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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철학서평]기독교와 플라톤주의

페이지 정보

작성자 모모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조회 5,268회 작성일 02-03-09 10:20

본문

작성일 : 2000/11/27 조회수 : 36  

바이어발테스의 새 책은 신플라톤주의에 대한 그의 인상적인 연구의 연장선 상에 있고, 특히 고대 후기 이래 유럽 정신사에서 근본적인 의미를 가지는 유대관계를 주제로 하고 있다. Clemens von Alexandrien과 Origenes이래 그리스도교도들이 자신의 신앙의 해석을 위하여 플라톤 철학 및 그에 결부된 전통의 근본 동기를 받아들였다. 이미 Philon von Alexandrien는 그리스의 사유 중에서 플라톤주의가 초월과 통일에 대한 지향을 가지고 있어서 성서적 유일신교에 대한 꼭 들어맞는 철학적 파악을 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필론이 개척한 플라톤 형이상학과 성서적 계시 간의 결합은 성립하는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지대한 의미를 가졌다. 한편 플라톤주의는 이렇게 기독교에 수용됨으로써 529년 Justinian에 의해 아카데미아가 해체된 이후에도 영향력을 상실하지 않고, 중세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힘있게 존속할 수 있었다. 그래서 플라톤주의는 유럽 형이상학의 근본형태로 간주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교 내에서 플라톤주의의 걸출한 대변자들로는 Augustinus, Boethius, Meister Eckhart 그리고 Nikolas von Kues 등의 영향력있는 사상가들을 꼽을 수 있다. 결정적인 역학은 이른바 사도제자(Apostelschueler)인 Dionysius Areopagita가 했다. 그의 저술들은 15세기까지 동부의 그리스와 서부의 라틴 지역에서 최고의 명성을 누렸다.

이 책은 6개의 구체적 사례를 통해 플라톤주의와 그리스도교의 상호영향을 연구한다. Marius Victorinus에 의한 실체 개념의 3위1체철학적 변형(25-43), 아레오파기타에 의한 프로클루스 철학의 그리스도교화(44-84), 신적인 선성(善性)을 3위1체의 근거로 보는 Bonaventura의 견해(85-99), 에크하르트의 통일과 단일화(Einung)의 개념(100-129), 니콜라스 폰 쿠스의 숨은 신이라는 주제, 특히 디오니시우스의 강한 영향 하에 있는 후기 저작 '비-타자에 대하여'를 중심으로(130-171), 그리고 플로티누스와 아우구스티누스의 중심 견해를 결합시키는 사유의 전통적인 자기관계에 대한 Ficino의 분석(172-204). 이 장들 중 다수는 (부분적으로 축약되어) 이미 다른 곳에 발표된 글들이다. 새로운 부분은 에크하르트를 다룬 중요한 한 절과 책 전체의 중심주제인 플라톤주의와 그리스도교의 관계에 대한 서두의 원칙적인 논의(7-24)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한 논문 모음집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리스도교적 플라톤주의의 정당성(Legitimitaet)에 대한 증명이 거기서 시도되고 있다. 비어발테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명제 '플라톤주의자 보다 우리 그리스도교인 들에게 가깝게 다가온 사람은 없다'를 그의 책의 모토로서 설정한다.

