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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통일일지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자유로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2,897회 작성일 02-03-08 00:56

본문

작성일 : 1999/03/03  조회수 : 340

■  통일일지 - 1989년에서 1994년까지

■  1989

7월부터: 동독의 망명신청자들이 동베를린,부다페스트, 프라하에 있는 독일연방공화국의 대표부와 대사관으로 피신.

9월월부터: 약 5만여명의 동독주민들이 헝가리에서 독일연방공화국으로 입국.

9.10: 콜 독일수상이 헝가리정부에 대해 동독에서 온 독일인들이 헝가리를 출국할 수 있도록 허용해준 결정에 대해 감사.

9.25-29: 독일연방외무성장관이 동독측 망명희망자들의 출국에 관하여 소련, 동독,촐란드, 헝가리, 체코의 외상들과 대화.

9.30: 프라하의 독일대사관에 피신한 약 6천명의 동독측 망명신청자들에게 독일연방공화국으로 출국이 허용.

10월초: 바르샤바의 독일대사관에 있던 약 1500명의 동독측 망명신청자들도 출국.

10.7: 동독건국 40주년행사. 수천명의 독일사회주의통일당(SED)의 독재에 항의시위, 경찰이 진압.

10.9: 라이프찌히의 월요시위에서 약 10만명의 군중이 "인민은 우리다"라는 구호를 외침. 다른 도시에서는 대규모의 시위가 잇달음.

10.18: SED 총서기장 에리히 호네커가 18년만에 제반 공직을 상실. 에곤 크레츠가 그 후임으로 직책을 계승.

11.4: 동베를린에서 동독사상 최대규모의 항의시위에 약 백만명의 사람들이 참가.

11.7: 동독 내각 총사퇴.

11.9: 동베를린 장벽과 독일연방공화국에로의 출국관리소들을 개방.

11.10: 콜수상이 폴란드여행을 중단하고 다른 정치가와 베를린 시청앞과 추모교회에서 연설.

11.13: 한스 모드로가 동독의 새 내각수반으로 선출됨.

11.22: 콜수상이 슈트라스부르크의 유럽의회에서 동독의 현황에 관한 성명을 발표.

11.28: 헬무트 콜수상이 독일연방의회에서 독일과 유럽의 분단극복을 위한 정부성명을 발표("10개항 계획")

12.1: 동독 인민의회가 동독헌법에서 사회주의통일당(SED)의 지도적역할에 관한 조문을 삭제.

12.4: 브뤼셀의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정상회담에서 부쉬대통령이 독일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했던 고르바쵸프대통령과의 회동에 관하여 설명.

12.3/6: SED총서기장 에곤 크렌쯔가 모든 공직에서 사퇴.

12.7: 동독의 여,야당의 정치가들의 "원탁회담" 개시. 자유선거실시를 발표.

12.8/9: 슈트라스부르크의 유럽각료회의에서 각국정상들이 독일통일은 헬싱키 최종협정에 부합하여 이루어져야 하며, 유럽통합내에 포함되어져야 한다는 공동성명을 발표.

12.16-19: 콜 연방수상이 부다페스트에서 동독의 평화적 혁명의 전제가 되었던 헝가리 개혁정책을 높이 평가.

12.19/20: 콜수상이 드레스덴에서 모드로 동독수상과 양국관계의 발전가능성에 관하여 대담하고, 여성교회에서 드레스덴 시민들에게 연설.

12.22: 콜 연방수상이 모드로내각수반 및 양국의 다른 정치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성문을 개방.

12.24: 독일연방공화국과 서베를린에서 동독으로 여행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입국사증 및 환전의무를 폐지.



■ 1990

1.4. 콜과 미테랑이 라쉐의 비공식회동에서 독일과 유럽의 발전에 관하여 대화.

2.10. 콜수상과 겐셔외상이 모스코바에서 고르바쵸프 총서기장과 회동. 고르바쵸프는 독일인들이 한 국가에서 살수 있게 될것임을 확약.

