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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준비자들에게 고마운 마음 전하며...

페이지 정보

작성자 친절한시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809회 작성일 16-12-05 15:43

본문

베를린에서 진행되는 박근혜 퇴진 데모는 코리아협의회와 주권회복이라는 두 조직을 중심으로 여러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준비된다. 코리아협의회는 독일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로 공식 웹사이트 http://www.koreaverband.de/ko/ 를 운영하는 등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조직이다. 주권회복은 한국에 애정을 가진 한국인들이 자율적으로 자기조직화한 소모임으로 주로 웹을 중심으로 소통하며 고정된 오프라인 집합소는 없다.
11월 26일 있을 데모를 준비하기 위해 데모 약 일주일전에 코리아협의회 사무실에서 대책회의를 가졌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개회의였어서 나도 참여하였는데 본심은 그들이 과연 누구인지 직접 보고 싶다는 데 있었다. 지금은 코리아협의회, 주권회복, 그리고 세월호 베를린 행동을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지만 그 전에는 그들 모두가 같은 조직의 구성원들인 줄 알았다.
코리아협의회 사무실에 빼곡히 꽂혀있는 서적들과 그들의 분주한 고민을 나타내어 주는 복잡한 책상에서 오래전 냄새가 기억났다. 그동안 살아왔던 시간 한 덩어리가 내 기억세포들로부터 순식간에 휘발되는 듯 했다. 바로 어제 내가 저기 앉아 함께 일하고 라면 끓여 먹고 쓴 소주 한 잔씩 돌려 마시고 그랬던 그 자리에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4시 살짝 지나 시작된 그날 회의와 토론은 저녁 8시 넘도록 이어졌다는데 나는 아이들과 약속이 있어서 일찍 자리를 떴다. 대신 방문자 연락처에 이메일 주소를 남겼더니 26일 데모를 준비하기 위해 주고받는 메일 내용들을 모두 확인할 수 있도록 메일링 그룹에 포함시켜 주었다. 데모 준비의 핵심은 뭐니뭐니해도 베를린 경찰에 집회를 신고하고 허가를 받는 일이었다. 매우 까다롭고 이것저것 걸리적 거릴 일이 많을 줄 알았는데, 너무나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처리되었다. 이분들에겐 그것이 무척 평범한 절차일지도 모르겠으나 나에겐 그것이 곧 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번개처럼 오가는 이메일들로 역할이 분담 되었다. 너무나 자발적이라 간단한 상황정리와 부탁이 있으면 즉시 자원자가 나타났다. 

그날 코리아협의회 토론에서 있었던 에피소드 하나 기억난다. 나에겐 앞으로 오랫동안 잊지 못할 귀한 경험이 될 것이다. 하여간 나는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심사가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미리 이야기를 담을 그릇을 딱 만들어 놓고 거기에다 사람들의 의견들을 딱딱 담아 나가야 되겠는데 갈수록 변죽만 울리기만 하고 정리되는 것이 없었다. 주제는 두가지였다. 하나는 곧 있을 데모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였고, 다른 하나는 집회 바깥 공간에서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는 자리였어서 나는 중간에 불쑥 끼어들어 상황 정리를 시도했다.

"... 그러니까 요지는, 진지를 구축하는 것과 기동전을 준비하자는 것 아닙니까..."

상황은 전혀 정리되지 않았다. 그 자리에 모였던 사람들 중에 진지와 기동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개념들을 지금 우리가 준비하려는 것들에 굳이 연결해서 생각하려는 의사가 보이지 않았다. 혹시 자기들이 모르는 어떤 명쾌한 해답을 저 사람이 제시해 줄 수 있지는 않을까? 그러니 진지와 기동을 지금 좀 더 이해해 보려고 노력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권위의 시대는 깨끗하게 지나갔다. 아무리 진정성있는 발언이라도 권위적인 통로를 통해서는 전달되지 못한다. 그들에게 둘러싸인 나의 현재적 포지션을 설명하기 위한 방식으로 나를 전대협 끝물세대라 소개했다. 그 말 속에는 당신들이 준비하는 데모를 나는 진심으로 위대하다 생각하나 아무리 그래봤자 내가 경험했던 그 데모의 강도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작위적 권위의식이 담겨있었다. 권위는 상하를 구분짓는다. 부득불 계층이 필요하다면 분명 권위도 유의미하게 존재하고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그 때의 권위는 따르는 자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생겨나는 것이어야 하지 이끄는 자가 스스로 만들어 갖출 것은 아니다. 그런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껍데기 권위다. 내가 그 자리에서 꼭 한마디 했어야 했다면 그것은 진지와 기동 따위가 아니라 꾸준히 깨어있지 못했던 것에 대한 진심어린 반성이었고 그럼에도 이처럼 다시 분연히 일어나 주는 후배들에 대한 감사였을 것이다.           

브란덴부르크문 앞은 같은 시각에 다른 데모가 예약이 되어서 이번엔 훔볼트 대학 앞 베벨광장에 모였다. 베벨광장은 소위 히틀러 분서갱유 사건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여 독재자에 대한 항거 데모장소로 묘하게 어울리기도 한다. 경찰의 보호하에 집회하고 도로를 온통 점유하여 행진하였다. 그 거리들은 베를린 한 가운데를 관통한다. 중앙을 지나지 못한 차량들이 우회하는 바람에 프리드리히 슈트라세나 포츠다머 플라쯔등의 주변 도심지역 교통이 혼잡했으리라 본다.

