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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겨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1,159회 작성일 12-12-28 20:36

본문

 
오복과 영옥이 부지런히 차린 점심 식탁에 둘러앉아서 성규가 또 엉뚱한 말로 사람들을 웃겼다.
형수! 나 모르겠슈? 나 총각 때 죽산에서 망해사 놀러 가려구, 오답구 공굴다리 지나가려면 광활 처녀들이 뒤따라 오면서 뒤통수에다 대고, 저 총각 튼실해서 우리 집 물 머슴 삼았으면 좋겠다 하고 즈들끼리 시시덕거리면서 놀리더만, 어째, 형수가 꼭 그 처녀들 중의 하나인 것 같아유.“
어머머! 집이 죽산이에요? 근데 그때쯤이면 전 서울에 있었는데---.“
아따~ 하여튼 광활 처녀들이 그랬슈. 형수도 고향이 광활이면 지나가는 총각들 어지간히 놀리구 그랬쥬?“
난 안 그랬어요. 어머니 혼자 농사지으셔서, 농사일 돕느라고 또래들과 몰려다니질 못해서---.“
고향이야기들과 맞벌이하면서 아이들 키우느라 고생도 많고 마음 아픈 일도 많은 서독살림이야기로 꽃을 피우다가, 저녁밥까지 해 먹고 그들은 돌아갔다.

