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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인물탐구 :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1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이정모이름으로 검색 조회 4,683회 작성일 02-03-15 22:17

본문

인물탐구 :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앞에 쓰는 후기 : 지금 필자가 후기를 쓰고 있는 시간은 6월 2일 밤 11시 30분. 오늘은 공교롭게도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의 80회 생일이었다. 저녁 9시 45분에 시작되어 30분 남짓 계속된 ZDF 방송의 저녁뉴스인 heute Journal은 그의 생일잔치에 대한 소식과 여러 저명인사들의 축하인사 그리고 라이히-라니츠키와의 대담에 3분의 1정도를 할애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그의 인생에 관한 (주로 그가 말하는) 1시간짜리 다큐멘타리가 이어졌다. 연이은 두 프로를 보고 다시 한 번 느낀 점은 그는 정말 '보수적'이라는 것이고, 성실한 그리고 실력있는 '보수'는 정말로 무섭다는 사실이었다.

mrr-zdf3.jpg

위 그림 중 왼쪽은 heute Journal과의 대담, 오른쪽은 그에 관한 다큐멘타리의 한 장면이다. 그는 바르샤바 강제수용소에서 탈출한 다음 느낀 '새와 같은 자유' 그리고 평론가로서의 '외로움'을 이야기했다. 평론가는 정확히 한 입장에 서야 한다. "누구나 그 책에 찬성하든지 반대하든지 둘 중의 하나일 수밖에 없다"고 단언하면서 그는 모든 작가를 '돼지'라고 이야기 했다. 작가는 재능이 있는 돼지 아니면 재능이 없는 돼지라는 것이다.

자 그럼, 이제부터 '문학의 교황'이라고 일컬어지는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을 살펴보도록 하자.



   ▶그의 인생 Sein Leben

mrr1-1.jpg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Marcel Recih-Ranicki는 1920년 6월 2일 제1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독-러 국경을 이루고 있던 바이셀 강가의 폴란드 소도시 블로크라벡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다비드 라이히는 폴란드의 러시아 점령지 출신이며 어머니 헬레네는 프로이센 아우어바흐 태생이다. 아버지 쪽은 상인 집안이었으며 어머니 쪽은 랍비 집안이다.

블로크라벡에서 라이히-라니츠키는 독일계 (당시엔 초등학교가 아니라)국민학교에 다녔다. 1929년 그의 가족은 베를린으로 이주하였다. 처음에는 베를린-쇤베르크의 베르너-폰-지멘스 김나지움을 다녔고 다음엔 빌렘스도르프의 피히테 김나지움으로 옮겼다. 후에『제3제국의 학창시절 Meine Schulzeit in Dritten Reich』란 제목으로 출간된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짜이퉁(FAZ)의 연재물에서 그는 베를린에서 경험한 나치시대의 청소년기를 자세히 설명한 바 있다. 베를린은 그에게 문학과 연극을 경험하게 하고 상상력을 허락하여 주었다. 그에게 대학입학신청은 가망이 없어 보였다. 아비투어를 마친지 얼마 안 된 1938년 가을 그는 폴란드 국적인이란 이유로 체포되어 폴란드로 추방되었다.

