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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독문학의 위기와 컴퓨터   

오제명 이름으로 검색 2002-03-09 (토) 12:17 17년전 2118  
작성일 : 1999/04/15 조회수 : 174

■  독문학의 위기 진단과 전자 텍스트를 활용하는 독문학 연구의 가능성


                                              오제명 (충북대)


1. 위기에 처한 독문학

96년에서 97년에 걸친 1년 반 동안의 독일 체류는 나로 하여금 독일 내
에서도 독어독문학이 심각한 위기에 처했음을 관찰할 기회를 주었다. 이
른 바 탈냉전시대, 정보화시대를 맞이하여 독어독문학은 과거 어느 때보
다도 사회 속에서, 그리고 학문 분야들 속에서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존립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로부터 오는 "정당성 압력 Regitimationsdruck"이 많은 독문학자들에
게는 "정당성 강박증 Rechtfertigungsneurose"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위기는 무엇보다도 독일 사회의 구조적 변화와 맞물려 발생한
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정부의 교육정책, 학생들의 전공선택과 직
업적 전망, 독문학의 사회적 기여도에 대한 평가가 변화하고, 그 결과 독
문학은 학문적 정체성까지 문제시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독문학의 위
기에 대한 논의는 독일의 경우와 질적인 차이가 있지만 몇 년 전부터 시
행된 정부 주도의 교육개혁작업과 학부제 도입 등으로 위축된 한국의 독
문학이 처한 상황도 기본적으로는 동일한 문제에서 출발한다고 본다. 이
글은 우리의 문제를 조금 더 넓은 지평에서 살펴보고 해결을 모색하는 데
작은 도움을 주려는 의도로 씌어진다.

1.1. 교육정책적 소외

국민들에게 인기없는 "긴축재정정책 Sparpaket"을 옹호하기 위해 헬무
트 콜과 테오 바이겔이 빈번하게 사용하는 "Globalisierung"과
"Konkurrenzf higkeit"라는 어휘를 ARD 방송에서 듣고 있노라면 KBS를
통해 들어온 김영삼 대통령의 "새개화", "갱쟁력"이 자동적으로 연상되었
고, 나로서는 그야말로 세계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ARD의 Tagesthemen 프로에서 가장 자주 등장한 정치적 주제는 복지비
용의 대폭 축소를 통해 기업경쟁력 강화를 꾀하는 집권당의 "긴축재정"을
둘러싼 여야 간의 공방이었다. 이러한 공방은 곧 전통적인 유럽식 "사회
국가 Sozialstaat" 모델을 유지하고 환경보호를 추진하려는 야당들과 독일
을 미국식 자유경쟁체제로 전환시켜 첨단기술산업을 육성하고 이를 통해
세계시장에서 살아남겠다는 연립여당의 전략이 충돌하는 현장이다. 이 긴
축정책은 임금, 노동조건, 실업수당, 연금, 의료보험등 일반적인 국민복지
영역 만이 아니라 문화와 교육 부문에도 이미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
다.
이제 경쟁력이 없는, 즉 단기간에 경제적 가치로 현금화되지 않는 문화
사업 및  교육활동에는 정부의 지원이 대폭 축소되었다. 예컨대 CDU가
여당인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경우 보조금(Subvention)이 대폭 줄어 여
러개의 극장들이 문을 닫았고, 작년부터 대학의 경상운영비도 절반으로
깎였다. 장학금이 하늘의 별처럼 따기 어렵게 되었을 뿐 아니라, 멘자의
음식값과 시내교통비 할인 이외에 학생들이 누리던 복지혜택은 거의 사라
졌다. 등록금 징수가 시도되고 있으며, 앞으로는 장기대학생
(Langzeitsstudierende)을 대학에서 추방하기 위해 6학기 내에 의무적으로
논문을 내야 하는 미국식 석사제도를 확대실시하려고 한다. 연구비 지원
이 정보학(Informatik) 등 소위 첨단학문에 집중됨으로써, 대학 내의 학문
분야별 차등대우도 이미 심각한 수준에 달하고 있다. 칼스루에에서 발행
되는 지방지 BNN의 1997년 6월 24일자 기사는 경쟁력이 약한 학문분야
가 당하는 설움을 극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칼스루에 대학 내의 누구
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주정부의 교육부로부터 위임을 받은 대학구조
조정위원회(Hochschulstrukturkommision)가 이 독문학, 역사학, 사회학,
철학이 속해 있는 이 대학의 정신과학부의 실질적 폐지를 골자로 하는 권
고안을 낸 것이다. 위원회의 권고를 주정부가 실천에 옮기는 데는 여러가
지 저항에 부딪칠 것이며, 향후 몇년 내에 학부가 정말 문을 닫을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인문학 분야의 학과들의 처지가 더
욱 어려워질 것임은 분명하다. 물론 이러한 극단적인 경우는 전신이 공과
대학이며 공학 및 자연과학분야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칼스루에 대학의 특
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거기에는 독일에서 인문과학 일반과 독문학
이 처한 일반적인 위기가 함께 반영되어 있다.

