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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칸트 철학(6)-코페르니쿠스적 전환

페이지 정보

작성자 서동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11,035회 작성일 06-12-14 00:58

본문

Kritik der reinen Vernunft, 우리말로 순수이성비판으로 번역되어 있는 책 제목이다. 이 책보다 늦게 출판된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실천이성비판)과 Kritik der Urteilskraft(판단력비판)과 함께 통상 칸트의 3대 비판서, 즉 주요 철학서로 알려져 있다. 이 중 칸트철학 뿐 아니라 그 이후의 서양철학을 바탕짓는, 철학사에서 어쩌면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순수이성비판에 무작정 허나 서서히 직접 뛰어들기 시작한다.

그 전에 잠깐 제목에 대한 짧은 촌평. 적지 않은 사람들, 심지어 철학을 직업으로 여기는 많은 사람들이 두 번째의 비판서 실천이성과 대비하며 첫 번째의 순수이성은 칸트 철학의 이론적인 부분을 다루며 두 번째는 그의 도덕철학을 다룬다는 평을 매기며 두 비판서들이 병렬적 관계를 맺는다고 믿는다. 아니다. 오히려 순수이성비판은 그의 나머지 두 비판서들을 바탕짓는 역할을 맡는다. 그래 칸트 스스로 이러한 이유로 해서 순수이론적 이성비판이라 하지 않고 순수이성비판이라 명명한 게다. 달리 말하자면 두 번째의 실천적 이성비판을 제대로 이해하고자 하는 욕심은 이성이 이론과 실천으로 나누어지기 이전의 그 원천적 순수이성을 먼저 제대로 이해하고 나서야 비로소 채워진다는 풀이다.

사고방식의 혁명
"[...] 코페르니쿠스는 만약 전체 별들의 군상이 관찰자를 축으로 돈다는 가정할 경우 천체 운동에 대한 설명이 부진해지매 다른 시도를 했던 바, 만약 관찰자를 돌리고 그 대신 별들을 고정시킨다면 행여 그 설명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두 번째 판 서문에서 접하는 글이다. 어찌 보면 모든 게 상대적이라는 말로도 들린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경로를 관찰자를 중심으로 해가 돈다고 생각하지 말고 바로 관찰자 스스로가 돈다고 생각해 보자는 제안이다. 이를 통상 코페르니쿠스적 전회 내지는 전환이라 부른다. 칸트 스스로는 허나 이런 말을 사용한 적은 없고 대신 이에 상응하는 "사고 방식의 혁명"이라는 표현을 앞에 내세웠다. 그에게 있어 이 '전환'이란 우리 의식의 눈이 의식 밖의 대상으로 향하는 전래의, 고래의 사고 방식 대신 거꾸로, 즉 대상이 우리 의식의 눈으로 향한다는 소리다. 마치 코페르니쿠스가 관찰자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하늘의 별들을 연구하는 대신 이 별들을 조용히 가만 놔 두고 연구의 방향을 오히려 관찰자에게 돌렸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달리 말하자면 우리가 무엇인가 연구를 할 때 연구 대상을 바로보는 시각을 전회함으로써 보다 더 알찬 연구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나 하는 모습이다. 즉 방법론을 바꾸는 모습이다. 코페르니쿠스가 왜 그리고 어떻게 이런 생각을 품게 되었는지는 일단 차치하기로 한다. 대신 이러한 시각의 변동을 칸트가 자신의 철학을 전달하는 과정에 있어 제일 앞에 내세웠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본다. 칸트 역시 코페르니쿠스의 천문학적 연구 성과를 전달하고자 함이 아니라 자신의 비판철학에의 접근을 조금은 더 용이하게 하고자 이런 비유를 들었던 게다. 바로 시각의 전회 말이다. 우리의 시각을 관찰 대상이라는 객체에 집중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관찰자라는 주체로 전회를 하고자 함이다.
그럼 뭣땀시, 도데체 이 '전환' 내지는 '혁명'이라는 새로운 방법론의 도입을 통해 그가 이루고자 했던 바는 무엇일까? 칸트는 철학이라는 형이상학에 굳건한 바탕을 쌓고자 했다. 형이상학이라는 개념이 그 당시 – 하기사 지금도 마찬가지라 보인다만 – 흩뿌리고 다녔던 뜬구름 잡는 듯한 인상에 종지부를 찍고자 했던 게다. 대신 이에 학문의 옷을 꼼꼼히 입히고자 근 십년을 철학한 후 나온 결론이 바로 인식의 객체에로 보다는 주체에로의 눈돌림, 이에 따른 철학하는 방법론의 획기적 내지는 가히 혁명적인 전환이었던 게다.

