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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독일의 약사(略史)

페이지 정보

작성자 외교통상부이름으로 검색 조회 7,427회 작성일 02-03-08 08:21

본문

■  가. 게르만족의 대이동과 로마제국의 멸망


중앙 아시아의 유목 민족인 훈족의 게르만족의 한 분파인 동고트족에 대한 공격으로 게르만족의 본격적인 이동이 시작(375 AD)
476년 서로마는 아프리카로부터 내습한 반달족의 약탈을 받아 국위가 크게 쇠약해진 상태에서 게르만의 용병대장 오도아케르(Odoacer, 434∼493)의 침입에 의해 멸망
여러 게르만 왕국들은 숫적.문화적 열세, 종교적 갈등으로 대개 단명하고, 프랑크 왕국만이 혼란을 수습, 새로운 유럽세계 형성의 중심으로 부각


■  나. 프랑크 왕국의 흥망


메로빙(Merovinger) 왕조(481∼751)
- 메로빙 왕조 창시자인 클로비스(재위 481∼511)는 프랑크부족을 병합하고 갈리아 지방을 통합하였으나, 사후 왕조 분열이 계속되어 왕권은 유명무실
- 이에따라 정치의 실권은 귀족 대표인 궁재(Mojor Domus)의 수중에 들어감(대표적인 궁재는 투르푸와티에 전투(732)에서 이슬람군의 침입을 격퇴한 카롤루스 마르텔)


  ▶ 카롤링거(Caroinger) 왕조(751∼843)
- 카롤루스 마르텔의 아들 피핀 (재위 751∼768)이 메로빙 왕가 마지막 왕인 킬데리히 2세(재위 742∼752)를 폐위시키고 즉위
- 피핀의 손자인 카롤루스 대제(재위 768∼814)가 서로마 황제로 등극(800)


  ▶ 프랑크(Frank) 왕국의 분열
- 프랑크족 고유의 분할 상속에 따라 카롤루스 대제 사후 골육상쟁이 전개되었으며, 왕권이 급격히 약화
- 베르덩 조약(843) : 카롤루스 대제의 장남 로타르가 황제 칭호와 함께 중프랑크를, 차남 카롤루스 2세가 서프랑크를, 삼남 루드비히 2세가 동프랑크를 차지
- 메르센 조약(870) : 동 조약으로 오늘날의 독일(동프랑크), 프랑스(서프랑크), 이탈리아의 기틀이 마련


■  다. 신성로마제국의 성립과 해체


신성 로마제국(제1제국 : 962-1806)의 성립
- 동프랑크의 콘라드1세 사후 Heinrich 1세(919-936)의 아들 Otto 1세 (936-973)가 집권
- 오토 1세는 962년 교황 요하네스 12세로부터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의 관을 수여받음.


  ▶ 신성로마제국의 해체
- 신성로마제국 역대 황제들이 국내문제보다 이탈리아 문제에 깊이 간여, 제후들의 독립 경향 촉발
- 1438년이후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가 황제권을 세습하여 오다가, 1806년 나폴레옹에 의해 해체, 라인동맹으로 대체
- 라인동맹은 1815년 비엔나회의 결과로 독일 연방으로 변경


■  라. 프로이센의 등장과 독일 통일


  ▶ 프로이센의 등장
- 프로이센은 원래 13세기경에 독일 기사단이 개척한 곳으로 30년전쟁(1618-1648) 이후부터 국가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
- 대선제후 Friedrich Wilhelm(1640-1688)은 중앙집권을 강화하고, 아들 Friedrich I(1688-1713)는 에스파냐 왕위계승전에서의 공로로 프로이센 왕의 칭호를 얻음.


  ▶ 프로이센의 발전
- 18세기초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재위 1713∼1740)때 절대 왕정의 기초를 확립
- 프리드리히 2세("프리드리히 대제", 재위 1740∼1786)때 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과 7년 전쟁에서 승리, 유럽의 강대국으로 발전하는 기틀 마련


  ▶ 프로이센에 의한 독일 통일
- 1862년 프로이센의 수상이 된 비스마르크(1815∼1898)는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프로이센 중심의 통일(소독일주의)을 주장하고, 보·오, 보·불 전쟁에서 승리, 독일 통일을 이룩
·프로이센은 1867년 오스트리아와 남부 독일의 4개국을 제외한 21개국을 결속하여 북부 독일연방을 결성하고 맹주로 등장
·비스마르크는 에스파냐 왕위 계승문제를 이용, 프랑스에 전쟁을 도발, 나폴레옹 3세의 항복을 받고 파리를 정복(1868)

