1주제인 <위기의 금융자본주의, 한국경제의 길을 묻다.>을 발표했다. 작금 미국에서부터 몰려오고 있는 금융위기에 대하여 설명하고 대처방안을 제시했다. 모기지, 해지펀드, 금융자산, CDO(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 파생상품, 성장동력 등등 보통사람들에게 까다로운 많은 경제용어를 아주 쉽게 풀이하고 설명하여 모두 감탄하였다.
주제발표가 끝나고 토론회가 열렸는데, 다투어 질의하는 바람에 다들 갑자기 경제전문가가 된 듯 했고, 금융위기로 인한 경제상황의 악화가 얼마나 서민생활에 심각한가를 실감했다. 당면한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여 찬사를 받았다. 자본가들보다도 생계형 개미투자자들의 위기가 절실하다는 것도 알았다. 한국경제는 물론 독일, 미국 등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배웠다. 특히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컸다.
점심식사 후 14시부터 15시 40분까지 한민족 유럽연대 최정규 선생의 사회로 채명수 박사가 제 2주제인 <해외동포가 보는 한반도의 위기>를 발표하였다. 이명박 정부의 대내외 정책에 대하여 개관하고 국가보안법의 유래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이어 최근 세인의 관심사인 로켓과 미사일에 대한 구별법과 경쟁개발의 원인에 대한 분석을 하였고, 한국의 숨은 권력관계 특히 언론권력에 대한 미래상을 추론하였다. 이를 통하여 위기의 당사자들이 누구인가를 설명하였다. 하지만 날로 기승을 부리는 악법인 국가보안법의 가장 핵심인 폐지에 대한 방안이 제시되지 못하여 아쉬움을 남겼다.
잠시 음료를 마시며 휴식하고, 16시 10분부터 615공동선언실천 유럽지역위원회 장일중 사무국장의 사회로 앞의 두 강사와 종합토론회를 가졌다. 경제와 정치, 한국이 처해있는 현실에 참석자들의 관심은 매우 높았다. 특히 서민생활과 직결되는 경제위기는 불안과 우려 속에 열기를 띠웠고, 이명박 정부의 서민경제정책에 대한 비판과 개선책 들이 제시되었다. 정치적인 문제에서는 역행하는 남북평화정책에 대한 심각한 토론이 이루어졌으며, 해외동포들이 앞장서서 남북화해의 길로 가도록 강력하게 촉구하는 운동을 추진해야 한다고 하였다. 평화통일일꾼들에 대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가보안법의 무자비한 악행은 즉시 중단되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조국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한반도의 총체적이고도 포괄적인 위기 대하여 이번 오월민중제를 기회로 계속적이고도 강력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데 노력을 기울이자며 토론을 마쳤다.
불고기와 김치찌개, 모두가 토종 한민족임을 확인하는 저녁이었다. 고향의 정취와 어머니의 정이 새삼 가까이 다가왔다. 경계도 없이 “함께 어울리는 장”이 이어졌다. 하고 싶은 말, 부르고 싶은 고향노래, 춤과 노래는 만사를 잠시 잊도록 하였다. 특히 손자 뻘쯤 되어 보이는 수련 온 독일 어린 학생들과 어울려 아리랑을 부르며 우리 전통 춤을 어울려 출 때는 나이마저 잊은 듯했다. 작년 2008년 오월민중제에서는 독일인들은 물론 수련 온 터키인 등 많은 나라 출신들과 어울려 촛불문화제를 열었는데 의외로 큰 호응을 얻었다.
2009년 5월 17일 일요일, 언제나 새벽은 기공 및 요가와 함께 열린다. 녹색의 잔디 위에서 꿈속같이 부드럽게 이어지는 각 동작은 독일 학생들의 호기심을 한껏 자극한다. 한민족의 무한한 가능성을 그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오전에 재유럽오월민중제 준비위원 윤운섭 선생과 김진향 선생의 사회로 종합토론과 총평이 열리고 내년 2010년 재유럽오월민중제 30주년 행사 준비를 위하여 장시간 토론을 하고 나서 결의문이 채택 되었다. 결연한 표정들에서 회춘하는 젊음과 희망을 보았다. 조국을 위해서라면 아직도 오월 그날의 붉은 피로 앞서서 싸우겠다고 다짐하면서. 우리는 싸울 것이다. 그리고 기필코 이겨 모두가 어울려 사는 통일된 조국을 만들 것이다.
