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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칠란트 23대 정범구 대사가 소개하는 초대 손원일 대사에 대하여...

페이지 정보

작성자 새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1,638회 작성일 18-01-24 18:50

본문

아래 사이트는 도이칠란트 제23대 신임 정범구 대사께서 초대 손원일 대사께서 얼마나 많은 애국충정으로 평생을 사셨는지에 대하여 낱낱이 실었습니다.
꼼꼼하게 읽어보시고 두고온 겨레를 더 아끼는 마음에 충동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여기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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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주 독일대사 손원일(1909-1980)

- 베를린 대사관 4층 내 사무실 앞에는 역대 주독대사들 사진이 걸려있다(사진1).
모두 22분 선배대사들이 이 자리를 거쳐갔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대한민국 초대 독일주재대사를 지냈던 손원일 제독에 대해 소개하려 한다.
한국과 독일은 1955년 수교에 합의하였지만 대사급 외교관계가 수립된 것은 1958년 8.1일 손원일 대사가 부임하고서 부터다. 그는 1960. 8. 30까지 독일대사를 지냈다.
그는 한국해군을 창설하고 초대 해군총사령관을 지냈으며 이후 국방부장관을 역임하였다. 일본군 출신들이 많았던 초기 한국군 내에서 그는 드물게 중국해군 출신이었다. 1930~1934년간(일설에는 1927~1930년) 중국해군 선발 장학생으로 독일에서 유학하기도 했다.

- 그러나 손원일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그에게 민족혼을 불어넣어 준 아버지 손정도 목사 (1882-1931)의 존재이다. 평남 강서 출신의 손 목사는 상해임시정부 의정원 의장과 교통총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일제에 의해 여러차례 투옥되고 고문받았으며 결국 그 고문의 여파로 1931년 49세의 나이로 중국 길림에서 병사하였다.

- 1923년경 부터 상해를 떠나 북만주 일대에서 독립운동을 하였던 그는 숭실중학 선배인 김형직의 아들 김일성을 양아들처럼 돌보기도 하였다. 손정도 목사의 두아들인 원일과 원태는 김일성과 같이 자랐으며 원일의 막내 누이 인실(대한 YWCA 회장 역임)과도 친숙한 사이였다. 김일성이 중학시절 항일활동으로 길림감옥에 갇히게 됐을 때는 손정도 목사가 아픈 몸을 이끌고 백방으로 노력하여 석방시켜 주기도 하였다. 훗날 김일성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손목사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국부의 혼으로 열심히 민족을 교화시키던 목사"라고 쓰고 있다.

- 해군을 창설한 손원일 제독은 한국전쟁 발발 초기 부산으로 침투하던 적의 1000톤급 수송함을 격침시켜 개전 초기 첫 승리를 거둔다. 해군전사에서 "대한해협 해전"으로 불리는 이 전투는, 손 제독이 국민성금을 모아 들여온 450톤급 초계함 "백두산 함"으로 6월 25일 저녁, 울산 방어진 앞바다에서 600명 가량의 무장병력을 싣고 오던 적함을 침몰시킨 것이다. 이 해전은 초기 한국전쟁 판세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자신의 아들(손원일 제독)과 양아들(김일성)이 맞부딪힌 6.25 전쟁을 바라보면서 지하의 손정도 목사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 대사관 복도에 걸려있는 여러 선배들의 사진을 바라보면서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다시 돌아보고 내가 가야 할 길을 새삼 가늠해 보게 된다.
https://www.facebook.com/bumgoonet?fref=nf
추천6

댓글목록

새길님의 댓글

새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도이칠란트 제1대 대한민국 손원일 대사에 대한 글을 읽고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손원일 대사 아버님 손정도 목사님은 목사 신분으로 샹하이 임시정부 의정원 원장을 지내신 분이랍니다. 지금 같으면 목사가 정치에 끼어들어 반정부투쟁을 한다고 비난을 하겠지요.
그런 목사님 가정에서 자란 손원일 대사님은 자연스럽게 독립투쟁을 하고 광복이 되자 귀국하여 구한말에 일제가 해산했던 군(해군)을 창설하여 밑거름을 주신 큰 버팀목으로서 이순신 장군처럼 훌륭한 명장이시지요.
많은 세월이 지났습니다. 손정도 목사님은 독립투쟁을 하시다가 만주에 안장되셨는 데 그 유해를 남한으로 모셔다가 국립묘원에 모셨답니다. 역시 손원일 대사님도 국립묘원에 안장되셨지요.

평소에도 손 목사님께서는 자녀교육을 하실때 ‘비단옷은 없어도 그만이다. 그러나 걸레는 하루만 없어도 집안이 엉망이 된다. 나는 걸레와 같은 삶을 택해 불쌍한 우리 동포들을 도우며 살겠다. ’  이 짧은 한 마디가 손정도 목사님께서 무슨 생각으로 사셨고 겨레를 위하여 무슨 일을 하셨는지에 대하여 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다섯 자녀분들이 나라를 위하여 어떠한 공헌을 하셨는지에 대한 후일담은 역사가 증명을 합니다.
 우리 역사에 번쩍거리는 비단옷을 입고 사람들 앞에 거드름이나 떨려고 안달했던 사람들이 많지요. 그러나 구석진데를 닦는 걸레로 자처하여, 예수님께서 제자들 발을 닦아주셨던 그 사상을 이어받은 훌륭하신 목사님에 그 아들이라는 것을 글을 통하여 잘 배웠습니다.

  • 추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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