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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질문] 동양문명의 의미

페이지 정보

작성자 D.960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0건 조회 2,572회 작성일 05-12-19 14:45

본문

가입하자마자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동양문명의 의미는 도대체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다들 아시다시피 현재 인류의 문명은 서구문명에 의해서 주도되고 있습니다. 서구에서도 동양문명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동양문명을 수용하려는 시도가 있는 걸로 알고있습니다만, 이러한 모든 시도는 서구문명이라는 기본 베이스를 바탕으로 동양문명을 선별적으로 수용하는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즉 동양문명을 받아들이다고 해도 그 핵심적인 주체는 여전히 서구문명이라는 얘깁니다. 포맷 자체는 그대로인 것입니다. 

서구문명이 동양문명을 압도하는 이런 현상이 단지 우연이라고 주장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니까 가만히 있어도 때가 되면 동양문명이 세계를 주도할 시기가 올 것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서구문명은 고대 그리스 문명으로부터 시작했고, 이 고대 그리스 문명은 여타의 다른 문명권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아주 특이한 개념을 하나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logon didonai"라는 모토였죠.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로고스를 준다"라는 뜻으로, 즉 "근거를 제시한다"라는 의미로 알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바로 이 개념이 고대 그리스의 지적 전통을 물려받은 서구문명과 동양문명, 아니 더 넓게 보아서 서구문명과 비서구문명과의 크나큰 차이를 가져다주는 아주 결정적인 핵심 사항인 것 같습니다.

게다가 세가지 부류의 인간에 대한 비유를 통해서 철학자를 정의했던 피타고라스의 이야기를 보면, 이미 그 당시에 순수학문에 대한 개념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어떤 실질적인 이득과는 상관없이 순전히 앎에 대한 갈증에서 비롯되는 학문을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겁니다.

즉 서구문명은 오래 전부터 어떤 사물이나 사태에 대해 이치에 합당한 근거를 제시하는 지적전통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러한 지적전통은 눈에 보이는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영역을 넘어서 극히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논리의 전개를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서구문명의 특징은 비서구문명권에 속해있는 우리에게는 생소합니다. 제가 과문해서 그런지 몰라도, 제가 알고 있기로는 동양에는 '근거를 제시한다'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 점은 동서양 고전을 비교해보면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논어에 나오는 공자님 말씀을 보면 "때때로 배우고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걸로 끝입니다. 왜 즐거운지에 대한 이유가 나와있지 않습니다. 노자의 도덕경은 이렇게 시작하죠; "도를 도라고 할 수 있으면 도가 아니다" 그러나 역시 왜 도를 도라고 말하면 도가 아닌지에 대한 설명이 없습니다. 즉 이러한 언명들은 하나의 도그마로써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대의 고대 그리스 고전은 아주 판이하게 다릅니다. 플라톤의 대화편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들을 보면 각각의 주장이나 언명에 대한 설명과 근거지움으로 가득 채워져있습니다. 더욱이 중세 신학이 보여주는 것처럼, 서구인들은 신조차도 어떤 논리적인 설명을 통해서 근거를 지우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동서양 문명의 정신적 사고에 대한 차이는 당시 유럽에 불었던 '중국 특수'를 몸소 체험했던 라이프니츠가 한 말을 봐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라이프니츠는 중국에는 세상을 평화롭게 다스리는 방법에 대한 정치철학이 매우 발달한 반면 제1철학, 즉 형이상학이 없더라는 얘기를 합니다. 서구인이었던 그의 눈에는 자신들에게는 익숙한 순수 추상 영역에 대한 정신적 시도가 없는 동양 문명의 특성이 금방 눈이 띠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동양문명에는 서구문명에서 볼 수 있는 순수 논리학이나 수학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점 때문에 서구문명이 동양문명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구문명의 장점, 즉 그 어떤 것보다도 우선적으로 근거와 논리에 의해 세계를 이해하고, 이를 통해 타자와 소통하려는 시도는 서구문명이 인류의 대표문명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결정적인 힘이었다고 봅니다. "플라톤은 훌륭한 나의 친구이다. 그러나 진리는 더욱 더 훌륭한 나의 친구이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이 모든 것을 증명해주지 않습니까?

