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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헤겔 미학(6) – 예술작품(셋)

페이지 정보

작성자 서동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3건 조회 4,235회 작성일 07-01-22 11:18

본문

헤겔은 예술작품의 철학적 성격에 대한 그 당시의 일반적 담론에서 다음의 세 가지 주장들을 끄집어 내어 이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을 펼친다:
하나,
예술작품은 자연의 산물이 아니라 사람의 (의식적) 행동의 생산품이다.
,
근본적으로 사람들을 위해 생산된 것들이며, 나아가 사람들의 감성을 위해 만들어진, 또한 어느 정도 바로 그 감성으로부터의 산물이다.
,
그 자체에 목적이 있다.

오늘은 이 중 마지막 세 번째를 중심에 놓는다.

예술작품이 그 자체에 목적을 품고 있다는 말은 그 외의 어떤 것들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말이다. 예컨대 한 음식점의 내부장식을 위한 그림이나 디자인 등을 비롯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예술작품은 진정한 예술작품에 미치지 못한다는 소리다. 그렇다고 돈을 벌지 말라는 소리는 아니고, 자신의 예술함을 돈에 얽매지 말라, 달리 말하자면 돈이 따른다면 굳이 이를 물리쳐야 한다는 소리는 아니다. 우리가 인간의 존엄성을 얘기할 때 역시 이런 표현을 즐겨 쓰곤 한다. 개개의 사람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지 한 사람을 다른 사람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 함은 경멸되어야 할 모습이라는 말이다.
그러면 그러한 진정한 예술작품의 목적은 과연 무엇인가? 헤겔은 진리추구라 한다. 예술작품이 존재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이러한 진리를 밝히고자 함이니 진리추구는 예술작품의 자체목적이 되는 셈이다. 근데 진리? 진리가 그럼 대체 뭐냐? 한편으론 겁나고, 또 다른 한편으론 허나 막연한 감이 스치는 질문이다. 덧붙여 진리추구가 어디 예술함만의 목적이겠는가? 철학함 역시 같은 목적을 지향하고 있고 나아가 종교에 몸 담고 있는 사람들 또한 나름대로 그 진리를 찾고자 애쓰고 있는 모습을 엿본다. 결국 우리의 지금 질문은 예술함을 통해 진리는 어찌 찾아질 수 있는가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우선 두 가지 이에 어긋난 모습들을 앞에 내세우고 그 다음 헤겔이 상정하는 올바른 모습을 선보인다.

자연의 모방은 예술의 목적이 아니다
설악산의 설경을 대상으로 그린 풍경화 한 폭을 앞에 두고 함께 감상을 한다 가정해 본다. 감상 후 각자 소감을 발표하며 이 그림은 좋은데 저 그림은 아닌데 등의 말을 건넨다. 사실 따져 말한다면 마음에 든다 들지 않는다를 뜻하는 말일 게다. 이러한 나름대로의 감상평은 허나 주관적이다. 내 마음에 들어 좋다는데 누가 이를 말릴 엄두를 내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과연 풍경화 감상에 있어 우리 모두에게 공통으로 적용될만한 객관적 잣대 즉 평가기준은 없을까? 이러한 맥락에서 머리를 맞대고 짜낸 생각들 중의 하나가 바로 원본에 얼마만큼 근사하게 그렸는가 하는 점이다. 즉 우리가 눈으로 직접 보는 실제의 설악산 설경을 얼마나 사실적으로 화폭에 옮겨 담았는가 하는 점을 그림 평가의 한 잣대로 삼는 게다. 더군다나 사진이 없던 헤겔시대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사고방식이다. 이와 엇비슷한 경우를 초상화에서 엿본다. 잘 그린 초상화를 선정함에 있어 실제 인물과의 유사성을 잣대로 삼는다는 말이다. 단지 이런 경우 예술함의 목적은 자연- 내지는 사실모방에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음에 주의를 요한다. 동시에 설악산의 설경이나 초상화의 인물 등 실제의 것에서 바로 진리의 안식처를 찾는 마음을 아울러 엿본다. 아니, 그러한 실제의 것이 바로 진리다 하는 말이나 다름없지 않을까 싶다.
헤겔은 이에 정면으로 맞서 부딪치며 아니오 하며 우렁찬 소리를 지른다. 예컨대 여름날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벌판에서 햇빛을 타고 드러내는 색깔들의 조화가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진정한 예술작품을 평가함에 있어 이런 자연의 아름다움을 얼마나 잘 모방했는가를 잣대로 삼는다 함은 예술을 자연의 하위개념 쯤으로 여기는 파렴치함이라며 헤겔이 욕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왜? 어떠한 이유로 그런 짓을 파렴치하다 여기는가? 우리 인간의 혼, 육체를 하나의 생명체로서 통일을 이루는 주체인 사람의 얼에 대한 경시를 그 이유로 꼽는다. 심지어 헤겔은 실제 인물과 너무 비슷한 초상화를 ‘구역질나는(ekelhaft)’ 그림이라는 심한 표현 쓰기를 마다하지 않을 정도다. 그는 이와 관련된 몇몇 구체적인 예들을 제시하는데 그 중 하나를 소개한다: 18세기 Bruce라는 한 영국인이 터어키를 여행하며 한 터어키 사람에게 썩 잘 모방된 생선그림을 보였더만 그 터어키 사람이 하는 말이, “만약 이 생선이 최후의 심판 날에 고개를 쳐들며 당신은 비록 내 몸뚱이를 만들었지만 살아있는 얼은 주지 않았다며 불평 섞어 투덜거린다면 당신은 스스로를 어찌 정당화시킬 것이오?” 물었다 한다. 결국 자연 내지는 인물의 단순한 모방에서 예술의 목적을 보고자 함은 예술이 품고 있는 정신적 가치를 무시하는 처사라는 헤겔의 비평이다. 이는 허나 달리 말하자면 예술의 목적이 자연의 단순모방이라는 차원을 뛰어 넘어 일종의 정신적 가치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였있음을 강조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또한 예술함에 대한 논쟁에 있어 예술의 도덕적 가치에 대한 말섞음을 심심찮게 엿들을 수 있는 게다.