재유럽오월민중제는 날이 가고 세월이 더할수록 더 즐겁고 더 강력하게 발전하고 있다.
2009년 5월 17일 독일 빌레펠트 시 “자연의 집”에서
재유럽오월민중제 준비위원회
연락처:윤운섭 E-mail: woonsup@yoon.de
올해 오월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지난 15일에서 17일까지빌레펠트 자연의 집 (Naturfreundehaus)에선 29회 재유럽오월민중제가 열렸다.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이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시 화창했다. 추모식과 강연과 즐겁고 다양한 생활이야기와 따뜻한 정이 오갔다. 국내정세에 대한 우려와 함께 결의문을 채택했다.
<고슴도치가 만든 웃음바다>
첫날밤은 고슴도치 연출 때문에 웃음바다로 시작했다. 머리와 귀에 바늘을 꽂은 이들이 나타났다. 베를린에서 이비인후과 개업을 하고 침술도 겸하는 이민자 박사가 가려움증, 두통 같은 증세를 호소하는 참석자들에게 침을 놓은 것이다. 카메라와 비디오 세례가 쏟아졌다. 고슴도치 머리 <조선미남> 김대천 선생은 대스타처럼 대꾸했다.
고슴도치 연출로 인한 흥분을 가라앉히고 본 영화는 62분짜리 다큐영화. 로베르타 장 감독이 만들었다. 하와이 사탕수수밭으로 떠나간 구한말 노동자들의 이야기였다. 빛바랜 사진과 자녀와 손주들의 증언을 통해 다른 시간과 공간을 건너 우리에게 다가왔다. 식민지가 된 조국을 위해 실천의 길을 찾으며 살던 이주민들이 분열되고 상처를 입는 과정이 잘 담겨 있어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했다. 영상관람 후에는 이곳에서 이주민으로 활동가로 산 생활사를 정리할 문제에 대한 이야기라든가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잠시 자유토론 한 후에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돌아와요 부산항>, <비내리는 호남선>, <꽃동네 새동네>, <송아지> 등 각양각색 옛노래와 동요가 흘러왔다. 가무를 좋아하는 민족의 흥이 한창일 때 빌레펠트의 밤이 쏠쏠하니 깊어갔다.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추모식에선 오월영령과 돌아가신 재유럽민주통일인사와 과잉진압 때문에 돌아가신 용산참사희생자에게 분향했다. 누구에게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생명과 생활이 어처구니 없는 폭력과 권력에 의해 무참하게 파괴된 사실을 다시 기억하고 생명과 생활을 지키는 인간미래에 대한 결의를 다졌다.
알차고 흥미로운 강연이 이어졌다. 뷔텐 대학 경제학 박사과정을 마친 강정수 선생이 <위기의 금융자본주의, 한국경제의 길을 묻다>란 주제로, 채명수 박사 (법학)가 <해외동포가 바라보는 한반도의 위기>란 주제로 강연했다. 강정수 선생은 지난 2007년 <서프라임 모기지>란 전문용어로 인구에 회자한 <비우량부동산위기>와 <세계금융위기>의 근간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기초지식을 쉽고 재미있게 풀이해 주었다. 경제이론에 관심 없던 분들도 잘 이해할 수 있었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강사 본인도 지적하듯 현재의 위기에 대해 어느 누구도 그 규모를 정확하게 내다볼 수 없다는 사실이 여운을 남겼다. 채명수 박사는 <이명박 정부의 대내외 정책 개관>, <국가보안법의 유래>, <로켓과 미사일에 대한 구별법>, <경쟁개발의 원인> 등에 대해 분석했다. 현재 한국상황에서 언론권력의 현상을 개관하고 언론권력의 미래상을 내다보기도 했다. 편안하고 구수하게 풀어내는 강사의 화법에 분위기가 한껏 화기애애했다. 하지만 생각과 생활의 자유롭고 다채로운 발전을 방해하는 국가보안법의 폐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방안이 제시되지 못해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삶이 그러하듯>
함부르크에서 온 박성식 선생은 몇 시간 줄기차게 불고기를 구워내고 민중문화모임과 재독여성모임 등 여러 주관단체가 준비한 김치찌개와 각종 찬과 떡으로 토요일 저녁을 즐겼다. 연설과 노래소리가 들리더니 베를린 세종학교 지원 모금 운동이 즉석에서 펼쳐졌다. 홀 안에서는 요가와 타이치와 춤이 진행됐다.
