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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유학자와 '위안단' 기억.

페이지 정보

작성자 친절한시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5건 조회 924회 작성일 18-01-19 11:57

본문

아래의 어느 댓글에서 향교에서 성리학을 배웠다는 사적인 과거를 밝혔다. 앞뒤 다 떼고 저 부분만 내어 놓으니 마치 정식으로 입학하여 일정한 성리학 과정을 수료한 것 처럼 들린다. 아니다. 김해향교 교장선생님과 개인적인 관계가 있어 틈틈이 만나 대화형식으로 배운 것이다. 처음에는 젊은 놈이 기특하다하여 몇 번 응대해 주시는 척 하다가 나름 열의를 보이자 정말 제대로 성리학을 공부해 볼 것이냐 물어 오셨다. 관심은 컸으나 정식으로 접근하기는 어려운 현실이라 우물쭈물하였더니 저 논어 두 권을 내어 주셨다.

"외아라."

아래한글 초기버전으로 일일이 논어를 타자해서 출력하고 달력을 오리고 붙여서 만든 휴대용 논어다. 당신의 손때가 고스란히 묻어 있는 귀한 유물이다. 나는, 논어도 논어지만 저 심플한 형식에 먼저 매료되었다. 공부도 하기 전에 일단 저 휴대용 고전을 갖고싶은 욕심이 일었다. 시건방지게시리 "할아버님. 혹시 맹자와 중용은 없습니까?"하고 대뜸 묻자

"논어부터 외아라."
"논어를 외우면 중용이랑 맹자 주실겁니까?"
"니↗가↘ 맹-긍-어-라- 짜슥 달라캐싼노."
"... ... ... (얼굴에 피쏠림)"

향교 교장 할아버님과 나누는 대화는 특별했다. 유학은 곧 '합리'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진정한 유학자는 곧 궁극의 합리를 추구하는 자라는 인식도 자연스럽게 갖게 되었다. 공학을 전공하는 나로서는 그 합리의 코드가 그렇게 매력적일 수 없었다. 늘 고깝게 여겼던 소위 TK(대구-경북)의 영남유림들을 참된 유학자들로부터 구분해 낼 수 있었다. 유학은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조선시대의 가치만 부여잡고 요지부동인 줄 알았다. 아니다. 유학은 오히려 그 철저한 합리주의를 바탕으로 시대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반응한다. 역사는 살아있는 생물이기에 유학도 그에 부합하는 유기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선명한 인식이 있다.  대한민국의 '보수'는 태생적으로 군부독제의 세력기반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선입견이 깨끗이 씻겨 나갔다. 그것은 보수가 아니다. 유학의 유연함과 인간의 욕망이 범벅되어 곡학아세하는 기회주의자들일 뿐이다.

친일수구파들에게 '보수'라는 호칭을 헌척하는 후학들에게 할아버님은 큰 불만이 있었다.

"아이가- 느그 젊은 사람들이 우예 머리를 그리쓰노. 우째서 갸들이 보수란 말고. 느그뜰은 요즘에 훨씬 더 책도 많고 서양에도 막 날아뎅기싸코 그라이까네 우리보다 보수/진보 더 잘 알아야 되는거 아잉가베"
"할아버지. 저는 그저 공돌이.... 미분적분...."
"크래? 미분이는 머이고 적분이는 머인데."
"... ... ... (얼굴에 피 또 쏠림. 왠지 이 할아버지는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어...)"

지금이야 금방 이해하지만, 당시에는 저런 한마디 한마디가 그동안 삐뚤어져 있던 내 척추들을 따닥따닥  맞춰 주는 듯한 쾌감이 있었다.

추측컨데 이분은 40년대를 10대 청소년으로 살았다.

"온 산을 숭하게 다 디비놓고 좋은 돌이니 광물이니 다 빼가고, 수시로 농사짓는 사람들 불러다가 공사시키고 임금도 안주고, 김해에 기가 쎄다캄서 허황후 거북산 모가지 짤라삐고, 가빤챠(?) 구락부에서 돈 마이 블게 해준담서 위안단 만들어가 젊은 처자들 꼬이가 델꼬 가고 안그랬나. 왜놈들이 하도 다 빼가이까네 소작농들이 이눔의 빚에 시들리가 살 수가 없는기라. 머 쪼매만 달라카믄 빚부터 갚으라 캐싸코. 소작농들이 모디가 관청에 찾아가서 항의하면 흔병들이 와가 총으로 막 쏠라 캐싸코 그라이까네 어찌 할 방븝이 없는기라. 요즘 매이로 갱찰이 오데있노. 순사들이 알고보믄 즌부다 흔병 군인이지. 그래싸타가 마 그 집 딸이 한 날은 돈을 툭 던짐시로 아부지예 이걸로 우찌 쫌 매까 보이소 이라는 거 아인가베. 걔집아들이 즈그집 빚갚는다꼬 공창이 된기라. 아 고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지마는 당장 목구멍이 포도층이니까네 은그이 또 그 돈 받는다. 그런데 그란다꼬 그 빚이 갚아 지근나. 가가 뜬지준그또 다 빚인기라. 그라이 한 번 배리삐쓰이까네 공창 걔집아는 고향으로 돌아 오지도 못하는기고, 빚은 빚대로 자꾸 느는기고, 이왕 그랄끼므는 저짜 좋은 나라 가가꼬 훨씬 더 돈 많이 벌어가 오자꼬 위안단 아들이 낚아 가는 갱우도 부지기수다."

워낙 오래 되어서 잘 기억 안나지만 가삔챠 구락부(?) 이런 이름이었던 같다. 아마 동남아시아 위안소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할아버님은 그 날 대화에서 위안부가 아니라 '위안단'이란 말을 쓰셨다.
추천5

댓글목록

먹통님의 댓글

먹통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마지막 인용 문단은 소리내서 읽으니까 그렇게 찰질 수가 없습니다.