도덕적 가르침은 예술의 목적이 아니다
알고 지내는 한 글쓰는 친구는 말하기를, 자기가 무엇엔가 화가 나 울분을 토로해야 할 때 그 울분을 글을 씀으로써 가라앉히곤 한단다. 나도 항상은 아니지만 그런 경험을 해 보았기에 이해가 가고 수긍을 한다. 나아가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하는 지인들한테서도 종종 이와 엇비슷한 말을 듣곤 한다. 예술함이 그러니까 감정의 격함을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맡는 셈이다. 날카로운 각을 깍고 무던하게 만들며 정화시킨다고나 할까? 사실 마음 속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던 것을 밖으로 끄집어 내어 색깔이나 소리, 글자로 소위 객관화 내지는 대상화 시켜 놓고 스스로의 눈길을 던지는 순간 그 웅크렸던 것과 거리를 두는 셈이니 이러한 적절한 거리를 둠에서 그 ‘대상’에 대한 차분한 생각을 모을 기회를 갖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여하튼 감성의 야만적인 부분을 누르고 이에 따라 동시에 인간 본연의 선한 모습, 어찌 보면 정신이 육체를 통제하는 모습이 그 윤곽을 밖으로 뚜렷이 나타낼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예술에 부여하고자 하는 욕심이 생긴다. 감정을 정화시키고 동시에 이를 통해 선함 내지는 정신의 통제력을 가르치려는 의도이기도 하다. 여기에 바탕을 두고 솟구친 생각이 예술을 통해 소위 도덕적 완전성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게다. 사실 이러한 생각은 진선미의 삼위일체에서 엿보듯 오래 전부터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제법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헤겔은 허나 이러한 통상적 관념을 깨라 한다. 예술은 예술이고 도덕은 도덕이니 비록 목적지는 종국적으로 같을지 모르나 이에 이르름에 서로 다른 길을 걸어야 마땅하다 가르친다. 달리 말하자면 도덕적인 가르침을 위해 예술이 수단으로 이용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물론 예술이 도덕적 가르침을 줄 수 없다는 말은 아니고, 단지 그럴 경우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바로 예술 그 자체로서 도덕적 목적을 이미 내포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달리 말하자면 도덕적인 가르침을 위해 예술을 하는 모습은 예술함을 이러한 예술 외적인 가르침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모습이매 진정한 예술의 목적이 될 수 없으나 아름다운 예술작품에서 도덕적 가르침을 아울러 끄집어 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럼 예술이 걷는 길은 대체 어떤 모습을 띌까?