그러나 "근거를 지운다"라는 서구문명의 모토는 단지 서구인들의 것만이 아닙니다. 이러한 위대한 사고는 인류 공동의 것입니다. 단지 서구인들이 우리보다 먼저 알아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너무 기분 나빠할 것 없이 이걸 수용하면 됩니다. 당연한 것이니까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서구문명의 수용, 즉 합리성과 논리성의 수용에 노골적으로 반기를 드는 그런 모습을 종종 목격하게된다는 점입니다. "지금 서구인들이 우리보다 조금 잘 사니까 무조건 사대주의로 나가는 모양인데, 조금 있으면 우리가 더 잘 살게 되고 그래서 우리 것을 전파하면 되는거다."라고 아주 속편하게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솔직히 이런 말 들을 때마다 그분들이 상당히 애처롭습니다. 이런 분들은 합리성과 논리성이라는 요소가 우리가 좋으면 취하고 아니면 버릴 수 있는, 그런 취사선택의 영역에 놓여있다고 착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동양인이고 한국인이기 때문에 동양적이고 한국적인 것이 무조건 최고다는 식의 쇼비니즘을 전 세상에서 가장 혐오합니다. 그런데 슬프게도 한국인의 거의 대부분이 이런 식의 쇼비니스트들이죠. 왜 동양문명이, 한국문화가 훌륭한지에 대한 근거가 결여된 상황에서 무조건, 거의 신앙적으로 우리의 것이 최고라고 외치는 것이 과연 설득력을 지닐 수 있을까요?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점들을 비판하다 보면 가끔 "서구의 기준과 우리의 기준은 틀리다", "서구의 기준으로 우리를 재단하려고 하지 말라" 이런 얘기가 종종 나옵니다. 박정희도 요런 말을 써먹었죠. 그런데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치고 명확하게 근거를 제시하는 사람은 단 한 번도 못봤습니다. 근거를 제시한다는 개념 자체가 서구에서 온 것이니까 제 생각 자체가 틀려먹은 것일까요?

따라서 동양문명의,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만천하에 알리고 싶으면 그에 합당한 근거를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왜 동양문명이 우수한가? 왜 우리 고유의 것이, 한국의 것이 우수한가? 이 질문에 대한 답말입니다.

제가 이 부분에 대해서 조금 생각을 해봤는데,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왜 동양문명과 한국문화가 우수한지에 대해서 잘 모르겠습니다. 동양문명과 한국문화가 훌륭하고 위대하다는 것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는데, 정작 그 이유는 들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물론 제가 공부를 안해서 모르는게 가장 큰 이유라고 봅니다.

그래서 이렇게 질문을 드립니다.

동양문명이, 한국문화가 과연 어떤 장점을,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 동양문명과 한국문화가 위대하고 훌륭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혹시 전혀 훌륭하지 않은 건 아닐까요?

많은 분들의 좋은 고견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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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서동철님의 댓글

서동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시자마자 어퍼컽을 날리시는군요. 쨉부터 시작해야 맞는 사람이 역공의 기회를 엿볼 수 있을 터인데... ㅋ
쪼께 숨을 돌리고 정신을 차린 뒤에 내가 쨉을 날릴 수 있을런가?

아유해피님의 댓글

아유해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문화의 가치면에 있어서 적어도 서로 다른 문화를 두고 우수성을 따진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는 그 사회가 그 구성원들의 욕구를 통해 그 시기에 필요로 하는 것들로 이루어진 까닭에 서로 다른 문화권을 놓고 이를 비교한다는 것은 불필요한 질문이 아닌가 합니다.
누군가가 그것을 비교 분석하여 그 차이점을 알고 싶어한다면 말리 재간이야 저에겐 없지만 그 결과물을 학문의 이름으로 강요한다면 저는 거부하겠습니다. 

아프리카 원주민의 삶과 우리 삶의 양식들을 단순 비교하는 것과 그 우수성을 가리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는 문제제기라고 생각힙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딱 전자까지만이 아닐까요?