그는 이제 바르샤바에 살게 되었다. 그리고 1940년부터는 바르샤바 수용소 '유대인 위원회'에서 번역과 통역 일을 맡게 되었다. 1943년 유대인 투쟁기구(ZDB)의 저항활동에 참여한 후 지난 1942년 수용소에서 결혼한 테오필라 Teofila와 함께 수용소를 탈출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의 부모와 형제들은 살해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라이히-라니츠키는 바르샤바에 머물렀고 그는 폴란드 공산당에 입당하였다. 1946년 베를린 주재 폴란드 무관으로, 1947년에는 바르샤바 외무성에서 근무하였다. 1948-49년에는 런던 주재 폴란드 대사관의 영사와 총영사를 지냈다. (당시 그가 폴란드의 스파이 역할을 했다는 논쟁이 후에 일었고 이 부분은 논쟁 당시 동아일보 주독 특파원이었던 김창희 기자와 파리에 머물던 한겨레 신문의 고종석 기자에 의해 한국에도 소개된 바 있다) 1949년 정치적인 이유로 런던으로부터 바르샤바로 소환된 그는 외교관직은 박탈당하고 '이데올로기적 소원(疎遠)'을 근거로 체포되어 몇 주 동안 독방에 감금되었다. 이때 그는 폴란드를 떠나야겠다고 결심한다. 1950년대 중반부터 준비한 탈출계획은 1958년 독일로 이주하면서 이루어진다.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는 1959년까지 프랑크푸르트에, 그후 1934년까지는 함부루크에 살았으며 지금은 다시 프랑크푸르트에 거주하고 있다. FAZ에 첫 직장을 얻었던 그는 1960년부터 1973년까지는 함부르크에서 발행되는 주간지《Die Zeit》의 상임 문학비평가로 일하였다. 1973년 12월 1일 그는 편집진의 한 명으로 다시 FAZ에 복귀하여 문예면을 책임지게 된다. 그는 1976년 하이네 메달을 수상함으로써 문학비평계의 중요 인물로 대중적인 인정을 받게된다. 그 이후로도 많은 상이 뒤를 이었다. (1981년 Ricarda-Huch-Preis, 1987년 토마스 만 상, 1991년 바이에른 TV상) 그는 FAZ의 문예 담당 편집자로서 독일 문학과 문학비평계에 누구보다도 큰 영향을 미쳤다. FAZ의 문학비평간은 모든 독일어권 신문 중 가장 포괄적인 비평란으로 발전되었다.

mrr1-2.jpg초기부터 그는 동독의 문학에 주목하였다. 기사와 직접적인 간섭을 통해 동베를린 문학 생산물에 영향을 끼쳤다. 볼프강 쾨펜 Wolfgang Koeppen, 자라 키르휘 Sarah Kirsch, 토마스 브라쉬 Thomas Brasch, 헤르만 부르거 Hermann Burger와 울라 훈 Ulla Huhn 등이 그의 지원을 받은 작가라고 할 수 있다. 1964년 그가 간행한 전22권의『프랑크푸르트 명작선 Frankfurter Anthologie』는 가장 성공한 현대 성정시 모음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진은 1993년 10월 4일자 슈피겔 표지)

1989년《문학 사중주 Das Literarische Quartett》를 시작했다. 이 방송은 독일 방송 사상 가장 성공한 책 프로그램이며 라이히-라니츠키를 대중 스타로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하여 그는 독일 방송의 여러 상 이를테면, '밤비 Babi'와 '골든카메라'를 받았다.

동시에 그는 최신작에 대한 비평서들을 출간하여다. 귄터 그라스의 당시 신작소설 Ein Weites Feld를 찢어 버리는 슈피겔 표지는 전국적인 논쟁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1999년 그의 회고록『나의 인생 Mein Leben』이 출간되지 몇 주 만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으며 해를 넘긴 지금(이 기사를 쓰고 있는 2000년 5월 마지막 주 슈피겔 집계)까지도 그 기록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비평가인 그는 이 책으로 가장 성공한 작가가 된 것이다.

▶ 기타 경력

   1968/1969 미국 한 대학의 교수

   1971/1975 스톡홀름과 웁살라 대학의 방문교수 (현대독일 문학)

   1972      웁살라 대학 명예박사

   1974      튀빙엔 대학 명예교수

   1991/1992 뒤셀도르프 대학 하인리히-하이네 방문교수

   1992      아우구스부르크대학 명예박사, 밤베르크 대학 명예박사



▶ 주요 저서

   Deutsch Literatur in West und Ost (1963/83)

   Ueber Ruhestoerer - Juden in der deutschen Literarur (1973/89)

   Nachpruefung - Aufsaetye ueber deutsche Schriftstller

       von gestern (1977/80/98)

   Thomas Mann und die Seinen Familie (1987)

   Thomas Bernhand (1990)

   Max Frisch (1991)

   Ohne Rabatt - Ueber Literatur aus der DDR (1991)

   Der Doppelte Boden (1992)

   Guenter Grass (1992)

   Die Anwaelte der Literatur (1994)

   Mein Leben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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