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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독일통일 15년 - 불만은 언제 어디까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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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6건 조회 3,368회 작성일 05-10-07 01:40

본문

독일통일 15년 – 불만은 언제 어디까지?

독일통일이 있은 후 처음으로 치뤄진 자유선거에서 동독 공산당의 후신인 PDS는 동독인 17%의 지지표를 얻었다. 동독체제하에서 권력을 등에 업고 이득을 보며 살아 온 부류들이 17%였다. 그런데 15년이 지난 지금 이 정당의 지지율은 20%-25%까지 상승했다. PDS는 젊은 당원들을 영입하지 못하고 구 공산당원만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25%의 지지율이 나온 것은 과거 공산정권을 그리워하는 Ostalgie 때문이 아니라 현 정권에 대한 좌절감에 기인하는 것이다.
서독지역의 거의 두 배라는 22%에 달하는 높은 실업률과 전반적인 경제불황, 서독에 비해 낮은 생활수준에 대한 불만이 크다. 경제적인 측면뿐 아니다. 열등의식에 사로잡힌 동독인들의 심리적 콤플렉스로 인해 같은 민족인 동서독인의 진정한 교류와 소통은 어려워 지고 있다.
통일 15주년을 맞아 실시된 설문조사에 따르면 통일 후 동서독인이 서로 거리감이 좁혀졌다고 보는 동독인은 40%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다음 설문에 대한 답변이다. 동독인의 35%, 즉 앞의 40%와 거의 같은 수의 동독인이 통일 이후 오히려 거리가 더 멀어졌다고 답하고 있는 것이다. 서독인중에 23%도 동족간 거리가 더 멀어졌다고 본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다.

동독지역에 대한 퍼붓기 지원
통일 이후 정부는 동독지역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정확한 액수는 계산방법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공정성을 기대할 수 있는 동독지역 할레 소재 경제연구소 발표를 보면 2003년 한 해 동안에만 동독인은 1인당 5000 유로의 재정지원을 받은 것으로 환산된다. 이 금액은 서독 국민 총생산고의 4,5%에 해당하는 천문학적 숫자이다.
실상 통일 당시 동독은 비참할 정도로 가난한 나라였다. 시민들이 거주하던 아파트는 2차 대전 이전에 건설된 것이 많아서 그 3분의 1이 집안에 변소가 없었다. 밖으로 나와 반 쪽 계단을 내려가서 앞집과 공동으로 사용하는 19 세기 식 변소였다. 현대식 온방시설은 물론 전화소유는 국가에서 인정하는 주요직장 근무자에게만 허용됐다.
주거 아파트는 대부분 2차 대전 이전 건축물인데다 수 십 년 간 한 번도 페인트 칠 등 보수공사를 못해 때묻고 낡아빠진 폐허 같은 건물인데다 도시에서는 2차대전시 시가전을 하던 총탄 흔적을 자주 볼 수 있어 감개무량할 정도였다. 그렇게도 정결한 주거환경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독일인들이 어떻게 이런 환경에서 40여 년을 살아왔는지 의아스러울 정도이다.
그러나 오늘날 동독은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을 했다. 아우토반은 물론 전화시설 등 모든 인프라구조와 도시는 깨끗이 단장한 최상급 주택가로 변모됐다. 서독에서도 이 정도로 균일하게 깨끗한 도시는 찾아보기 힘들다. 동독 도시들이 통일 후 거의 동시에 보수미화작업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최근 통계자료를 보면 동독인의 개인 주머니 사정도 크게 호전되었다. 지난 15년 동안 이들의 수입은 정확히 두 배로 상승하였다. 그러나 서독인은 같은 기간 불과 45% 증가했을 뿐이다.
현재 동독에서 가장 빈곤한 도시인의 1인당 국민생산고는 3만 4천 유로이며 서독에서는 봇트롭이라는 도시가 최하인 3만 9천 유로이다. 동서독간 물가차이를 감안한다면 이 두 도시간의 생활수준의 차이는 전혀 없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동독인들의 끝없는 불만과 요구

이와 같이 거대한 수준의 재정지원을 받고도 동독인들의 욕심과 불만은 끝일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다.
지난 해 독일정부는 과도한 사회복지금 지급을 감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자 동독지역에서는 마치 기다리기나 했다는 듯이 데모가 일어났다. 그리고 이 데모에 ‘월요 데모’라는 명칭까지 붙였다. 월요데모는 동독정권이 붕괴되기 전 수 개월간에 걸쳐 라이프찍히 시에 있는 교회를 중심으로 조직된 반 정부 데모이었고 이 데모는 정권붕괴를 앞당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말하자면 동독인들은 이 데모를 통해 정부를 타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려 한 것이다. 서독시민들은 정부의 결정을 별 반대 없이 필요악으로 받아드렸다. 어쨌던 동독지역의 데모는 비록 지속되지는 못했지만 그만큼 상징성이 강한 데모였다. 이 사건은 동독인들이 현실감각을 잃은 경박한 불만표출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혀지게 되었다.