창오님의 댓글의 댓글

창오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문화이론으로 접근한다면야 특수성을 강조해야지요. 독일적 특수성, 한국적 특수성, 한국에서 어떤 특수성 등등. 하지만 윗글의 문제제기는 더 넓게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아무리 동양문명이 뛰어나다 혹은 그 특수성에서 장점이 있다 해도, 이미 모든 "현실"은 자본주의화 되어있지요. 자본주의적 형이상학, 즉 모든 가치를 추상화해서 상품이라는 등가로 환원시켜버리는 무시무시한 서구적 형이상학 체계가 이미 동양에도 <현실화>되어 있지요. 왜 현실 속에서는 동양의 수많은 이론들이 무력했는가? 이것에 대해 동양철학자들은 답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동양이론이 과연 대안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동양이론을 가지고 어떻게 구체적으로 현실을 재창조해나갈 수 있는지를 설명해야 합니다. 자본주의적 형이상학이 아닌 다른 형태의 사회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야 하지요.
이미 서구적 가치가 동양적 가치보다 우월하다는 것은 현실화되었다고 봅니다. 우리는 이 현실을 바탕으로 동양문명에 대한 질문을 또다시 재기할 수는 있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 생각되네요.

아유해피님의 댓글의 댓글

아유해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님은 현실적인 측면에서 문제를 바라보시는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화되어있는 현실내에서야 얼마든지 문화의 가치가 경제적인 가치로 재생산되어질 수 있지만 자본주의가 영원한 것은 아니고 또한 지향해야할 무엇도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우월성을 입증하려는 어떤 시도에도 동의하지 않는다라고 말씀드리고 있는 겁니다만...

물론 현실되어진 것을 돌이키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리 어렵지도 않은 일이지요.
D.960님이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우린 이미 서구적인 가치기준을 가지고 우리의 삶을 대하고 있습니다.
그 가치기준은 우리 역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습득되어진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그 기준이 요구하는 가치관으로 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양식이 또다시 동양의 것을 우월로서 표하는 거라면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동양과 서양이 어찌 덜하고 더함, 혹은 더나음과 모자람으로 비교되어 질 수 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마치 그것은 저에게 너무나 광범위한 기호의 문제를 통계내려는 어리석음처럼 여겨집니다.

창오님의 댓글의 댓글

창오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저도 문화의 다양성이 우월과 모자람의 관점에서 비교되는 걸 반대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는 현실과의 관계 속에서의 문화라 현실에 의해 잠식당하기 마련입니다. 이것이 문제지요. 문화 그 자체를 두고 보면 비교의 관계는 항상 '다름'의 형식으로 나타나지 '우월'의 관계로 나타나지는 않지요.
하지만 문화의 현실의존성이 이를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저도 자본주의가 최상의 체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체계에서는 돈으로 모든 게 환산되어 '우월'의 관계로 모든 게 환원되니까 문제지요.
문화의 다름을 강조한다는 건 중요한 작업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이걸 하고 있으니 저 또한 부정할 수 없지요. 하지만 한계 또한 분명한 듯 합니다.
어떻게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가? 참 어려운 문제네요.

주석맨님의 댓글

주석맨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 맹자를 읽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저는 맹자를 보면서 님께서 말씀하시는 그런 날카로움을 느꼈었는데요.
가령 어떻게 하면 나라에 이익이 되냐는 질문에 맹자는 이익를 추구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그 근거를 제시하지요. 뭐 그 대답이 제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2. 진리에 대한 사랑은 동양 역시 강했었는데요.
지금도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국어책에 나왔던 글에 "조문도 석사가의"라는 말이 있잖아요.
아침에 도, 진리를 깨달으면 죽어도 좋다는. 이보다 더 큰 진리의 사랑에 대한 표현은 드물지 않을까요.

3. 님의 말씀대로 서구 문명이 "설명과 근거지음" 때문에 동양을 압도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1800여년동안의 잠복기를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이미 고대 그리스 시대 부터 설명과 근거지음은 서양 문명에 있었죠. 하지만 그 들이 동양을 압도(?)한 것은 빠르게 잡아도 16세기 이후 아닌가요.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설명과 근거지음"이 아닌 막스 베버의 지적처럼 "칼빈주의의 윤리"가 더 적당한 대답이 될 듯 )
그 때까지의 서양의 역사는 (물론 이후도 마찬가지지만) 폭력과 야만의 시대가 아니었나요? (예: 이단 재판, 마녀재판, 끊이지 않는 전쟁들, 유대인 학살, 십자군 운동)
그리고, 그들이 그 시대에 압도(?)를 통해서 했던 것이라고는 제국주의적 침탈 아니었나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방을 착취하는 문화를 보고 발전한 문화라고 할 수 있을까요?