1.2. 학생으로부터 외면당하는 독문학

신입생을 위한 문예학 입문강좌를 맡은 교수들은 '요즘 학생들은 문학
적 기초지식이 터무니 없이 부족하고, 책읽기 훈련이 되어있지 않다'고 개
탄한다. 신입생의 80-90%가 파우스트를 모른다는 사실은 학생들의 독서
량과 전공수학능력이 매우 낮아졌음을 말해주는 지표로 볼 수 있다. 그렇
게 된 데에는 두가지 원인이 있다. 아비투어 합격률이 40%로 올라간 이후
입학한 대학생들("Abiturproletariat")의 자질이 이전에 비해 평균적으로
현저히 떨어졌고, 직업전망이 밝지 않은 독문학을 야망있고 재능있는 학
생들이 외면하기 때문이다.
90년대 초에 나온 OECD의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의 경우 지난 2-30년
사이에 대학과 고용시장 사이의 관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음을 보여
준다. 즉 1965년 통계에 따르면 대졸자의 65%가 공직에 취업하고 35%가
사기업과 자유업에 일자리를 얻은 반면, 90년에는 거꾸로 35%가 공직을
얻고 나머지는 사기업에 취업했다. 이 기간에 공직에 취업한 대졸자는 두
배, 사기업에 취업한 숫자는 8배로 늘었다. 직종별 대졸자 취업비율의 이
러한 변천은 생산직이 빠른 속도로 증가한 반면 관리직은 상대적으로 늘
어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며, 나아가서 대학, 기업, 사회 사이의 상호의존구
조 및 학문분야별 사회적 수요가 현저히 변화했음을 시사한다. 지난 20년
이래로 점차 가중되고 있는 독문학의 어려움은 이러한 사회적 수요의 변
화에 연결되어 있다. 현재 독문학을 전공하는 학생은 약 10만명에 달하고
있으나,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는 계속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다. 칼
스루에 대학 박사과정 콜로키움에서 발표한 한 학생의 보고에 의하면 중
등학교, 대학, 문화계 등에서 일자리를 구한 독문학 전공 졸업생은 100명
중 4-5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문학을 주전공으로 선택하는 학생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은 직장이 없는 사람도 굶게 하지는 않는 독일적 상황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생존 경쟁이 지배하는 삶의 조건 속에 자기자신
을 내맡기고 싶어하지 않는 젊은이들이 다른 전공보다는 상대적으로 요구
조건이 적은 학문으로 여겨지는 독문학을 택한다. 예습량이 많이 필요하
고 시험이 잦은 법학, 의학, 경영학, 공학, 물리학, 수학 등에 비해 독문학
은 "부드러운 학문 sanftere Wissenschaft"로 통하고, 거기서는 보다 많은
여가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학문을 통해 그들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자기자신의 문제를 주체적으로 다루고 삶의 지침
을 끌어낼 수 있기를 기대하지만 이러한 기대는 고답적인 강독이 이어지
는 두어 학기가 지나면 실망으로 변한다. 모호한 기대를 일깨우지만 막상
손에 쥐어주는 것은 없는 독문학에 대한 불만으로 인해 많은 학생들이 전
공을 바꾼다.
낮은 직업 전망 이외에 이 전공이 요구하는 높은 독서량도 학생들의 염
증을 불러 일으키는 원인으로 지적된다. 매체사회 속에서 성장한 학생들
은 텔레비전, 비디오, 워커맨, PC 등 시청각 매체에 익숙해 있고, 그들에
게 책은 이미 문화와 지식의 전달매체로서의 특권적 지위를 상실하였다.
이제 부피 큰 소설과 드라마 읽기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학생들은 TV,
영화, 인터넷을 다루는 "매체학(Medienwissenschaft) 쪽으로 도망치
는"(U. Greiner) 일이 빈번하다. 그리하여 독문학 전공학생 중 학업을 마
치는 비율은 25%를 넘지 못하는 실정이다. 학문에 대한 흥미 상실이라는
이유 외에도 학위를 가졌다고 취업전망이 밝아지는 것이 아니며, 박사학
위를 취득할 경우 오히려 실무경력을 필요로 하는 직종에 취업할 기회는
더욱 적어지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볼 때 독일대학의 독문학은 다수 학생의 욕구를 충족시키
지 못하고 사회적 수요에 부응하지 못한 채, 장래의 직업에 그다지 연연
해 하지 않으며 글읽기에 재미를 깨우친 소수의 학생들을 위한 학문으로
남아있다는 결론을 끌어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감증에 걸리지 않
은 독문학자라면 "정당성 강박증"에 시달리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1.3. 학문적 정체성의 위기

