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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독일이 침묵하는 전후 성범죄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자유로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3건 조회 6,743회 작성일 05-07-26 16:04

본문

2차대전 이후 오랫동안 침묵해온 것이 하나 있다.  전쟁 직후의 성폭력에 대해 조명한 책이 나오는게 무려 전후 30년이 흘러서였고 그 침묵을 깬 것도 독일인이 아니라 유태계 미국인이었다.
 
또 전후 40년이 넘어서서야 1988년에 페미니스트감독 Helke Sander가  당시의 성폭력을 다룬 다큐영화 '해방자와 피해방자"가 나오기에 이른다. 
 
잔더감독이 제시한 통계에 따르면 전후 1945년 가을부터 1946년봄까지 최소한 2백만명의 여성이 성폭력을 당했다.  특히 베를린에서만 10만명이 성폭력을 당했다. 
 
이중에 약 30만명의 여성이 임신을 했다. 이 수치는 다음을 의미한다. 당시 태어나 지금 60세정도된 독일인 열명중 한사람은 성폭력에 의해 태어난 사람이다.
 
이 영화가 나온지 2년후 영화비평가 Gertrud Koch를 필두로 날카로운 비판이 터져 나왔다. 이 영화가 반유태주의적이며 수정주의적이고 복수심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민족사회주의라는 배경에서 독일여성의 행위를 이해한 것이 아니라 이들을 희생자로, 러시아병사를 가해자로 낙인찍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이 나오자 나름대로 그동안의 침묵을 깨는 용기를 발휘했던 잔더의 작품은 사장되고 말았다.
 
당시 대부분의 성폭력은 러시아점령구역과 프랑스구역의 마로코군대주둔지에서 행해졌다. 이는 인종주의적인 편견에 의한 발언이 아니라 사실을 토대로 한 지적이다. 당시 소련은 히틀러와의 전쟁에서 수천만명이 목숨을 잃었고 서독은 미국의 우방이 될 소련의 적이었다. 이런 배경하에 당시 주이데올로그 Ilja Ehrenburg는 태연하게 러시아군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촉구할 수 있었다.
 
"적의 여인들에게 수치를 안겨라!"
 
소련구역에서 대량성폭력이 자행되었다면 미군구역에서는 대량의 매매춘이 행해졌다. 많은 독일여성들은 오직 기아를 면하기 위해 담배와 초콜렛 등으로 무장한 점령군의 품에 안겼다.
 
전쟁에서 돌아온 독일인남자들은 마치 "환향녀"를 홀대한 우리조상과 비슷한 못난 발상을 했던지 다음과 같은 분노에 찬 목소리가 항간에 떠돌았다.
 
"독일 남자들은 전장에서 5년을 버텼다. 독일여자들은 집에서 5분도 못 버텼다."
 
지금까지 독일에서 이 시절의 이야기들은 금기시되었고 지금까지 거의 쓰여지지도 않았다. 여성 스스로가 먼저 절대 침묵했다.
 
수백만명이 성폭력을 당하거나 매춘에 내몰렸지만 그에 대해서는 얘기되는 법이 없고 침묵만이 흐른다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저명한 페미니스트잡지 에마는 최근호에서 침묵하지만 나이를 먹을 수록 기억속에서는 더욱 생생해지는 것, 바로 그것들이 세상의 딸들에게 무엇을 의미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아직도 그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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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슈타인베르퍼님의 댓글

슈타인베르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전쟁 기간 중 소련방 국민 2천만명이 사망했고 이에 대한 대대적인 복수로 러시아군은 강간을 선택 합니다. 독일인의 수치심을 자극하기 위해 대개 30명 정도가 윤간을 했다고 하고 몽골/투르크계 병사들을 앞세웠다고 합니다. 그것도 부모들이 보는 앞에서...이중의 한명이 소련 작가 솔제니친이었는데 동료들의 행태와 말리지 않는 정치위원들을 보고 스탈린 체제에 대해 회의를 품기 시작햇다고 고백합니다. 러시아군이 동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크에 진입했을떄 강간 당한 후 미쳐서 돌아다니는 여자들이 수백명이었다고 하네여..특히 베를린은 파시스트의 본거지라 해서 12살부터 80살까지 가리지 않았다고 하는군여...독일에 있을떄 옆집 할머니가 베를린 출신 피난민이었는데 자기 친구도 당했다며 흥분하며 얘기하더군요. 바덴뷔르템부르크에 진군한 프랑스군도 복수심에 불타서 아프리카계 병사들을 풀어 놓습니다. 다시는 반복되서는 안될 역사 입니다. 불행히도 귄터그라스 말처럼 우리 시대에 이런 일은 반복 되지만...르완다나 보스니아에서 처럼 말입니다.

나디아님의 댓글

나디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전쟁 자체가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폭력이고, 그 살육의 광란 속에서 사람은 폭력에 무감각해지고 중독까지 되는 게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전쟁이란 것이 반복되어지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porte님의 댓글

port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영국군의 전후 독일점령후  보복행위는 특별히 러시아군의 보복성 성폭행처럼 알려진것은 없지만 저는  이런 사진은 본적이 있습니다.

점령주둔군 영국군 부인이 독일 나치스 전직 장교 부인을 무릎꿇리고 집안 바닥을 걸레로 닦게 지시하는 장면이던데 이 사진이 영국언론에서 즐거운 보도의 한면을 장식했다는 글을 읽은적이 있습니다.

솔직히 전쟁나면 여자들이 더 고생이지요. 전후 독일 복구사업 하는 사진들 보면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더 많은 역할을 한것 같더군요. 사진들을 보면 남자들은 얼빠진 모습으로 옆에 앉아서 담배 피고 있고 여자들이 도구들을 들고 벽돌을 치우고 재건자업을 하는 장면을 많이 보았습니다.

프랑스나 벨지움 같은 곳은 나치스 점령 시절에 독일군과 내연의 관계에 있던 여자들이 머리를 삭발 당하고 공개적으로 사람들에게 침을 맞는 보복을 당하기도 해구요...

다른 나라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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