그리스도교적 플라톤주의에서는 신에 대한 올바른 파악이 중심 문제이다. 그와 함께 신앙과 사유, 이성과 계시의 근본적인 일치를 추구한다. 신앙이 신이라고 부르는 것은 최고의 궁극적인, 더 이상 근거를 필요로 하지도 또 근거지울 수도 없는, 따라서 무-제약적인 원리임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사유하는 이성만이 이 원리에 접근할 수 있다. 참된 종교와 참된 철학은 일치한다. 왜냐하면 계시의 신은 철학하는 이성의 절대적 원리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적 플라톤주의는 물론 나중에 헤겔과 셸링이 그랬듯이 철학 쪽에서 이것을 파악한다. 우리는 신이 무엇인가를 절대적 원리의 형이상학을 통해서 이해한다. 이러한 원리 형이상학은 이미 고대에 (신)플라톤주의에 의해 완성되었다. 원리 형이상학은 세계의 신적 근거에 대한 물음에 대해서 이중적 해답을 제시했다. 세계는 초월적이고 신적인 누스(Nus, 정신)에 근거하고 있다. 이 누스는 삼라만상의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원본 즉 이념들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모든 참된 존재를 포괄하는 것이다. 세계의 근거인 이 정신은 그러나 절대적 원리는 아니다. 왜냐하면 이 정신은 다수성 자체 속의 통일로서 여전히 모든 다수성에서 자유로운 일자 자체(das Eine selbst)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왜 이 누스가 통일 또는 일자 자체를 전제해야만 하는가는 나에게 명쾌하지 않다. 다수성이 하나의 통일 속에 있을 수 있는 논리적 또는 형이상학적 기제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뜻으로 이해해 볼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역자] 일자에 대해서 일자가 있다거나 또는 일자가 생각한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 즉시 일자는 이미 다수성 속으로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일자는 "존재의 피안"이며, "정신의 피안"이다. 우리는 단지 모든 존재자와 사유가능한 것의 부정을 통해서만 일자를 획정(劃定 ausgrenzen)할 수 있을 뿐이다. 플라톤주의자는 그러므로 신에 대한 물음에 이렇게 (이중적으로) 답할 수 있을 뿐이었다: 피안의 일자, 그러나 또한 일자가 거기서 자기를 드러내는 누스. 그리스교적 신플라톤주의의 새롭고 고유한 측면은 비어발테스가 탁월하게 제시가고 있는 바 플로티누스와 프로클로스를 갈라놓았던 이 두 신적 원리를 통일적으로 사고한다(in eins zu denken)는 데 있다. 신이 절대자라면, 신은 존재와 비존재의 양자 택일을 넘어서 있는 일자이다. 그러나 삼위일체, 창조 그리고 육화에서 신의 자기현시를 믿는 그리스도교는 동시에 신의 자기 관계를 함축하고 있다. 이 자기관계를 플로티누스는 자기 자신을 사고하는 누스의 특성으로 분석하였고 동시에 절대적 피안의 일자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이 자기관계를 배제시킨 바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적 사유에서 신은 정신인 동시에 일자이다. 여기서 다시 생겨나는 문제는 '어떻게 일자가 자신의 절대적 초월성을 상실하지 않고도 정신으로서, 즉 존재의 충만으로서 사고될 수 있는가'이다. 비어발테스는 이 과제가 유의미하고 일관되게 수행될 수 있다는 것을 보이려 한다. 이러한 의도는 이미 1994년의 그의 Eriugena-Buch를 규정하고 있다.

