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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히믈러의 취미 "마녀 연구"

페이지 정보

작성자 시습이름으로 검색 조회 5,206회 작성일 02-03-08 06:26

본문

◆ 히믈러의 취미 "마녀 연구"



1945년 3월 니더슐레지엔의 글로가우 근교에 있는 그라펜 하욱비츠 성 안에는 나치친위대(SS)의 이상한 프로젝트가 남긴 것들이 있었다. 이는 약 14만 권의 책과 서류 모음들이었는데, 이들은 13세기 이래의 형벌의 역사를 추적한 것들이다.



이 자료를 발견한 포젠 대학 도서관의 한 사서는 이 안에서 "다양한 고문 기술이 기록된 곳에 많은 표시가 되어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이를 SS가 고문 방법을 연구하고 활용하기 위한 자료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이는 나치 독일의 제2인자 하인리리 히믈러 SS 대장의 독특한 취미인 것이며 공식 명칭은 "SS 제국대장의 마녀 관련 특별 임무"라는 것이다.



himmler03.jpg 튀빙엔의 지역 연구가들은 SS의 연구자들이 1935년부터 "H 특별 과제(H는 마녀(Hexe)의 약자)"라고 줄여부른 이 연구를 위해 수백개의 문서보관소와 도서관에서 중세 이후의 모든 마녀 재판의 흔적을 찾아 헤맸다고 밝혔다. 이들은 33,846개의 카드에 독일과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마녀 재판과 화형의 증거들을 모았다.



연구자들은 히믈러가 이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로 그의 가계사를 든다. 히믈러의 먼 조상에는 마녀로 화형당한 할머니가 있다는 것이다. △ 나치친위대장 히믈러



▶ 마녀사냥은 게르만에 대한 학살



himmler01.jpg 히믈러는 마녀 사냥에서 일종의 초기 근세적인 홀로코스트를 보았다. 물론 이 홀로코스트는 카톨릭 교회가 게르만 민족에 대해 행한 것이다. 히믈러는 "마녀에 대한 환상이 잔인한 사냥과 처형을 통해 독일 민족으로부터 독일 피를 가진 수십만의 어머니와 여성을 앗아갔다"고 되풀이해서 말했다.



또한 히믈러는 이러한 오래된 서류들에서 "고대 게르만적이고 이교도적인 민족문화를 만나기를 희망했다"고 한다. 이러한 민족문화는 마녀 사냥과 함께 역사의 표면에서 사라져 간 것이다. △ '마녀' 화형 장면(1860년경 그림)



▶ 야심찬 계획과 형편없는 결과



SS의 '세계관 연구 및 평가국'에 소속된 학자들은 마녀 연구를 정력적으로 추진했다. 이곳은 본래 교회, 프리메이슨, 자유주의자, 이민자, 맑시스트 들에 대해 연구하고 감시하는 곳이였으나, 이들 학자들은 히믈러의 연구에 동조하여 자신의 경력을 쌓을 수 있었다.



이들은 매우 야심찬 연구 계획을 가졌는데 1942년 4월의 연구계획서를 보면 10여개의 논문이 예정되어 있다. 여기에는 "마녀 문제의 인문과학적 기초", "마녀 소송의 경제적 귀결", "마녀 연구의 기본서"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마녀 문제의 민족사적 측면"에 대해 사이비 과학적으로 토론을 거듭했다.



himmler02.jpg 히믈러는 이 연구를 통해 얻어진 결론을 직접적으로 나치의 "민족 교육"의 자료로 사용하고자 의도했다. 수데텐 지역의 독일인 작가 프리드리히 노르폴크는 대중적으로 씌여진 마녀 소설을 쓰도록 의뢰를 받았다. 그는 2-3년에 걸쳐 마녀 소설 3부작을 쓰고자 했으나, 이는 히믈러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히믈러는 사람들이 짧은 시간 내에 훍어볼 수 있는 60-100 면 내외의 짧은 마녀 이야기를 원했던 것이다.



△ 표지에 마녀 그림이 있는 나치의 선전 책자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녀 연구의 결과는 참담하다. 9년 간의 집중적 연구에도 불구하고 이 테마에 대한 책 한권도 출간되지 못했다. 이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루돌프 레빈이 연구 중에 내놓은 교수자격논문은 너무 형편 없어서 1944년 뮌헨 대학 교수들로부터 거부 당했다.



그러나 히믈러가 일으킨 이 마녀 열풍은 재미있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그의 한 부하는 1939.1.9에 SS의 조상 미술관에 실제로 마녀가 나타났다는 기쁜 소식을 알린 것이다. 이 마녀는 1629.4.4 화형당한 마르가레트 힘블러라는 여자였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 시습   베를린천사 200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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