삶이 그러하듯 <재유럽오월민중제>에는 즐거운 시간과 뜻깊은 시간이 함께하고 비장함과 유쾌함이 교차한다. 역사와 실천의 무거움이 있으면서도 생활이야기와 정이 오간다. 처음 와보는 한국인이나 옆에서 구경하는 독일인들 모두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올해 <재유럽오월민중제>에 처음 와 보았다는 어떤 참석자는 <재유럽오월민중제>에 진작 와 보지 않은 점을 아쉬워했다. <자연의 집>에 수련온 독일청년들이 호기심을 보일 때는 한민족 유럽연대 이종현 선생의 부인 우줄라 선생이 모국어로 잘 설명해 주었다.
29년 전 아직 청년이었을 법한 대부분 참석자들의 머리칼은 희끗희끗해졌다.그래도 마음은 29년 전의 청춘, 정열도 마찬가지다. 손잡고 계단을 천천히 오르내리는 백발 부부의 뒷모습이 지극히 평화롭다. 내년 30주년 <재유럽오월민중제> 준비를 두고 장시간 토론하고선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다. 작별인사에 인사를 거듭했다.
<재유럽오월민중제 준비위원회>
연락처: woonsup@yoon.de
2.
결 의 문
오월민중항쟁 29돌을 맞이하여 유럽에 거주하는 우리 재외동포들은 오늘 독일 빌레펠트에 또 모였다.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한 5월 투쟁에서 이름없는 들꽃처럼 사라져간 수많은 애국영령들의 자취를 추모하고 그들의 뜻을 이어 나가기로 또 다시 다짐한다.
빛고을 광주에서 전두환 군사독재의 총칼 앞에 용감이 일어난 오월민중항쟁은 1895년 동학민중혁명에 이어 민족사에 길이 남을 또 하나의 시민혁명이었다.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유신정권이 막을 내리자 전두환 등 신군부가 자신들의 정치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애국시민들을 총칼로 무자비하게 살해하였다.
그러나 오월의 불꽃은 험악한 군사정권의 폭압 속에서도 꺼지지 않고 전국으로 타올랐다. 이는 민주주의정권을 창조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이 새로운 역사발전에 우리 유럽 동포들도 적극 참여하여왔다.
30여 년이 지난 오늘 조국의 현실은 우리에게 큰 실망과 분노를 주고 있다. 시민의 기본권리인 언론과 집회의 자유를 국가권력의 이름으로 막아버리고, 분단을 해소하고 평화와 통일을 위하여 애쓰는 애국자들을 무차별하게 체포하여 구속하고 있으며 용산상가 강제철거로 무고한 시민을 죽게 하였다. 이러한 실상을 보면서 현 이명박 정부는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인 5공시절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우리는 금할 수가 없다.
우리는 수많은 희생으로 이룩한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운동이 이명박정권에 의해 산산히 무너져 내리는 현 상황을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이명박정부에게 민주주의파괴행위와 공안통치를 즉각 중단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만약 우리의 정당한 요구를 무시하고 이를 계속한다면 지난 오랜 세월동안 조국의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 노력해온 전통에 따라 해외의 민주민족인사들은 모두 단결하여 국내의 양심세력들과 연대하는 것은 물론이며 평화와 자유를 사랑하는 세계의 여론에 이명박 정권의 실정을 호소할 것이다.
5.18 민중항쟁을 기념만 하기에는 조국의 현실은 너무 긴박하기에 아래와 같이 결의한다.
1. 광주영령들의 고귀한 뜻을 기리며 실천해 나아갈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한다
2. 우리는 힘을 모아 민주주의와 민족의 자주 평화통일을 위해 투쟁할 것을 결의한다.
2009년 5월 17일 독일 빌레필트 재유럽오월민중제 참가자 일동
연락처:E-Mail: woonsup@yoon.de
3.