  ▶ 독일 제2 제국의 성립(1871)
- 파리 교외의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프로이센왕인 빌헬름 1세(재위 1871∼1888)가 황제로, 비스마르크가 재상으로 취임하여 통일된 독일제국 수립(25개로 구성된 연방국가)
- 상원인 연방의회(Bundesrat)와 하원인 제국의회(Reichstag)가 구성, 입법부 구실을 하였으나, 실질적 권한은 황제와 제상이 보유


■  마. 독일제국과 제1차 세계대전


  ▶ 독일제국의 팽창주의적 대외정책 추진
- 1890년 비스마르크 은퇴후 젊고 모험적인 새로운 황제 빌헬름 2세(재위 1888∼1918)는 범 게르만주의를 표방하고 "신행로 정책"이라 불리우는 적극적인 세계정책을 추진, 국제적 긴장 조장
- 시효가 다 된 러시아와의 재보장 조약 갱신을 거부하고, 1898년에는 영국의 해군력에 도전, 치열한 건함 경쟁 촉발

  ▶ 1차 세계대전 發發(1914)
- 세르비아인의 오스트리아 황태자 페르디난드공 암살사건(1914.6.28)으로 폭발, 제1차 세계대전 발발로 연결
- 동맹군측 : 독일, 오스트리아, 오스만투르크, 불가리아
- 연합군측 : 영국, 불란서, 러시아, 이탈리아, 일본

  ▶ 1차 세계대전 패배
- 1918.11월 1차 세계대전 패배후 독일제국은 붕괴되고 바이마르 공화국(Die Weimar Republik) 성립

■  바. 바이마르 공화국의 수립과 시련(1919∼1933)

  ▶ 바이마르 공화국 수립
- 1918년 혁명이 일어나 호엔촐레른 왕가의 빌헬름 2세는 네덜란드에 망명하고, 독일은 군주제에서 공화제로 전환
- 1919년 2월 바이마르 헌법을 제정하여 18개 공화국으로 구성되는 연방 공화국임을 선포하고, 초대 대통령으로 사회 민주당의 Friedrich Ebert(1871∼1925)를 선출

  ▶ 바이마르 공화국 시련
- 바이마르 공화국은 좌익과 우익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등 공화국 출범 초기부터 시련에 봉착
  ·  좌익 스파르타쿠스단이 소비에트를 조직, 1918년말부터 1919년초까지 혁명기도
  ·  히틀러의 나찌당은 1923년 뮌헨에서 공화국 타도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실패
-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시련에도 불구하고 바이마르 공화국 정부는 통화개혁(슈트레제만 개혁) 등 일련의 적극적인 戰後 복구책 실시로 독일재건의 기틀을 마련하였으며, 외교적인 측면에서 볼 때도 로카르노 조약으로 국제연맹에 가입(1926), 不戰 조약에도 서명(1929) 하는 등 상당한 성과 거양


■  사. 나찌즘의 등장과 제2차 세계대전(1933-1945)


  ▶ 나찌즘의 등장
- 농민을 포함한 중소 시민층과 국수주의자, 대자본가의 지지를 받는 아돌프 히틀러(1889∼1945)가 이끄는 나찌당(Nazis ; 국가 사회주의 독일 노동당)이 전후 독일의 강력한 정치 세력으로 대두
- 1933년 히틀러는 재상 겸 총통이 되어 바이마르 공화국을 해체, 제3제국 수립


  ▶ 제2차 세계대전 發發
- 독일의 인근 영토확장에 따라 국제적 긴장 조장
· 1938년 3월 오스트리아 병합
· 1938년 9월 뮌헨회담을 통해 주데텐란트 합병
· 1939년 3월 체코슬로바키아 영토 점령 및 단치히(Danzig) 자치시 병합
· 1939년 8월 독.소 불가침조약을 비밀리에 체결한후 9월 1일 폴란드 침공
- 영국·프랑스는 기존의 유화정책을 포기하고 1939년 9월 3일 독일에 선전포고, 제2차 세계대전 발발



  ▶ 제2차 세계대전 패전
- 독일의 승세는 1941년 가을부터 다음해 봄에 이르는 시기까지 절정에 달하였으나, 1942년 여름부터 연합군의 총 반격이 시작됨에 따라 수세에 몰리게 되었으며 1945.5 마침내 항복
- 패전후 독일은 미.영.불.쏘 4대전승국에 의해 분할점령


