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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넷째 마당 : 재 회

   낯선 땅 독에 도착해 다섯 번째 맞는 토요일은,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지상교육을 받는 동안 통역을 하면서 보여준 따뜻한 마음씨에 정이 든 총각 엄 통역이 함부르크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파독간호사와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호클라마르크 두 기숙사의 분위기는 잔칫날 같았다. 미혼자건 기혼자건 너나없이 홀아비 살림하는 처지에 매일매일 일에 지쳐 옷매무새도 돌아보지 않고 광산과 기숙사만 오가느라고 몸치장 옷치장에 신경 쓸 겨를은커녕 손톱 밑과 눈가 귓가의 까뭇까뭇한 석탄 흔적도 깨끗이 닦아내지 못했던 그야말로 광부들이 이날만은 아침부터 목욕하고 면도하고 한국에서 올 때 입고 왔던 양복을 꺼내어 다림질해서 입고 오랜만에 목댕기도 매고 공연히 들떠서 기숙사 안팎에서 서성거렸다. 이날 결혼식을 위해 함부르크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신부의 친지들이 쉬흔 명도 넘게 관광버스를 전세 내어 온다는 소식에 어떻게 해서든 무제한 거주권이 있는 간호사와 결혼하여 독에 머물러 살고자 하는 총각들을 기대에 들뜨게 하였던 것이다. 총각이 아닌 기혼자라도 모두 서른 살 안팎의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인지라 머나먼 이국땅에서 고국 처녀들을 무더기로 만난다는 일은 신 나는 일이었다.

   결혼식은 광산의 인사담당 소장을 비롯한 스무 남짓의 직원들과 백여 명의 에발트 광산 한국광부들, 그리고 함부르크에서 온 쉬흔 대여섯 명의 한국간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호클라마르크에 있는 고색창연한 성당에서 젊은 한국신부의 집전으로 매우 엄숙하게 치졌다. 혼인미사를 끝마치고 밖으로 나온 신랑 신부는 성당 문 앞마당에서 독 풍습대로 몇 큼의 동전을 뿌려 기웃거리는 독어린이들을 기쁘게 했다.
   피로연은 성당에서 약 삼백 미터 떨어져 있는 천주교 공동체 친교실에서 신부의 친지들이 준비해 온 가지가지 음식과 샴페인과 맥주로 풍성하게 열려 오랫동안 변변한 음식을 먹지 못해 굶주린 홀아비들의 눈빛을 번득이게 했다. 한동안 먹고 마시느라고 분주했던 홀아비들은 어느 정도 배가 불러오자 비로소 친교실 앞쪽에서 음악에 맞추어 쌍쌍이 춤을 추는 남녀들을 바라보았다.
   신랑 신부는 하객들의 잔에 일일이 샴페인을 따르면서 축하해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마친 다음 함께 앞으로 나가 미리 연습이라도 한 듯 호흡이 잘 맞는 아름다운 자태로 탱고를 추었다.

   음악이 삼바로 바뀌고 춤동작이 빨라지기 시작하자 춘성이 흥이 난 듯, 한 간호사 앞에 가서 꾸벅 절을 하고 손을 내밀어 춤을 청했지만 보기 좋게 거절당하는 광경이 성주의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춘성의 춤 상대역을 거절한 간호사의 얼굴이 낯설지가 않았다.
"
누구지? "
하면서 눈길을 떼지 않고 쳐다보고 있는 성주의 시선을 의식한 듯 고개를 돌려 성주를 보던 그녀는 놀란 듯 벌떡 일어나 성주 앞으로 달음질쳐 왔다.
"
성주 오빠 맞죠?"
"
? 너는 영주, 영주가 맞니?"
"
그래요, 나 영주에요, 세상에---"
"
독에 와 있었니? 그런 걸 한국에서 찾았으니---"
"
오빠가 날 찾았다구요? 거짓말, 그렇게 무정한 사람이 찾기는 무슨---"
  영주는 원망스러운 눈물을 글썽거리며 맞잡은 성주의 손을 놓을 줄을 몰랐다. 성주는 무슨 말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 몰라 말을 잃고 울먹이는 영주의 얼굴을 들여다보고만 있었다. 잘못하면 피로연의 분위기를 가라앉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성주는 영주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마침 가까운 곳에 이탈리아식 카페가 보여 두 사람은 그리로 들어갔다.
 
"독엔 언제 왔니? 난 이제 겨우 한 달 조금 넘었다---"
"
오빠가 인제까지 찾아간 날 모른 체라 하 월남으로 떠나가 버린 다음 해에 왔으니까 꼭 십 년이 되네."
"
그러구 보니까 우리가 십 년 만에 만나는 거구나. 그동안 넌 많이 변했다. 뭐라 할까 성숙해졌다 할까? 못 알아볼 뻔했어."