선생과 제자의 관계가 형성되는 모습이 보이는 듯 하여, 그런 점도 재미있는 짧은 글이었습니다.

여기서 제가 발견했다는 '선생과 제자 관계의 형성' 이란 일본 철학자 우치다 타츠루가 역설하는 것이고 저 또한 공감하였기에 기억하고 있는 것인데요, 이에 따르면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란 기본적으로 배우는 포지션에 서는 사람이 어떤 사람을 "뭔가 알고 있는 인간" 으로 상정하거나 혹은 인식하는 경우에 비로소 가능하게 됩니다.

친절한시선님이 느꼈던 "왠지 이 할아버지는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어..." 라는 느낌이 바로 상대가 뭔가를 알고 있는 것 같다는 그 감각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것은 사실 썩 신중하고 이성적인 판단은 아닙니다. 직관이나 느낌이라고 해야 하지요. 그런데 이 느낌이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에 있어 필수적이라는 것입니다.

배우는 포지션에 서는 사람은 선생 포지션에 서는 (더 정확하게는 배우는 포지션에 있는 사람이 제멋대로 선생 포지션에 갖다 세운) 사람이 뭔가 중요한 것, 내게 가치있는 것을 알고 있다는 막연한 감각 때문에 그 사람의 말과 행동에 그 자체보다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의미를 해독해 내려고 애쓰게 되지요.

예컨대 무예에 있어서도, 어떤 사람이 무슨 신묘한 기술을 알고 있다고 여겨지면 그 사람의 동작으로부터 그 기술을 이해해 내기 위해 열심히 궁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 동작에는 아무런 특별한 것도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핵심이 아닌 거죠. 중요한 건 배우는 포지션에 서는 사람이 "거기 뭔가 있을 거다" 라고 믿어버렸다는 데 있습니다.

이 "진정한"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를 만들어 내는 주체는 배우는 입장에 서는 사람입니다. 그가 없으면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가 성립이 되지 않는 것이지요.

이는 프랑스 정신분석가인 자크 라깡이 분석가-분석주체(내담자) 관계가 성립되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제시했던 것과 겹쳐집니다. 분석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분석주체가 분석가를 "뭔가 알고 있는 주체" 로 상정하고 있는, 그렇게 믿고 있는 상태여야만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야만 분석주체는 분석가가 던지는 말에 어떤 중요한 뭔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 말을 실마리삼아 치열하게 궁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분석가가 뭔가 알고 있는 주체일 거라고 여기는 분석주체의 믿음은 일종의 투사 (Projektion 이란 의미에서의 투사) 인데,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도 바로 이 투사에서 비로소 가능해 지는 거지요.

이런 정황 때문에 저는 가르치려고 하는 발화가 실용적으로 어떤 효력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가르치고 싶은 마음, 가르쳐 '주고' 싶은 마음이 있을 수는 있을텐데, 이를 실현하려면 아무래도 우선은 미끼를 던져야만 하겠죠. ^^; 상대가 나를 뭔가 알고 있는 사람, 조언을 구하고 싶은 사람으로 여기게 만들 미끼요.

이 미끼 던지기를 성공적으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음 작업을 섣불리 시작해 버리는 사람들이 왕왕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미끼를 던져도 미끼를 물 사람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는 법이니, 미끼를 물 사람이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 더 앞선 과제겠습니다만, 그것또한 건너뛰지요. 무엇을 두고 하는 이야기인지 아시리라 믿습니다. ^^;

  • 추천 3

베를린벙커님의 댓글의 댓글

베를린벙커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세 사람이 길을 가게 되면, 그 중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나는 그의 좋은 점은 가리어 본받고, 그의 좋지 않은 점으로는 나 자신을 반성하여 바로잡는다.<  논어 술이편.

전 배움에 있어 공자의 말씀을 되새겨봅니다. 이것의 다른 표현으로는 집단지성 개념도  참고할 수 있는데요. 논어의 표현은 행실에 더 치중되게 보이지만, 더 확장해보자면 개인의 앎과 깨달음이 한정적이지만, 내가 타인의 언설 속에서 내가 알지 못했던 깨달음을 만날 수 있고, 그러한 자기개방을 통한 배움이 더 커져간다는 이해입니다.

배움에 대한 이 자연스러운 방향에 허물이 생기는 것이 일본 철학자나 자크 라깡의 해석이 될 것 같습니다. 정치적 , 정파적, 음모론적으로 배움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 때문입니다. 배움에 있어 그 장치들, 권력관계, 의도 등도 당연히 경계할 것은 사실이나 그 여우같은 의심이 진실을 만나는 데 장애가 있는 것도 큰 문제점입니다.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 서로 속아주는 것. 말을 넘어서서 상대의 마음을 전달하는 것. 진실은 글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아는 단계에 가야 우리는 한 가족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친절한시선님의 댓글

친절한시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뭐지. 이 낑긴 기분은 ...

먹통님 말씀 듣고나니 역시, 교장 할아버지 라깡 정도는 파악 끝나셨던겐가 (여전히 낚인 입장 ㅎㅎ). 그나저나 먹통님은 오늘 제 안에 한 번 들어왔다 나간 사람같습니다. 이상하게 아침에 명치가 간질간질하다 싶더니.

아무튼, 벙커님과 8814님이 벌이실 변증법적 문답토론 벌써부터 엄청 기대됩니다. 그리고 벙커님이 주말에 올려주실 도학 주제글도 매우 기다려지고요. 둑은- 둑은-

  • 추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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