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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아도르노 미학(1)

페이지 정보

작성자 고스라니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조회 4,411회 작성일 02-03-09 09:36

본문

작성일 : 1999/06/23  조회수 : 216

■  아도르노의 '미학 이론'에서 미적 경험의 시간 구조

이 글은 아도르노 미학에 대해 정리해 보려는 목적으로, 필자가 세미나에서 제출했던 논문을 다시 끄집어내어 한국어로 번역하면서 스스로 불명료한 부분에 대해 좀더 사고를 가다듬은 것이다. 아도르노의 캄캄할만큼 근본적인 이성 비판은 '이성이라는 유령'에 대해 호의적이던 적대적이던 간에 이에 대한 앞으로의 좀더 심화된 논의를 위한 단초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아도르노의 주저 중 하나이며 마지막 저서(1968)인 '미학 이론'을 중심으로 그의 저서에서 나타난 '미적 경험의 시간 구조'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인용구의 출처는 일단 <> 괄호로 묶어두되, 정확한 출처는 이 논문이 끝나는 곳에 적어두도록 하겠다.


예술과 사회

아도르노의 견해에 따르자면 예술은 '고통의 언어<미학이론 35면>'이며, 하나의 반명제, 전면적으로 관철되는 사회적 물화에 대한 하나의 반명제이어야 한다. 우리가 아도르노가 채택한 이러한 예술의 정의에 반드시 동의해야만 앞으로의 논의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만 아도르노의 견해가 '하나의' 가능한 예술관이라는 점에만 동의한다고 해도 충분히 풍부한 논의가 가능하다고 본다.

'집적된 고통에 대한 기억<미학이론 387면>'으로서의 예술은 사회에서의 부정적 현상에 대해 아직도 자율적 영역에서 부정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소'이다.

예술을 카타르시스로서 정의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에서 본다면 예술과 고통을 연계시키려는 아도르노의 시도는 낯설게 보일 수도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일단 아도르노가 "아우슈비츠 이후 시는 불가능하다"는 담론을 세상에 내놓은 사람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후에 아도르노는 "해를 거듭하는 고통은 고문 당하는 사람이 울부짖듯이 표현의 권리를 가지므로 아우슈비츠 이후에는 어떠한 시도 쓰여질 수 없다는 말은 잘못이었다"고 자신의 말을 수정한 바 있다.)

그가 평생을 통해 그 뼈대까지 들여다 보았다고 느꼈던 그 '집적된 고통'은 당연히 '아우슈비츠'라는 한 장소로 집약되고 상징된다. 그런 의미에서 아도르노의 철학은 철저히 역사적이다. 그러나 그 곳은 하나의 상징으로서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넘어서 파탄으로 치달을 수 밖에 없었던 이성의 내재적 논리와 그 논리가 외화된 역사를 드러내 보이는 '거의 유일한 장소'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아도르노의 어법을 빌어 말한다. "아우슈비츠 이후 시가 가능하다"

물론 이러한 역설적 선언에는 몇 가지 속임수가 있다. 아도르노가 의미했던 시가 브레히트가 쓰라린 심정으로 거부했던 '나무에 대한 노래'라고 한다면, 필자의 시는 브레히트가 '나무에 대한 노래를 거부했던 바로 그 노래'를 말한다. 이 노래는 괴테가 "파우스트"에서 경멸했던 '더러운 정치적 노래(Ein garstig Lied! Pfui! ein politisch Lied)'와 하이네가 "독일, 겨울동화"에서 하프 타는 소녀에게 들려주고자 했던 '더 나은 노래(Ein neues Lied, ein besseres Lied)'의 어디 중간 쯤에서 그들을 다 끌어안으면서 이를 가로지르며 넘어서는 노래이다. 이 참된 노래를 찾아나서는 길이 바로 아도르노가 밟아갔던 길이 아닌가.

이러한 의미에서 시는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가능한 것이 아니라 아우슈비츠 이후'에야' 가능한 것이다. 물론 이 때 '이후'란 역사적, 시간적 의미로 쓰인 것이 아니라 상징적, 논리적 의미로 쓰인 것이다. 이것이 아도르노의 말을 비틀은 필자의 두번째 속임수이다.

필자의 마지막 속임수는 아도르노의 아우슈비츠가 내포하는 역사 철학에 대한 분석에 자리잡고 있다. 아우슈비츠 이후 시가 불가능하다면 이는 역사를 아우슈비츠 이전과 이후로 분리함을 전제한다. 아니 아우슈비츠의 대비 개념으로서 에덴이 무모순적인, 그리하여 비역사적 공간이라면, 아우슈비츠로 인해 비로소 역사가 시작한다고도 볼 수 있다. 필자는 아도르노가 역사는 낙원에서의 추방과 함께 시작되며 낙원의 회복으로 끝난다는 기독교적 역사관 중에서 전반부를 암암리에, 어쩌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받아들이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수미일관! 전반의 타락론을 받아들이면 후반의 구원론도 받아들여야 한다. 아도르노가 낙원에서의 추방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낙원의 회복을 열망하게 되며 이러한 선지자적 열망에 그의 좌절이 기인하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입구도 출구도 없는, 동서와 고금을 통해 편재하는 '아우슈비츠'로 인해 '시'는 가능하며 가능해야 하는 것이다. 아우슈비츠 이후 시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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