"
것 봐요, 난 한눈에 알아봤는데, 오빤 원래부터 무심했으니까 기억에도 없는 거지 뭐 "
"
아니야, 그럴 리가 있어? 내가 무얼 그리 무심했다---"
"
오빠가 전방까지 찾아간 나를 혼자 놔두고 월남으로 가버린 후에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요? 무심한 사람 다시는 안 찾는다. 다시는 안 찾는다. 몇 번씩 다짐하면서 오빠 잊으려 독까지 왔는데---"
"
지나간 얘기는 다 잊자, 영주야"
"
아니, 이건 지나간 얘기가 아니야, 십 년 세월을 건너뛰어서 이어지는 얘기야, 참 이상하지, 이런 걸 운명이라 하는가 인연이라 하는가?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던 오빠가 제 발로 독에 와서 만나게 되다니, 우린 분명히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었던 거야"
"
인연이야 있었겠지만, 이젠 모두 지나가 버린 이야기야. 잊어버려!"
"
어떻게 잊어버려? 이렇게 가슴속에 재웠던 불씨가 다시 타오르기 시작하는데"
"
영주야! 그게 무슨 소리야, 설마 이 나이 먹도록 결혼 안 했을 리 없, 신랑은 어떻게 하려 무슨 불씨가 타 오른다 그래---"
   성주가 정색하고 다그치자 영주는 대답 대신 성주에게 되물었다.
"
오빤 결혼했지? 언니는 어떤 사람이야? 아이는 몇이나 있? 아니 그것보다는 도대체 어떻게 돼서 광부로 독까지 온 거야?"
영주는 결혼했느냐 하는 질문이 열적은 듯 연거 다른 질문까지 쏟아냈다.
"
그렇게 한꺼번에 물으면 어떻게 대답을 하라---? 그래 난 결혼했어. 올해로 칠 년 됐지, 아이는 사내애만 둘이, 아내는 그저 보통여자야, 시골 농사짓는 집 팔 남매 중 다섯째 딸이야, 그래서 이름이 오복이지. 예쁘고 착해. 그것뿐이야"
"
예쁘고 착해? 나처럼? 하긴 오빠 눈에는 세상 여자들이 모두 예쁘고 착하게 보이지. 나 처음 삼청공원에 데리 나갈 때도 내가 '왜 나한테 잘 해주느냐?' 물으니까, 그 때 오빠 대답이 그랬어. '영주가 예쁘고 착해서', 그리 지금 언니도 예쁘고 착하다? 그런데 의외네, 오빤 그렇다치, 어머니가 농사짓는 집 딸을 며느리로 허락하신 일이---"
   영주는 끊임없이 종알거렸다.
"
어머니 많이 지치셨지, 제대할 때 다 서 느닷없이 월남으로 가 버려 군대생활을 남보다 두 해나 더 하질 않나? 제대하고 나서는 무슨 수입약품 판매원 한다 밤낮 가리지 않고 삼천리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명색이 맏아들이라는 작자가 미 가슴 떨리는 일만 덜컹덜컹 저지르고 다니니까,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수재 소리를 듣던 맏아들에게 걸었던 꿈도 기대도 다 접어 버린 거지. 하여튼 참한 여자 만나서 마음 잡고 가정 꾸리는 것만 보아도 더 바랄 것이 없다는 지경까지 이르도록 지치셨으니까, 내가 얼마나 불효한 짓을 하고 다녔는지 모르겠어---"
"
그래도 그렇지, 당신 아들이 천하에 둘도 없는 잘난 아들로 아시고 동네 웬만한 처녀애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으시던 양반인데…."
"
그러게 다 연분이 있다고 하지 않니,"
"
하기, 오빠 주변머리에 연애했을 리는 없, 어떻게 만나서 결혼했는지 그게 젤 궁하네 "
"
중매였어, 어머니 친구 되시는 분이 소개했지, 실은 결혼하겠다는 생각도 없이 소개하는 분 체면 생각해서 만나봤는데, 첫 만남에서 이 여자를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 그래서 그냥 서둘러 결혼을 해 버렸는데, 지내 놓고 생각하니까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야. 그런 걸 두고 뭣에 홀렸다고 하는 건지"
"
내가 매달릴 땐 여자의 일생 책임질 능력이 없다 도망치더니 그때는 책임질 자신감이 생겼었나 봐, 도대체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뭐가 그렇게 마음이 들었는데?"
