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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가 설 곳은?

페이지 정보

작성자 또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6건 조회 2,813회 작성일 16-05-25 01:20

본문

좌충우돌했던 제 댓글과 생각을 정리하며, 제가 토론에서 얻은 단상을 적어봅니다.

* 단체 의식에서 당위적 행동을(노래를 따라 부른다) 거부하는 사람을 그냥 편하게 개인주의자라고 불러보겠습니다. 공감을 많이 받은 주장인 "5.18의 역사적 가치를 존중한다면, 노래도 따라 부를 것이다"를 받아들이게 되면, 저처럼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은 설 자리가 없어집니다. 5.18의 역사적 가치를 존중하지만, 동시에 "의식에서 특정 행위를 남 앞에서 보여줘야 한다"에 왠지 거부감이 드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수없이 애국가를 불러왔고, 아침조회며 국민의례를 해왔고, 신입생 신분으로는 수도 없이 신고식을 했고, 단체 행사에서 군기도 잡혀본 저로서는, 내가 하기 싫었던 것이라면 남도 하기 싫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당위가 애국이건, 반공이건, 추모건, 역사적 정당성이건. 형식은 형식이고, 내용은 내용입니다. 실제 역사책을 자기 입맛에 맞게 졸속으로 바꾸는 심각한 행위는 비판하고 막아내야 합니다. 이런 게 내용이며, 내용이 훨씬 중요하다고 봅니다. 

* 노래 따라 부르기 싫은 사람은 추모식에 가지 않으면 된다는 것도 조금 경직된 태도 아닐까 싶습니다. 의식, 예식 행위는 인간 본질에 가까운 욕구입니다. 우리 일상은 결혼식, 장례식, 생일잔치, 추모식, 졸업식, 입학식 등등 수없이 많은 의식으로 채워집니다. 물론, 개인주의자라면 가고 싶은 의식만 가고 싫은 건 안 가면 된다고 할 수 있겠지만, 살다 보니 잘 안 되거니와 꼭 그래야 할 이유도 없더군요. 내가 거부 못 하는 걸 남에게 하라고 할 수 없겠습니다.

* 공개 토론하고 있는데 굳이 쪽지로 부탁하거나, 비판하시는 분들. 좀 더 용기 내서 공개 댓글로 달아주세요. 오는 쪽지 막을 수는 없지만, 쪽지 내용은 제가 공개할 수 있음을 밝힙니다. A, B, C가 토론하고 있는데, A가 C에게 쪽지를 보냅니다. B는 그 내용이 궁금합니다. 굳이 쪽지로 보내야 할 내용이 아닌 이상(친목, 개인 정보 등등) 토론 중에는 댓글로 의견을 밝히는 게 좋다고 봅니다.

* 사료 보존과 역사 교과서. 얼마 전 비욘세가 투쟁가 수준의 Formation이란 노래를 내놨습니다. 마지막 문장은 "최고의 복수는 종이야(paper)" 입니다. Paper는 돈으로 보는 게 맞겠지만, 서류나 자료라고 본대도 그리 어색하지 않습니다. 해석이야 듣는 이 몫이기도 하니. 독일에 사는 우리는 "서류, 서면 통보, 기록에 남는 것"을 챙기는 게 내 정신건강에 중요함을 잘 압니다. 신중해야할 역사 교과서 바꾸기를 얼마나 졸속으로 처리했던지, 일베 자료가 국정 교과서 출처로 쓰인 해프닝도 있었다고 합니다. 찬성은 일베로, 반대는 민주화 버튼인 역사 왜곡하던 사이트 자료를 역사 교과서 자료로 쓴다는건, 마치 독일 정부 역사 자료에 홀로코스트 부정하는 단체의 자료를 실수로 퍼다 나르는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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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초롱님의 댓글

초롱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은 글 고마워요. 이견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굳이 옳고 그름을 따지는 테마도 아니어서 그냥 가볍게 대화하려고 들어왔어요.

그러고 보니까 저도 개인주의자에 속하는 것 같군요. 저도 자발적으로 참석한 추모식에서 다른 건 다 해도 노래만은 거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노래가 맘에 안 든다든지, 내 목소리가 별로 안 좋다든지... 이유는 많겠지요. 그래서 그런지 저는 박근혜 대통령이 추모식에서 노래 안 하는 거에 대해선 왈가왈부하지 않아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동영상을 보면 혼자 입 다물고 있는 사람이 제 눈에 거슬리지는 않지만, 그 옆에서 주먹 쥐고 힘차게 부르는 사람은 멋져 보이더군요. 언젠가 저도 저 노래를 부를 기회가 오면 주먹 쥐고 힘차게 부르고 싶어서 가끔 혼자 유투브 틀어놓고 연습합니다. 그런데 부르다가 꼭 우느라고 아직도 제대로 못 합니다. 가사가 비장하고 사연이 참 절절해요. 영혼결혼식이라니, 그렇게 진 꽃다운 청춘이라니...