■  아. 제2차대전 이후 정세 및 독일 재통일(1945-1990)



  ▶ 戰後 정세
- 전후 통일독일 정부수립을 위한 동.서간 교섭이 실패하고 냉전이 구체화되자 1949년 서방 점령지역은 통화개혁을 단행, 경제통합을 실시
- 1949.5월 잠정 헌법인 "기본법(Grundgesetz)"을 제정하고 1949.9.21 독일연방공화국(BRD, 서독) 수립
- 이에대해 소련 점령지역도 1949.10.7 독일민주공화국(DDR, 동독) 수립을 선포함으로써 독일은 동·서독 양독으로 분단
- 1954년 체결된 파리협정이 1955년 발효됨에따라 서독은 주권을 회복
·서독은 1958.5월 NATO 및 서구연합(WEU) 가입, 동독은 1950.9월COMECON, 1955.9월 WARSAW 조약기구에 가입.
- 서독정부는 60년대초 미국의 경제원조와 사회적 시장경제체제를 통한 경제재건정책의 성공으로 획기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하였고 대외적으로는 "할슈타인" 원칙에 따라 동독 불승인 정책을 고수


  ▶ 동·서독간 교류협력 및 독일 통일
- 1969.10월 사회민주당(SPD)의 빌리 브란트 수상 등장과 함께 서독정부는 "동방정책"(Ostpolitik)으로 쏘련, 동구권과의 관계개선과 동독과의 교류를 과감히 추진, 1972.12월 동.서독간 기본조약을 체결하고 유엔에도 동시 가입(73.9)함으로써 양독간의 공존 관계를 이룩
- 東方政策에 바탕을 둔 서독정부의 부단한 대동독 교류 및 협력강화와 특히 고르바쵸프 집권이후의 동구의 개혁무드 및 89.11월 베를린 장벽 붕괴로 양독간 통일무드는 급속히 고조
- 이에따라 90.5.18 양독간 화폐.경제.사회 통합조약 서명, 90.8.31 양독간 통일조약 서명 및 90.9.12 전승 4개국에 대한 독일통일을 양해하는 조약("2+4"조약)의 서명을 통해 90.10.3을 기하여 독일 통일 완성  



■  자. 통일독일시대(1990.10-    )

    ▶ (1) Helmut Kohl 총리(기민당) 후반기(90.10-98.10)

독일의 통일과 동구권 국가들의 몰락으로 형성된 새로운 국제질서하에 독일과 우방국가들은 완전히 새로운 도전에 직면
- 신연방주의 재건과 독일의 내적 통일 완성
- 유럽연합의 심화·확대 발전
- 지구적 차원이 평화 및 안보체제 수립
독일은 주변국가들의 통일독일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유럽속의 독일을 강력히 추진
- 유럽경제의 1/3을 차지하고 있는 독일 경제의 상징인 마르크(DM)를 포기, 유럽경제·화폐 통합(EMU)을 적극 추진
- 국제평화유지 활동에 적극 참여
동·서독간의 경제적 통합은 유럽통합의 틀안에서 그리고 탈냉전 이후 지구적 차원의 새로운 정치·경제적 구조하에서 추진
- 동·서독간의 사회적, 심리적 장벽 극복이 과제
  
▶ (2)Garhard Schröder 총리(사민당) 시대(98.10-현재)

98.9.27 총선에서 사민당이 승리, 녹색당과 연립정권 출범
- 2차 대전후 선거를 통한 최초의 여·야 정권 교체
슈뢰더 총리는 신중도(Neue Mitte) 이념으로 각종 개혁 정책을 추진중이나, 사민당내 이념 갈등과 사회복지 축소에 대한 국민의 반발 등 정권 출범 초기 어려움에 직면
- 98.10 정권출범후 실시된 주의회 선거에서 계속 패배
베를린 시대의 개막
- 99.5.23 선거에서 Johannes Rau 대통령(사민당) 선출
- 연방정부와 의회는 99.9.1을 기해 베를린에서 공식업무 개시
1999년은 독일정부 수립 50주년, 베를린 장벽붕괴 10주년의 해로서 독일의 새로운 위상 정립과 역할 강화 모색
- "독일 개혁 : 고용, 성장 및 사회안정을 위한 미래 프로그램" 발표(99.6.23)
(10.6 정무과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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