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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칸트 철학(1)-삶의 전반

페이지 정보

작성자 서동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3,232회 작성일 06-10-06 11:28

본문

IMMANUEL KANT – 삶 (비판 철학 전까지)

1724
4월 22일 프로이센의 쾨니그스베르그 시에서 귀 빠졌음. 토요일, 출생 시각은 5시 경, 새벽. 요한 게오르그 칸트와 안나 레기나 칸트 슬하 9 형제 자매 중 4번째.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같은 우락부락한 건강함은 지니지 못했으나 그렇다고 시들시들 소금에 절인 배추는 아니었음. 체구는 작고 오히려 약골에 속했으니, 하늘은 공평하여 그에게 남들보다 더 많은 뇌세포를 선사한 듯. 칸트의 고백: "나는 한번도 제대로 건강한 적은 없으나 그렇다고 제대로 아픈 적 또한 한번도 없다."
이러한 신체적 조건이 죽을 때가지 혼자 살았다는 사실과 모종의 관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음.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칸트는 생애 두 번(씩이나) 사랑에 빠질 뻔 했다 함. 근데 너무 망설이는 통에 그 여자들이 딴 남자를 찾아 고무신 꺼꾸로 신었다 함. 평생 독신의 이유로 칸트 스스로 내던진 말: "내가 한 여자를 필요로 했을 땐, 살림 꾸릴 돈이 없었지." (나이 들어 돈이 생기자 이미 너무 늙어 버렸고.)
신교의 한 부류인 경건주의에 입각한 독실한 종교적 교육을 받고 자람.

1732-40
경건주의 학교 입학.
이러한 독실한 경건주의적 교육이 칸트가 왜 후에 모든 종교적 내지는 경건주의적인 것을 거부하는 한 이유가 됨.
도데체 아이들에게 종교 교육은 왜 시키는가? 그냥 맘껏 뛰어 놀고 사고 치고 깨지고 했던 수유리 유년 시절, 아.
칸트가 태어나고 자라고 죽은 도시 쾨니그스베르그는 그 당시 동프로이센의 수도로서 국제 항구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었음. 18세기 초에는 인구 40000으로서 그 당시의 베를린 인구의 두배였음. 문화 또한 다양한 여러 국가들의 문화가 한데 어울려 있었던 Multi Kulti 열린 도시였음.
지금은 허나 쾨니그스베르그라는 시 이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이차 대전 이후 행정 구역이 구 소련, 현재는 러시아에 속하며 이름까지 칼리닌그라드로 바뀌었음. 마치 대전 전의 성페터스부르그가 레닌그라드로 바뀌었듯. 칼리닌 역시 레닌과 같이 사람 이름으로 스탈린의 한 친한 친구였음.
칸트는 이 도시를 죽을 때까지 한번도 떠나지 않았다 함. 딱 한 번 동 쪽 경계에까지 나가 본 적은 있다는 소문이 들림. 허나 국제 도시로서 무역과 여러 나라 사람들과의 접촉이 빈번한 도시인만큼 각 나라 소식은 수시로 접할 수 있었음. 칸트 또한 듣기는 많이 들어 다른 이들한테 계속 전달했다 하는데, 어떻게나 말을 잘했던지 마치 자신이 런던이나 파리에 직접 있었던 것 같은 인상을 풍겼다 함.
만약, 만약 칸트가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었다면 분명 인터넷 중독증에 걸렸음에 틀림없음.

1737
12월 18일 어머니 돌아가심.

1740-46
쾨니그스베르그 대학(1544년 설립)에서 철학, 수학 그리고 자연 과학 공부.
부모의 집을 떠나 살았으며 생활비는 가정교사 일을 통해 스스로 벌었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한 친구와 함께 둘이서 당구를 통해서도 제법 짭짤한 돈을 벌었다 함. 하여튼 당구에 상당한 조예가 있었음.
여기서 나와의, 불행하게도 유일한 유사점을 발견함. 단지 나는 돈을 무지 잃었음.

1746
3월 24일 아버지 돌아가심.
자신의 첫 작품 발표. '생명력들의 진정한 추정에 대한 생각들과 ...' 출판은 허나 1749년.
서문에 쓴 문구:
"나는 내가 갈 길을 이미 표시해 놓았다. 나는 이 길을 걸을 것이며 그 어느 것도 나의 앞길을 방해할 수 없다."
나이 22살 때 이런 말은 사실 놀라운 일은 아님. 나는 21살 때 이미 비슷한 말 지껄이고 다녔음.

1746-55
쾨니그스베르그 지역 몇몇 가정에서 가정교사 노릇. 이를 통해 경제적 독립이 가능했음.

1755
박사 학위. 논문 제목: 형이상학적 인식의 제일 원칙들에 대한 한 새로운 조명.
쾨니그스베르그 대학 겨울 학기 강의 시작. 강의 과목으론 수학, 물리학, 논리학, 형이상학, 윤리학, 물리학적 지리학, 인류학, 교육학, 자연신학, 문헌학적 종교학 등등.
칸트는 점심 식사와 몸 치장에 남달리 신경을 썼던 관계로 돈이 쪼께 많이 필요해 남달리 많은 강의를 했음. 평균 주당 20 시간 정도, 때론 28 시간, 허나 16 시간보다는 한번도 적게 하지 않았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칸트는 강의를 통해 철학을 절대 한 특정한 시스템으로서 가르치고자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어떻게 철학을 하는가<<를 전달하고자 했다 함.

1756
리사본 지진에 대한 논문 세편 발표. 이렇듯 칸트는 그이 소위 비판 철학 발표 전에는 오히려 수학 및 물리학, 지질학 등의 자연 과학에 많은 관심과 연구 노력을 쏟았음.
쾨니그스베르그 대학 논리학과 형이상학 교수 지원, 실패. 1758년 말 또 다시 지원, 또 다시 실패.

1761
군인 출신 Martin Lampe, 칸트의 시종으로 일 시작. 향후 40여년 간의 신뢰적 봉사.

1763
신 존재 증명의 유일한 가능 근거 출판.
이는 후에 출판된 순수이성비판의 해당 부분과 좋은 대조를 이룸. 비교 연구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그럼으로써 칸트 사고의 발전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

1764
프로이센 학술원 주최 공개 논문 경연 대회에서 2등. 논문 제목: 1등은 Moses Mendelssohn(1729-1786). 후에 칸트의 비판 철학을 빌미로 칸트를 "모든 것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철학자"로 비아냥 거린 바로 그 유대인 철학자. 유대인이기에 현재 포츠담 대학에 위치한 유럽-유대족 연구소는 스스로를 이 철학자의 이름을 빌려 명명했음.
정부가 제안한 시예술 교수 자리 거절.
아름다움과 숭고함의 느낌에 대한 고찰

1766
왕실 도서관의 하급 관리로 채용됨. 칸트에겐 첫 고정직, 다시 말해 첫 고정 수입. 나이 마흔 둘에야 비로소.

1769-1770
에를랑겐 대학 교수 자리 거절. (왜?)
예나 대학 교수 자리 거절. (왜?)
쾨니그스베르그 철학과 정교수로 임용. (그러쿤!)

1772
도서관 일 그만 둠. 공식 기록: "기묘하게도 도서관 하급 관리가 대학 정교수로 임명되었음..."
이를 보고 개천에서 용났다 함.

1778
할레 대학 교수 자리 더 높은 월급에도 불구 거절. 이를 통해 칸트는 사는데 돈이 최고가 아니라는 만고의 진리를 몸소 보여 줌.

1780
쾨니그스베르그 대학 학술위원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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