이성(정신)이 감성 속에서 춤을 출 때
지난 번 ‘예술작품(둘)’에서 진정한 예술작품은 정신과 감성의 통일체로서 그 모습을 나타낸다는 헤겔의 가르침을 들었다. 그는 바로 여기서 예술함의 과제를 엿보고자 했으며 동시에 예술함이 걷는 진리에의 길 또한 바로 여기에 있음을 말한다.
예술은 감성을 통한 예술적 형성이라는 형식 속에서 진리를 드러내야 하며, [정신과 감성의] 화해된 대립을 서술해야 한다.“ (강조: 서동철)

진리는 화해의 한 가운데에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정신적 자아와 육체적 종속이 자아내는 틈을 도덕철학이 소위 Sollen이라는 개념으로 메꾸고자 한다면 예술 내지는 예술철학은 위 인용구에서 엿보듯 화해의 서술과 드러냄으로써 메꾸고자 하는 게다. 거꾸로 말해 이러한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은 예술작품, 그러니까 정신과 감성이 분리된 채 나타나는 예술작품을 헤겔은 추상적이라는 개념으로 묶어 버린다. 너무 정신적인 것도 추상적이지만 너무 감성적인 것 역시 추상적이라는 소리다. 결국 진리는 구체적이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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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zwischen님의 댓글

zwischen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야 멋지군요! 방금 전 단숨에 잘 읽었습니다.

궁금한 게 있는데,

"이성이 감성 속에서 춤을 출 때"와 "감성이 이성 속에서 춤을 출 때"는 같은 건가요? 다른 건가요?
"이성과 감성이 화해된 대립"이란 말은 헤겔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건가요?

서동철님의 댓글의 댓글

서동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춤추는 주체가 다르네요. 그런데, 감성이 주체가 되는 경우는 어찌 보일까 저 역시 궁금합니다.

그 당시,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보는데, 인지되었던 이성과 감성의 대립이 풀어지는 모습을 '화해(Versoehnung)'라는 개념으로 말하고자 했던 듯합니다. 헤겔은 때론 '중재(Vermittlung)'라는 개념으로 묶기도 합니다. 일종의 정신적인 가치가 색깔이나 소리등의 감성적인 옷을 입고 나타나는 모습을 일컫고자 하지 않았나 싶네요.

지금 우리는 헤겔의 미학강의 중 가장 앞부분인 '이끄는 말(Einleitng)'에 머물고 있습니다.

길벗님의 댓글

길벗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예술작품의 철학적 성격에 대한 헤겔의 주장은 "그 자체에 목적이 있다. " 

예술작품의 목적은 예술작품을 대하는 사람에게 animieren 고무시키는, 활기를 불어넣는, 신들리게 하는 것은 아닐까. 예술작품 자체는 예술가의 표현이고, 그 표현은 객관을 가진 주관적인 나(예술가)와 가장 주관적인 남(작품을 대하는 사람) 과의 대화를 전제에 두고 있다고 봅니다.

가장 좋은 예술작품은 美醜를 떠나서 예술작품을 대하는 사람을 깨워 잔잔한 감성의 호수에 波紋을 일으키게 하는 것은 아닌지 감히 짚어봅니다.

Lisamarie님의 댓글의 댓글

Lisamari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가장 좋은 예술작품은 美醜를 떠나서 예술작품을 대하는 사람을 깨워 잔잔한 감성의 호수에 波紋을 일으키게 하는 것은 아닌지 감히 짚어봅니다

저는 카프카를 모셔오고 싶습니다.
ㅡ 어둡고 빈 공간속에서도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한줄기 빛을 찾아 낼수잇는 장소를 발견하게 해주는 ...

자실을 시도한 Ingeborg Bachmann 에게, 바로 그순간에 나타나 그녀에게 삶을 되돌려준 바로 그시간 그 장소에 존재한  Bach 의 관현악 조곡 같은...




좋은 예술, 예술의 기능이 이렇게 다양합니다.....

