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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회상) 교련시간

페이지 정보

작성자 무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6건 조회 2,804회 작성일 06-01-10 01:22

본문

어린 시절에 처음 고무줄 놀이를 배우면서 동시에
‘고마우신 우리 대통령 박00 대통령~~ ‘ 하는 노래를 배워야 했습니다.
초등학교 땐 교실 앞에 태극기와 나란히 걸려 있는 그 사람의 사진을 매일 봐야 했었고
중학교 땐 그 사람 사진이 빠지면서 가운데 태극기 양 옆으로 교훈과 급훈이 걸렸습니다.

아유해피님이 올린 태극기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학창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고등학교 때 이야기 하나 올릴까 합니다.
그나마 제게는 여고시절이 청각적으로 다가옵니다(재잘거림과 까르르 하는 웃음 때문에)
웃음만큼 화사함을 바라는 성장기의 시각을 마비시키던 칙칙한 교복(우리학교는 쥐색
이었는데 게다가 일명 ‘개 목걸이’라고 가늘고 긴 리본을 목에 걸고--- 정말 어떤
교사는 고무밴드에 달린 그 리본을 마구 잡아 튕기며 모욕을 주던 사람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 고교시절을 잊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잊지는 못하지만 그 시절에 대해 그다지 좋은 점수를 줄 만큼
관대함을 배우지 못한 것 같아요.
그 시절은 정말 인간성의 대대적인 성장을 꿈꾸는 어린 영혼을 저해하려고
작정이라도 한 것 같은 틀 속에 교육이 갇혀 있었죠.
20년도 훨씬 지난 지금까지 그 틀의 형태만 바뀌었을 뿐 옥죄는 내용은 계속되는 것은
정말이지 전대미문의 기적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아요.

추위 깊을 수록 더 깊어지는 매화향기처럼,
혹독한 추위 이겨내고 기어이 피어나는 꽃송이처럼
고교시절의 젊은이들의 생명력은 수많은 금지 사항 속에서도 피어나기에
모두가 예외적인 것으로 추억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서슬 퍼런 박정권 시절  '교련' 이라는 과목이 있었죠.
전교생들이, 아니 전국의 모든 고교생들이 몽땅 싫어했던 과목이었을 겁니다.
그것도 일주일에 두 번씩이나...
한번은 제식훈련, 한번은 이론수업. 남녀 학교를 불문하고 실시 되었던 교련 수업은
특히 여학생들에겐 끔찍한 시간이었죠.
제식훈련은 어깨에 양호가방(가방 속엔 삼각건과 흰색 롤 붕대가 들어있음)을
유치원 가방 메듯이 메고 오른손을 머리 높이 까지 쭉 뻗어 올리고 또
뒤로 거의 90도 각도로 빼면서 절도 있게 흔들며 운동장을 크게 도는 것이죠.
말하자면 높으신 분들 앞에서 사열을 하는 것이지요.
그러다 사열대 앞을 지나면서 연대장이
‘분열 앞으로오~~  갓!’ (그 아이의 호리호리한 몸 어디에서 그런 짐승 같은 소리가 나오는지... )
하고 소리를 질러 대면
고개를 절도 있게 일제히 훽 돌리며 거수 경례를 하면서 사열대 앞을 그런 우스운
로보트 같은 자세를 해서는 지나가야 하는 겁니다.(요 대목에서 북쪽 군인들 줄 맞춰 경례하며
걷는 모습 그리면 딱 맞습니다)
기가 막혀서...  상상 해봐요… 여학생들이 무슨 이유로 그렇게 어색하게 운동장 몇 바퀴를
군인처럼 걸으면서 거수 경례를 해야 하는 것 이었는지…
조금 이라도 사단장 마음에 안 들면 재 실시, 거듭 실시, 연이어 실시, 무조건 다시…
결국 쓰러지는 아이가 속출하고...
 
지긋지긋 했던 날들이 계속 되었던 77년도... 가을…
 
무지막지 하셨던 교련 선생님은 얼굴에 웃음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아니 애써 웃음을 보이지 않으려 관리 했다고 표현 해야 할 거예요.
알록달록 해병대 군복을 입고 항상 길다란 지휘봉을 뒷짐지어 들고 다니며
학생들 머리를 콩콩 때리는 것을 아무렇지 않아 하셨던... 여 선생님이셨죠…
(뒷자리 친구한테 말 걸었다가 그 지휘봉으로 맞아 보았는데 머리에 구멍 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 당시 그 분은 38세이었는데 미혼이셨습니다.
우리들 모두는 누가 저런 여자랑 결혼 할 수 있겠냐며
입을 모았고 그 선생님 버릇이나 표정을 흉내 내는 것을 몹시 즐겨 했었지요.
 