창오님의 댓글의 댓글

창오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동양에도 있지 않았는가의 문제는 여러 방면에서 찾아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서구적 형이상학과 비슷한 형이상학 또한 찾아질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왜 서구 문명이 동양을 모두 서구화시킬 정도로 압도적인 것이 되었는가의 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구 문명의 폭력적인 성격 자체는 그리 발전한 문화라고 할 순 없지만, 이걸 그대로 받아들여, 지금은 이러한 서구화된 폭력적인 법적 질서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게 그리 좋은 건 아니지만, 우리는 지금 계속 서구적 문명을 수용하고 있는 입장이지요.
역사를 바라볼 때는 가치의 문제보다는 사실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봅니다. 동양적 가치가 아무리 우수했다 해도, 현실은 전제군주제였고, 양반/쌍놈의 신분제 사회였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주체로서 정치적 권리를 가지고 사회에 참여할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서구인의 폭력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웃긴 건 이 폭력을 우리가 스스로 자기화하여, 이걸 당연시 여기는 데 있습니다. 스스로가 서구적 가치의 우월성을 인정한 셈이지요. 아니, 스스로 인정한 게 아니라 강요에 의한 인정당했지요.
설명과 근거지움의 문제를 저는 '주체'의 문제로 여깁니다. 스스로가 정치의 주체로 설 때, 질문이 있고 반성이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질문과 근거 대기는 '주체'가 성립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지요. 물론 이 주체의 과도함이 제국주의와 착취를 일삼는 멋진 자본주의 체제를 만들고 세계를 지배하도록 했지만 말이지요.
우리는 아직도 <강요된 주체>로 살고 있습니다. 언제 한번 주체가 되어 더 멋진 철학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주석맨님의 댓글의 댓글

주석맨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전제 군주제가 무조건적으로 부정적이라고 볼 수는 없지 않을까요? 이는 거꾸로 민주주의가 절대선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주체가 문제가 된다면 그렇다고 할 수 밖에 없지만.

그리고, 우리에게 역시 주체로 서려는 노력이 늘 있어 왔습니다.
각종 노비의 반란, 각종 반란, 동학 농민 전쟁 등이 그 예지요. 주체로 서고자 하지 않는다면 이런 반란들은 일어나지 않았겠죠.
문제는 성공하지 못 했다는 것인데, 이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요.
하지만 유럽에서도 제대로 성공한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답니다.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정도라고 할 수 있을까요? (미국 추가)
독일에서는 한번도 성공하지 못 했지요.
(종교개혁은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아니라 제후들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제외했습니다.)
한번 거국적으로 들고 있어났던 것이 농민 전쟁과 재세례파 운동인데 이들은 무참히 당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서구에 포함되죠.

그래서, 저는 님께서 말씀하시는 주체성이 우리에게도 강하게 있었고 지금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지금의 모습이 왜곡되어 있는 것이 문제이지만요.

다음으로 신분제 사회였던 것은 유럽도 마찬가지였고, 또 만약에 비교한다면 오히려 유럽의 다른 곳은 몰라도 독일이 더 폐쇄적이었죠.
여기는 19세기 중반까지 봉건제 비슷한 제도가 유효했었으니까요.(그 땅에 사는 사람은 그 땅의 영주의 소유라는)
조선 시대에는 양민이라는 계층이 우리에게 있었으니까요.
비록 후기에 가서 님의 말씀처럼 굳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독일 땅의 농민보다 많은 자유를 누린 것은 사실이랍니다.

