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독일의 독자노선
슈피겔언라인 참고. 저자 데이비드 빈더는 뉴욕타임즈 독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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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원희이름으로 검색 조회 2,165회 작성일 02-11-05 11:37관련링크
http://www.spiegel.de/spiegel/0,1518,221329,00.html 310회 연결본문
Der deutsche Weg
지난 여름 미국의 이라크정책은 대서양 양안의 미국과 유럽의 관계를 격렬히 들쑤셔 놓았다. 폭풍이 지나간 이제 쬐께 진정이 되긴 했지만 이제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시야가 더 분명히 드러난다.
궂은 날씨의 주범은 슈뢰더의 "우리는 빼놓고 하드라고"선언("Ohne uns"-Erklärung)이었다. 슈뢰더가 부시의 대 이라크 전쟁계획을 거절한 것이다. 지난 수십년간 독일이 보였던 의례적인 모습과는 달리 더이상 독일이여 전선으로!("Germans to the front")가 모토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보다는 "너거들 모험하는데 우리는 일 움써"가 모토였다. 그리고 더구나 이는 독일민족의 대다수의 여론에 상응하는 것이었다. 기민당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나중에 프랑스도 이 심상찮은 대결에 합류해 주도권을 발휘했으며 더구나 성공적으로 주도권을 행사했다. 그래서 부시를 유엔안정보장이사회에 호소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이로써 지금은 일방적인 전쟁계획이 성사되기 전에 무기사찰을 받아들이도록 하는데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프랑스가 이렇게 치고 나간 것은 지난 8월에 슈뢰더의 확실한 입장표명 그리고 이에 대한 독일인들의 광범위한 동조가 없었다면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이다. 아마도 나는 이처럼 미국의 공식적인 입장에 반해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말하는 선도적인 독일인 정치가가 있다는데 열광한 한줌도 한되는 소수의 미국인에 속할 것이다.
지금의 독일이 있기 위해 미국은 2차대전에서 싸웠고 마샬플랜을 통해 돈을 쏟아부었으며 독일이 자유주의적이고 평화적인 길을 갈 수 있도록 애썼다.
슈뢰더는 "우리 독일인은 우리의 길을 간다"고 말했다. 이 길이 빌리 브란트와 하인리히 뵐을 통해 발산되었던 저 도덕적인 권위를 통해 이루어진다면 나는 정말 행복하겠다.
내가 "우리는 빼놓고"라는 선언을 그토록 높게 평가하는데는 아직 다른 이유가 한가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2차대전 이래 미국은 자신들이 세계 제일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이는 미국정부의 독일전문가 Martha Mautner가 잘 지적하고 있다.
솔직히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은 없지만 우리 미국인이 한국전에서 유엔과 연합군을 동원하는데 엄청 현명하게 처신한게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는 점차 혼자 행동하는데 익숙해졌다고 마우트너 여사는 지적한다. 미국은 실제로 뭔가를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강자이기도 했다. 냉정의 종식이후 오늘날 마우트너 여사는 경고한다. 다른 이들이 우리를 발광하는 거인으로 보는 것은 아니냐고.
우리 미국에게 결여된 것은 당당한 라이벌이다. 그래서 우리가 잃어버린 균형감각을 되찾을 수 있도록 우리를 강요해주는 라이벌이다. 그리고 이때 미국에 유일한 가능한 라이벌은 유럽연합일 것이다.
미국은 유럽을 만만한 상대로 보고 94년에 클린턴 정부때도 나토에서 미국의 역할강화를 강요했다. 보스니아와 코소보에서 나토가 전쟁을 벌인 것도 미국의 들러리로 볼 수 있다. 사실 나토의 확대는 미국의 주도하에 이루어졌으니까.
이렇게 볼때 슈뢰더의 독자노선은- 나중에 프랑스가 이어받았지만- 신기원적인 중요성이 있으며 변혁의 전조인 것이다. 슈뢰더는 근소한 차로 집권하면서도 이런 노선을 폈다. 아마도 우리는 독일에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 독일이 아직 시인과 사상가의 나라였을 때 이미 미국이 19세기에 기꺼이 했던 것처럼 말이다.
궂은 날씨의 주범은 슈뢰더의 "우리는 빼놓고 하드라고"선언("Ohne uns"-Erklärung)이었다. 슈뢰더가 부시의 대 이라크 전쟁계획을 거절한 것이다. 지난 수십년간 독일이 보였던 의례적인 모습과는 달리 더이상 독일이여 전선으로!("Germans to the front")가 모토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보다는 "너거들 모험하는데 우리는 일 움써"가 모토였다. 그리고 더구나 이는 독일민족의 대다수의 여론에 상응하는 것이었다. 기민당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나중에 프랑스도 이 심상찮은 대결에 합류해 주도권을 발휘했으며 더구나 성공적으로 주도권을 행사했다. 그래서 부시를 유엔안정보장이사회에 호소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이로써 지금은 일방적인 전쟁계획이 성사되기 전에 무기사찰을 받아들이도록 하는데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프랑스가 이렇게 치고 나간 것은 지난 8월에 슈뢰더의 확실한 입장표명 그리고 이에 대한 독일인들의 광범위한 동조가 없었다면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이다. 아마도 나는 이처럼 미국의 공식적인 입장에 반해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말하는 선도적인 독일인 정치가가 있다는데 열광한 한줌도 한되는 소수의 미국인에 속할 것이다.
지금의 독일이 있기 위해 미국은 2차대전에서 싸웠고 마샬플랜을 통해 돈을 쏟아부었으며 독일이 자유주의적이고 평화적인 길을 갈 수 있도록 애썼다.
슈뢰더는 "우리 독일인은 우리의 길을 간다"고 말했다. 이 길이 빌리 브란트와 하인리히 뵐을 통해 발산되었던 저 도덕적인 권위를 통해 이루어진다면 나는 정말 행복하겠다.
내가 "우리는 빼놓고"라는 선언을 그토록 높게 평가하는데는 아직 다른 이유가 한가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2차대전 이래 미국은 자신들이 세계 제일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이는 미국정부의 독일전문가 Martha Mautner가 잘 지적하고 있다.
솔직히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은 없지만 우리 미국인이 한국전에서 유엔과 연합군을 동원하는데 엄청 현명하게 처신한게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는 점차 혼자 행동하는데 익숙해졌다고 마우트너 여사는 지적한다. 미국은 실제로 뭔가를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강자이기도 했다. 냉정의 종식이후 오늘날 마우트너 여사는 경고한다. 다른 이들이 우리를 발광하는 거인으로 보는 것은 아니냐고.
우리 미국에게 결여된 것은 당당한 라이벌이다. 그래서 우리가 잃어버린 균형감각을 되찾을 수 있도록 우리를 강요해주는 라이벌이다. 그리고 이때 미국에 유일한 가능한 라이벌은 유럽연합일 것이다.
미국은 유럽을 만만한 상대로 보고 94년에 클린턴 정부때도 나토에서 미국의 역할강화를 강요했다. 보스니아와 코소보에서 나토가 전쟁을 벌인 것도 미국의 들러리로 볼 수 있다. 사실 나토의 확대는 미국의 주도하에 이루어졌으니까.
이렇게 볼때 슈뢰더의 독자노선은- 나중에 프랑스가 이어받았지만- 신기원적인 중요성이 있으며 변혁의 전조인 것이다. 슈뢰더는 근소한 차로 집권하면서도 이런 노선을 폈다. 아마도 우리는 독일에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 독일이 아직 시인과 사상가의 나라였을 때 이미 미국이 19세기에 기꺼이 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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