태양의 후예 보셨나요? 전 ssb에게 벼라별 구박을 다 받아가며 꿋꿋하게 봤는데요. 거기서 그러더군요. 군인은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고요. 그런데 제 나라 국민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는 놈이나 거기에 복종하는 놈들이나, 군인 자격은 없는 거라고 그 해맑은 얼굴의 특전사가 말씀하지지 말입니다.

저는 제가 좋아하는 노무현 대통령을 꼬박꼬박 대통령이라 칭하기 때문에 다른 대통령에게도 늘 호칭을 붙여요. 그러나 대통령이란 호칭을 생략하고 이름만 써도 실례가 아니라는 또리님의 말씀은 맞습니다. 문학박사인 제 친구가 제 글 교정하면서 가르쳐 준 사실이어요. 대화체가 아닌 글에서 호칭 경칭을 남발하지 말라고요.

딱이 하고픈 말이 있는 건 아닌데 괜히 말 붙여보고 싶어서 두서없이 떠들다 나갑니다. 평안한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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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리님의 댓글의 댓글

또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속도 빠른 생활로 돌아오셨군요.. 긴 글도 쓰시고.
토론하고 나면 부끄럽기도 하고 배우는 것도 많고, 그렇네요. 뭣보다 비슷한 견해를 가진 사람끼리도 뜯어보면 차이가 크고, 그 차이를 이렇게 나눌 공간이 있어서 좋고요.

노무현=> 유시민 책=> 그럼 난 어찌 살 것인가를 초롱님과 나눠보렵니다.

참으로 중대한 철학적 문제는 단 하나뿐이다. 그것은 자살이다. 인생이 살만한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를 판단하는 것, 이것이 철학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다. -카뮈


죽음 덕분에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니, 내 방식대로 후회 없이 변덕 부리며 당당하게 일관성 없이 하고픈 거 하며 살자...

  • 추천 1

가아닌양님의 댓글

가아닌양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 5.18 행사는 아직 완결되지 않은 장례식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관습화되어 강요되는 국가 행사의 식순을 진행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일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에 관한 문제입니다. 이것은 야구장에서 나오는 애국가를 따라 부리지 않는 것과는 결이 다른 문제입니다. 만약 저에게 아이가 있다면, 먼저 가르쳐야 할 것은 너에게 따라부르질 않을 자유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함께 노래를 부르는 것이, 혹은 저 사람들이 저기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일 겁니다. 여기서 당위는 노래를 부른다는 행위가 아니라, 어떤 장소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갖는 의미에 대한 문제이겠지요. 당위는 언제나 존재합니다. 문제는 그 당위를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느냐겠지요.

2. 5.18 행사는 일반적인 국가 행사와는 다릅니다. 이것은 아직 국가와 분열 상태에 있는 행사입니다. 이것은 국가, 혹은 몇몇 정권이 원했던 일이기도 하고, 일부 세력이 일부러 문제화시키기를 원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5.18은 아직도 역사적 논쟁이 일어나고 있는 장소입니다. 따라서 여기에서 누군가(정치인이겠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않는다는 것은 문제가 당연히 될수밖에 없는 것이고,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일종의 정치투쟁이지요. 우리는 오히려 이것을 둘러싼 싸움을 더 강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3. 관습적인 행동을 거부하는 것은 복잡한 맥락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않는 것과 "애국가"를 부리지 않는 것이라는 대립항이 존재합니다. 좀 더 복잡한 맥락 속에서 이야기될 필요가 있습니다. 일부 보수 언론에서는 노무현대통령 추도식에서 애국가는 줄여서 부르고 "임을 위한 행진곡"은 완창을 했다는 것을 걸고 너머졌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이 나라의 정체성에 대한 투쟁 속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4. 개인주의는 개인이 세계에 대한 판단과 행동에 대한 기준이자 책임의 주체라는 자기의식을 의미할 뿐이지, 사회가 가진 당위에 대한 논쟁의 외부에 위치할 수 있는 자격 같은 것이 아닙니다. 개인주의자가 모든 것을 거부하는 것도 아니고요. 개인주의자가 사회가 부과하는 의무 앞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도 아닙니다. 실제로는 모든 것이 선택적이겠지요. 만약 내가 개인주의로서 집단적 의식을 거부하려 한다면, 논쟁적으로 집단의 의식과 싸울 수밖에 없음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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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리님의 댓글의 댓글

또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5.18은 아직도 역사적 논쟁이 일어나고 있는 장소입니다."
동의합니다.
단, 5.18만이 아니라 대부분 역사적 사건은 "논쟁이 일어나고 있는 장소"일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더 나타날지 모를 사료(각국 정부 비밀문서 등이 몇십 년 이후에나 공개되는 일은 허다하죠),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면 달라질 수 있는 "가치" 때문입니다.