이 두 책의 신플라톤주의의 사고원리 즉 정신의 초월적 일자에 대한 관계가 여러 상이한 방식으로 절대자 자체 내의 관계로 변화되어가는 사고의 궤적을 추적하고 있다. 이 절대자 자체 내의 관계 속에서 일자는 3위1체적으로 자기와 관계하며, 이로부터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적 내용이 이성에게 드러난다. 이 사고의 궤적은 역사적으로 아레오파기카에서 쿠자누스로 이어진다. 비어발테스는 매우 꼼꼼하게 중요한 결절점들을 재구성해 낸다. 이것을 여기서 간략하게 되짚어 보자. 신을 일관되게 피안의 일자로서 생각한 최초의 그리스도교 저술가는 디오니시우스이다. 일자가 자신의 절대성 속에서 삼라만상의 피안에 있다면, 일자에 대한 사고는 삼라만상을 부정해야 하며 그리하여 결국 자기자신과 자신의 부정활동 자체를 넘어서야( uebersteigen) 한다. [일자에 대한 사고가 부정활동에 머물러 있는 이상 아직 순수한 일자를 사고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부정은 동시에 이미 어떤 유한한 사물에 대한 사고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인다. 역자] 이것이 프로클로스에 의해 완성되고 디오니시우스가 계승한 부정적 신학이다. 그리도교 신앙의 신에 대한 모든 긍정명제를 디오니시우스는 비유로 간주한다. 그리고 이 비유 속에서 우리는 본래 초월적 일자에게 속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일자가 상위존재( uebersein)의 양태라는 점에서는 맹아적으로 선취하고 있는 규정들을 규정할 수 없는 일자로 이전하고 있다고 본다. [^^;좀 알쏭달쏭한 문장] 여기에서 일자는 총체성의 원리로서 총체성 속에서 자기 자신을 제시하며 따라서 모든 존재자는 신의 현현(Theophanie)이라는 사상이 성립한다. 에리우게나는 이 사상으로부터 또 다른 결론을 이끌어 낸다. 그에 따르면 절대자는 모든 규정들의 부정 속에서 긍정적으로 자기 자신과 관계한다. 절대자 자신이 산출한 존재 내용들의 부정은 절대자 자신의 활동이며, 이를 통해 절대자는 상위존재이자 충만으로서의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간다. [모든 유한한 내용을 부정함으로써 오히려 내용의 충만으로 되돌아 간다는 놀라운 착상!!] 모든 존재 내용의 부정을 통해서 일자는 당연히 자기 자신을, 규정된 어떤 것으로서가 아니라 모든 존재자와 사고가능한 것의 상위존재적 무(das  Ueberseiende Nichts)로서 즉 모든 지식의 상위에 있는 무지로서 인식한다는 것이다. 에크하르트는 또하나의 결정적인 진전을 일구어 낸다. 그는 일자의 부정성을 재 해석하여 일자에게서 존재의 충만은 배제되지 않고 다만 개별적 존재 내용의 다수성만이 배제되도록 한다. 개별적 존재 내용의 다수성은 유한한 것들로서 언제나 존재의 무한한 충만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신은 무한한 충만 존재이다. 왜냐하면 신은 모든 다수성을 초월하는 일자로서 저 제약되어 있는 부정들[=유한자들]의 부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은 반성적인 '자기 내 복귀'이며 따라서 'Ich'이다. 쿠자누스는 에크하르트와 에리우게나의 견해를 그의 일치론(Koinzidenzlehre) 속에서 결합시킨다. 일치론은 긍정과 부정을 넘어서 있는 일자를 '비-타자'(Nicht-Andere)로서 파악하는데, 이 비-타자는 자기 자신과 모든 타자를 규정하며 따라서 절대적 개념이고 동시에 모든 개념 활동을 넘어서 있다. 이 비-타자는 정신이며 동시에 정신 이상의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플라톤주의자 쿠자누스는 정신을 절대자의 최고 정의로 간주한 헤겔과 구별된다.
플라톤주의와 그리스도교의 결합의 정당성을 위해서 어떠한 외적인 기준, 예를 들면 실정적으로 이해된 계시 같은 것이 도입되지는 않는다. 비어발테스는 우리가 믿는 것을 언제나 이미 해석하지 않고는 믿을 수 없으며, 진리는 비록 계시에 의존하고 있다하더라도 증명가능해야만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플라톤적 사유와 그리스도교적 사유의 지평을 융합시킴으로써 절대자의 개념은 변화되고 이것은 후에 헤겔과 셸링(의 철학)을 가능하게 한다.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사유의 역사를 통해서 이러한 지평 융합이 이루어낸 풍요한 결실을 비어발테스는 그리스도교 속에 도입된 플라톤주의의 정당성에 대한 고유한 증명이라고 본다. 이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올바른 견해이다. 그의 책은 사유와 신앙이 얼마나 서로에게 풍요한 결실을 맺게 할 수 있는가를 사려깊은 독자들에게 인상깊게 보여 준다. 그리고 자신의 역사를 망각한 신학의 '스킨쉽(접촉) 공포증'(Beruehrungsaengste)이 만들어 낸 일면적이고 잘못된 양자 택일에서 벗어나게 한다. 비어발테스는 역사적 탐구를 통해서 예리해진 차이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철학과 신학의 조화를 부흥시키는 일에 힘쓴다. 그와 함께 그는 고대와 기독교에 기초하는 우리 문화의 자기 이해를 변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여기에 소개한 책은 최근의 가장 중요한 철학 신간에 속한다.



원문 출처: Zeitschrift fuer philosopische Forschung
Werner Beierwaltes, Platonismus im Christentum, 222S. Verlag Vittorio Klostermann, Frankfurt/M. 1998.  Jens Halfwassen, Heidel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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