창오님의 댓글의 댓글

창오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동의합니다. 갑오 농민전쟁은 대표적이지요. 스스로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고자 하는 노력이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그 점에서 동학은 아직도 여전히 현재적인 연구의 대상으로 여겨집니다.
서구에선 자연법이나 실정법이라는 법의 체계를 통해 혁명이 일어난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체계에서는 형식적으로 모든 이의 인권을 존중한다고 명시되었으니 말입니다. 독일에서 혁명이 일어나도 실패했다 해도 법적인 체계 속에 이미 프랑스 혁명의 기본 이념이 내재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석맨님의 댓글의 댓글

주석맨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렇죠. 그래서 독일은 운이 좋은거죠. 그리고, 집에 오는 길에 수정해야 할 게 떠올랐는데 이미 답변을 다셔서 수정이 안 되네요.
독일에 봉건제가 유지된 것은 18세기 말까지이며, 1848년에도 혁명을 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비록 실패했지만.

서동철님의 댓글의 댓글

서동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은 말씀에 고맙습니다. 제 짧은 지식으로도 얼추 16세기 이후에서야 서양이, 특히 그네들의 기술과 과학의 힘을 바탕으로 동양에 비해
힘이 세졌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15세기 경까진 동서양이 적지 않은 부분에서 공통의 분모를 공유하고 있었다 하지요.

단지 위 필자의 주 고민은 동서양을 비교하며 동양을 서양에 비하하자는 의도보다는 오히려  동양 속의 한국이 짜장 머이냐,
우리는 대체 무엇을 가지고 있길래 이를 빌미로 대~한민국을 울부짖느냐, 그러면서도 전혀
깨름직하지도 않느냐 하는 한국인으로서의 자기 반성이라 저는 이해했습니다. 특히 이즈음의 황우석 신드롬에서 엿볼수 있는
한국 사회의 병폐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나 하는 제 나름대로의 의심은 품고 있습니다.
그래 제가 [한국학]을 제안한 바이지요.

쪼께 더 추가 말씀을 드리자면
'독일 내지는 유럽에 비추어진 한국 문화'
뭐 이런 주제의 글도 아울러 이에 속한다 믿습니다.

D.960님의 댓글의 댓글

D.960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댓글 중 논점이 약간 다른 곳으로 흘러가는데, 전 솔직히 이렇게 삼천포로 빠지는거 상당히 좋아합니다. ^^
그래야 지식의 지평이 넓어지니까요.

그리고 제가 궁극적으로 의도했던 것은 서동철님 말씀처럼 세계 속의, 그리고 동양 속의 한국문화에 대한 성찰이었습니다. 참 부끄러운게, 전 한국인이면서도 한국에 대한 지식이 전무합니다. 그런데 저만 그런게 아니고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서동철님을 비롯한 동양 및 한국문화에 정통하신 분들의 가르침을 받고자 한 것이 저의 주된 의도였습니다.

아유해피님의 댓글의 댓글

아유해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 삼천포는 저를 두고 하시는 말씀이신듯...

님의 글 전체에서 대체적으로 우수와 장점, 훌륭 뭐 이런 단어들을 선택하셨는데요...
저는 궁극적으로 그런 단어의 개념들이 과연 동서양의 문화를 비교하는데에 쓰여질 수 있는
것인가하는 의구심에 글을 올린 것입니다.
간단히 얘기해서 님의 본글에서 쓰신 것처럼 서양문명이 동양문명에 비해 우월하다고 느끼시는 점은 개인의 기호이지 우월과는 상관없는 것이 아닐까요?

또 헛다리 짚었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확인들어갑니다...

D.960님의 댓글의 댓글

D.960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문화 다원론은 확실히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모든 문화의 가치가 동일하다는 데에는 찬성하지 않는 편입니다. 분명 인류사를 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 문화와 발전의 발전을 거듭하면서 수많은 성과를 낸 문화가 따로 존재하거든요. 사실 가치평가에 대한 문제는 항상 어렵죠.

그러나 제가 역으로 묻고 싶은 것은, "왜 모든 문화가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하십니까?" 입니다. 모든 문화가 동일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의견은 상당히 듣기 좋은 말인 건 분명한데, 이걸 의미있게 논증하는 게 엄청나게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이 질문에 대한 충분한 근거를 찾지 못했고, 반대되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이기 때문에 모든 문화가 동일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에 회의적인 편입니다.

