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스피노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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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동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2,845회 작성일 06-11-04 12:51본문
TRACTATUS THEOLOGICO-POLITICUS (신학-정치 논고),
마흔도 채 되지 않은 Baruch de Spinoza(1632-1677)가 1670년 익명으로 세상에 내놓은 책이다. 출판되자마자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책이기도 하다. 특히 종교계로부터 “지옥의 악마와 협작해 쓴” 책이라며 금서시 당했던 역사적인 책이며 실제 그 당시 네덜란드 정부로부터 1674년 출판금지 되었다. “신성모독적이고 영혼을 해치는 책“이라는 게 공식적으로 내걸은 이유다.
근데 당췌 뭔 말을 했길래 우리의 스피노자는 이런 수모를 당해야 했을까? 꽤 무게가 나가는 이 책의 주제를 딱 한 마디로 꼬집으라 공갈협박을 받는다면 – 사고의 자유 수호라 외치련다. 물론 그 당시 특히 네덜란드 사회에서 이러한 자유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단지 이에는 전제를 깔고 있었는데, 교회의 가르침에 훼손이 되지 않는다는 조건 하의 자유였다. 스피노자는 이에 반기를 들며 이러한 조건조차 없어져야 진정한 생각의 자유가 보장된다 주장하며 국가는 또한 교회의 횡포에 대항해 이러한 자유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 과감히 외친다. 이에 준해 들을 수 있는 그의 적지 않은 가르침들이 지금 여기 우리의 시대에도 거뜬히 적용될 수 있고 익혀져야 함을 어렵지 않게 엿본다.
이 책에 그가 스스로 붙인 부제를 보자:
"철학을 하는 자유는 신성함과 국가의 평화를 해가 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국가의 평화와 신성함 없이는 불가능 하다."
"철학을 하는 자유"라 한다. 결국 이 책을 쓴 동기가 자유로이 철학을 하고자 해서라는 말이다. 실제로 그는 이를 위해 자기 생활의 모든 것을 희생했다. 주위의 종교계 내지 학계의 적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받아야 했던 모든 질시와 협박을 감수하며 외로움 속에서 오로지 진리를 찾고자 철학함만을 실천하고자 했던, 심지어 하이델베르그 대학에서 제안한 철학교수 자리를 이러한 치열한 실천에 방해될까 두렵다는 이유로 거절했던 나의 선각자 스피노자, 결국 그의 철학함은 어쩌면 바로 종교적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스피노자 철학의 내용 또한 유한자의 인간이란 존재가 무한자의 품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안식처를 구할 수 있는가를 철학적으로 입증하고자 한 노력의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괴테 시대에 레싱과 스피노자 철학에 대해 담판을 벌렸던 Jacobi는 바로 이 점에서 스피노자의 무신론성을 꼬집는다. 이를 계기로 그 당시 독일 사상계에 스피노자 르네상스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는 성경의 한 구절을 또한 이에 덧붙인다:
"Per hoc cognoscimus, quod in Deus manemus et Deus manet in nobis, quod de Spiritu suo dedit nobis.
Johann. Epist. I. Cap. 4. V. 13"
(강조: 서동철)
우리가 신 속에 있으며 신 또한 우리 속에 있다는 가르침이다.
마흔도 채 되지 않은 Baruch de Spinoza(1632-1677)가 1670년 익명으로 세상에 내놓은 책이다. 출판되자마자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책이기도 하다. 특히 종교계로부터 “지옥의 악마와 협작해 쓴” 책이라며 금서시 당했던 역사적인 책이며 실제 그 당시 네덜란드 정부로부터 1674년 출판금지 되었다. “신성모독적이고 영혼을 해치는 책“이라는 게 공식적으로 내걸은 이유다.
근데 당췌 뭔 말을 했길래 우리의 스피노자는 이런 수모를 당해야 했을까? 꽤 무게가 나가는 이 책의 주제를 딱 한 마디로 꼬집으라 공갈협박을 받는다면 – 사고의 자유 수호라 외치련다. 물론 그 당시 특히 네덜란드 사회에서 이러한 자유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단지 이에는 전제를 깔고 있었는데, 교회의 가르침에 훼손이 되지 않는다는 조건 하의 자유였다. 스피노자는 이에 반기를 들며 이러한 조건조차 없어져야 진정한 생각의 자유가 보장된다 주장하며 국가는 또한 교회의 횡포에 대항해 이러한 자유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 과감히 외친다. 이에 준해 들을 수 있는 그의 적지 않은 가르침들이 지금 여기 우리의 시대에도 거뜬히 적용될 수 있고 익혀져야 함을 어렵지 않게 엿본다.
이 책에 그가 스스로 붙인 부제를 보자:
"철학을 하는 자유는 신성함과 국가의 평화를 해가 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국가의 평화와 신성함 없이는 불가능 하다."
"철학을 하는 자유"라 한다. 결국 이 책을 쓴 동기가 자유로이 철학을 하고자 해서라는 말이다. 실제로 그는 이를 위해 자기 생활의 모든 것을 희생했다. 주위의 종교계 내지 학계의 적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받아야 했던 모든 질시와 협박을 감수하며 외로움 속에서 오로지 진리를 찾고자 철학함만을 실천하고자 했던, 심지어 하이델베르그 대학에서 제안한 철학교수 자리를 이러한 치열한 실천에 방해될까 두렵다는 이유로 거절했던 나의 선각자 스피노자, 결국 그의 철학함은 어쩌면 바로 종교적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스피노자 철학의 내용 또한 유한자의 인간이란 존재가 무한자의 품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안식처를 구할 수 있는가를 철학적으로 입증하고자 한 노력의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괴테 시대에 레싱과 스피노자 철학에 대해 담판을 벌렸던 Jacobi는 바로 이 점에서 스피노자의 무신론성을 꼬집는다. 이를 계기로 그 당시 독일 사상계에 스피노자 르네상스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는 성경의 한 구절을 또한 이에 덧붙인다:
"Per hoc cognoscimus, quod in Deus manemus et Deus manet in nobis, quod de Spiritu suo dedit nobis.
Johann. Epist. I. Cap. 4. V. 13"
(강조: 서동철)
우리가 신 속에 있으며 신 또한 우리 속에 있다는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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