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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요셉 보이스 ‘환생’한 듯…전용박물관 문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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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퍼옴이름으로 검색 조회 7,384회 작성일 02-03-10 08:12

본문

작성일 : 2001/01/05  조회수 : 136  

■ 요셉 보이스 ‘환생’한 듯…전용박물관 문열어
11주기 맞아 고향서
현대미술 진수 4000여점 전시

   n8770.jpg「 현대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현대미술의 차원을 한단계 확장하면서 그 스스로는 아직도 베일에 싸인 채 해명되지 않고 있는 요셉 보이스(독일·1921~1986)를 일컫는 말이다.

    토끼피로 그림을 그리고 동물성 지방 덩어리와 모포를 작품소재로 즐겨 사용했는가 하면 시종 늑 대 울음소리를 흉내내는 행위예술로 관객을 당혹스럽게 만든 주인공.

    작업 장르도 다양해서 평면 드로잉으로부터 조각 설치 행위예술 등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다 보니 「 20세기의 샤먼(무 당)」이라고 불릴 만도 하다.

    이처럼 다양한 작업과 다양한 평가로 점철된 요셉 보이스가 세상을 떠난지 10여년. 시간이 흐르 면서 이제 그의 편력은 「 기행」(奇行)이 아니라 「 예술과 삶의 일치」를 위한 끈질긴 추구였다고 평 가된다. 엄청난 역설인 동시에 상상치 못했던 반전(反轉)인 셈이다.

    그밖에도 보이스가 살아 있었더라면 과연 참을 수 있었을까 싶은 역설(逆說)이 대단히 많다. 그 스스로 「 박제화된 전시」와 「 상품으로 거래되는 미술작품」을 지독히 혐오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의 미술애호가들과 박물관들이 엄청난 고액을 지불하면서 앞다투어 그의 작품을 사들이고 있는 것.




‘20세기의 무당’드로잉부터 행위예술까지 섭렵
    한 예로 둘둘 말아놓은 담요와 손전등이 매달린 수십개의 눈썰매를 트럭 앞에 늘어놓은 설치작품 「 떼거리」(69년작·사진 참고)는 당초 5000만원 선이었다. 그러나 이 가격은 70년대 중반 7억원으 로 뛰었고 지금은 70억원을 호가한다.

    또 그의 사망 이후 지금까지 전세계 100여개 도시에서 무려 500회 가까운 유작전이 열렸고, 53개 의 미술관 또는 박물관이 그의 코너를 설치해 「 박제화」된 보이스를 상설전시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서울 국제화랑에서도 한차례 전시회가 있었다.

    그런가 하면 「 상품」으로서의 미술품 평가에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독일잡지 카피탈은 지난해말 20세기 작고 미술가 가운데 보이스를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미국)에 앞서 1위 자리에 올려놓 았다.

    수년간 변치 않는 이들 작고미술가들의 순위는 두사람에 이어 도널드 저드(미국·개념미 술), 마르셀 브로드태어스(벨기에·환경미술), 이브 클라인(프랑스·행위예술) 등의 순.

    이렇게 보이스는 이미 현대미술 최대의 신화가 되어버렸다. 최근 여기에 또 한가지 획기적인 사 건이 추가됐다. 보이스의 고향마을에 그의 전용박물관이 개관되어 보이스 애호가들을 열광케하고 있는 것.

    네덜란드 접경 클레베라는 아주 작은 촌동네의 고성에 5월24일 문을 연 이 박물관 은 4000여점의 보이스 작품을 소장, 단숨에 세계 최대의 보이스 컬렉션으로 등장했다.

    단순히 작품수가 많다는 것만이 특징은 아니다. 여기엔 다른 곳에서는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어마 어마한 양의 보이스 초창기 작품들이 포함되어 「 완숙기의 보이스」를 되짚어볼 수 있는 희귀한 기 회를 제공한다. 박물관에 보이스 연구센터가 들어선 것도 그런 점에서 아주 자연스런 일이다.

    이 귀중한 보물의 소유주는 대재벌이나 전문작가가 아니다. 뜻밖에도 보이스의 고향친구로 「 반 데어 그린텐」이라는 긴 성(姓)을 가진 두 형제가 그 주인공. 형은 한스(낙농가), 동생은 프란츠 요 셉(미술교사)이라는 전형적인 독일식 이름을 가진 토박이 주민이다.

    이들이 작품을 소장하게 된 경위부터 흥미롭다. 2차대전 때 나치 공군으로 참전, 비행기 추락사고 로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돌아온 보이스는 전후(戰後)에 흔하디 흔한 무명예술가의 한사람이었다.

    이 추락사고 당시 중앙아시아에서 타타르인 유목민들에게 구조된 그는 골절과 화상부위에 동물성 지방을 바르고 담요로 처매는 민간요법 덕분에 기적적으로 소생했다.

    우리가 옛날에, 상처에 된장 또는 고약을 바르고 광목으로 싸맸듯이. 그 이후 이 소재는 보이스 작품의 가장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고 그는 이 경험으로부터 서구인으로서는 드물게, 물활론(物活論) 또는 범신론(汎神論)의 세 계관을 체득하게 된다.

    그러나 이같은 평가는 후세의 일. 만신창이의 몸으로 귀환한 전쟁포로 출신 화가는 먹고사는 일 이 급했다. 바로 이때 반 데어 그린텐 형제가 한점당 20마르크(우리돈 1만원 남짓)씩에 그의 작품 을 구입해 준다. 작품성은 「 미지수」였고 그저 친구를 돕는다는 우정의 표시였다.

    61년 보이스가 뒤셀도르프 미술대학의 교수로 발돋움한 이후 이들 형제들과 만날 기회는 상대적 으로 줄었지만 보이스는 그 고마움을 결코 잊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휴가 때면 이들을 집으로 초 대해 손수 요리를 하는가 하면 자신의 스케치 꾸러미를 선물로 넘겨주곤 했다. 또 보이스 자신이 눈에 드는 제자들의 작품을 직접 구입해 이들의 개인 컬렉션에 기증하기도 했다.




평범한 고향친구가 작품수집…시가로 1000억원
    이렇게 「 우정」의 토대 위에서 사실상 세 사람이 공동으로 모은 작품이 보이스의 4000여점을 포 함, 모두 6만점에 이르고 오늘날의 시가로 1억8000만마르크(1000억원) 상당.

    물론 이번에 박물관 을 설립하면서 재단까지 함께 발족했기 때문에 거래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저 이 촌마을을 찾는 미술애호가들이 한편으로는 삶과 예술, 물질과 정신의 소통을 중시한 보이스의 예술정신을, 다른 한편으로는 옛친구들의 우정의 향기를 취하도록 흠뻑 맡을 수 있는 영원한 터전으로 남을 뿐이다.

    미술계 일각에서는 이렇게 문제제기를 하기도 한다. 「 모든 사람은 예술가」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 캔버스를 장만하는 순간 큰 실수가 시작되는 것」이라며 틀에 박힌 미술관(觀)을 조소(嘲笑)했던 보이스도 이제는 어쩔 수 없이 「 박물관의 박제」로 전락하지 않았느냐고.

    그러나 그의 제자 하이너 바스티안은 『보이스의 가르침의 본류로 돌아가려는 노력이 계속되는 한 그는 결코 죽지 않은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생활세계에 대한 무한한 애정에서 출발해 인간의 상상력의 극한을 끊임없이 확장해 간 그의 노력을 왜 이 박물관의 구석구석에서 호흡하고 배울 수 없느냐는 역질문인 셈이다.

주간동아  1997-06-10  0087호
〈김 창 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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