1994년에 나온 저서 [독문학의 역사 Geschichte der Germanistik]에서
요스트 헤르만트(Jost Hermand)는 90년대 독문학자들을 세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였다: 첫째 유형 - 학문의 사회적 연관을 도외시한 채 독문학의 옛
상태를 유지하려고 애쓰며, 문헌학적, 역사적.객관적 방법론에 의존하는
학자; 둘째 유형 - 문학을 완전히 사적인 공간으로 간주하여 사회적 연관
뿐 아니라 역사적 지향도 포기하고 주관성의 영역으로 되돌아가는 학자;
셋째 유형 - 참여는 현저히 쇠퇴했지만 여전히 이데올로기비판 및 사회비
판의 요청을 고집하는 학자. 첫째 유형의 학자들은 중요한 역사-비판본
들의 출판을 비롯하여 자료해독, 텍스트 편집, 전기집필 등 전통적인 문헌
학적 방법에 의해 많은 연구성과를 내었지만, 이러한 작업이 누구를 위한
그리고 무엇을 위한 작업인지가 불투명하며 독자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
한다. 사적 개인의 관점으로 문학을 바라보는 둘째 유형의 학자들은 80년
대 이후 문학적 감수성 훈련과 거대담론을 깨뜨리고 "반이데올로기적 자
유화"에 큰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그들의 문학연구는 소외된 세계 속의
학문적으로 특권화된 자아에 갖힌 채 보상적 예술향수의 범위를 벗어나기
어렵다. 셋째 유형의 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를 통해 재통일 이후의 사회
문제, 환경-, 소외집단-, 여성문제 등 현재의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적 관
심을 표명하고 있지만, 유토피아가 사라진 사회에서 그들의 비판은 힘을
발휘하기 어려워 보인다.
80년대의 방법론 다원주의는 결국  "방법론 마모 Methodenverschlei
" 현상을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헤르만트의 분류가 시사하
는 바는 이제 어떤 연구방법도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지 못하는 연구상황
이 도래했다는 점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정보화사회의 변화를 선도하는
매체기술의 발전이 전통적인 문헌학으로서의 독문학에 대한 심각한 도전
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구텐베르크 시대의 종말 Ende
der gutenbergischen  ra"을 가져온 멀티미디어적 매체환경은 지식과 문
화의 전달매체로서 책과 문자의 독점적 지위를 무너뜨리고 있다. 학문의
대상과 방법론에 걸쳐 중대한 변화가 도래한 것이다. 그리하여 한편에서
는 문헌학의 연구대상인 텍스트 개념을 문자로부터 소리, 아이콘, 영상에
까지 확장하고, 문자문화와 시각문화가 중첩되는 현재의 문화상황에서는
간매체적 연구방법이 요청되며, 독문학을 간학문적(interdisziplin r)으로
개방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럴 경우 독문학이 해체되
고 매체학과 문화학에 흡수될 것으로 우려하면서 독문학자는 "언어에 대
한 사랑 Liebe zum Wort"과 "문학에의 즐거움 Freude an der Literatur"
을 가장 본질적인 요소로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대결은 결과
적으로 기존의 독문학이 지녔던 상대적으로 단단했던 정체성을 위기에 빠
뜨리고 있다.