물자체보다는 현상
칸트는 자신의 비판철학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 사람들이 흔히 말하곤 했던 ‘형이상학이 어두움 속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는 모습’을 그 근본에서부터 뜯어 고치고자 했다. 그 원인을 그는 철학하는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데에서 찾았다 여겼으며 따라서 이 방법을 달리 해야 한다는, 그것도 이왕 하는 거 화끈히 혁명적으로 달리 해야 한다는 신념을 세상에 알렸던 게다. 그는 나아가 철학의 정수라 하는 형이상학이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근본적인 이유를 바로 여기에서 찾고자 했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은 바로 여기에서 자신의 결정적인 정당성을 확보하며 이는 또한 달리 말하자면 칸트 전까지 소홀히 다루었던, 지나치게 무시했던 인식주체를 인식론의 중앙에 내세우는 모습과 다름 없다. 우리 의식의 내부 구조에 초점을 맞춘다는말이다.
그런데 감각에 얽매일 수 밖에 없는 인식주체를 어찌 중심에 두며 인식론 전체의 으뜸바탕으로 삼을 수 있을까? 칸트의 주장대로 천차만별인 인식대상에의 집착이 철학을 헤매게 만들었던 이유였다면 이의 대안으로서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식주체에의 집착이 과연 이 헤맴에 끝맺음을 낼 수 있을까? 바로 이 순간, 이 곤란한 지경에 그 유명한 소위 ‘선험적 자아’1가 웃음을 띄고 등장한다. 감정에 휩싸이는 경험적 자아와 구분되는 자아다. 어떠한 외부적 상황의 변이에도 아랑곳없이 내가 나일 수 있는 바탕을 제공하는, 각자의 일체성 확인에 아주 소중한 자아다. 그렇다고 한 사람이 자아를 실체적으로 두 개씩이나 갖고 있어 어쩌면 자아분열증의 위험에 직면해 있지 않나 하는 걱정은 할 필요 없다. 경험적 내지는 선험적 자아는 하나의 자아를 두 가지 상이한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뜻이며 따라서 일종의 기능상 분류일 따름이니 말이다.

칸트에게 있어 인식이란 우리가 보고 듣고 하는 등의 감각을 통해 (즉 경험적 자아를 통해) 받아들인 물적 정보들을 바로 이 선험적 자아가 일정한 규칙과 규범에 의거해 조직화시키는 과정을 뜻한다. 따라서 우리의 인식에 소용되는 정보는 우리의 자아와는 완전 별개로 존재하는 외부의 그 무엇들이 아니라 우리 자아가 받아들인 이런 저런 다양한 모습들인 게다. 그는 전자를 물자체, 후자를 현상이라 명명하였다.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은 이리 보매 결국 물자체로부터 현상으로의 관심전환이라고도 말할 수 있지 싶다. 이 둘의 차이는, 달리 말하자면, 우리 의식과 대상과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인 게다.
문제는 허나 이리 자아에 의해 이루어진 인식에 어떻게 객관성을 부여하는가 하는 점이다. 인식과정에 있어 우리의 자아가 중심에 자리를 잡고 전체 인식을 좌지우지 한다면 외부로 나타나는 보편타당성과 내부의 필연성이 어찌 보장되는가에 대한 답이 요구되어진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야기하는 이 요구는 어찌 보면 칸트철학의 핵심을 찌른다고 보이니 이 ‘전환’의 칸트철학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도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이른 바 ‘선험적 연역론’에서 이 문제를 다룬다. 서둘러 요약하면, 만약 인식주체의 의식을 파악함으로써 일정한 규칙성을 밝혀낸다면 이에 기초한 (인식의) 객관성 확보가 가능해진다. 결국 주관성에 기초한 객관성. 모순처럼 들리나 핵심은 결국 이 주관성을 어찌 이해하는가에 달려 있다.

1. 칸트철학의 한 핵심적 개념인 Das transzendentale Ich를 이리 ‘선험적 자아’라 번역해 사용하고 있다 알고 있다. 先驗이라 했으니 경험 전의 자아라는 뜻인 바, 틀리지는 않으나 원뜻이 완전히 나타나지 않는다는 결함이 있다. 경험에 앞서가는 일종의 원초적 자아를 뜻함과 동시에 이 경험을 (능동적으로) 바탕짓는 그런 자아의 개념이 바로 ‘선험적 자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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