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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보편성과 칼 1세의 세계, 그리고 그의 절망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이 서규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조회 4,625회 작성일 02-03-08 06:50

본문

작성일 : 2000/05/13 조회수 : 77

■ 보편성과 칼 1세의 세계, 그리고 그의 절망  

칼 1세의 치적에 대한 평은 다양한 양상을 보이는데 이는 그의 제국이 넓은 지역을 차지했고 그 지역에서 다른 여러국가가 탄생했으며 그의 치세가 미친 영향도 워낙 다양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먼저 그를 이해하는데는 여러가지 사상및 역사적인 틀이 필요하리라 보고 이는 또, 멕시코의 소설가이자 국제법 교수인 Carlos Fuentes의 라틴 아메리카 역사에서 가장 편협하고 뒤틀린 식민주의적 피해의식이 팽배한 전형이 보이고 있다.  먼저 그는 Karl 1세의 불행한 성장기에서 이야기의 전개를 시작하고 있다.  난본꾼이던 아버지가 격렬한 스포츠 경기후 한잔의 찬 물을 마시고 심장 발작으로 사망하고 이에 실성한 Dona Juana la Loca( 페르난도와 이사벨여왕의 딸 이자 황제의 생모)는 죽은 남편의 시신을 끌고 스페인 각지의 수도원과 성지(수녀원은 빼고, 왜냐하면 죽은 미남의 남편이 수녀들을 유혹할까봐) 돌아 다닌 행태에서 서반아 적인 카톨릭에 대한 광신과 기독교적인 원죄의식을 지적 이런 어머니의 성장 배경이 마치 그의 모든 생애를 지배한 것 처럼 묘사한다.  
하지만, 당시의 유럽, 외적으로 이슬람 세력에 노출되고 내적으로 교회적 권위가 추락한 이 유럽은 새로운 시대를 맞고 있으니 그것이 절대 왕정의 시작이었다.  국토 회복운동(Reconquistar)를 통해 스페인은 유럽인, 카톨릭 교도로서의 스페인이 아닌 스페인 이란 정체성을 유럽인 중 가장 먼저 깨닫게 된다.  이 과정의 전형은 Karl의 외 조부모인 페르난도와 이사벨의 결혼을 통한 카스티야와 아라곤의 통합, 그후의 식민지 건설을 통해 스페인이 새로운 부의 원천을 신세계에서 찾고 Karl이 자신의 형제들을 유럽 각국에 정략결혼을 시켜 영토를 확장한 데에서 잘 드러난다.  또, 스스로 카톨릭 국왕(los Reyes Catolicos)라 부른 그의 조부모는 이런 새로운 내부적 중앙집권에 교회의 지지를 끌러들여, 정당성을 부여하고 후발국가(영국, 화란 같은 신교국 뿐 아니라 프랑스와 같은 식민지 지배를 노리는 잠재적 경쟁국)을 교회의 중재를 통해 배재하려 함도 있었다.  그 좋은 예로 Tortesillas조약은 교황의 중재로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세계의 절반을 나눠 갖고 이에 이의를 제의하는 국가들 (특히 교황의 무오류설(Unfehlbarkeit, oder la Infabilidad)(죄송합니다.  독어를 하는 독자를 위해 서반아어, 독어 용어를 다 써봤읍니다)을 부정하는 신교국주)에 대한 싸움을 전개한다.
다만, Karl은 터키, 붑부 독일의 신교 영주들, 네덜란드의 신교도와 싸워야 하는 짐을 너무도 어린 15세에 지게 되는데 후세는 이런 유년기의 어려움이 이 소년왕을 어려운 싸움으로 몰고 간다고 이해한다.  이에 대한 이의로 나는
몇 가지 역사적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고 싶다.  그가 스페인에서 순수한 스페인 인이 아니란 이유로, 또 그 언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환영을 받지 못했다는 의견에는 공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의 조부도 서로 다른 오늘날 세계적으로 쓰이는(중남미에서) Castellano를 이해 하지 못했으나 라틴어로 작성되는 공문서가 그의 이해를 도왔고 통치의 어려움은 그의 아내 이사벨이 죽고 나서도 없었다.  이 소년 군주는 자신의 고향, 플랑드르에서 가신을 데려왔고 Toledo의 대주교 같은 교회의 그리고 세속적으로도 중요한 직위에도 벨기에나 네덜란드인 가신을 기용했다.  이는 다분히 인문주의적 절대 왕정의 시작으로 외조부의 가신들을 제거하려는 의도였다.  이는 서민들에게는 대단히 성공적으로 비쳤다.  (그시기의 소설 Razarillo de Tormes에 이런 정서가 잘 드러 난다)  또 이슬람에 대한 투쟁도 비록 Wien을 일시적으로 잃지만 그의 바로 후대에는 Lepanto에서 오스만 터키를 무찌르고 지중해 재해권을 장악한다.  이는 당시의 방위 전략이 상업적 가치가 없는 육군보다는 해상로 쟁탈전으로 옮겨 갔음을 증명한다.  
그의 맛수 프랑소와 1세와는 원래는 이태리에서의 패권싸움이었으나 피레네 산맥의 독립국 Navarra(원래 바스크인의 독립 왕국)을 차지하려고 Pamplona에서 공성전을 벌여 승리한다.  
진짜 재앙은 독일에서 시작된다.  선제후들에게 뇌물을 써 신성로마의 황제가 되고 이때 Augsburg의 Jacob Fugger에게 빌린 돈은 베네주엘라를 임차하고도 부족해서 마키아벨리가 살던 시절 돈을 주고 고용한 북부독일의 루터파용병의 월급지급을 할수 없자 이들에게 로마의 약탈(Saco di Roma)를 허락한다.  카톨릭 군주로서의 이미지는 실추되고 결국 높은 세금과 지중해 산물에 대한 독자권을 원한 자유도시와 북독의 영주와 전쟁이 벌어진다.
그럼, 제시하고 싶은 한가지 의문은 그가 과연 카톨릭의 수호자이며 현실정치에 무관심한 도덕 군자적 은둔자, 이상적이고 실리보다 명분을 찾은 군주냐는 점이다.  
여기에 대한 해답을 주실분께 다음 질문의 대답을 구하면서 펜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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