2009년 5월 15일 금요일 오후, 피는 꽃, 지는 꽃의 화려함과 천연함의 조화도 깊어가는 연녹색에 잠겨버리는 독일 중부지역 빌레펠트 시 외곽에서 종일 내려 쬐는 햇살을 비껴 쏟아 붇는 굵은 비 속을 뚫고 낮은 산자락 오솔길을 숨가쁘게 자동차들이 오르고 있다. 오월 그날이 오면 20여 년을 한결같이 오르는 길이다.
산중턱 너른 잔디밭 가에 원래 그 자리에 있어야 했던 건물마냥 숲과 하나가 된 청소년 수련원 “자연의 집(Naturfreundehaus; Detmolderstr. 738, Bielefeld, Germany)”은 이제 활기를 띠어간다. 80년 광주 오월민중항쟁을 이어받는 제 29차 재유럽오월민중제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대강당 옆 식당과 회의장을 겸한 아담한 건물에 한국인들이 도착했다. 성성한 백발의 노인과 아직도 검은 머리를 가진 청년 같은 장년인 10여명이 내린다. 타고 온 차문을 열고 둥근 것, 네모난 것, 각양의 플라스틱 통을 부엌으로 들어 나른다. 두 개의 커다란 냉장고는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차곡차곡 채워져 가고 바닥에는 벽을 따라 음료수와 먹거리 등이 차례로 놓여진다. 중년을 훌쩍 넘긴 어머니들은 팔을 걷어 부치고 상차림에 분주하다. 멀리서 오는 반가운 식구들을 맞을 준비에 보훔 한국민중문화모임(회장 최태호) 회원들은 언제나 한 발 먼저 온다.
1980년 오월 그날을 어찌 잊을 것인가? 사랑하는 부모형제 다 고향에 두고 오로지 자신의 건강한 젊음만을 믿으며, 이역만리 타국까지 와, 한 푼이라도 더 벌어 대를 물리는 가난을 이겨보려고 병원에서, 탄광에서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오던 간호사와 광부들이 갈갈이 찢어지는 가슴을 안고 통곡하다 거리로 뛰쳐나오던 그날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던가? 대검에 찔려 경련하며 죽어가는 시민들을 군화발로 짓이기고 개 끌듯 끌고 가면 아스팔트 위에 검붉은 피가 낭자하게 흩어지던 것이, 이곳 저곳에서 죽은 시민들을 짐짝보다 더 험하게 군용트럭에 집어 던져 싣고 어디론가 사라지던 그 끔찍한 장면이 우리 조국 대한민국이라는 것은 믿어지지 않았다.
독일 텔레비전에서 계속해서 보여주는 이 처참한 학살을 보고 간호사와 광부, 유학생들은 누가 먼저인지 알지도 못하고 거리로 뛰어나와 제발 살려달라고 울부짖으며 서로 껴안고 통곡하였다. 그날 베를린에서 프랑크푸르트에서, 뮌헨에서, 괴팅겐에서, 함부르크에서, 광부들이 몰려 살던 루르 지역에서, 아니, 한국인이 살고 있는 독일의 모든 지역에서 가슴을 쥐어짜며 모두들 울었다. 한 숨과 눈물로 단식투쟁을 시작하였고 “찢어진 기폭”이라는 연극을 만들어 공연을 하면서 성금을 모금 하고, 베르린 시내에서 데모를 하면서 전세계 여론에 알리고 호소하였다
이 형제들은 억울하게 죽은 선량한 시민들을 폭도라 몰아 부치며 살인마 전두환을 영웅으로 찬양하는 한국언론의 추악한 진면목을 보고 치를 떨며, 이역만리에서나마 그 원혼을 달래고, 조국의 민주화와 만 악의 근원인 분단을 끝장내려고 재유럽오월민중제를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자기들이 살고 있는 각 지역에서 광주학살의 진상을 밝히고, 김대중과 양심수를 석방하고, 민생을 해결하며 반외세자주평화통일을 외치며 오월민중제를 시작하였다. 독재의 총칼 앞에 억눌려 위축되었던 국내 운동을 대신하여 유럽에서 이 저항운동은 활발히 진행되었다. 국내에서는 보기는커녕 들을 수 조차 없었던 그 처절한 장면을 먼저 보았고, 그들이 대부분 간호사와 광부인 노동자들이기에 받은 충격과 슬픔은 더욱 컸다.