서동철님의 댓글의 댓글

서동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Bachmann..., Thomas Bernhard가 우리 시대의 최고 독일어 시인으로 꼽는, 남녀 통틀어, 오스트리아의 여류시인, 근데, 여기까진 그래도 좋은데, 거꾸로, Bachmann은 일각에서 알프스의 Beckett라 칭송하는 Bernhard를 오히려 원본인 Beckett보다 더 뛰어나다 칭송하는 모습을 보였더랬습니다. 같은 동포 간 나눠먹기 식 사탕발림인가...^^*, 암튼 늦어도 이 시점에서 저는 한 때 눈을 흘기지 않을 수 없었지요.

어, 그러고 보니 세 사람 모두 B로 시작하네, 마치 B.B. 마냥.

서동철님의 댓글

서동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길벗 님,

님 말씀과 비슷한 맥락에서 비평계의 (한 때) 새바람이 문득 떠오르네요. 즉슨, 우리가 신간 서적을 비평을 할 때 그 책 내용 내지는 작가에 대해 지나치게 집중적인 초점을 맞춘다는 반성을 하며, 이와 아울러 그 책을 읽은 이들의 마음 속에 어떠한 모습으로 전달이 되는지에 대한, 동시에 독자의 읽는 모습에 대한 비평에도 초점을 맞추자는 아우성이었지요. 프랑스 사람 발레리가 외쳤을 겝니다.

단지 님의 말씀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비평을 허락하신다면, 만약 예술함의 목적이, 헤겔이 주야창창 울부짖듯, 진리를 찾음에 있다면 님 말씀하신 예술함에 있어서의 진리는 '상대적인, 너무나 상대적인' 진리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네요.  이러한 지나친(?) 상대성에 혹시 님 불편해 하시지 않는지 여쭙니다.

길벗님의 댓글의 댓글

길벗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헤겔이 주야장창 울부짖듯, 진리를 찾음에 있다면", 제가 생각하는 예술함의 목적은 크게 틀리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예술가는 진리를 찾아 표현하고 그 표현에서 그 예술작품을 대하는 사람이 아무리 주관적이라해도 좋은 작품이라면 거기서 진리를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상대적인 진리는 진리일 수 없지 않겠습니까. '절대적'이 동반하지 않는 진리는 진리라고 할 수 없다고 봅니다.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리라 라는 말같이 진리를 찾아서 표현하는 작가의 표현이 작품을 대하는 우리에게 도달할 때 그 진리로 인해서 우리가 고무되고 새 창조의 지평에 서 있다면 작가와 작품을 대하는 우리는 행복하겠지요.

서동철님의 댓글의 댓글

서동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제 마음에 걸렸던 점은 님 말씀하신 '대화'에 예술작품의 가치적 바탕을 두는 모습이었습니다. 이 경우 예를 들어 나 같이 멍청한 사람이 한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는데 이에 버금갈 정도로 멍청한 사람이 좋아 좋아 아주 훌륭한 작품이야 하고 추켜세움으로써 한 대화가 성립한다면 과연 그 작품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되었겠는가 하는 의심이었지요.

근데 님은 가만 보니 예술작품을 통한 (진정한) 대화가 이루어짐에 님 나름대로의 전제를 두고 계신 듯 합니다. 바로 그 일종의 절대적인 진리의 내재 말입니다.
어쨌거나 예술작품과의 교류에 있어 말씀하신 '대화'가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논쟁은 지금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생생한 말거리입니다.

zwischen님의 댓글

zwischen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누군가 저에게 제가 서동철님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질문을 했다면, 군밤 한대 쥐어박고 싶은 마음이 들 것입니다. 

그 마음을 억지로 누르면서 헤겔 철학 체계에 한정해서 아주 조심스럽게 말해 본다면,
„절대정신“이라는 놀이판 위에서 이성이 주체가 되든, 감성이 주체가 되든 서로 사이 좋게 잘 놀 수 있을 거야. 결국에는 감성이 뒤로 물러선 상태이겠지만 말이지. 이때 양자의 중재 혹은 매개는 아마도 개인의 현실적인 „욕구 Beduerfnis“일 것이고, 그 욕구가 감성적인지, 이성적인지에 따라서 중심점이 달리 세워지는 것뿐이지 않을까?

하지만 문제는 절대정신이라는 놀이판을 걷어 치워 버린다면, 참으로 대답하기 깝깝해지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경우에는 경험적인 사회현실이라는 놀이판을 집요하게 추적해야만 한다는 수고스러움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제 경우 헤겔 예술철학의 위대한 점은, 이미 말씀하신 것을 달리 말해 보자면,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2천년 이상 지속되어 온 전통적인 예술관, 즉 „자연의 모방“과 „카타르시스“를 추구했던 예술의 목적으로부터 탈피해서 진리추구라는 예술 자체에 목적을 둠으로써 예술의 자율성을 쟁취해 냈다는 데 있다고 봅니다. 예술은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미를 모방하는 것이다라는 주장을 펼치면서…. 