2.12. 오타와에서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국의 공동 외상회담.

2.13/14. 모드로 동독수상이 본을 방문. 콜수상은 경제 및 화폐통합에 관한 협상을 제의.

2.14. 4대승전국과 양독외상들이 독일통일에 관한 공식회담을 개설할 것에 합의.("2 + 4 회담")

2.15. 콜이 파리에서 미테랑에게 고르바쵸프와의 면담결과와 독일내의 상황전개에 관하여 설명.

2.24/25. 콜이 캠프 데이비드에서 부쉬대통령과 대담. 독일이 통일된 후에도 유럽과 북미간의 안전동맹과 미국과의 우혹관계가 기본적인 의미를 갖고 있음을 확인.

3.18. 동독에서 최초의 자유선거. "독일을 위한 연합"(기민당, 민주개척당, 독일사회당)의 승리.

3.19. 콜이 본에서 열린 유럽안전협력회의(KSZE) 경제분과회의에서 독일의 통일은 동,서방 인접국가들과의 합의하에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

4.5. 최초의 자유선거를 통해 선출된 동독 인민회의 개원. 의장으로 선출된 의사출신 사비네 베르크만-포올 여사가 동독의 국가원수의 직무도 동시 수행.

4.12. 동독인민회의에서 동독 사상 처음으로 민주내각을 선출. "독일을 위한 연합"과 민주당 및 사민당간의 대연정. 로타 드 메지에르를 동독내각수반으로 선출.

4.19. 드 메지에르가 정부성명에서 독일통일에 대한 신념을 공개적으로 표명.

4.26/27. 독,불 정례협의회에서 콜이 미테랑과 독일통일과정의 진척에 관하여 의견을 교환.

4.28. 유럽공동체의 각국정상들이 더블린에서 열린 특별회의에서 독일의 통일을 환영하고, 독일통일이 완결되는 시점을 기하여 동독을 공동체에 편입시킬 방안을 강구.

5.5. 양독회상과 영,불,미,소의 외상들이 독일통일의 대외적 측면에 관한 첫회담을 본에서 개최.( 2+4회담)

5.6. 동독 지방선거. 기민당이 최대정당의 위치를 유지.

5.16/17. 콜이 워싱턴에서 부쉬에게 독일통일을 위해 실시될 제반조치를 설명하고, 2+4회담에서 특히 완전한 주권의 회복을 지지해준데 대해 감사.

5.18. 서독과 동독정부가 본에서 양독간의 화폐, 경제 및 사회통합에 관한 국가계약을 조인.

6.8. 콜과 부쉬가 워싱턴에서 통일된 독일이 나토에 완전히 소속되는 것은 불가피한 사항임을 재차 강조.

6.10. 영,불,미 3개국 베를린대표들이 독일연방의회와 연방협의회에 참가하는 것을 반대한 유보조항을 폐기. 6월 21일부터 베를린 대표들이 완전한 표결권을 행사함.

6.17. 독일연방의회와 동독인민회의가 동베를린에서 공동으로 1953년 6월 17일의 동독인민봉기를 추모.

6.21. 연방의회와 인민회의가 통일된 독일과 폴란드간의 국경에 관하여 각기 동일한 결의문을 채택. 국제법상의 계약에 의하여 확정된 기존국경이 최종적인 것임을 확인하는 의사를 천명.

6.22. 연방협의회가 국가계약을 승인. 콜이 미테랑에게 아쓰민하우젠에서 독일통일과정의 현황을 설명.

6.25/26. 더블린의 유럽각료회의에서 각국정상들이 양독간의 국가계약의 체결과 이에 따라 동독의 유럽공동체에로의 편입이 가속화되는 것을 환영함.

6.27. 서독정부와 동독정부가 내독국경에서의 신분증검사 폐지에 관한 협약을 체결.(7월 1일부터 발효)

90년 하반기

7.1. 동서독간의 화폐, 경제 및 사회통합 발효. 지금까지 시행되던 동독이주민의 비상수용절차 폐지.