해를 거듭하며 각각 지내던 오월민중제는 힘을 합하여 하나가 되었다. 모임의 편의를 위하여 거리상 중간지점인 빌레펠트 시 외곽에 있는 “자연의 집”으로 장소를 정하고 해마다. 재유럽오월민중제는 개최 하였는데, 어느덧 제 29주년이 되었다. 2007년 5월 5.18기념재단과 공동으로 베를린에서 재유럽오월민중제를 개최한 것을 제외하면 줄곧 이곳에서 개최한다.
재유럽오월민중제는 고국을 떠난 이곳 동포들에게는 설날 고향을 찾는 것과 다름이 없다. 고된 일손을 멈추고 많이 모이는 해는 200여명 모여 2박3일 오월민중제를 거행한다.
이번 제29주년 오월민중제는 그 의의가 더 크다. 광주민중봉기가 일어난 지도 한 세대인 30여 년이 다 되어가는데, 용산에서 가진 것이 없다는 죄로 공권력에 의하여 가난한 시민이 무참히 학살당하고, 민생은 파탄으로 치닫고 있으며, 남북관계는 날로 악화되어 전쟁위기까지 치닫고 있다. 유럽 동포들은 분노의 가슴을 부여 안고 빌레펠트로 오고 있다. 이제 비극은 끝내야 한다.
한 시간여의 준비가 마무리될 무렵인 오후 4시가 되자 형제자매들이 속속 도착 한다. 성(姓)도 틀리고, 나이도 틀려도 모두가 얼싸안고 반기다가 늘어나는 백발을 손을 바꿔 쓸어본다. 다시 얼굴도 비벼보고 등도 두들겨 준다. “어이 내 새끼! 어이, 내 새끼!”하며 말을 못 잇는 늙은 어머니의 바로 그 모습이다.
은빛의 커다란 합승버스가 도착했다. 베를린에 살고 있는 식구들이 도착했다. 문이 열리기도 전에 우르르 몰려가 버스에서 내리기 전부터 반겨 안는다. 초로의 얼굴 속에 젊은 형제들이 어울려 내려온다. 내일을 이어갈 젊은 식구들이다. 재유럽오월민중제의 새 주인공들이다.
차와 음료로 한담을 나누다 오후 6시쯤이 되니 길이 막혀 늦는다는 식구를 제외하고 거의 모두 도착했다. 된장국에 김치, 오이김치, 떡, 묵, 산나물에 각종 무침이 가득한 상위에 문밖 숯불에 구어 내는 고추장돼지불고기가 올라오고, 오월민중제의 명품인 “창원 홍어무침”이 별미다. 함부르크에 사시는 박성식 씨의 자랑이다. 누가 혹시 “함부르크 홍어회”라고 하였다가는 식사 후 술안주로 나오는 독일순대는 맛도 못 본다. 숯불구이는 그의 전권이다. “함부르크 산 홍어를 경남, 창원이 고향인 이 박성식이 무쳤는데, 왜 ‘함부르크 홍어회’라고 하노?” “내가 홍어만도 못하노?”하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귀와 손등, 얼굴과 정수리에 고슴도치가 무색하게 침들을 꽂고 아프지도 않은지 서로 보고 웃는다. 이민자 의학박사의 걸작품이다.
저녁 식사 후에는 언제나 영화감상을 한다. 이번에는 <국민회: The Korea American epic – Kook Min Hur, The Korea national association; Director Roberta Jang, USA/ Doku, DV color 62 min)이다. 대한민국의 건국에, 특히 초대 대통령 이승만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기회가 되면 한번은 보아야 할 것이다.
영화를 본 뒤에는 흥겨운 여흥과 술잔을 나눈다. 목소리 가다듬는 노래에 젓가락장단도 맞추며 술잔을 높이 들고 “통일”을 외친다. 자정이 지나 밤이 깊어도 몇 명은 자리를 뜨지 못한다. 무슨 할 이야기들이 그리 많은 지.