아유해피님의 댓글의 댓글

아유해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일단 동일한 가치라고 생각하지 않구요. 제글도 그런 취지가 아닙니다.
차이점을 인정하는것 외에 가치면으로 비교될 수 없는 것이라고 저는 말하고 싶은 겁니다.
그 이유는 같은 잣대를 들이댈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 발상과 환경이 서로 다른 문화를 두고 무엇이 더 낫다 아니다를 논한다는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이지요. 그 다른 점을 찾고자 한다면 모를까...
이 일은 마치 철수네 집과 영수네 집의 집안 전통을 두고 어느 집안이 더 낫다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고 생각합니다.

D.960님의 댓글의 댓글

D.960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주석맨님께 답변을 드리면,

1. 고대 그리스 사상의 특징은 이미 그 시절에 순수학문에 대한 개념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즉 순수 원리적 문제에 대한 사유, 그리고 근거지움이 있었다는 점이죠. 그 반면 중국 고대 사상의 경우 정치와 분리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인도 고대 사상의 경우 종교와 분리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물론 그 안에서도 미약하나마 근거지움이라는 행태가 있긴 있었습니다면, 그것이 소위 일반 원리(예를 들면 1+1=2 같은)에 대한 문제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고대 그리스 사상과 구분된다고 생각합니다.

2. 진리에 대한 사랑은 모든 문화권에서 관측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러나 동양에서의 도나 진리는 순수 원리에 대한 개념보다는 일종의 처세로서의 의미가 더 강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동양 고대 사상 자체가 정치와 분리되지 않았다는 점이 그 이유일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고대 그리스에서는 이미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지구의 크기를 재기도 했습니다. 놀랍게도 현대의 정확한 측정과 비교하면 오차율이 한 15%였나? 아무튼 그 정도  밖에 안된다고 하죠? 그냥 그 크기가 알고 싶어서 잰 겁니다. 그거 잰다고 밥 한끼가 나오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여기서 보여지는 '사물 그 자체에 대한 앎의 추구'는 말씀하신 것처럼 동양적 관점에서 도를 깨우친다는 의미와 본질적으로 상이한 것 같습니다.

3.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잠복기는 1800년까지는 되지 않죠. 서구 문명이 그리스 사상을 잊어먹은게 언제인지는 확실히 모르겠습니다(이 부분에 대해서 잘 아시는 분은 답글 부탁드립니다). 아마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로마시대 중후반쯤 이미 까먹지 않았을까요? 로마인들은 그리스의 전통을 답습하기는 했지만 본질적으로 상이한 문화였죠. 예를 들어 땅따먹기나 건축 같은 아주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분야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지만 추상이라는 영역에서는 극도로 허약했습니다. 로마 천년 왕국을 거치면서 고대 그리스인들이 해 놓았던 것을 단 한발자국도 발전시키지 못한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수학입니다. 수학은 로마 시대 동안 '전혀' 발전이 없었습니다. 즉 그들은 그리스인들과는 달리 일반 추상 영역에 관심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마 까먹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그러다가 12세기 후반 경 십자군 원정을 통해서 전리품으로 가져온 아랍어 책들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이 서구에 재발견되었죠. 그래서 잠복기는 한 1000년 정도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따라서 서구문명이 그리스 문명을 망각했던 시대는 그리 큰 정신적 발전이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 문명을 재발견한 이래로 계속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서양이나 동양이나 그게 그거였다가 16세기에 이르러서 서구가 동양을 압도했다는 의미는 정치 경제적 관점으로만 한정된 시각이 아닐까요? 제가 중점을 잡고자 하는 점은 정신 영역에서의 발전 과정입니다.