데모가 끝나고 미리 빌려 놓은 훔볼트 대학 강의실에서 토론 시간을 가졌다. 다들 배가 고팠을 것인데 뜨거운 옥수수 수염차 한잔으로 몸을 녹이는 것 외에는 먹을 거리가 없었다. 그러나 차를 홀짝이며 마시는 동안 허기는 지워졌다.

자유발언 시간이었다. 광장과 거리에서 마이크를 들고 목이 쉬도록 박근혜 퇴진을 외치던 사회자분은 박근혜를 찍었었던 자신의 과거를 고백했고 자신의 무지를 부끄러워하였다. 아니, 각성은 위대한 것이다. 

나도 꽤 긴시간 발언하였다. 두서없이 꺼내 놓은 이야기들이라 아래에 정리해 놓은 글과 일치하는지 모르겠지만 현재 진행되는 한국의 역사 앞에서 평소 내가 나에게 던지는 화두들을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털어 놓았다. 

1 한국인들의 이와같은 움직임에 박근혜 보다 더 긴장할 사람은 어쩌면 시진핑과 아베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한국을 반면교사로 진지한 경각심을 가질 것이다.
2 한국인들의 움직임은 비단 남한 내부의 문제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최소한 동아시아 문명 전체의 변화를 자극하는 에너지일지도 모른다.
3 나는 백만 군중의 평화로운 시위를 사실은 이해하지 못한다. 저 군중들은 같은 편이 될 수 없는 계급편성을 갖고 있다. 투쟁의 관점에서 보자면 서너갈래로 흩어져 서로 맞서야 할 사람들이다. 이 감상적 연대를 어떤 긴급한 상황적 합작으로 인식할 수 있는가.
4 나는 무식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이 행동의 근거가 되는 수준에서 전반적인 탈피를 시도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5 선거부정 및 개표부정의 정황이 명징했을 때 이미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야했고, 그 타이밍을 놓쳤다면 세월호가 뒤집어졌을 때 지금보다 더 큰 함성으로 박근혜와 새누리랑 타도를 외쳤어야 했다.
6 왜 이제와서 민주주의인가. 왜 늘 민주주의인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는 알고있는가? 혹시 그 민주주의는 정확하게 '절차적 민주주의'를 뜻하고 있는가?
7 박근혜 퇴진이후 앞으로 나아갈 길을 알고싶다면 그동안 우리가 어떤 길을 걸어 왔는지 따져보는 일이 먼저일 것인데, 나의 내면에서 모든 자극적 현재와 관념적 미래를 극복하고 냉정하게 과거를 분석할 의사가 있는가. 즉, 공부할 것인가.
8 박근혜는 물러가라 외치는 힘의 절반은 위선이 아닌지 쓰디쓴 반론을 일으켜 볼 의사는 없는가. 어떻게 지주와 무산자가 지금처럼 공동 전선을 맺을 수 있는가.
9 상황상 피할 수 없겠지만, 스마트폰 파도를 탈 때 손에 들고 있던 제품의 절반은 메이드 인 삼성이라는 점 냉정하게 짚고 넘어갈 수 있는가.
10 국가와 민족을 위한 정의로운 발상을 멈추고 나 개인의 소소하고 귀중한 삶에 더욱 집중할 의사는 없는가.
11 박근혜 타도를 외치는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여성억압' 이라 주장한다면 그 소리에 주목할 수 있는가.
12 애정결핍, 요정과 단란주점, 성억압, 기만적 예술, 외국 이주민 차별, 욕구불만에 가득찬 대중문화 등등의 일상적 문제 앞에서 우리는 위선적이지 않은가.
13 김대중과 노무현에 대한 편향된 낭만적 회상을 중단할 수 있는가. 노무현이 새만금을 죽이는 거대한 실정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이명박이 감히 4대강사업 운운하며 나댈 수 있었겠는가.
14 (목구멍까지 차 올랐으나 끝까지 내 뱉지 못한 말) 오늘 이 착한 백만 시민 궐기가 "자학적 자위행위"로 그치지 아니하고 분명한 자기 실존적 각성과 인식으로 이어질 것이라 생각하는가?
15 (말하는 동안 나의 정신 절반을 지배하고 있던 말) 나는 지금 권위적인가?

...

이들은 나에게 아무런 답을 들려 주지 못했지만 정작 나에게 필요한 것이 정답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 쯤은 나도 안다. 흉금없이 털어 놓는 내 속을 똥그랗게 눈을 떠서 가만히 들어 주는 사람들이고, 그런 내 마음을 자기 마음에 묻혀 행동하는 사람들이다.

고맙습니다.
추천8

댓글목록

주권회복님의 댓글

주권회복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집회 준비 과정에 대한 이렇게 '친절한 시선'을 이제서야 봤네요.
생업에 쫒겨 할 일 제대로 못한 것 같아서 면구스럽고, 동시에 잘 정리된 후기에 감사드립니다.^^;;
12.9 탄핵!

예스마담님의 댓글

예스마담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베리에서 유명하신 친철한 시선님과 저희가 함께 했었네요.. 훔볼트강의실에 함께 있었다니, 이제 매치가 됩니다. 영광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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