7.5/6. 런던의 나토정상회담에서 각국정상들이 통일된 독일이 대서양동맹에 불가결한 안정요소임을 천명.

7.9-11. 휴스턴의 세계경제정상회담에 참가한 각국정상들이 독일통일을 환영하고 , 이는 자결권의 가시적 표현이며 유럽의 안정에 기여할 것으로 천명.

7.14-16. 콜이 소련방문. 고르바쵸프와 통일독일이 완전한 주권을 갖고, 자신의 동맹관계를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으며, 군사력을 37만염으로 축소할 것임을 합의. 소련은 주둔군을 3-4년내에 동독에서 철수키로 함.

7.17. 6개국외상들(2+4회담)과 폴란드외상이 파리에서 통일독일의 국경확정을 위한 기본원칙에 합의. 이 7개국외상들은 평화협정 대신 독일의 완전한 주권회복과 관련된 모든 문제를 규율할 독일문서에 서명한후 KSZE에 연말까지 비준을 위해 제출하기로 합의.

7.22. 동독인민회의가 주의 신설에 관한 법률을 제정. 이에 따라 동독에 5개의 주가 신설됨.

8.2. 1990년 12월 2일에 전독에서 실시될 선거의 방식을 규율할 동서독간의 선거계약체결.

8.23. 동독인민회의가 90년 10월 3일자로 독일연방공화국에 가입할 것을 결의.

8.31. 동서독간의 통일계약을 베를린의 크론프린첸궁에서 연방장관 쇼이블레박사와 국무차관 크라우제가 서명.

9.12. 모스코바에서 외상회담 종료. "2+4"협정체결.

9.19. 동독인민회의가 통일계약을 비준

9.20. 독일연방의회가 통일계약을 비준.

9.21. 독일연방협의회가 통일계약을 최종검토.

10.1/2. 뉴욕에서 4대국의 권리의 포기를 위한 문서에 서명. 뉴욕에서 KSZE외상회담.

10.3. 동독이 독일기본법(서독헌법) 제 23조에 의거해 동법의 적용범위에로 가입. 전 동독의 영토에 5개의 주가 신설됨.(브란덴부르크, 메클렌부르크-포어포머른, 작센, 작센-안할트 및 튀링엔)

10. 4. 베를린의 제국의회건물에서 전 동독의 인민회의가 파견한 144명의 의원이 참석한 첫번째 연방의회 개최. 신임연방장관들의 선서 및 연방수상의 정부성명.

10.12. 5개신설연방주의 대표위원들(자문권만 가짐)이 처음으로 참석하는 연방협의회 개최.

10.14. 구동독의 5개신설주에서 주의회 의원선거.

11.3. 로마에서 유럽공동체 특별정상회담.

11.19-21. 장래의 유럽설계를 위한 KSZE특별정상회담이 파리에서 개최.

12.2. 첫번째로 전독일에서 실시되는 독일연방의회 의원선거.

12.11. 리햐르트 폰 바이체커 연방대통령이 신설연방주 순방을 시작해 메클렌부르크-포어포머른주에서 이틀간 체재.

12.13. 프랑스의회가 독일과 관련된 최종결정에 관한 협약을 비준.(2+4협약)

12.19. 모든 연방주 경제장관들이 참석한 베를린 회의에서 메클레프 키르스텐 로베더 신탁공사총재는 이미 백개이상의 계약이 체결되었으며, 이로써 약 250만개의 일자리가 신설연방주에서 확보되어질 것이라고 설명. 연방정부는 유럽공동체가 5개신설연방주의 편입을 위하여 차후 3년동안 약 62억 마르크를 지원할 것이라고 발표.

12.20. 베를린 제국의회건물에서 12월 2일자 전독선거에서 선출된 연방의회 개회. 뮌헨에서 16개 연방주의 수상들이 이틀간의 회의를 위하여 회동함.




■  1991년

1.2. 처음으로 신설연방주출신의 병역의무자들이 연방방위군에 입대.