이종현 전 한민족유럽연대 회장님의 부인 우줄라 리 여사는 한국 동요를 즐겨 부른다. 우줄라 리 여사는 교정에서 만난 한국인에게 첫눈에 반하여 그를 붙들어 잡고 결혼하였다. 자기 나라인 독일에서 살면서 김치를 닮고 즐겨 된장국을 끓여 같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면 그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할 수 있다. 한국여성보다 더 한국적이다. 그 곱던 아가씨도 이번 7월이면 할머니가 된다.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산토끼” “송아지” 등 우리 동요들을 계속 부르면 모두들 일어나 깡총깡총 뛰며 초등학교시절로 되돌아 간다. 한번도 거르지 않고 부부가 29년을 한결같이 오월민중제에 참여한다.
재유럽오월민중제에는 해마다 국내인사들이 초청된다. 연대운동을 하는 단체와 인사들이다.인권사랑방의 서준식 선생, 박원순 변호사와 참여연대 일꾼들, 차병직 변호사,이창복 전민련의장, 청와대인사참모 정찬용, 홍성담화백, 한통련 곽동의 의장, 명진 스님, 강신석, 정기열 목사, 이우갑, 이동화 신부, 노동,여성 농민운동가 동학혁명계승사업회의 일꾼들, 518광주 부상자회와 유족회 관계자들, 518기념재단 윤광장 이사장과 이사진 위인백 전 5.18민중항쟁동지회 회장 ,전 국회의원, 해외민주인사. 세월이 흐른 만큼 오신 분들이 많아 일일이 다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모두들 금요일 밤의 여흥에는 감탄을 하였다.
금년에는 국내 이주노동자 운동 관계자들을 초청하여 함께 토론을 하기로 하였으나 국내사정으로 오지 못했다. 2007년 12월 재유럽오월민중제의 식구 11명이 국내를 방문하여 몇 개 도시를 순회하며 열악한 국내이주민의 처우를 개선하고자 광부와 간호사, 또 그들의 2세로서 독일에서 겪은 이주민 생활과 투쟁경험 및 성과를 소개하고 개선책을 모색하였는데, 이 운동을 계속하고자 하는 것이다. 아쉬움을 남기고 내년 제 30주년 오월민중제에 참석하기로 하였다.
5월 16일 토요일 아침 7시 30분, 찬 공기를 밀어내며 개량한복을 입은 선생들의 지휘로 이슬 젖은 잔디밭에서는 기공이 시작된다. 뼈가 없는 듯 부드러운 몸놀림에 정신을 팔다 보면 언제인가 그대로 멈춰있다. 베를린에서 침술과 자연치료 개인 전문치료실을 운영하고 있는 서의옥 선생의 기공은 독일인들도 보고 감탄을 연발하고, 신옥자 선생의 요가는 모든 시선을 사로잡는다.
아침식사 후 10시부터 김진향 선생의 사회로 추모식이 거행됐다. 재유럽오월민중제를 대표하여 한민족유럽연대자문 위원 이종현 선생의 <추모사>를 한국민중문화모임 최태호 회장이 낭독하고, 518기념재단(이사장 윤광장), 615 공동선언 해외측위원회(이사장 곽동의),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의장 손형근) 지구촌동포연대 (배덕호), 전 5.18민중항쟁동지회 회장 (위인백)이 보내준 <연대사>가 낭독되었다.
이어서 앞줄부터 일어나 행사장 앞에 모신 <오월영령>들께 분향하고, 앞 옆면에 모신 <재유럽민주통일인사>들에게도 분향했다. 해마다 늘어나는 현위를 보며 모두들 숙연해졌다. 올해에는 특별히 <용산참사희생자>를 모시고 분향을 하였다. 또 다시 비감과 분노가 솟구친다.
분향 후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잠시 휴식시간을 갖고, 재독한국여성모임 유정숙 박사의 사회로 뷔텐대학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마친 강정수 선생이 제 1주제인 <위기의 금융자본주의, 한국경제의 길을 묻다.>을 발표했다. 작금 미국에서부터 몰려오고 있는 금융위기에 대하여 설명하고 대처방안을 제시했다. 모기지, 해지펀드, 금융자산, CDO(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 파생상품, 성장동력 등등 보통사람들에게 까다로운 많은 경제용어를 아주 쉽게 풀이하고 설명하여 모두 감탄하였다.