그리고 서양만 야만의 시대가 아니라 어느 시대에나, 어느 지역에서나 야만의 시대가 아니었던 적이 없지 않나요? 유럽에서 마녀재판하고 그럴 때 동양이나 멀리 남아메리카 문명 같은 곳에서는 대규모 살육이나 전쟁이 없었습니까? 멀리 갈 것도 없이 20여년 전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자기 나라 국민 수백명을 총으로 쏴죽였는데, 이게 야만이 아니고 뭘까요? 그리고 폭력에 의한 제국주의적 침탈은 서구만의 개념이 아니고, 인류 역사 전체를 통틀어서 어느 시대에나, 어느 지역에서나 관찰되는 현상입니다. 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방을 착취하지 않았던 문화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현상은 인류의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주석맨님께서는 제국주의나 침략, 야만 같은 개념이 서구만의 특성이라고 보시는 것 같은데, 이런 의견 자체에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주석맨님의 댓글의 댓글

주석맨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 저도 잘 모르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빌려서 답변을 드려야 할 것 같네요. 그에 의하면 이성은 이론적 이성과 실천적 이성으로 나누어집니다. 이론적 이성은 구체적인 것, 경험적인 것에서 출발하여 일반성에 도달하지요. 반면에 실천적 이성은 이 이론적 이성에 의해 얻어진 일반성을 구체적인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합니다. 즉, 이론적 이성과 실천적 이성은 동시에 존재하며, 실천적 이성이 작용하기 위해서는 이론적 이성이 먼저 작용을 해야 합니다. 동양 역시 이는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서구에 비하면 추상적으로 들릴 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일반적 개념이 존재하였기 때문에 실천적 이성이라고 불리는 실천이 강조될 수 이 있었지요.
제 짧은 지식으로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아퀴나스, 데카르트, 스피노자, 칸트(...) 등의 철학자들은 모두 그들이 처한 상황과 관련된 철학을 했다고 알고 있는데요. 그런데 어째서 동양의 철학이 실천적인 면을 강조하였다고 서구에 비해 뒤떨어지는 것이 되는지, 잘 받아들여지지 않네요.
 
저는 사실 이렇게 실천을 강조점 할 수 있었다는 게 어떤 면에서는 더 많은 것을 얘기해 준다고 봅니다. 그 만큼 이론적 이성에 의해서 정리된 것이 튼튼하였다는 말이 될 수 있으니까요. 참고로 저는 앎은 실천으로 나타날 때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님은 인도의 철학이 종교와 관련되었기 때문에 순수하지 못 하다고 하셨는데요, 제가 알기로는 피타고라스 역시 종교와 관련돼서 자신의 수학을 발전시켰는데요.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또, 종교는 철학이 충분히 자신을 실현할 수 있는 장이랍니다. 님께서 인용하신 라이프니쯔 역시 그 철학의 최종 근거는 신이었으니까요. 데카르트 역시 그렇고요.

(여기서 제가 설명한 방식이나 예로 든 것이 서구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은 제가 독일에서 이들의 학문을 현재 하고 있기에 아쉽게도 그럴 수 밖에 없네요. 이는 한국의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제가 무식한 관계로… 하지만 제가 학교 다니며 여기 저기 얼쩡거리며 들은 바로는 우리에게도 그런 것이 확실히 있네요. 지금 제게는 흐릿하지만)

2. 님은 서구적인 “사물 그 자체에 대한 앎의 추구”와 동양적인 “진리에 대한 추구”를 분리하네요. 그 근거가 동양의 ‘진리에 대한 추구’는 삶의 처세술과 관련이 되었지만 ‘서구의 앎에 대한 추구’는 순수하게 앎만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고요. 맞나요?