그날따라 저는 지각을 했습니다.
우리 반은 등교 하는 대로, 자기가 앉고 싶은 데로 앉았기 때문에 지각한 나는
짝이 없는 제일 뒷자리에 앉게 되었죠.
5교시, 죽음의 교련시간.
숨소리 조차 제대로 내기 힘든 요지 부동의 자세로 이론을 듣습니다.
손이 머리에 무심코 올라가거나 귓구멍이나 콧구멍에 잠깐 손이 가도 사정없이 날아오는 별들…

그날 수업은 ‘삼각건’ 매는 방법에 이어 ‘붕대 법’을 배우는 시간이었는데
'머리 회귀 붕대 법'이라고 전쟁 중 머리가 깨졌을 때(?) 머리를 감싸 처치하는 붕대 법이죠.
열심히 이론을 설명 하시더니 갑자기  ‘자! 실시! ‘
하는 날카롭고 우렁찬 목소리를 내시며 곧바로 손목의 시계를 보며 시간을 재는 겁니다.
2인 1조가 되어 한 사람이 환자, 한 사람이 처치자가 되어 교대로 실시 하는 거죠.
저는 너무 난감했습니다.
짝이 없다고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간 어떤 명목으로 터질(?)지 모르기 때문이죠.
당황 중에 터지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가 생기자 순간,
대각선 쪽 책상 옆에 걸린 ‘검은 보온 도시락 통’ 이 눈에 들어왔습니다.(거의 직사각형의 모서리만 둥근...)
주인한테 허가도 받을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훔쳐서 잽싸게 두 다리 사이에 끼고 열심히,
그야말로 열심히 ‘머리 회귀 붕대 법’을 머리가 아닌 ‘보온 도시락 통’에 실시 하기 시작했지요.
여름도 아닌데 이마에 땀이 나고...
둥근 머리모양이 아니어서 매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죠.
어떻게 동여 매었는지 정신이 없었지만 중요한 것은 가만히 있지 않고
나름대로 무엇인가 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기를 쓰며 마무리 하는 중에 ‘정지!’ 라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그 ‘검은 도시락 머리통’을 책상 위에 올려 놓고 부동자세로 서 있었지요.
정말 진지했습니다.

앞 자리부터 검사해오면서 모양이 이상하거나 제대로 묶어 지지 않은
머리 모양엔 여지 없이 예의, 그 지휘봉 끄트머리로 벗겨 내고 계셨습니다.
벗김을 당한 아이와 실시한 아이는 운동장에서 토끼 뜀을 뛰는 겁니다.
숨막히는 상황...  침만 꼴깍 대는 소리만 들릴 뿐 고요와 정적, 짧은 한탄 소리…
 
이제 내 순서가 왔지요.
갑자기 선생님이 내 ‘보온도시락 머리통’을 보자마자
짧은... 흡! 하는 소리를 내시더니
밖으로 마구 뛰어 나가시는 겁니다.
아이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수선해 하면서 뒤를 돌아다보았습니다.
문제의 도시락 통을 보더니 터져 나오는 웃음 참느라 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웃는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교련 시간이기 때문이죠.
(저는 너무도 진지 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정말 우습긴 우스웠어요.
눈 코 입이 없는 검은 사각형 보온 도시락 통에 둘러 싼 흰 붕대…흑 백의 절묘한 조화…)

 선생님은 한참이 되어도 들어오질 않았어요.
웅성거리기 시작했을 때 모습을 드러내시며 교실로 들어와서는 지휘봉으로 예의
교탁을 탁탁 치는데 얼굴색이 이상한 거예요.
시뻘개가지고는... 무섭고 근엄한 표정이 일순간 비치는 듯 하다가  ‘풋! ‘ 하시며
순간적으로 교탁 밑으로 주저 앉으시더군요.

이때 까지도 아이들은 숨죽이며 있었죠.
잠시 후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교탁 안쪽 빈 공간 속에 머리를 넣으시고 흐느끼고 있는 겁니다.
교탁이 흔들릴 정도로...

에구구...
 
그 양반... 너무 웃음이 나오는데도 맘껏 웃지도 못했던 겁니다.
그 날 저희는 처음으로 교련 선생님의 그 천진한 웃음을 볼 수 있었죠.

그런 시대에  살았드랬습니다.

그림이 그려지나요?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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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서동철님의 댓글

서동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근 삼십년 전 일을 꽤 선명하게 그리는 님의 기억력이 부럽습니다. 제 기억은 목관통의 창문 유리처럼 뿌연 막을 통해서만 뭐인가를 보여주더만요. 허나 어렴프게나마 떠오르는 모습은 그 당시의 여고생들이 차렷! 이라든지 경례! 하는 순간의 앙증맞음이라 할까, 귀여운 맛 내지는 멋 또한 있지 않았나 싶네요. 물론 추억이 뭉개버리는 흐릿함에 개개인의  때론 아팠던 실제 경험이 덮혀버리는 무리는 조심해야겠지요.

근데 그 때 여고생들은 팍팍 기는 교련 시간 중 성질 죽일 때 어떤 욕들을 썼는지 말씀해 주시렵니까? 쌍스런 욕지거리가 전혀 없었다 하면 거짓이라 보이는데...

그리고 지금도 여고생들 교련이 있습니까?

아유해피님의 댓글의 댓글

아유해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교련과목은 남여 고등학교 모두 없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없어진지 10년도 채 되지 않았을 겁니다.