주제발표가 끝나고 토론회가 열렸는데, 다투어 질의하는 바람에 다들 갑자기 경제전문가가 된 듯 했고, 금융위기로 인한 경제상황의 악화가 얼마나 서민생활에 심각한가를 실감했다. 당면한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여 찬사를 받았다. 자본가들보다도 생계형 개미투자자들의 위기가 절실하다는 것도 알았다. 한국경제는 물론 독일, 미국 등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배웠다. 특히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컸다.
점심식사 후 14시부터 15시 40분까지 한민족 유럽연대 최정규 선생의 사회로 채명수 박사가 제 2주제인 <해외동포가 보는 한반도의 위기>를 발표하였다. 이명박 정부의 대내외 정책에 대하여 개관하고 국가보안법의 유래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이어 최근 세인의 관심사인 로켓과 미사일에 대한 구별법과 경쟁개발의 원인에 대한 분석을 하였고, 한국의 숨은 권력관계 특히 언론권력에 대한 미래상을 추론하였다. 이를 통하여 위기의 당사자들이 누구인가를 설명하였다. 하지만 날로 기승을 부리는 악법인 국가보안법의 가장 핵심인 폐지에 대한 방안이 제시되지 못하여 아쉬움을 남겼다.
잠시 음료를 마시며 휴식하고, 16시 10분부터 615공동선언실천 유럽지역위원회 장일중 사무국장의 사회로 앞의 두 강사와 종합토론회를 가졌다. 경제와 정치, 한국이 처해있는 현실에 참석자들의 관심은 매우 높았다. 특히 서민생활과 직결되는 경제위기는 불안과 우려 속에 열기를 띠웠고, 이명박 정부의 서민경제정책에 대한 비판과 개선책 들이 제시되었다. 정치적인 문제에서는 역행하는 남북평화정책에 대한 심각한 토론이 이루어졌으며, 해외동포들이 앞장서서 남북화해의 길로 가도록 강력하게 촉구하는 운동을 추진해야 한다고 하였다. 평화통일일꾼들에 대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가보안법의 무자비한 악행은 즉시 중단되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조국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한반도의 총체적이고도 포괄적인 위기 대하여 이번 오월민중제를 기회로 계속적이고도 강력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데 노력을 기울이자며 토론을 마쳤다.
불고기와 김치찌개, 모두가 토종 한민족임을 확인하는 저녁이었다. 고향의 정취와 어머니의 정이 새삼 가까이 다가왔다. 경계도 없이 “함께 어울리는 장”이 이어졌다. 하고 싶은 말, 부르고 싶은 고향노래, 춤과 노래는 만사를 잠시 잊도록 하였다. 특히 손자 뻘쯤 되어 보이는 수련 온 독일 어린 학생들과 어울려 아리랑을 부르며 우리 전통 춤을 어울려 출 때는 나이마저 잊은 듯했다. 작년 2008년 오월민중제에서는 독일인들은 물론 수련 온 터키인 등 많은 나라 출신들과 어울려 촛불문화제를 열었는데 의외로 큰 호응을 얻었다.
2009년 5월 17일 일요일, 언제나 새벽은 기공 및 요가와 함께 열린다. 녹색의 잔디 위에서 꿈속같이 부드럽게 이어지는 각 동작은 독일 학생들의 호기심을 한껏 자극한다. 한민족의 무한한 가능성을 그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오전에 재유럽오월민중제 준비위원 윤운섭 선생과 김진향 선생의 사회로 종합토론과 총평이 열리고 내년 2010년 재유럽오월민중제 30주년 행사 준비를 위하여 장시간 토론을 하고 나서 결의문이 채택 되었다. 결연한 표정들에서 회춘하는 젊음과 희망을 보았다. 조국을 위해서라면 아직도 오월 그날의 붉은 피로 앞서서 싸우겠다고 다짐하면서. 우리는 싸울 것이다. 그리고 기필코 이겨 모두가 어울려 사는 통일된 조국을 만들 것이다.
재유럽오월민중제는 날이 가고 세월이 더할수록 더 즐겁고 더 강력하게 발전하고 있다.
2009년 5월 17일 독일 빌레펠트 시 “자연의 집”에서
재유럽오월민중제 준비위원회
연락처:윤운섭 E-mail: woonsup@yoo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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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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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심장하고 가슴이 싸아해지는 중요한 행사였군요.
기사 올려주신 자유로니님, 감사합니다.
이행사를 위해 수고하신분들께도 감사드리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