길벗님 글쓰기, 특히 영화평론은 먹고 싶은 충동이 들만큼 쫀득쫀득 감질 맛이 나요. 부럽습니다. 덕분에 일부러 „향수. 한 살인자의 이야기“ 봤습니다. Lisamarie님의 음악 이야기는 저를 긴장시킵니다. 앞으로도 자주 많이 이야기를 들려 주시길 부탁 드려요. 서동철님 덕분에 헤겔 미학강의 서론부분을 조만간 다시 한번 읽어 봐야겠습니다.

서동철님의 댓글의 댓글

서동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음..., 저는 님과 다른 생각을 품습니다:
하나,
여러 부분들을 한데 묶어 일종의 유기체적 통일체를 이루는 데에는 이러한 작업을 스스로 행하는 행동 주체가 필수이겠지요. 근데 우리가 만약 이러한 주체적 역할을 정신(이성)에 부여할 것이냐 아니면 감성에 부여할 것이냐 선택을 해야 한다면, 님은 무엇을 고르시렵니까?
둘,
헤겔 이전에 이미 늦어도 칸트가 님 말씀하시는 예술의 자율성을 우뚝 앞에 내세웠지요. 그의 유명한 개념인 '목적없는 목적성'이 이를 대변하는 듯 합니다.
제 눈에 비치는 헤겔의 업적이라 하면 위에 말씀드린 '화해' 내지는 '중재'에서 예술함의 진정한 목적을 찾았다 여기고 이의 설득을 위해 무지하게 열심히 철학적 작업을 행했다는 데 있지 않을까 싶네요.

어쨌든 님께서 헤겔 미학강의를 다시 읽고자 하신다니 무척 반가운 말씀입니다. 사실 이 '문화마당'을 개설할 때부터  한국 지식인계에 아직까지도 널리 퍼져 있는 (되풀이 식) 총론식 담화에 마침표를 찍고 이제부터라도 각론식 담화를 나누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지요.
님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합니다.

zwischen님의 댓글

zwischen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유기체적 통일체"를 "진리"로 보고, 그 안에서 "주체적 역할", "화해"의 의미는 헤겔 철학의 틀 안에서 어느 정도 분명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그런 한에서 제가 님과 달리 생각할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칸트가 말하는 예술의 자율성은 "목적 없는 목적성"으로 대변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칸트는 "자연미"에 초점을 두었고, "숭고미"에 있어서 주체보다는 객체 우위라는 현대적 해석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헤겔이 말하는 예술의 자율성과 차이가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님이 예술함의 행동주체를 선택하라는 난감한 제안에, 헤겔 예술철학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면, 가다머 책 "진리와 방법" 맨 앞에 적힌 릴케의 시로 대신 하렵니다.

그대가 스스로 던진 공을 받아 잡는 동안은
모든 것이 그대의 솜씨요, 그대 노력의 대가이지만 ―;
영원한 공연자가 그대에게
그대의 중심으로 정확하고 민활한 스윙동작으로 신이 만든 거대한 다리의
저 곡선들 중의 한 곡선을 따라 던진 공을 그대가 불시에 잡게 되는 경우
그때 공을 잡을 수 있음은 그대가 아닌 세상의 능력이라오


마지막으로, 부족한 저를 초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귀를 귀울이겠습니다.

서동철님의 댓글의 댓글

서동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칸트와 헤겔의 예술철학에 준한 차이는 그럼 앞으로 차차 말을 섞기로 하지요.
단지 이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님은 저의 제안을 난감한 것으로 받아들이셨는데, 저는 사실 그 제안 내지는 질문을 드릴 때 이미 답이 나와 있다 보았으니 난감하리라는 예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주장을 질문 형식으로 말씀드렸을 뿐이니 말이죠. 이는 뭐, 제 좁은 눈으로 바라볼 때, 굳이 헤겔철학에 한정된 생각은 아니라 여깁니다.
덧붙여 이성과 감성 사이의 선택문제가 님이 건네 주신 릴케의 시와 어떠한 상관관계에 놓여 있는지, 제 이해력이 많이 모자랍니다.