무울님의 댓글의 댓글

무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삼십년 전 뿐 아니라 여섯 일곱살 때 낙동강에서 멱 감으며 된장으로 물고기 잡던 기억도 생생하고
엄마와 강변에서 냉이와 쑥을 캐던일, 오빠와 메뚜기를 잡던일, 삼촌들과 미꾸라지를 잡던 일...
지나치게 생생해서 여전히 꿈을 꿉니다.

매일 꿈을 꿉니다.

......

쌍스런 욕지거리가 뭐가 있었나 아무리 되짚어도 생각 나지가 않네요.
고작 해야 

'지랄하고 자빠졌네'
'환장한다 환장 해~~"


뭐 그정도 였던 것 같아요.
요즘 처럼 욕이 아무렇지 않게 나오는 상황보다는 훨씬 이겨 낼 만한 것들이었거나
아직 적당한 욕을 배우지 못했거나 뭐 그랬을 것입니다.

선생님들 한테도 감히 욕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마음에 안 드는 선생님 흉을 볼 때는  가령, 평소엔  '서동철 선생님'이라고 하다가
기분 나쁘면 '동철이가' '동철이 온다' '철이 떴다'  '갸 다 갸' 뭐 그정도 였습니다.
그래도 좋아하는 과목이나 좋아하는 선생님 수업 시작하기 전에는 늘 같은 속도로
가슴은 뛰었드랬고 얼굴은 상기되어 있던 때가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뒷자리에 키 큰 아이들 그룹에선 분명 된말이나 쌍스런 말을 썼을 텐데도
제 귀엔 들리지 않았어요.
개네들만 쓰는 은어들도 있었는데 저는 좀 어리숙하고 띨띨해서 아이들이 끼워 주지 않았어요.
너무 재미 없죠?

그러다 본격적으로 제 입으로 처절하게 욕이 나오기 시작한 때는 대학 때였어요.
'짭새' 들이라고 그당시 전경을 그렇게 불렀지만  학교 안까지  밀어 닥쳐
어깨와 어깨 사이를 떼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우리들을 향해
곤봉으로 내리 쳐 대기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 야이, 개  새 ㄲ ㅣ,ㅆ ㅣ ㅂ ㅅㅐ ㄲ ㅣ  들아!!" 하고 울부짖게 되더군요.


그 후 역할이 바뀌어 십년이 지나 제가 교단에 서게 되었을 때
빠르게 복도를 지날 때 열어 놓은 창문 으로 흘러 나오는 아이들의 욕을 들으면서
깜짝 깜짝 놀랐던 때를 기억합니다.
그리고선 슬그머니 아이들이 쓰는 욕을 배워 버스에서나 지하철에서 중얼거리며
어떤 기분이 드나 따라 해 보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서동철님의 댓글의 댓글

서동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확실히 서울 아이들이 못된 것들은 빨리 그리고 많이 배웁니다. 전 욕 무지 해댔습니다. 특히 껄렁껄렁한 녀석들과도 가끔씩이나마 함께 어울려 돌아다녀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쌈박질 또한 공부와 마찬가지로 남한테 지기 싫어 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자존심 때문에 참 불편했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된장으로 물고기 잡는다는 소린 또 금시초문입니다. 저도 어릴 땐 서울 변두리 촌구석에서 자랐는데, 여름엔 바로 옆 논에서 주절대는 개구락지 소리 땀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던 기억도 납니다. 올챙이 무지 잡았고, 쑥도 많이 캐다 먹었죠. 지금은 그 논자리 몽땅 주택지로 변했더만요. 그 외 여름에 개울 속에서 헤엄치며 종종 바위에 이마빡 깨졌던 일, 가재 잡으며 물장구 쳤던 추억, 뻐찌 따먹다 주인집 할아범한테 잡혀 무쟈게 혼났던 순간들, 여름엔 빤쯔만 입고 동네 구석구석 활개치고 다녔던 기억, 아, 그때 흰연기 뿌리는 소독약 차 오면 뭐가 좋다고 그 뒤에 졸졸졸졸 따라 다녔던 시절, 제게도 있었습니다.

근데 이리 지나갔음의 향수에 젖어 있을 나이치곤  꽤 젊었다 생각하니 괜스레 분하고, 남세스럽기도 하네요.
또 뵙겠습니다.

아유해피님의 댓글의 댓글

아유해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어항놓는다고 하지요...
된장을 어항속에 발라놓으면 고기들이 꼬이지요.
들어는 가는데 나오는게 안되지요... 걔네들이...

여기까지면 아마 기억나실듯...

아유해피님의 댓글

아유해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누이의 글을 보니 제가 올린 글이 더더욱 길게 느껴지는군요.
어쩜, 같은 길이의 글도 이렇게 단숨에 읽을수도 있구나 싶은게 누이 글솜씨야 전에도 눈치채고 있었지만
이번 글은 우리 소모임 열너댓으로 지나치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드네요.

파마머리 사건과 도시락사건 두고두고 생각날 것 같습니다.
요런 글들을 한데 모아 꽁트집을 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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