5.18처럼 국내 이념 문제로 엮일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은, 중립성을 기대해 볼 수 있는 국제기관의 평가에 기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인인 독일 언론인이 빼낸 5.18 자료가 그래서 핵심 역할을 했던 것이고요. 5.18 사료 유네스코 등재 성공 또한 국제적으로 역사적 정당성을 인정받은 증거겠죠. 이런 객관적 인정을 무시하는 역사가에 대항 또한 당연히 해야죠. 단, 서류와 자료를 통해서요.

4번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용어가 조심스러워서 일부러 "그냥 편하게 개인주의자라고 불러보겠다" 썼던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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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아닌양님의 댓글의 댓글

가아닌양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5.18에 대한 역사적 논쟁의 문제는 사료의 부족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객관적 자료가 아무리 많아도, 부패한 사회는 언제나 그것을 비웃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학문, 언론, 법이 얼마나 형편없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고려한다 문제는 더욱 복잡합니다. 사료와 자료를 통한 작업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요, 그것이 부족해서 문제가 이지경에 온 것도 아닙니다. 사료와 자료를 다루는 것에 극히 관심이 없는 집단이, 혹은 그것을 왜곡 변조를 통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집단이 있다는 것을 염두해두어야 할 것입니다.  5.18은 국내 이념 문제로 엮일 수밖에 없는 사건이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가기를 원하는 세력들이 있을 뿐입니다.

이건 다른 이야기인데요. 제 생각에는 싸움이 단순한 이념논쟁인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한국에서는 단타형 댓글토론이 지나치게 주목받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혹은 사람들이 댓글을 그렇게 사용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가끔 독일 사이트에 올라온 댓글들과 비교해서 한국의 인터넷 댓글들을 보면, 지나치게 길이가 짧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한 국가 안에서 사회적 질서가 만들어지는 일은 내부 사회의 견고성에 달려 있습니다. 외부는 참고자료 이상, 혹은 지지자의 역할 이상을 해줄수가 없습니다. 이건 당위는 아니고 현실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국제기관의 평가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논쟁을 할때 계속해서 이것 국제기관에서도 인정한 것이다라는 말을 꺼내야 한다는 이야기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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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리님의 댓글의 댓글

또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제 글을 반박이 아닌 부연설명으로 여겨주시면 좋겠습니다.
"5.18은 국내 이념 문제로 엮일 수밖에 없는 사건이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가기를 원하는 세력들이 있을 뿐입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학문, 언론, 법이 형편없는 위치에 있다는 비관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번 총선 결과를 보더라도 기성 주류 언론만큼 SNS나 팟 캐스트 등 뉴 미디어 영향력이 컸고, 이걸 사용하는 인구는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겁니다. 언론에 대해 저는 좀 더 낙관합니다. 법이나 소송 또한 우리가 잘 활용할 수밖에 없겠죠. 5.18 관련 유가족 비롯해 시민단체가 일베 사용자 여럿에 소송 걸었다고 알고 있어요. 역사 왜곡 당사자에게 법적 책임을 물고 늘어지는 지루한 싸움은 필수입니다. 물론 일베보다는 일베의 후견인, 브레인이 더 중요하겠지만요. 분출구를 막을 수 없지만(막아서도 안 되고), 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작업을 지원해야 합니다.
 
한국과 독일의 댓글 문화를 비교하기엔, 두 나라 사람들이 인터넷 사용하는 강도나 목적 등등이 너무 다릅니다. 제 주변 독일인 중 페이스북, 블로그 하지 않는 사람 많습니다. 스마트 폰을 아예 쓰지 않거나, 제한적으로 쓰는 친구도 흔합니다. 한국인은 여러 사이트에서 활동하고, 동호회도 여럿, 카톡과 카스는 기본인 경우가 흔하고요.