놀아보세님의 댓글의 댓글

놀아보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헤겔 철학이 유기체 철학이라고 한다면 이는 헤겔철학의 '반'만을 언급하는 거라 봅니다.
예를 들면 유기체 철학은 자연철학의 세부분 중 마지막 부분만을 언급하는 셈이지요.
오히려 유기체 철학이라기보다는 정신철학이라고 하는 게 옳을 겁니다. 그러니까 유기체는 하나의 동물적인 생명체이지만, 감정, 이성, 정신은 이 생명체의 차원을 포함하면서 뛰어넘는 부분이니 말이지요.
따라서 유기체 속에 진리가 있다는 건 헤겔의 자연철학에서나 할 수 있는 이야기라 봅니다. 다시 정확히 말하자면 유기체 속에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유기체는 자기 바깥에 진리를 갖는다고 하는 게 맞지요. 즉 즉자적으로만 진리란 얘기지요.

헤겔이 자연이 아니라 자연미를 모방했다는 건 어디에서 '인용'하신 것인지요?
예를 들면 1823년과 1826년 미학강의 서론 다음에 낭는 첫 번째 장들을 읽어보면 자연미는 미학의 대상이 아니라고 나옵니다. 아예 취급을 하지 않는 것이지요. 자연미가 말씀하신 유기체와 같은 것이지요. 생명이라는 이념 속에서 파악된 미라고 하자면 말이지요. 하지만 자연미는 예술철학의 대상이 아니지요. 왜냐하면 예술철학은 유기체 철학이 아니라 정신철학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헤겔이 진리추구를 예술의 목적으로 삼음으로써 예술의 자율성을 획득했다는 건 무엇을 뜻하는 건가요? 진리추구와 자연미 모방이란 게 어떤 연관을 갖기 때문에 이런 주장이 나올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듣고 싶네요.

그리고 앞의 절대정신 얘기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네요. 다시 한번 풀어주시면 나눔의 기회가 있을 것도 같은데 말이지요.

zwischen님의 댓글

zwischen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놀아보세 님 오셨군요.^^ 저에게 질문하신 거죠?

저는 헤겔 철학을 "유기체 철학"이라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서동철님이 말씀하신 „유기체적 통일체“를 예술작품이라 이해했고, 그에 따라 말했던 것입니다. 예술은 자연을 모방한 것이 아니라, 자연미를 모방한 것이라고 제가 말했을 때, 따옴표를 쳐서 헤겔의 말을 직접 인용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해석이었습니다. „모방“은 그 자체 이미 하나의 „해석“이자 „반성“ 혹은 „비판“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마치 „번역“이 그 자체 이미 하나의 „해석“이자 „반성“ 혹은 „비판“인 것처럼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헤겔이 자연미로부터 예술미에로 관심을 전환할 때, 자연미를 그냥 배제한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메타비판을 통해서 이루어졌다고 저는 봅니다. 

헤겔에게 „자연미“는 정신에 의해서 철저히 지배되지도, 규정되지도 않기 때문에 미학 혹은 예술철학의 대상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정신은 이미 예술의 실체로 인식되는 것 같습니다. 헤겔 왈, „자연미는 단지 타자에 대해서만, 즉 우리에 대해서만 혹은 미를 파악하는 의식에 대해서만 아름답다.“ 자연미는 단지 주관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치부되는 대가로 헤겔에게 미학이나 예술은 어떤 것에도 종속되지 않고 이전보다 더욱 반성적인 것으로, 자율적인 것으로 고양될 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이러한 자율성은 정신에 의해서 철저하게 반성규정된 진리로 이해됩니다.

„절대정신“에 관해서는 나중에 기회 되면 나눌 수 있길 바라겠습니다. 저의 댓글들에서도 저의 입장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서동철님께 매번 미안한 마음 갖게 됩니다. 부족한대로 답변은 해야 할 것 같은데, 주제 넘는 짓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알고 보니 서동철님이 베리 공동관리자시더군요. 수고 많으십니다.^^

Lisamarie님의 댓글

Lisamari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ㅡ그리고 헤겔이 진리추구를 예술의 목적으로 삼음으로써 예술의 자율성을 획득했다는 건 무엇을 뜻하는 건가요? 진리추구와 자연미 모방이란 게 어떤 연관을 갖기 때문에 이런 주장이 나올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듣고 싶네요ㅡ

예술을 단지 자연미 모방으로 보셨는지요.