2. 컴퓨터 시대의 독문학을 위한 제안

2.1. 현실의 변화에 "동의"하는 독문학

독문학이 당면한 위기는 현실의 거센 변화에서 파생된 복합적인 원인
에서 비롯되었고, 그 위기를 벗어날 해결책이 선듯 발견될 수 없슴은 당
연해 보인다. 또한 후기구조주의 이후에 만연한 무차별적 탈중심주의는
어떤 대상에 대해서도 총체적인 조망을 불가능하게 만들었으며, 학문 영
역에서의 각종 포스트주의의 난무는 방법론과 이론 자체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지적 유행에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현실 그 자체를 인정함으로써 그 현실이 지닌 부정성을 극복
하려는 (즉, 브레히트적 의미에서 "동의"하는) 자세일 것이다.
현 상황에서 독문학의 연구대상을 문자텍스트에 국한하고 전통적인 문
헌학적 방법론에 의존하는, 말하자면 기존의 학문적 정체성을 고수하는
것은 위기를 외면하는 것이지 극복의 방식이 되기 어려워 보인다. 독문학
이 이러한 변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학문 자체의 성격이 바뀌는 것
도 감수해야 할 것이며, 무엇보다도 수용자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사회
적 기여도를 높임으로써 학문적 생산성을 제고할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
다. 이를 위해 독일학 매체학 문화학 등의 주제들을 독문학에 끌어들이고,
학문의 방법론과 도구에 대해서도 다양하게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정보화시대를 견인하는 정치가, 자본가, 첨단기술자, 그리고 미래학자들
이 그리는 장미빛 꿈을 같이 꾸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겠지만, 후기산업사
회에 극소전자혁명을 통해 이루어진 매체기술 (컴퓨터와 통신기술)이 일
상생활을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는 점은 현실로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정보와 문화를 생산하고 가공하고 수용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었
기 때문이다. 이미 일상화된 각종 첨단매체들은 대상에 대한 정보를 전달
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지각방식에도 영향을 준다.
학문 또한 시대의 산물이며 당대의 지배적인 매체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
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독문학이 생겨났던 18세기말과 19세기초의 지
배적인 매체는 책이었고 학문의 주된 연구대상은 문헌이었다. 멀티미어가
지배하는 매체환경 속에서 예술품 또는 문화상품은 말과 그림 그리고 소
리가 결합된 복합체로 등장하며, 이것이 연구의 대상이 되는 것은 불가피
하다고 본다. 이러한 연구대상의 확대가 문헌학을 폐기시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복합적인 예술품 속에서 언어는 여전히 핵심적인 요소 중의 하나
가 되며, 다른 요소들의 구성방식도 언어적 체계를 모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2. 컴퓨터를 이용하는 독문학

컴퓨터는 여태까지 자료를 저장하거나 문서를 작성하는 데 주로 사용
되었다. 하지만 이 전자매체를 독문학 연구와 강의에 보다 적극적으로 활
용하는 방법의 모색이 필요하다. 영미권에서는 오래전부터 인문과학 분야
에도 컴퓨터를 이용해왔으며, 독일에서도 "컴퓨터로 지원받는 문예학 언
어학 또는 정신과학 Computerunterst tzte Literatur- und
Sprachwissenschaft oder Geisteswissenschaft"을 시도하고 있다. 컴퓨
터는 문자, 소리, 그림을 효과적으로 결합함으로써 멀티미디어적 자료를
처리할 수 있게 하며, 데이터 처리를 전산화함으로써 텍스트의 모든 요소
를 인텍스로 만들 수 있으므로 문헌학적 연구의 도구로 유용하다. 이러한
장점을 살린다면 독문학의 연구대상의 확장과 방법의 효율화에 기여할 수
있다.

2.2.1. 멀티미디어용 자료의 이용과 개발

카세트 레코더와 VTR을 이용하여 소리 및 그림 자료를 학습자료로 이
용하는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이러한 아날로그 기기 들과 달리 디지
털 기술을 사용하는 컴퓨터는 자료를 필요한 부분으로 자르고 선택하는
것을 가능케 함으로써 멀티미디어 학습자료의 이용가치를 높혀 주었다.
사운드 카드와 질높은 비디오 카드 그리고 용량이 큰 하드 디스크를 장착
하여 멀티미디어 작업을 지원하는 요즘의 웬만한 PC는 VTR이나 TV등
전통적 소스기기와의 연결이 가능하고 각종 소스에서 나오는 소리 및 그
림 자료를 선택하거나 캡션 기능을 이용하여 일부를 마음대로 잘라 이용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작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이미
시판되고 있다. (예: 가산전자의 WinX Perfekt V).
한편 디지털 방식으로 제작된 멀티미어용 독문학 자료들도 이미 CD로
제작되어 상업적으로 판매되고 있다. 예컨대 Reklam에서 나온 "Klassiker
auf CD-ROM" 시리즈는 한장에 한 작품 씩 담고 있는데, 주석이 달린 달
린 텍스트 및 작품낭독, 그리고 작가의 사진, 간단한 전기, 문헌목록등이
실려있다. 강의실에 컴퓨터와 모니터가 준비된다면 이러한 자료들은 필요
시 작품 강의에 직접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소리와 텍스트와 사
진을 결합시키는 프로그래밍 기술을 익히면 누구나 멀티미디어용 자료를
만들 수도 있다.
독일 체류 시 나는 브레히트의 [전쟁교본 Kriegsfibel]과 [코카사스의
백묵원]의 멀티미디어本을 유학생 주경민씨의 도움으로 만들어 본 적이
있다. 원래 브레히트의 사진시집 [전쟁교본] 은 사진에 에피그람을 결합
시켜 책으로 묶은 것이었다. [멀티미디어 전쟁교본]라 이름붙인 이 시도
는 사진시집을 한 페이지씩 스캐너로 읽어서 컴퓨터 파일로 만들고 여기
에다 아이슬러(Eisler)의 음악을 덧붙인 것이다. 그리고 이 작업은 작년에
완간된 브레히트  새 전집에 실린 텍스트와 사진에 많은 오류가 있고, 그
후 크노프교수가 발간한 단행본에도 오류가 있다는 소장 브레히트 연구자
의 지적에 따라 정확한 텍스트를 확정하여 담았다. 책으로 출판할 경우
재판이 나올 때까지 수정이 불가능하지만, 읽고 쓸 수 있는 CD-ROM으
로 출판된다면 텍스트의 교정은 참으로 용이하게 될 것이다. [멀티미디어
백묵원]은 [백묵원]의 모든 주요 판본 (GW, GBA, B hnenfassung등)을
모두 수록하고 1954년 브레히트가 직접 연출한 공연사진을 함께 담아서
텍스트와 사진을 동시에 볼 수 있게 하였다. 이 작업은 출판된 공연사진
자료와 각각의 판본을 스캐너를 사용하여 입력한 후 음악을 결합시킨 것
인데, 책으로 보는 것과는 색다른 맛이 있었고 학문적으로도 유용한 자료
로 활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2.2. 전자 텍스트를 이용하는 컴퓨터 문헌학적 시도

