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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슈테판 하임 사망

페이지 정보

작성자 Jayuroni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조회 2,430회 작성일 01-12-18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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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하임이 12.16일 일요일 이스라엘에서 열리는 하인리히 하이네 시인에 대한 작가회의에 참가했다가 심장이 멎어 88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그의 사체는 18일 화요일 베를린으로 옮겨진다.그는 아마도 Berlin-Weißensee의 유태인묘지에 묻힐 것으로 예상된다. Berlin- Grünau의 그의 집에서 바로 건너다보이는 조그만 묘지이다. 그는 생전에 죽으면 이곳에서 쉬고싶다고 말했다.

그는 유태인이고 사회주의자이고 문필가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반골이었다. 작가 하임은 주로 시대사적, 역사적인 소재를 천착했다. 그는  항상 독일인들이 자신의 과거, 그리고 현재와 정직하게 대면하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1913년 4월 10일 동독시절 칼 맑스 도시로 알려진 Chemnitz에서 유태계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33년 나찌를 피해 망명의 길에 올랐다. 일단 체코로 갔다가 후에 미국으로 갔다. 미국에서 그는 "Hostages"와 "The Crusaders" 를 써서 성공을 거두며 이름을 날린다.

그는  미국군인이 되어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가했다. 미군이 되어 독일로 귀환한 그는 전후 자신의 고향으로 사회주의 동독을 택해 1952년 동독으로 이주했다.

"동독에서도 사람들이 나를 두팔벌려 반기지는 않았어요. 아마도 그들이 옳았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나는 그들에게 어려움을 가져다준 것 말고는 없거든요."

그는 곧 초기동독에서 아마도 가장 중요한 "반대작가"(oppositioneller Autor)가 되어버렸다. 그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비판적 맑시스트로서 사회주의적 신념을 가지고 있었지만 점차 전체주의적으로 변질되는 SED 국가에서 정신적인 저항의 상징이자 중심인물이 되었다.1976년 Wolf Biermanns가 추방되었을 때도 그는 용기있게 발언해서 동독정권과 갈등을 일으켰다.그는 96년 "불만의 겨울"(Der Winter eines Missvergnügens)이라는 책에서 동독역사의 한 분수령인 76년 비어만의 추방 사건을 조명한다.그는 이렇듯 동독정권이 가장 싫어하는 인물이었고 그와 관련된 비밀경찰 스타지의 한무더기 기록이 이를 증명한다. 그는 76년 동독작가연맹에서 제적되었고 형사소송까지 걸려있다가 92년에야 이에서 벗어난다.

그는 망명에서 돌아온 이래 새로운 조국건설을 희망했던 오랜 꿈에도 불구하고 동독이 와해되는데 있어 일익을 담당한 중심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89년 가을 "우리나라를 위해" 새로운 저항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면서 "동독을 서독에 팔아넘기는 것("Ausverkauf an die Bundesrepublik")에 는 반대하기도 했다. 동독이 결국 역사의 장에서 사라진 이후 하임은 레닌와 트로츠기의 동료들을 다룬 다큐소설"Radek"에서 "혁명의 잘못된 탄생"에 대해 회고하는 시간을 갖는다.

하임은 94년 독일하원의회선거에서  민사당을 위한 직선의원(Direktmandat)이 되었으나 일년후 예산인상에 항의하여 이를 되돌려주었다. 선거 직후 새 의회가 개원되면서 나이가 많은 그가 독일작가이자 유태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임시의장직(Alterspräsident)을 맡아 등단연설을 하게 되었을 때 독일정계에 논란이 일기도 했다. 콜은 그의 등단시 박수를 치지 않았다.

그는 깊게 정치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98년 소설 "Pargfrider"를 발간했다. 이는 황제시대의 오스트리아의 한 자본가에 대한 역사코메디이다. 그는 이 소설을 독해하는 자리에서 99년의 나토의 세르비아공격에 대해 반대하기도 했다. "나는 결코 다시는 전쟁을 체험하지 않아도 되기를 희망했었다."

동독의 작가연맹에서 79년 하임이 제명되었을 때 연맹장이었던 작가 Hermann Kant는그에 대해 최대의 존경을 보낸다고 말했다. 정치적으로 두사람은 같은 의견이 아니었지만 두사람다 동독의 더 나은 미래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민사당 당수 Gregor Gysi는 한 친구를 잃었다고 말했다. 볼프강 테어제 하원의장 는 하임을 사회의 변화와 개선을 위해 전력투구한 도덕주의자이자 투사라고 칭송했다. Christa Wolf는 하임을 크게 신뢰할 수 있는 굽힐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칭송했다. 베를린주 문화부장관 괼러(무소속)는 그의 용기와 불굴의 의지, 신뢰성을 칭송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의 실천적인 삶은 큰 문학과, 민주적 인간적 사회를 위한 정치적 활동이 하나로 합치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134.100.42.11'고민거리: 우리나라에도 하임과 비교될수 있을만한 분이 계신가요? 하임의 죽음 그 자체도 슬퍼지만, 위의 질문과 연관된 제 질문도 참 슬프게 느껴집니다. 언젠가 그가 마지막으로 참여한 티브이 토론에서 그의 굽힐줄 모르는 의기를 보고, 너무나 탄복한 적이 있습니다. "현실사회주의라는 실험이 실패했다해서 자본주의가 성공한 것이 아니다"라는 그의 말이 저의 피를 한번더 요동치게 만들기에 충분 했습니다. 자본주의의 반대자로, 동시에 현실사회주의의 비판가로 산 그의 삶을 보면서 살아남기 위해 색바꾸기 잘하는 한국의 정치가들이 참 못나보이네요.  [12/26-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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