놀아보세님
이곳 예술방에 예전에 제가 올린글 Nr. 10, Nr. 14 "현대사회 에서의 예술의 기능" " 현대사회 에서의 순수예술 " 이란글 두개 짧은 글이니까 잠시 읽어봐 주시겠어요 ?

시간이 더 나신다면 " 엄마의 예술 아빠의 예술" 까지...

놀아보세님의 댓글의 댓글

놀아보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다 읽어봤어요. 찾기가 어렵더군요. 미리미리 읽어두었으면 좋았으련만, 드문드문 베리에 출입하는 바람에 그러질 못했어요.

저는 예술을 자연미 모방이라 생각지 않고요. 그건 제가 질문 던진 내용이랍니다.
그러니까 리자마리님처럼

왜 당신은 "예술을 단지 자연미 모방으로" 보시는지요? 라고 제가 질문한 거랍니다 :)

헤겔한테 진리 추구가 예술의 목적이긴 한데, 과연 이 진리가 뭐냐, 그 구체적인 내용이 뭐냐가 중요한 것이겠지요.

zwischen님의 댓글의 댓글

zwischen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놀아보세 님, 좀 당황하셨죠?^^

Lisamarie 님의 댓글 내용만 읽어 볼 때, 저 역시 처음에는 저에게 질문하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Lisamarie 님이 소개하신 글들을 읽어 보니, 상당부분 저와 같은 입장인 걸로 봐서, 저에게 질문하신 것 같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예술을 단지 자연미의 모방“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헤겔의 입장을 제가 그렇게 해석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헤겔의 입장을 한편으로 수용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저는 Lisamarie 님이 소개하신 카프카의 입장 –이해를 돕기 위해서 약간 의역해 보자면– „예술의 능력은 암흑 같은 공허함 속에서 어쩌면 이전에는 인식된 적이 없었을, 강렬하게 내리비치는 한줄기 빛을 발견하는 데 있다“는 것 또한 수용합니다. 이것은 예술이 정신에 의해서 파악되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술함 자체가 하나의 인식활동Erkennen으로 인정된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저는 Lisamarie님이 말씀하신 „진지한 예술과 가벼운 예술, 양자 사이의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긴장감“을 주목합니다.

„글은 말 걸기“라는 님의 표현 정말 멋집니다. 님의 댓글을 읽고 저 역시 님에게 말을 걸어 보고자 하는데, 예술이 자연을 모방하는 것도, 자연미를 모방하는 것도 아니라면, 님에게 예술은 예술미를 모방하는 것인지? 아니면 아무 것도 모방하는 것이 아닌지? 아니면 또 다른 뭐라 말할 수 있는지? 그리고 님이 파악하는 헤겔에게 예술은 무엇인지? 헤겔에게 예술의 목적이 진리추구라고 한다면, 님이 생각하시는 그 진리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지 조금만 들려 주실 수 있습니까?

놀아보세님의 댓글의 댓글

놀아보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헤겔에게 예술의 목적이 진리 추구라고 한다면 과연 진리는 무엇인가? 이것에 대답하기 위해선 우선 우리는 헤겔의 전체 체계에 관련된 얘기를 해야 합니다.
아주 간단히 말해서 플라톤적인 이념이 어떻게 현실화되어 이 현실과 딱맞는 지평에 도달하는지에 대한 대답이 되겠지요. 이 이념이 구체화되어 스스로가 현실이 되고, 현실이 구체적으로 채워져서 이념이 되는 지평을 "절대정신"이라 헤겔이 불렀다면, 이 지평이 과연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진 건지 이야기 해야 하는 것이겠지요.
이러한 꽉 찬 진리의 자기 표현, 혹은 자기 구성이 바로 예술, 종교, 철학이라 하겠으니 예술은 어떤 것의 반영이나 모방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자유로운 표현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자기의 이러한 내적 반성구조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느냐가 중요한 주제가 되겠지요. 이 반성구조를 저는 바로 객관정신과 절대정신의 지양/ 부정관계라고 생각합니다.
논리학이 원리들의 체계라고 한다면, 그외의 체계들은 실재성 속에서의 원리들의 실현이라 할 수 있겠고, 자연철학이 이념의 자기 바깥 존재라고 한다면, 정신철학은 이념의 자기 내 존재일 것이고, 그중 주관정신이 사유의 사유를 표현한다면 객관정신는 사유의 실재적인 자기실현을 마무리짓는다고 할 수 있고, 절대정신은 이 실현된 자기에 대한 반성이며 부정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실현된 자기, 혹은 내용이 채워진 이념의 모습에 대한 반성 및 부정이 바로 예술의 진리의 내용이 된다는 것이지요. 이 반성과 부정이 어떻게 행해지는가, 혹은 어떻게 '기획'될 수 있느냐가 저에겐 매우 중요한 물음이라 생각합니다.
이점에서 예술이란 단순히 인식활동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행위'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zwischen님의 댓글의 댓글