사실 끝없이 불만과 좌절감을 표출하는 동독인의 심정을 이해하는 데는 별다른 통찰력이 요구되는 것도 아니다. 동서독간에 형성된 물질적인 상하관계는 우리 생활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는 사생활 면에서 전개되는 개인적 인간관계나 국가간의 관계는 서로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직장을 못 구하는 동생과 잘 사는 형님과의 관계를 놓고 보자. 동생이 구원을 청하는 것은 가족관계를 중시하는 우리의 경우 당연시 될 수 있다. 이것은 동서독간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독일 전체 주 정부 간에는 재정 평형을 이루기 위해 부유한 주에서 빈곤한 주에 재정지원을 하거나 모든 봉급수혜자들이 통일기여금을 부담하는 규정도 법적으로 성문화돼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능력부족인 동생 쪽에서의 지원요청은 끝일 줄 모른다. 독일의 한 경제인은 우리 말에 있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에서 ‘씨가 없는 밭에 물만 퍼주기’라는 적절한 표현을 사용하였다.
이제 생활비도 들고 사업체를 꾸며 나가야 하는 동생으로서 돈은 아무리 있어도 부족하다고 느끼겠지만 한 편으로는 필요할 때마다 지원해 주는 형님이 있으니 마음 놓고 돈을 쓸 수 있는 행운아라고나 할까.
그런데 문제는 양측의 서로 엇갈리는 기대감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커져만 간다는 것이다. 형님 쪽에서는 이제는 동생이 자립능력도 없고 게다가 고마움도 모르는 배은망덕함을 탓할 지경에 까지 이른다. 일반 서독인의 생각에도 차이가 없다. 처음에는 가련하게 여기던 동독인이 이제는 아무 일도 해낼 수 없는 무능력자로 보이게 되고 게다가 고마움도 모른 체 한없이 손만 벌린다고 생각한다.
약 1년 전 동독지역 주 지사들은 연방정부에 동독지역 재정지원을 추가로 증대할 것을 요구한 적이 있었다. 이에 대한 서독 측의 반응은 의외로 강경했다. 돈을 더 요구하기 전에 현재 지원금에 대한 사용용도를 명확히 하라는 요구가 있었고 이제는 서독의 가난한 도시들이 지원을 받아야 할 시기라는 주장 마져 나왔다. 지방자치제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싹트기 시작 했다.
그러나 어쨌든 앞으로 또 15년간 동독으로 흘러갈 재정은 이미 책정이 돼 있다.
실제로 동독 주정부의 씀씀이에 대해서는 요즘 노골적으로 불만의 소리가 높아져 간다. 재정의 부실한 관리와 운영이 동독경제에 침체를 가져온 요인이라고 보는 노골적인 비난이 공개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이 세상에서 자기 노력이 없이 생긴 돈을 절약할 줄 아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동생의 존재는 형님에게는 차츰 공포와 혐오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동생의 욕심은 끝일 줄 모르고 이어지면서 형님에 대한 평가도 달라지기 시작한다. 돈 좀 있다고 잘난체하며 돈 버는 법을 안다고 우쭐대는 형님과의 관계는 더 이상 온전한 가족간의 관계가 아니다. 돈만 받고 거리를 두고 살았으면 하는 것이 동독인의 심정이다.
사실 이런 심경은 전형적인 독일인 혹은 동독인만의 모습은 아니다.
즉 경제적인 상하관계가 지속되는 이상 동서독인간의 거리는 가까워 질 수 없을 것이다. 사랑이란 자칫하면 미움으로 탈바꿈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진정한 내적 통일은 실현 불가능한 꿈인지도 모른다.

독일 통일문제가 주변 국가들간에 한창 논의될 당시 이태리 수상의 해학적인 다음 한 마디가 오히려 몇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우리는 독일을 무척 사랑한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계속 두 개의 사랑하는 독일을 가졌으면 좋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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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andbeyond님의 댓글

andbeyond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점이 있는데요. 유리님은 이런글을 직접 쓰시나요? 아님, 번역을 하시나요? 참 도움이 많이 되면서도 궁금했었습니다. 아마도, 진정한 내적 통일은 시간이지 않을까 합니다. 한 두세새대 지나면, 거의 섞이겠죠.

Lisa-marie님의 댓글

Lisa-mari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저, 죄송합니다만 .
1989년 통일이될때 구동독은 위에 쓰신데로 '비참하게 가난한 국가'가 아니고 당시론 '세계 10대 'ㅡ 공산국가중 첮째 ㅡ선진공업국가 였는데요. 지금의 남한한국과 마찬가지였죠.