1.11. 니콜라이 교회에서 열린 베를린 의회 개원회의에서 지금까지 서베를린에만 적용되던 베를린 헌법을 베를린 전지역에 적용하기로 결의.

1.16. 헬무트 콜 연방수상이 신임내각을 소개. 3장관이 연방신설주출신: 귄터 크라우제(기민당, 교통성), 앙겔라 메르켈(기민당, 여성 및 청소년성), 라이너 오르트레프(자민당, 문교성), 장관들은 1월 18일 선서.

1.17. 독일연방의회는 헬무트 콜을 통일된 독일의 연방수상으로 선출.

1.25. 연방국방성은 금년중 최대한 약 10만명의 소련군인, 1천개의 전투형 탱크및 중화기, 약 3천개의 장갑차, 그리고 1백대의 전투기 및 전투용 헬기가 독일에서 철수할 것으로 발표. 소련주둔군 총사령관은 게르하르트 슈톨렌베르크 연방국방성장관에게 소련군이 계획대로 1994년말까지 구동독으로부터 철수할 것임을 확언.

2.19. 신설연방주의 환경정화를 위하여 클라우스 퇴퍼 환경성장관이 "환경건설을 위한 실행계획"을 본에서 소개. 오염된 토양의 정화와 지하수 보호 개선책을 언급.

3.4. 소련최고회의가 독일의 완전한 주권회복에 관한 2+4협정과 독소간의 친선협정을 비준.

3.8. 연방정부가 구동독의 부흥을 위한 공동계획을 수립. 이에 따라 1991년과 1992년에 추가로 매년 120억 마르크를 신설연방주에 재정지원키로 함.

3.15. 세계 제 2차대전의 4대전승국 중 소련이 마지막으로 2+4협정의 비준서를 연방정부에 교부. 이로서 통일독일은 형식상으로도 완전한 주권국이 됨.

3.19. 연방정부에 참여한 정당지도자들이 구동독의 국가보안성 첩자들에 대한 사면을 반대.

3.26. 알렉산더 폰 슈탈 연방검찰총장이 대법원에 구동독 국가보안성장관 에리히 미일케(당시 수사 구속중)와 5명의 다른 전보안성 요직자들(게르하르트 나이버차관 포함)에 대하여 살인계획 및 폭발물의 사용에 관한 방조혐의로 구속연장을 신청.

4.1. 데틀레프 카르스텐 로오베더 신탁공사(베를린 소재) 총재가 테러범에 의해 피살. 독일적군파(RAF)가 살인행위를 자인.

4.13. 브리기크 브로이엘(여)이 신탁공사 관리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신임총재로 선출되어 로어베더의 직무를 계승.

5.2. 츠비카우 근교의 모젤에서 폭스바겐주식회사 조립공장 기공식. 3년후 이곳에서 약 7천명이 일할 것으로 예상.

5.8. 연방재무성은 91년 최소한 8백억 마르크가 동독에 투자될 것으로 추산. 이중 5백억 마르크는 연방재원에 의한 공공투자이며 280억마르크는 서독기업들의 투자라고 함. 재무부의 중간통계에 따르면 이미 긍정적인 결과가 나타난다고 함.

5.20. 콜이 워싱턴방문중 미국기업들의 신설연방주에 대한 투자를 권장함. 신탁공사의 뉴욕지부설치계획을 발표.

5.23. 베를린에서 구동독정부가 반체재 부부들의 친권을 박탈하고 그 자녀들의 자신들의 노선에 충성하는 사람들에게 양자입적시킨 문서들이 발견됨.

6.20. 독일연방의회가 베를린에 연방정부와 의회를 두기로 결정. 본은 연방의 행정중심지가 될 것이라고 함.

7.1. 구동독부양을 위한 공동계획의 재원확보를 위하여 일련의 세율 등이 인상됨.

7.5. 연방협의회는 본에 있는 소재지를 당분간 변경하지 않기로 함.