zwischen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님이 설명하신 헤겔철학 전체체계는 그런대로 수긍이 갑니다.

만일 예술이 "자기 자신의 자유로운 표현"이라 한다면, 그 말 자체는 성립되나,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모호한 것 같습니다. 예술의 출처 말입니다. 인간이 만들지 않은 예술이 가능한지? 물론 한 예술작품은 진리의 자기표현인 까닭에 그것을 제작한 작가를 넘어선다고도 말할 수 있지만, 일단 한 작가가 음악이나 그림을 제작할 때, 그 출처가 어디냐는 물음이 다시 떠오릅니다.

그리고 "인식활동"과 "행위"가 다른 것인지, 만일 다르다면 어떤 의도에서 달리 표현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헤겔 역시 정신 밖의 예술의 인식활동 혹은 행위를 말하는지 궁금합니다.

놀아보세님의 댓글의 댓글

놀아보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러니까 예술작품이란 건 예술가 개인이 체계이론적으로 봤을 때 역사 속의 구체적인 진리를 인식했을 때 만들 수 있는 거란 점이겠지요. 이렇게 말하면 오해가 생길 여지가 굉장히 많은데, 예를 들어 하나의 풍경을 보고 어떤 하나의 감동이 일어나서, 이 감동에 조율된 풍경화를 그렸다고 한다면 그는 예술가로서 하나의 인식을 한 것이고(예를 들면 자연을 마음과의 관계 속에서 인식했다는 측면) 이를 그린 것이겠지요. 즉 마음의 감동으로 매개된 자연이 중요한 것이지, 자연 자체가 주가 아니란 얘기지요.
이 인식을 표현했을 때 예술작품이 되는 건데, 이 작품이란 건 현존하는 정신으로 감각적인 방식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작품은 단순한 인식된 존재가 아니라 행위가 되겠지요. 헤겔은 이 행위로서의 작품에 대해 매우 큰 중요점을 둔다고 봅니다. 이점에서 인식과 행위는 단순히 생산 과정의 여러 단계를 구분한 것처럼 보이나 내용적으로는 같은 얘기가 되겠지요.

예술이 정신철학 내부에 있는 것이라면 정신 바깥의 예술이란 헤겔에겐 없겠지요. 혹은 헤겔에겐 정신 바깥에 존재하는 건 없다고 봐야죠. 정신 개념이 모든 것을 다 포함하고 있으니 말이죠.

zwischen님의 댓글의 댓글

zwischen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헤겔의 예술이론 안에서 볼 때, 예술가가 역사 속의 구체적인 진리를 "인식"하고, 그것의 예술적 형상화 작업을, 저는 예술이 예술가의 정신을 통해서(fuer uns) 자연미를 "모방"한 것이라고 말씀드리고자 한 겁니다.

님의 깔끔한 답변에 고개가 절로 끄덕이고 있습니다.^^

zwischen님의 댓글

zwischen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Lisamarie 님,

이런 조화가, 단 일분 차이로 댓글이 달리다니...
방금 전 다른 두 글은 읽었는데... "엄마의 예술 아빠의 예술" 어디 있어요?
긴장감이 그냥 긴장감이 아니었군요. Erloesung!

Lisamarie님의 댓글의 댓글

Lisamari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지금 다시 들어 왔습니다.
" 엄마의 예술 아빠의 예술 " 은 서동철님이 철학방 Nr 6 에 올려 놓으셨군요.
저도 한참 찾았습니다
예전에는 지금 같은 구분이 없었었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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