그리고 구 동독과는 통일 전부터 개인들의 자유로운 편지교환, 방문, 왕래등이 모두 가능했는데요.
그런것이 전혀 없는 한국의ㅡ 얼마전까지만 해도 서로 비방이 심했죠 ㅡ 북한과 남한은 그 이질감 극복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것 같으세요? 만약 멀지 않은 장래에 통일이 된다면?
( 언젠가 이런 주제의 토론이 생겼을때, 저는 통일은 꼭 되어야 하지만 서두를 필요는 없다는 입장 이었는데) 거기다 역사적으로도  나누어진 나라 아니면 항상 남쪽보다 대우를 못받는 지역이었던 북쪽과 ?  제가 생각하는 통일문제에 있어 아주아주 중요한 문제 입니다.
님쪽에 2천만명을 수용할수 있는 ' 하나원' 인지를 세울수는 없잖아요.

슈타인베르퍼님의 댓글

슈타인베르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재미있으면서도 핵심을 잘 찌르신 것 같습니다.
동독에 대한 묘사를 읽으면서 제가 95년도에 동베를린에서 봤던 광경이 떠올랐습니다.
트레버호프 소련군 묘지를 가는 도중이었는데 어느 역인지는 모르지만 시내가 얼추 한눈에 들어오는 전철 안 이었는데, 정말 회갈색빛 사각형의 지극히 우중충한 도시의 모습...
거의 전율 했습니다.

주니아빠님의 댓글

주니아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재미있는 소설이기는 하지만, 그리 정확한 내용은 아니군요.
위에 말한 것과 같이 통독당시의 동독의 국민소득은 1만달러 이상이었습니다.
이런 금액은 당시 공상국가 경제체제임을 감안하면(거의 모든게 공짜라는 사실),
지금의 남한보다 비슷하거나 잘사는 동네였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글 중간중간에 내용이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어느 글을 번역하면서 내용을 빼 먹은 것으로 보이는데요,
글을 번역하면 원믈을 올려 주시면 더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1인당 생산액의 수치가 이상합니다.
독일 전체의 1인당 국민총생산액은 2004년 기준으로
22000달러, 국내총생간액은 24000달러 정도입니다.
위의 글에 34000유로라면 거의 4만달러인데요,
이 자료의 근거가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독일이 그렇게나 잘살줄이야....

낭중지추님의 댓글

낭중지추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유리님의 좋은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몇가지 의문이 드는 부분도 있고 달리 생각되는 부분도 사실 있습니다.

통일 15주년을 맞아 실시된 설문조사는 어느 기관이 한 것인지요? 보통 나오는 설문조사와는 좀 차이가 있는 거 같네요. 할레 경제연구소 조사인가요?

그리고 이번 총선 결과 구동독주들에 나타난 좌파연합(Die Linke)의 23-26.6%의 득표율을 단지 구공산당 PDS(민사당)의 온전한 표로 이해하시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는 거 같습니다. 엄연히 사민당에서 탈퇴해서 나온 라퐁텐과 그의 지지세력의 표도 그 역할이 적지 않았습니다. 불안한 PDS의 정권 미경험의 단점을 잘 커버했기에 좌파연합 득표의 5% 이상의 역할을 했다는 분석들이 나온걸 보면요.

동독지역이 애꿎게 무능력한 철부지 동생으로 묘사된 것도 동독지역으로선 안타깝군요. 통일전부터 또 통일후에도 다른 주와 비교해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을 받은 작센 주 같은 경우 CDU 30.4% SPD 24.3%에 이어 23% 득표율로 3위를 차지한 걸 보면 전망 좋은 산업과 사업을 진작에 이전시켜주고 그에 따른 인프라를 다른 구동독 주에 지원해줬다면 20%가 넘는 실업률로 차별성을 덜 느꼈을 거 같네요.

아무튼 이래 저래 독일의 통일은 각분야에서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독일의 통일을 논하는 것은 동독의 상황과 지원과 적응과 발전을 살펴보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통일을 논할때도 각분야에서 북한을 어떻게 지원해서 남한수준으로 맞추어가느냐가 그 관건이 될 거 같습니다. 그게 곧 내적통일의 핵심이더군요.

* 그냥 생각가는대로 두서없이 적었습니다. 논리적이지 못 한 글이니 그냥 스킵해주시길... ㅎㅎㅎ

porte님의 댓글

port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확실히 동독은 제가 알기로도 통일 이전에 세계 11대 경제대국이었던 것으로 압니다.

제작년에 체코를 갔는데 사람들 생활수준이 균등하게 나름대로 아주 풍족하지는 않지만
골고로 걱정 없이 사는 모습을 보고  구동독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체코는 오히려 자본주의 이후에 더 안좋아졌다고 불평하는 사람들도 많았구요.
우리 북한은 어떨지 그것부터가 걱정이네요.

물론 북한도 과거 70년대까지 아시아의 2번째 공업 국가로 농업생산력도 가장 높은 국가중에 하나였지요.  미국이랑 틀어지면서 모든것이 꼬이고 국제 무대에서 여러가지 제재를 받아서 무역을 해야 기본적으로 살아남는 나라가 아주 꼬이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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