"
아니야, 참 이상하게 그때는 책임진다는 건 염두에 전혀 없었고 내 인생에 이 여자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던 거야. 그리고 딱히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다기보다는, 영주, 너도 알다시피 내 성격이 좀 그렇지 않니? 싫어도 싫다 소리 못하고 좋아도 좋다고 말하지 못하는 미적지근한 성격, 아파도 소리치지 못하고 마음속에서만 삭이는…, 그리고 일마다 빨리빨리 결정 못 내리고 이리저리 생각만 하다가 게도 구럭도 다 놓쳐버리는 우유부단함, 그런 성격 때문에 될 수 있는 일도 안 된 일이 내 인생에는 많이 있었지. 그런데 난생처음의 맞선에서 만난 그녀는 아무 구속 없이 자연에서 자란 야생마 그대로였어.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앞뒤 재는 일 없이 거침없이 쏟아내는 처녀가 어찌나 신선하게 보였는지, 그때 난 속으로 이 여자는 아마 아프면 참지 않고 아프다고 소리치고 마음에 안 들면 싫다고 대놓고 말할 거라고 생각했지. 아니 어쩌면 계산이었는지도 몰라,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내 성격으로는 평생을 손해만 보고 살 것이 뻔하니까 적극적이고 야성적인 여자와 짝을 맺으면 내게 부족한 점이 보충돼 잘 어울릴 거라는 계산이었는데 그건 내 일방적인 계산이었고, 아내 쪽에서 보면 참 뭣에 홀려서 집도 절도 없고 가진 것도 하나도 없는 빈털터리와 어이없는 결혼을 한 셈이었지.
   얼떨결에 약혼하고 결혼하고 신혼살림이라고 차렸는데, 신랑이라는 작자는 월급봉투를 고스란히 시어머니에게 가져다 바치고 새색시에게는 미장원 갈 용돈 한 푼 따로 챙겨줄 줄 모르는 무심한 멍청이였으니 새색가 말도 못하고 속에서 얼마나 열불이 났겠어? 난 그런 것도 모르고 그냥 그렇게 사는 것으로 알았으니 무식하기는 또 얼마나 무식했고---
   결혼하고 나서야 비로소 사는 법을 둘씩 배우기 시작했다고 할까, 아무튼 결혼하 한 삼 년 지나니까 그때야 정신이 번쩍 들더라. 별로 잘난 것도 없으면서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신조를 지니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오만방자함인지 알게 되더라. 정작 나를 필요로 하는 건 다른 남들이 아니라 내 반쪽인 아내라는 걸 결혼생활 삼 년 만에야 깨달았으니, 그리고 결혼은 그렇게 가진 것 아무것도 없이 무작정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그때야 깨달았으---, 그런 놈을 남편으로 믿고 살아야 했던 여자의 심정은 오죽 했겠느냐? 뒤늦게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그렇다 세월을 되돌릴 수도 없는 일이니 어쩌겠어, 그냥 미안하 안쓰럽고 힘들기만 하고, 마음으로만 '잘해 줘야지, 잘해 줘야지'라고 염불 외듯 다짐만 하다가 다른 도리 없으니 외국에 나가 삼 년 벌어 모아 집 한 칸 장만하자고 철석같이 약속하고 여기 독까지 온 거야."
"
그만 좀 해요, 한국 떠난 지 얼마나 됐다, 그저 언니 얘기만 끝이 없네. 세상에 십 년 만에 만난 애인 앞에서 자기 아내 얘기만 하는 사람이 어디 또 있을라---"
   성주의 두서없는 말을 끊으며 눈을 흘기는 영주의 야릇한 눈빛에 당황한 성주는 눈길을 피하며 자르듯이 말했다.
"
누가 애인인데? 큰일 날 소리. 우린 오누이였잖아, 안 그러니?"
"
성주 씨 ! "
   영주는 갑자기 호칭을 바꾸어 부르며 정색을 하고 성주를 건너다보았다.
"
? 뭐라구? 성주씨??? "
   당황해서 얼버무리는 성주를 원망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영주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제하는 듯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
그래요. 성주 씨는 아니더래도 이 정영주는 나이 열여섯 살 때부터 성주 씨를 유일한 신랑감으로 여기고 세상을 살아왔으니 애인이랄 수밖에, 이제 여기 독에서 만났으니 누구 눈치 볼 것도 없으니까 당당하게 '성주 씨'라고 부를 거야. 내가 지난 십오 년 동안 가슴속에 묻고 사랑해 왔던 애인 한성주씨! 하느님이 무심하지 않아 이 불쌍한 년을 위해 우여곡절 끝에 당신을 내 옆으로 가져다 놓으셨으니, 나 오늘부터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잊지 않고 드릴 꺼야.
   성주 씨, 기억나요? 십일 년 전 내가 강원도 인제 땅 당신의 부대로 찾아갔을 때 내가 했던 말을? 당신은 내 청을 뿌리치고 무정하게 월남으로 떠나가 버렸지만, 그때 간절했던 소망을 하느님께서 기억하시고 이제야 이루게 해 주실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영주의 눈빛에 오랜 세월 가슴속 깊이 묻어 두었던 그리움이 축축하게 젖어 나오는 것을 보면서 성주는 십일 년 전 강원도 인제 산골짜기까지 찾아와 매달리던 영주의 모습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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