■ 1992년

1,2, 모든 국민에게 구동독 보안성의 서류중 자신에 관한 서류를 열람할 권리를 부여하는 새로운 법률제정. 보관괸 서류철은 무려 200KM에 달함. "개인관련서류를 위한 연방정부 특별수임기관"(Gauck관청)이 독자적인 관청으로 신설됨.

1.21. 처음으로 구동독의 한 병사가 내독국경에서의 발포에 의한 살인죄로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음.

5.24. 1946년이래 처음으로 베를린 전역에서 의원선거실시.

7.29. 구동독공산당 총서기장 에리히 호넥커가 모스코바에서 귀국하여 베를린에서 수사 구속됨. 건강상의 이유로 소송이 판결시까지 진행되지 못함. 호넥커는 1994년 자신의 딸이 사는 칠레에서 사망.



■  1993년

3.13. 연방과 16개연방주가 '연대협정"에 합의. 이에 따라 신설연방주의 재건을 위하여 납세자에게 조세부담이 추가됨. 1995년 1월1일부터 모든 근로소득의 7.5%에 해당하는 "통일연대세"가 징수됨. 연방주간의 새로운 재정조정에 따라 5개신설연방주는 매년 520억 마르크의 재정지원을 받게됨.

10.12. 연방정부가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으로 이사하는 것을 2천년까지 종결하기로 결정. 18개정부부처중 8개부처는 "행정중심지"가 될 본에 머무르기로 함. 이중 특히 연방경제협력성과 연방국방성은 본에 있기로 함.



■ 1994년

5.23. 1990년 독일통일후 처음으로 연방대통령 선거. 지금까지 연방헌법재판소 소장이던 로만 헤어쪼크 교수가 선출됨.

10.16. 연방의회의원선거에서 콜수상의 연정이 재차 집권하게 됨. 구동독의 국권정당의 후신인 민주사회당(PDS)이 4.4%의 득표율로 독일연방의회에 진출.

12.31. 신탁공사 4년만에 신설연방주에 시장경제적 출발을 위한 토대를 마련.  신탁공사의 가장 중요한 과제인 구동독 공유기업의 사유화는 거의 완결됨. 4500개가 넘는 기업 내지 기업일부가 판대처분되었으며, 그중 80%이상이 중규모의 기업가들에게 넘어감. 이중 2700여개의 기업은 경영진에 대한 판매방식에 따라 모든 종사자들에게 판매되었음. 약 4300건의 재사유화조치와 함께 이는 신설연방주에 중산계층을 재건하는데 적절한 기여를 함. 41000건의 토지처분과 약 25000건의 판매업소, 유흥업소, 호텔 등의 판매를 포함하여 4년이내에 약 85000건의 사유화계약이 개별적으로 체결되었음.

   94년이후로 남아있는 수많은 과제는 신탁공사의 후속기구들에 의해 수년에 걸쳐 처리될 계획임. 95년초부터 통일과 관련된 특수과제를 위한 연방공사(BVS)가 특히 계약관리업무, 즉 85000건의 신탁공사가 체결한 계약의 이행감독을 담당하게 됨. 계약관리외에도 연방공사는 이미 조업이 중단된 약 3500개의 신탁기업의 청산과 구동독의 정당 및 대중조직의 재산관리를 담당하게 됨.

   이 이외에도 일련의 국가행정적 과제가 남아 있음. 즉 재사유화, 동독지방자체단체에로의 재산권이전, 투자우선순위에 관한 증명서 교부, 부동산거래의 허가 등. 신설연방주에 있는 농업지 및 임야는 아직도 상당수 연방소유로 되어있는데, 이는 수년내에 수익대여 내지 판매될 예정임. 이러한 과제는 1992년 설립된 토지평가관리회사(BVVG)가 계속 위임사무로서 처리함.

   1991년에 설립된 부동산신탁회사(TGL)는 부동산을 관리함. 95년현재 약 62000개의 부동산이 이 회사의 관리하에 있는데, 차후 10년동안 약 30억 마르크를 연방을 위해 벌어들일 것으로 추산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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