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헤겔의 부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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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동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3,230회 작성일 06-12-15 11:37본문
"세계가 어떠해야 된다는 가르침에 대해 한 마디 하자면, 철학은 어쨌거나 그러한 가르침에 항시 느즈막에 도달한다. 세계의 사고로서 철학은 현실성이 형성과정을 마치고 완전 종결에 도달한 연후에야 비로소 그 시대에 나타난다. 이러한 개념이 가르치는 바는 필연적으로 그러한 역사 즉 현실성이 성숙한 연후에야 실제에 대항해 이상이 나타나며 그 이상이 실제의 세상을 본질적인 면에서 꿰뚫으며 지식인 제국의 모습으로 새로 짓는 게다. 철학이 회색을 회색으로 그린다면, 삶의 한 모습은 늙어 버리며, 회색 속에서 회색을 통해 그러한 모습은 더 이상 젊어질 수 없다. 오히려 깨달아야 하리라;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다가오는 황혼과 함께 비로소 자신의 비행을 시작한다."
(번역: 서동철, 굵은 글씨: 헤겔, 빨간 글씨: 서동철)
꽤 널리 알려진, 헤겔의 법철학서 서문에 실려 있는 문구다. 헤겔이 1820년 6월 25일 베를린에서 끄적거렸다. 특히 신화적 맥락 속에서 부엉이의 비행을 철학함에 비유하는 우아함에 사람들을 반하게 만들곤 한다. 그렇다고 뭐 깊은 형이상학적 의미가 깃들어 있는 말은 아니다. 앞뒤 맥락을 조금만 조심스럽게 살피면 어렵지 않게 파악될 수 있는 헤겔의 가르침이다. 그렇다고 조선일보의 일면 톱기사 제목 마냥 그냥 훑기만 해도 이해되는 그런 나약한 말 또한 아니다.
두 가지 전제적 생각들을 우선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하나
헤겔은 철학을, 아니 철학함을 그 시대를 사고라는 물감으로 덫칠하는 작업이라 보았다. 시대의 움직임 속에서 함께 어우러져 움직이기 보다는 시대를 조금은 높은 곳에서 바라보고 관찰한 후 자신의 머릿속 내지는 의식속에서 나름대로 소화시켜 언어 즉 개념을 통해 밖으로 내놓는 인간 이성의 노동이라고 보았던 게다.
이를 달리 말하면 철학자가 철학함이란 자기가 속한 시대를 이성적 사고라는 끈으로 꿰어 한물에 묶는 일이며 또한 동시에 자기 시대의 의미를 전체 역사적 맥락에서 재평가하는 절대절명의 일이라는 뜻이다. 다음 시대를 위한 올바른 자리매김 일이다.
한 시대 전체를 싸잡아야 하니 느즈막에 일어날 수 밖에 없으며 또한 전체를 한 눈에 살펴봐야 하니 밑에서 보다는 위로 날아가야 가능한 일인 게다.
둘
그렇다면 철학함의 결과물인 철학적 작품은 시대를 따라가며 연대기 순으로 서술하고 때론 설명하는 역사적 작품과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 나와야 한다.
헤겔은 역사적 진행 속에서 철학적 진행을 동시에 본다고 믿었다. 그렇다고 위 하나에서 엿보듯 둘이 똑같다는 소리는 결코 아니다. 단지 철학적 발전이 역사적 발전과 함께 이루어진다는 얘기다. 펼쳐 말하자면, 철학의 내적 체계가 역사적 진행과정에 발 맞추며 성숙한다는 뜻이다. 예컨대 그의 ‘예술철학’ 은 이러한 이유로 해서 동시에 ‘예술사철학’이기도 하다. 서구 예술(작품)에 대한 그의 철학함은 서구 예술史에 대한 철학함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물론 그의 역사철학을 살펴 보면 헤겔이 자신의 철학에 대해 품는 이러한 바탕적 생각이 밝게 나타나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부엉이의 비행이 다름 아닌 철학하는 일임을 상징할 수 있는 게다.
飛翔하라!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다가오는 황혼과 함께 비로소 자신의 비행을 시작한다."
(번역: 서동철, 굵은 글씨: 헤겔, 빨간 글씨: 서동철)
꽤 널리 알려진, 헤겔의 법철학서 서문에 실려 있는 문구다. 헤겔이 1820년 6월 25일 베를린에서 끄적거렸다. 특히 신화적 맥락 속에서 부엉이의 비행을 철학함에 비유하는 우아함에 사람들을 반하게 만들곤 한다. 그렇다고 뭐 깊은 형이상학적 의미가 깃들어 있는 말은 아니다. 앞뒤 맥락을 조금만 조심스럽게 살피면 어렵지 않게 파악될 수 있는 헤겔의 가르침이다. 그렇다고 조선일보의 일면 톱기사 제목 마냥 그냥 훑기만 해도 이해되는 그런 나약한 말 또한 아니다.
두 가지 전제적 생각들을 우선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하나
헤겔은 철학을, 아니 철학함을 그 시대를 사고라는 물감으로 덫칠하는 작업이라 보았다. 시대의 움직임 속에서 함께 어우러져 움직이기 보다는 시대를 조금은 높은 곳에서 바라보고 관찰한 후 자신의 머릿속 내지는 의식속에서 나름대로 소화시켜 언어 즉 개념을 통해 밖으로 내놓는 인간 이성의 노동이라고 보았던 게다.
이를 달리 말하면 철학자가 철학함이란 자기가 속한 시대를 이성적 사고라는 끈으로 꿰어 한물에 묶는 일이며 또한 동시에 자기 시대의 의미를 전체 역사적 맥락에서 재평가하는 절대절명의 일이라는 뜻이다. 다음 시대를 위한 올바른 자리매김 일이다.
한 시대 전체를 싸잡아야 하니 느즈막에 일어날 수 밖에 없으며 또한 전체를 한 눈에 살펴봐야 하니 밑에서 보다는 위로 날아가야 가능한 일인 게다.
둘
그렇다면 철학함의 결과물인 철학적 작품은 시대를 따라가며 연대기 순으로 서술하고 때론 설명하는 역사적 작품과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 나와야 한다.
헤겔은 역사적 진행 속에서 철학적 진행을 동시에 본다고 믿었다. 그렇다고 위 하나에서 엿보듯 둘이 똑같다는 소리는 결코 아니다. 단지 철학적 발전이 역사적 발전과 함께 이루어진다는 얘기다. 펼쳐 말하자면, 철학의 내적 체계가 역사적 진행과정에 발 맞추며 성숙한다는 뜻이다. 예컨대 그의 ‘예술철학’ 은 이러한 이유로 해서 동시에 ‘예술사철학’이기도 하다. 서구 예술(작품)에 대한 그의 철학함은 서구 예술史에 대한 철학함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물론 그의 역사철학을 살펴 보면 헤겔이 자신의 철학에 대해 품는 이러한 바탕적 생각이 밝게 나타나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부엉이의 비행이 다름 아닌 철학하는 일임을 상징할 수 있는 게다.
飛翔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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