국제기관 평가에 대해서는, 한국에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적 사실까지 뒤집히는 수가 있으므로 제삼자, 국제기관의 권위를 빌릴 필요가 있지 않은가, 이 정도로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유네스코 등재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등재를 막으려 훼방 놓은 세력도 있었고. 하지만, 이런 작업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다른 아시아 나라 투쟁의 현장에서 불리고 있지 않습니까? 국제 홍보도 좋습니다. 민주화 역사 수출도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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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리님의 댓글의 댓글

또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 제 아이가 가장 먼저 배웠으면 하는 건, 바로 건조한 역사적 사실 그 자체입니다. 무엇이 언제 어디서 왜 일어났는가. 또다시 역사 교과서 이야길 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라는 개체는 워낙 변수가 많기 때문에, 공익성을 가진 공교육이 최대한 빨리 최대한 강력한 역할을 해줘야 합니다. 가장 이른 시기에 보육과 교육을 공적 영역이 맡아 줄 수 있다면, 부모 부담도 덜고 교육을 통한 사회 정의가 그나마 실현될 수 있겠죠.

2. 정치투쟁. 이 싸움을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 그럼, 무엇이 효과적인가, 무엇이 실리를 가져다주는가를 따져야 합니다. 노래 논쟁은 미디어가 좋아하는, 그래서 더욱 부채질하는 뜨겁고 재밌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료를 남기고, 보존하고, 왜곡을 바로 잡는 노력은 길고 지루합니다.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은 Korea-Japan 이름 순서를 가져가고(명분), 일본은 실리를 가져갔습니다(결승전 개최, 경제적 이익).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걸 이해 못 하는 게 아니지만, 그게 효과적인 투쟁은 아닌 것 같습니다.

비극을 놀리고, 사실을 왜곡하고, 왜곡을 대중화시켜버린 일베 사이트가 큰 성공을 거뒀는데, 과연 학계와 전문가는 임무를 다했던가도 의문입니다. 국정 교과서 출처로 당당히 등장할 수 있었던 ilbe.com. 우리는 이것 또한 뭣 모르고 즐기고 있었던 건 아닌지.. 일베 현상을 분석하고 논문을 내고 소비하며 지적유희를 했던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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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아닌양님의 댓글의 댓글

가아닌양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 제 댓글 1번에서 교육이라는 것을 이야기했을 때 포인트는 '부모가 그런 것을 교육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교육이라는 것이, 혹은 사회의 의식이라는 것이 언제나 당위에 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니다. 실제로는 옳은 것에 대한 판단, 그래야만 하는 것에 대한 동의의 호소, 요구, 논쟁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지요. 그게 교육이니까요. 객관적 자료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을 배워야하는지에 대한 선별이 어쩔 수 없이 들어가겠지요.
-공교육에 대한 논쟁은 영역이 조금 다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공교육을 둘러싼 잡음들이 있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라는 것은 서로 동의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2. 2002년 월드컵 예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으신 것인지 정확한 지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한 문제 대신 우리가 실리적인 것을 가지고 상대방과 협상을 하면, 상대방이 그것을 들어줄 것이라는 의미인가요? 아니면 5.18행사에서 노래를 부르지 않은 것에 대해서만 언론에서 끝없이 재생산 하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인가요?

-후자라면 동의합니다. 지금 같은 언론의 작동방식과, 인터넷에서 짧은 단타성 댓글들이 논쟁의 중심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효과적이지 않겠지요. 근데 해결방법은 생각보다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전자라면 저는 "임을 위한 행진곡"과 "애국가"라는 두 개의 상징을 둘러싼 싸움이 결국 끝까지 중요한 의미로 남을 거라는 생각을 하는데요. 정치문화에 대한 투쟁들은 결국 어떤 상징들의 의미들을 곤고히 하는 싸움 아닌가요? 음 싸움이라는 표현이 문제를 있을 수 있다면, 상징들의 의미를 둘러썬 지속적인 토론과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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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리님의 댓글의 댓글

또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제가 교육 이야기를 한 건, 가아닌양 님께서 "만약 저에게 아이가 있다면, 먼저 가르쳐야 할 것은..." 이라고 하셨길래 저도 그냥 제 예를 들었던 거고요. "내 아이"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 중요합니다. 부와 건강의 대물림도 문젠데, 가치관의 대물림까지 일어나면 안 되겠죠. 그래서 내 아이, 남의 아이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이러다 공교육 얘길 한 겁니다. 5.18은 아마도 중등과정에서 제대로 다뤄야 할 사안이니.

