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사냥>(1): Sturm im Wassergl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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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미륵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조회 2,175회 작성일 01-09-06 22:35본문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가 새 독일어 맞춤법을 포기하고, 8월 1일부터는 옛 맞춤법에 따라 자신들의 지면을 꾸려나가겠다고, 7월 27일자 지면을 통해 선언했습니다.
그러자 <두덴> 사전을 만드는 <독일어 연구소 Institut fuer deutsche Sprache>는 이를 "Sturm im Wasserglas"라고 냉담하게 반응했다고 합니다.[<베를린리포트>: "FAZ, 새 맞춤법 포기하기로"(게시번호 1776) 참고]
Sturm im Wasserglas. 대부분의 독한사전은 "컵 속의 폭풍우"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좀 더 실감나게 우리말로 풀어보자면, "간장 종지 속의 태풍"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굳이 그 본래의 의미를 살려내어 풀이하자면, "헛소동"이 좋겠구요.
독일에서 발행된 사전을 여럿 뒤적여 보니, 이 표현에는 몇 가지 사연이 있더군요.
이 표현은 꽤 오래 전부터 독일어 사전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것이 본격적으로 독일어권에서 널리 쓰게 된 것은 한 독일 작가의 희곡 작품이 크게 기여를 한 모양입니다. 브루노 프랑크(Bruno Franck, 1887-1945)와 그가 쓴 희극, (1930, 드레스덴 초연)가 바로 그것입니다.
프랑크가 이 희극을 쓰게 된 데는, 글자 그대로, 헛소동이 한몫을 톡톡히 한 모양입니다. 1928년 뮌헨 시는 개세금(Hundesteuer)를 인상하려고 했답니다. 그러자 시민들이 이 세금의 인상을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뮌헨 시는 그 세금의 인상을 강행하려고 했고요. 프랑크의 눈에는, 아주 하잖은 개세금 때문에 벌어진 시민들과 시당국 간의 이 진지한 힘겨루기가 "Sturm im Wasserglas(헛소동)"으로 보였고, 이 사건은 희곡의 좋은 소재거리가 되었죠. 그리고 그 희곡에 라는 제목을 단 것이고요.
프랑크는 사람들이 이 말을 많이 쓰도록 하는 데 일조 했는 데, 그렇다면 이 표현의 "원저작권자"는 누구일까요? 그 사람은, 엉뚱하게도 우리가 잘 아는, <법의 정신>(1784)을 쓴 프랑스인 몽테스키외(Montesquieu, 1689-1755).
몽테스키외가 살았던 당시에, 이탈리아의 아펜니이도 산맥에 위치한 소국(小國) 산마리노 공화국에서 소요가 일어났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깊은 산 속에 있는 인구(1997년 통계로도 26, 000명)도 채 몇 안 되는 이 조그만 나라의 소요가 몽테스키외에게 무슨 큰 의미가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이를 "tempete dans un verre d'eau"라고 점잖게 한 마디 일렀고, 이 말이 바로 "Sturm im Wasserglas"로 독일어에 정착한 것이랍니다.
(몽테스키외와 말과 관련된 이 소요가 언제, 무엇 때문에 일어났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면, 이 글을 좀 더 실감나게 쓸 수 있을 텐데...... 아직까지 제 조사 연구가 여기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혹시 이 사건의 내막을 아시는 분은 (가능하다면 관련 문헌까지 적시해서) 제게 이메일을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표현 자체의 원저작권자는 몽테스키외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몽테스키외도 옛 사람들의 글을 열심히 읽고 배웠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저술가인 키케로(Cicero, B.C.106-43)가 살았던 당시에도 이와 유사한 표현이 있었으니까요; excitare fluctus in simpulto. 독일말로 하면, Stuerme in der Schoepfkelle. "국자 속의 폭풍우".
시간과 국경을 초월하는 "말들의 이어달리기"는 끊임이 없는 모양입니다.
그러자 <두덴> 사전을 만드는 <독일어 연구소 Institut fuer deutsche Sprache>는 이를 "Sturm im Wasserglas"라고 냉담하게 반응했다고 합니다.[<베를린리포트>: "FAZ, 새 맞춤법 포기하기로"(게시번호 1776) 참고]
Sturm im Wasserglas. 대부분의 독한사전은 "컵 속의 폭풍우"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좀 더 실감나게 우리말로 풀어보자면, "간장 종지 속의 태풍"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굳이 그 본래의 의미를 살려내어 풀이하자면, "헛소동"이 좋겠구요.
독일에서 발행된 사전을 여럿 뒤적여 보니, 이 표현에는 몇 가지 사연이 있더군요.
이 표현은 꽤 오래 전부터 독일어 사전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것이 본격적으로 독일어권에서 널리 쓰게 된 것은 한 독일 작가의 희곡 작품이 크게 기여를 한 모양입니다. 브루노 프랑크(Bruno Franck, 1887-1945)와 그가 쓴 희극, (1930, 드레스덴 초연)가 바로 그것입니다.
프랑크가 이 희극을 쓰게 된 데는, 글자 그대로, 헛소동이 한몫을 톡톡히 한 모양입니다. 1928년 뮌헨 시는 개세금(Hundesteuer)를 인상하려고 했답니다. 그러자 시민들이 이 세금의 인상을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뮌헨 시는 그 세금의 인상을 강행하려고 했고요. 프랑크의 눈에는, 아주 하잖은 개세금 때문에 벌어진 시민들과 시당국 간의 이 진지한 힘겨루기가 "Sturm im Wasserglas(헛소동)"으로 보였고, 이 사건은 희곡의 좋은 소재거리가 되었죠. 그리고 그 희곡에 라는 제목을 단 것이고요.
프랑크는 사람들이 이 말을 많이 쓰도록 하는 데 일조 했는 데, 그렇다면 이 표현의 "원저작권자"는 누구일까요? 그 사람은, 엉뚱하게도 우리가 잘 아는, <법의 정신>(1784)을 쓴 프랑스인 몽테스키외(Montesquieu, 1689-1755).
몽테스키외가 살았던 당시에, 이탈리아의 아펜니이도 산맥에 위치한 소국(小國) 산마리노 공화국에서 소요가 일어났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깊은 산 속에 있는 인구(1997년 통계로도 26, 000명)도 채 몇 안 되는 이 조그만 나라의 소요가 몽테스키외에게 무슨 큰 의미가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이를 "tempete dans un verre d'eau"라고 점잖게 한 마디 일렀고, 이 말이 바로 "Sturm im Wasserglas"로 독일어에 정착한 것이랍니다.
(몽테스키외와 말과 관련된 이 소요가 언제, 무엇 때문에 일어났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면, 이 글을 좀 더 실감나게 쓸 수 있을 텐데...... 아직까지 제 조사 연구가 여기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혹시 이 사건의 내막을 아시는 분은 (가능하다면 관련 문헌까지 적시해서) 제게 이메일을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표현 자체의 원저작권자는 몽테스키외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몽테스키외도 옛 사람들의 글을 열심히 읽고 배웠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저술가인 키케로(Cicero, B.C.106-43)가 살았던 당시에도 이와 유사한 표현이 있었으니까요; excitare fluctus in simpulto. 독일말로 하면, Stuerme in der Schoepfkelle. "국자 속의 폭풍우".
시간과 국경을 초월하는 "말들의 이어달리기"는 끊임이 없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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