먼저 님께서 말씀하시는 ‘처세’의 정의를 제게는 불확실하네요. 만약에 님께서 ‘처세’라는 단어의 의미를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해석하셨다면 처세술이 될 수도 있겠지요. 의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것도 처세술이니까요. 하지만 님께서 사용하신 의미가 세상을 더 잘 (편하게..) 살아가는 방식으로서의 처세라면 이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동양 철학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세상의 원칙(서구적으로는 로고스겠죠)에 따라 살아 가라는 거지, 잘 먹고 잘 살라는 것은 아니니까요. 저는 그런 점에서 동양의 사상이 - 혹시라도 님의 말씀처럼 서양의 사상이 “사물 그 자체의 앎의 추구”라면- 서양의 사상 보다 뛰어나다고 보는데요. 하지만 서양 철학은 위에서 말씀 드렸듯이 결코 단순한 앎의 추구는 아니랍니다.
그들 역시 그들의 삶의 자리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며 철학을 했답니다. 그래서, 공부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만약에 님께서 사상이 아닌 과학의 발전만을 말씀하신다면 저는 서양의 과학이 더 발전하였다는 점에는 동의하겠습니다. 하지만 과학이 발전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서양이 동양보다 더 뛰어나다고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3. 기간은 계산하기 나름이니까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 같네요. 그 기간을 통해서 제가 말씀 드리고자 했던 것은 만약에 “설명과 근거 지움”때문에 서양의 문명이 발전했다면, 그런 사유가 항상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양이 동양을 압도(?)하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냐는 것이며, 이 때문에 단순히 그것만이 원인은 아닐 거라는 말씀을 드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우선 님께서 말씀하신 야만의 역사를 지적하고자 합니다.
유럽의 마녀 사냥은 중앙 권력에 의해서 조직적으로 행해진 것으로 그 규모 역시 대단하였습니다. 가장 심했던 해에는 한 해 만 명이 넘는 사람이 불에 타 죽거나 목이 잘려죽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우리에게 있는 마녀 사냥 비슷한 것은 중앙 권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도, 그렇게 무참히 많은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현재 아이들 간에서 이루어지는 왕따 비슷한 것이었겠지요. 아니면 어느 정도 더 심하던지. 하지만 님은 이 둘이 비교가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결코 될 수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전쟁과 유대인 학살, 마녀 사냥은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이지 않나요.
만약에 같다면 나찌의 유대인 학살이나 일제의 관동 대학살 역시 일반 전쟁 상황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비약이 심한가요?)

제가 말씀 드리고자 하는 바는 생명의 소중함을 아느냐 입니다. 저는 우리가 가진 장점 중의 가장 큰 부분이 바로 그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님께서 지적하신대로의 광주 사태와 해방 후 전쟁까지 수없이 많은 민간인을 살해한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보도연맹이 아주 대표적인 예죠), 또 월남전에서 대리로 나가 싸우며 학살의 주체가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서구 보다는 우리는 생명의 소중함을 더 지키려고 노력해 왔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은 항상 당하며 살았다는 억울함을 느끼게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를 당당하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지금의 일본의 예는 이를 잘 보여 주잖아요.) 
   

제가 헤겔에 동의하지 못 하는 부분이 바로 님께서 말씀하신 부분입니다. (비록 잘 모르지만) 그는 자신의 시대를 정신 발전의 절정이라고 생각하였지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현재의 정신은 아리스토텔레스 시기, 동양의 제자 백가의 시기에 비해 그리 발전하지는 못 한 것 같은데요. 어떤 철학자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철학의 완성을 본다고 하잖아요. 동양 역시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저는 도덕경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 시대의 분들의 글을 보면 고개가 절로 숙여진답니다.

D.960님의 댓글

D.960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역시 아주 논쟁적인 부분에 대해서 언급했더니 많은 분들이 답글을 달아주셨습니다.
오랫만에 상당히 재미있네요.
지금 거론되는 주제가 너무 방대한 만큼 계속 토론을 이어가는 것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달아주신 댓글중에서도 아주 논쟁적이고 흥미로운 주제가 엄청 많이 나왔는데, 앞으로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정리해보는 것이 더 유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소모임이 제대로 굴러가는 것 같아서 기쁩니다. ^^

Lisa-marie님의 댓글

Lisa-mari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Arnold Toynbee hat einst die These aufgestellt, der Schwerpunkt der menschlichen Geschichte sei im laufe der Jahrtausende immer weiter von Osten nach Westen gewandert. Er lag anf&auml;nglich in den Steppen Innerasiens , r&uuml;ckte
dann ins zweistromland um Tigris und Euphrat, verschob sich sp&auml;ter &uuml;ber Hellas und Rom ins nordwestliche Europa und &uuml;bersprang schließlich vor 200 Jahren den Atlantik.
Heute erwarten viele, dass sich der Geschichtsschwerpunkt um ein weiteres St&uuml;ck nach Westen verlagert :
 von nord Amerika in den pazifisch- asiatischen Raum, zur&uuml;ck an den Ausgangspunkt. Damit schl&ouml;sse sich der Kre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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