전자 텍스트(elektronischer Text)란 컴퓨터데이터로 처리된 텍스트를
말한다. 전자 텍스트는 책으로 된 텍스트에 비해 사용자가 마음대로 가공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책과 전자텍스트의 차이는 아나로그와 디지털의
차이에 해당된다. 원하는 크기로 쉽게 잘라 복사할 수 있고, 별도의 프로
그래밍 없이도 검색할 수 있다. 그러나 전자텍스트는 약간의 프로그래밍
을 통해 문헌학적 연구를 위한 효과적인 자료로 전환시킬 수도 있다.
위에서 언급한 CD-ROM 이외에 인터넷에는 여러가지 전자텍스트들이
올라와있다. "Projekt Gutenberg Deutschland"라는 웹사이트에는 고전적
인 독일작가들의 작품이 수많이 들어있으며, 현재 활동하는 작가들도 책
의 출판과 동시에 또는 좀 늦게 인터넷에 작품을 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
리고 인터넷의 전자잡지(E-zines)에는 인터넷을 위한 문학작품
(E-Literatur)과 논문들이 실려있으며, 이러한 자료들은 손쉽게 PC의 하
드디스크에 다운받을 수 있다.
한편 스캐너와 OCR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자기가 원하는 텍스트를 전자
텍스트로 만들 수 있는데, 약간만 숙련되면 1분에 1장 속도로 책을 입력
시킬 수 있다. 입력된 자료는 맞춤법 프로그램으로 오자를 수정하고 인덱
스작성 프로그램(예: WCV)에 맞게 프로그래밍한다. 프로그램 과정을 거
친 전자텍스트로 사용자는 자신의 필요에 맞게 완벽한 색인목록을 얻을
수 있다. 음소별, 단어별, 문장별, 작품별로 마음대로 텍스트를 잘라서 그
단위에 따른 알파벳 순 총목록을 몇초안에 볼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컴퓨
터의 도움이 없다면 이러한 작업은 전통적인 성서문헌학이 그랫듯이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겨가면서 주의깊게 찾아서 손으로 색인해야 할 작업
이며, 예컨대 브레히트의 전집의 경우라면 한세월이 걸릴 일이다. 컴퓨터
를 통한 다양한 수준의 색인 작성이 갖는 의미는 연구의 목적에 맞게 자
료를 정리하는 단계의 일을 자동적으로 순식간에 처리한다는 데 있다. 이
렇게 정리된 자료를 이용하여 작품을 분석, 평가하는 일은 사용자 자신의
일이 될 것이다.
이상의 제안이 독문학이 당면한 현재의 총체적인 위기를 극복하는 데
는 터무니없이 부족할 것이나, 소위 정보화시대를 맞이하여 다양한 형태
로 쏟아지는 학술정보자료들을 강의와 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
색하는 작은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인덱스화된 전자텍스
트를 활용한다면 책읽는 속도가 독일인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짐으로써 대
량의 텍스트를 처리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한국의 독문학 연구자들에게는
적지 않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출처: 독일학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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