그들을 배웅하고 거실로 함께 돌아오며 오복은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갑자기 부자가 된 느낌이야. 한국식품이 부엌에 그득하니까. 손들도 크지 웬 쌀을 다섯 포씩이나, 저게 한국으로 치면 한 가마니가 더 되겠던데.“
쌀이 한 가마니에 사십 킬로그램 들었던가?“
몰라, 언제 가마니 쌀 사 먹어 봤어야 알지.“
갑작스러운 오복의 퉁명스런 대답에 성주는 머쓱해져서 말을 잃었다. 결혼 후 따로 살림난 뒤로는 가마니 쌀 들여놓고 산 적이 없는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미안해 여보. 당신 속상하게 하려는 건 아니었는데, 왜 무심코 그런 소리가 나오지? 정말 미안해 여보.“
오복은 무심코 내뱉은 말에 성주가 풀이 죽는 것이 안타까웠는지 절절맸다. 전에 없던 일이었다.
, 사실인데.“
성주가 여전히 풀기 없이 대답하자, 오복은 일부러 그러는 것이 눈에 보이는 밝은 목소리로 종알댔다.
당신 서독에 오기를 정말 잘한 것 같아. 한국에서는 친구도 없고 드나드는 사람도 없더니, 여기서는 뭐 형이다 아우다 하고 그 먼 데서 선물 들고 찾아오질 않나, 당신이라면 죽고 못 사는 마리아 누님에, 또 당신을 하늘처럼 떠받드는 누이동생 영주 씨까지, 복이 밀려 있다가 한꺼번에 터지는가 봐---.“
오복은 성주의 움츠러든 기분을 풀어주려는 듯 전에 없던 호들갑을 떨었다.
당신 왜 그래? 전에는 안 그러더니 요즘 와서 수다가 많이 는 것 같아.“
성주는 마음이 풀려 따라 웃으며, 요즘 들어서 오복이 자신에게 매우 곰살갑게 대하는 까닭을 물었다.
서독에 와서, 다들 당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걸 보니까, 내가 그동안 당신을 잘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 그리고 또 당신 첫사랑 영주 씨가 언제 당신을 채어갈까 엿보고 있는데, 내가 애교도 좀 부리고 아양도 떨어서 당신에게 알뜰한 마누라가 되어야 당신을 꼭 붙잡아 둘 수 있잖아.“
웃음 띠운 얼굴로 말은 하지만, 오복의 대꾸 속에는 자신을 향하는 원망이 서려 있음을 성주는 느꼈다.
여보, 앞으로 내가 잘 할게. 내가 당신에게 너무 무심했어. 진짜로 당신만 사랑할 거야. 걱정하지마! 당신은 우리 윤기와 준기의 엄마잖아. 그리고 내 반쪽이고, 당신하고 내가 합쳐야 한 사람이 되는 거라잖아.“
오복을 끌어안고 하는 말이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성주 자신에게 타이르고 있었다. 성주에게 안겨 오복은 울고 있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의 밑바닥에서 샘솟아 오르는 눈물을 주체할 길이 없어 서럽게 흐느끼다가 끝내는 엉엉 울음을 터뜨리며 성주를 뿌리치고 침실로 뛰어들어갔다. 성주는 당황했다. 오복을 어떻게 달래주어야 좋을지 난감하기만 했다. 침대에 엎드려 소리를 내 우는 오복을 어찌할 길이 없어 성주는 머리맡에 앉아 말없이 오복의 등을 어루만지기만 했다. 문득 오복에게 결혼하자고 하면서 자신이 다짐했던 말이 떠올랐다.
재산도 없고 앞날이 보장된 것도 없어서 일등 남편감은 못되지만, 평생을 두고 당신 눈에서 눈물 나게 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하고 다짐했건만, 결혼생활 열 해 동안에 오복이 수도 없이 많은 눈물을 흘리게 했다는 회한에 생각이 이르자 성주도 울음을 터뜨렸다.
미안하다, 오복아! 가슴이 찢어지게 아프도록 미안하다. 마음먹고 그러는 건 아니지만, 난 왜 하는 일마다 너를 울리는 일이 되는지 나도 모르겠다.“
성주가 울음 섞인 말을 오복의 귓가에 속삭이자 오복은 울음을 멈추고 일어나 앉았다.
여보, 나도 여자야, 남자의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여자란 말이야. 남편이니까, 애 아빠니까 어쩔 수 없이 지켜야 하는 의무가 아니라, 남자와 여자가 애틋하게 주고 받는 그런 사랑을 하고 싶은 여자란 말이야. 당신은 영주씨에게 사랑을 주고, 나머지는 월남여자에게 다 쏟아주어서 사랑이 메말라버려 내게 줄 사랑이 없는 줄 알지만, 그렇더라도 결혼 이후 내게 단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 안 해준 거 알아? 그저 미안해, 잘할게 그 말밖에 안 했잖아? 난 그게 싫어. 왜 나한테는 사랑한다는 말을 안 해줘? 그렇게도 내게는 사랑이 안 느껴져? 정말 그래?“
오복이 두 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들이댔다.
아니야, 여보, 나 당신 사랑해. 내가 내성적이어서 그런 낯간지러운 말을 못했을 뿐이야. 진짜야, 맹세하건대 영주한테도, 월남의 금제비한테도 사랑한다는 말은 낯이 간지러워서 하지 못했어. 그런데 이제부터 당신한테만 사랑한다고 말할게.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온 마음으로 당신만 사랑할게. 그러니까 그만 진정해. 다 내가 모자란 탓이야.“
성주가 오복의 두 손을 맞잡으며 거듭거듭 다짐을 하자, 오복은 눈물범벅이 된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띠며 물었다.
나만 사랑한다는 말 믿어도 돼?“
참말이야. 믿어! 나 맹세할게.“
다는 안 바래. 내가 당신한테는 세 번째 여자니까, 당신 마음속 삼분지 일만 자리를 내어주면, 나 그걸로 만족하고 살 거야, 삼 분의 일만, 정말이야.“
아니야, 여보, 나 마음속을 다 비워 놓았어. 그러니 어서 들어와 내 마음자리를 다 차지해. 여보 사랑해!“
성주가 두 팔을 벌려 끌어안으려고 하니까, 오복은 몸을 빼어 일어나 “나 세수하고 올게” 하고 화장실로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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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한마리님의 댓글

드론한마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십여년 전 군대를 전역한 후, 아무런 목적도 없이 어떤 책을 읽게되고 그러다가 그 책을 손에서 떨어뜨릴 수 없는 상황은 처음인 거 같네요. 어릴 적 나상만님의 '혼자 뜨는 달'을 몰래 읽던 그 때의 말랑말랑한 감성을 스스로부터 느낄 수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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