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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녹색의 세계권력 -3. 80년대 환경운동의 석세스 스토리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자유로니이름으로 검색 조회 2,228회 작성일 02-03-14 03:28

본문

작성일 : 1999/05/03  조회수 : 146 , 줄수 : 25  

3. 환경운동의 관철 - 성공적인 80년대 환경운동 /숲의 사멸방지 투쟁의 성공

70년대가 환경운동이 힘차게 일어선 것(Aufbruch)을 의미한다면 80년대는 환경운동이 폭넓은 전선에서 관철(Durchbruch)된 시절이다. 이렇게 환경운동이 폭넓게 관철될 수 있었던 가장 주요한 원인은 죽어가고 있는 숲에 대한 걱정이 점증한데 있다. 이 숲이야말로 독일의 영혼이 뿌리박고 있는 곳이 아니던가?

하천의 중독을 어쩔 수 없는 진보의 댓가로 받아들이던 일반시민들조차 이 숲의 몰락에 대해서는 경종이 울린 듯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 전나무(Tannen),소나무(Kiefern)는 발전소와 차들이 내뿜는 유황산(Schwefeldioxid)과 산성비(Stickoxid-Regen)로 더이상의 성장을 멈추어버렸다. 죽어가는 숲은 오염된 하천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환경운동역사가 지이페얼레씨는 말한다. "특히 그 숲의 사멸속도는 모두에게 경종을 주었다."

schorn.jpg수백만의 시청자가 보는 가운데 독일그린피스(1982년 창설) 로빈 우드(1982년 창설)의 활동가들은 발전소의 굴뚝을 기어올라갔다. 시위에 회색의 우비를 입은 동물들이 동원되기도 했다. 공해물질이 나무만이 아니라 인간도 병들게 한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자 심지어 어머니들이 검은 색으로 유아차를 끌고 거리로 나서기도 했다. "숲이 죽으면 인간도 죽습니다."

이러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당시의 시나리오들이 현실화되지 않은 것은 대중의 급속한 반응덕분이다. 당시 그렇게 서두를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었다. "몇년 지탱못할 정도로 파괴가 심각했다"고 지이페얼레씨는 회고한다.

본의 정치가들은 유례없이 정력적으로 탈황화대책을 세우고 모든 신규차량의 공기촉매장치(Katalysator)를 의무화했다. 이런 조치는 몇년후 수백만마르크어치에 상응하는 값어치가 있었던 것으로 증명이 되었다.

- 유황산 방출은 산성비와 겨울스모그의 주요원인이다. 이것을 13년내에 40%를 감소시킨다.
- 산화실조방출도 나무사멸내지 여름스모그에 책임이 있다. 이것을 1990년에 1975년수준이 되도록 한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 새로운 천년이 열리는 목전에 독일의 숲은 농업과 동독지역으로 인해 여전히 1/3이 손상된 상태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중차대한 국면은 일단 넘긴 것으로 보인다. 초창기 최초의 경고자의 한사람인 괴팅엔 대학 베를하르트 울리히 교수는 숲의 사멸에 대한 대처과정에서 환경운동이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다고 자평한다.

이러한 많은 성공스토리들이 80년대초 독일에서 벌어졌다. 이 성공을 이루어낸 환경운동가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환경정당, 환경단체과 연구소내의 환경호보자들은 이 성공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그다지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환경에 경종이 울려야 유권자표를 확보할 수 있으며 환경경보해제는 곧 의원직,기부금, 연구비의 상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점에 대해서는 우리 학자들은 어느정도 스스로를 비판해야 한다'고 1996년 숲연구가 울리히는 왜 숲의 중독에 대한 투쟁에서의 성공이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대답했다. "우리는 80년대 초 때처럼 적극적으로 이를 여론에 알리지 못한 오류를 범했다."

환경운동에 있어서의 질풍노도의 시기에 숲의 사멸은 서독대중대다수가 환경테마에 민감해지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 "매주마다 새로운 개념과 해독물질에 대한 새로운 정보 그리고 다른 것과의 연관성이 폭로되고 있다"고 사민당의 환경담담 선구자 에어하르트 에플러는 말한다. " 새로운 어휘는 디옥신에서 Verkehrsinfarkt, super-GAU에서 Treibhauseffekt, Bodenerosion에서 Ozonloch, Hautkrebs에서 알레르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1983년과 1989년 사이에 BUND회원수는 8만명에서 16만명으로 증가한다. 사민당과 노조는 환경보호가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잘못된 교설에 사로잡혀 새로운 환경테마에 우선 일단은 소극적으로만 대처했다. 그럴수록 시간이 흐르면서 해바라기를 당의 심볼로 한 녹색당은 힘을 키워갔다. 1983년 녹새강은 5.65%지지를 획득 의회입성에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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