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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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6건 조회 1,801회 작성일 12-12-18 20:36본문
댓글목록
Noelie님의 댓글
Noeli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제 79년 이군요. 정말 긴장됩니다.
특히 당시 독일에 사시던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저는 주로 책으로만 알기 때문에
한겨레님 글은 제겐 또 다른 큰 정신의 양식입니다
숲에서놀기님의 댓글
숲에서놀기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향을 사르다"라고 하는군요. 저는 나지라기를 읽으며 국어 공부도 하거든요. 그것말고 따로 적어놓은 표현도 많은데, 그걸 보면서 얼마나 많은 준비를 거쳐 나온 글인지 감히 짐작해 봅니다.
아.. 저는 저때 아직 초등학생이었어요. 동네 아이들이랑 집에서 놀고 있는데, 한 아이가 저 소식을 듣더니 갑자기 울음을 터뜨려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네요. 곁에 있던 아이들도 울먹울먹했더랬죠. 그때 그 꼬마들은 지금쯤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지..^^
한겨레님의 댓글의 댓글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고맙습니다. 될 수 있으면 잊혀져가는 우리 말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래 친구들의 별명을 "솔봉이, 까투리, 떡부엉이"등의 순 우리말로 지어 불렀던 초등학생 때의 기억을 되살려써 보았더니 어색하지 않고 감칠 맛이 나더라구요.
"애옥살이-뜨께부부-고살래-광저기" 등등은 신기철 형제분이 편찬한 <새우리말 사전>에서 찾아냈습니다. 앞으로도 아름다운 순 우리말이 심심찮게 나올 겁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숲에서놀기님의 댓글의 댓글
숲에서놀기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에멜무지, 숫되기만 한, 숫저운 미소, 솔봉이 티, 서털구털, 애옥살이 물, 흐리마리, 얽벅얽벅.. 이게 다 한 회에서만 찾아낸 보물이에요. 새삼 한국말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잘 안 쓰는 표현도 꽤 되지만, 뭘 알아야 쓸 수 있잖아요.
말뜻이야 혼자 찾아볼 수 있지만 어떤 맥락에서 쓰이는지 찾아보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니거든요. 그런 뜻에서 나지라기는 귀한 '용례사전'을 대신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계속 기대하겠습니다.
ImNebel님의 댓글
ImNebel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안녕하세요,초보 회원입니다.이게 첫글이구요,전 오래전부터 눈팅을 해온지라 한겨레님이나 노엘리님...님등등을 가끔 잘 아는 사이로 착각을 한다는,79년이면 제가 독일에서 학업을 시작한 해군요.나이는 한겨레님보다 아주 아주 훨씬 적지만,어느날 수줍어 학교 한구석에서 강의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당시에만 해도 대다수 독일사람들이 한국이라는 나라가 도데체 어디있는줄도 모르는 수준이었는데 저에게 관심 가져준 몇 독일학생들이 몰려와 너네 대통령 살해됐다면서 하더라구요.정치에 별 관심이 없는 저는 살인사건이라는 말에 마음과 몸이 덜컹 했구요,한국사람들은 어떤사람은 잘됐어 어떤사람은 아이고 어쩌나 느낌은 반 반 같았습니다.한겨레님,전 이이야기를 읽으면서 왠지 그리웠던 그때 그당시의 생활 모두들 가난했지만 김치찌게 하나만 놓고도 서로 함께 둘러앉아 사이좋게 정을 나눌수 있었던 시절 그옛날 추억들을 되새기는것이 참 좋습니다.자꾸 기다려집니다.감사합니다.
한겨레님의 댓글의 댓글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반갑습니다. 79년에 독일에서 학업을 시작하셨다니 마치 옛 벗을 만난 듯한 반가움이 앞섭니다.
79~80년 그 격동의 시기에 분노와 눈물과 한탄을 함께 했던 보쿰대학의 유학생 얼굴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릅니다. 우린 그때 그럴듯한 레스트랑가서 밥 사먹을 여유도 없이 참 가난했지만, 학생 기숙사에서 Waffel 구워먹으며 서로를 격려했지요. 지금은 거의 모두 중견 교수로서 강단에서 활동하고 있어서 마음 든든합니다. 님께서도 강단에서 활동하고 계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