2002 월드컵 이야기는. "제창해야 한다"는 주장의 강직함, 타협 없음, 선비 같은 느낌과도 연관 있습니다. 월드컵 공식 명칭을 한국-일본 순서로 쓰는 조건과(Japan-Korea 아니라) 결승전을 유치하는 조건을 나눠 가진 예를 든 겁니다. 한국은 명분(이름)을 택하고 일본은 경제적 이득을 택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에요. 노래 제창이라는 형식은 저에겐 명분 같습니다. 물론, 명분만이 아니라는 여러 반론 이해는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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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쓰고 나니, 제가 가아닌양 님 질문을 잘못 이해하고 썼네요.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한 문제 대신 우리가 실리적인 것을 가지고 상대방과 협상을 하면, 상대방이 그것을 들어줄 것이라는 의미인가요? 아니면 5.18행사에서 노래를 부르지 않은 것에 대해서만 언론에서 끝없이 재생산하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인가요?"

둘 다입니다. 물론 5.18은 협상의 대상이 아닙니다. 왜곡을 막는 효과적인 방법이 문제죠. 역사 바로잡기도 사회운동이라는 측면에서 다른 사회운동인 여성운동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법 조항을 바꾸고, 임금운동을 벌이는(같은 일에는 같은 임금) 이런 걸 실리적인, 그리고 중요한 과제라고 보겠습니다. 하지만 상징, 명분, 단발성, 말초신경적인 논쟁에 큰 에너지를 쏟는 일도 많습니다. 제가 비욘세 노래 예를 들었는데, 노래가 나오자마자 여성계, LGBT 쪽에서 마치 입이라도 맞춘 듯 비욘세를 칭송하더군요. 진지한 언론, 여성학자까지 가세하는 걸 보면서, 한편으론 좀 게으른 것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쉽고 재미있는 화젯거리엔 너도나도 적극적인 것도 같았고요.

제창 논쟁에 쓰는 에너지, 다른 데 쓰자. 이게 제 입장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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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elie님의 댓글

Noeli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동안 또리님의 글을 읽어 온 사람으로서, 또리님은 독일에 살고 계시고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은 분인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독일에서 "가장 강한 권력"이라는 말이 있는 언론과 예술에 있어 "표현자유의 절대 보장"이라는 가치를 존중하시고, 어쩌면 동경도 하시고요. 표현의 자유에는 내가 내 의사를 표현할 자유, 받아들이는 자유뿐 아니라 거부할 자유도 포함됩니다. 원칙적으로는 또리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유가 이토록 발달된 독일에서도 여러 가치가 상반될 때, 간혹 소식 들으셨겠지만 죽은 이의 인권보호와 표현의 자유, 특정 가치나 종교의 자유와 개인의 표현의 자유에서 딜레마가 생기면 최고 연방 법원까지 가고, 판결 이후에도 사회 곳곳에서 격렬한 논쟁이 생기곤 합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또리님은 분명 한 역사적 가치를 절대적으로 존중하나  "그 형식의 하나인 노래는 거부할 자유가 있다",  "이것도 존중되어야 할 각 개인의 자유다"라고 주장하시지만,  현재의 정치, 사회적 상황에서는 "노래를 거부하겠다" = "역사의 가치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것일 뿐이다"라고 인식됩니다. 뿌리가 깊은 이 아픔의 원인이야 일일이 서술할 필요가 없겠고요. 한 가지 답이 나오지 않는, 끝없는, 위험한 논쟁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 딜레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 상황을,  지금 저는 이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시대인의 아픔이라고 표현하겠습니다.

그러나 모든 존중되어야 할 가치에 깨어있는 이들이 많을 수록, 다음 세대가 살아갈 세상을 위해서 좋습니다.

  • 추천 3

또리님의 댓글의 댓글

또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노엘리님, 반갑습니다! 마지막 문장이 참 와 닿습니다.
"모든 존중되어야 할 가치에 깨어있는 이들이 많을 수록, 다음 세대가 살아갈 세상을 위해서 좋습니다."

  • 추천 1

친절한시선님의 댓글

친절한시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제가 보기엔 어떤 개인성격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꼭 소리를 내고 불끈 쥔 주먹을 들었다 내렸다 하지 않는다고 해서 노래 부르지 않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 거 불편해서 잘 못하는 사람도 많아요.
물론 저는 큰 소리로 노래 부르고 비장한 표정도 짓고 몸동작도 크게 할거에요.
많이 해 봤으니깐. 처음엔 물론 저도 민중가요 합창하고 그럴 때 엄청 어색했던 기억납니다.

근데 어쨌건 내 옆엣 사람이 하.등.가.말.등.가 저는 관심없어요. 저도 상당히 개인주의자라 생각하거든요.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그냥 갈 사람만 같이 갑시다. 괜히 들러 붙어서 귀찮게 하지 말긔 !
그런 식이죠 저는.

그리고 무엇이 언제 왜 일어났는지를 따지며 역사의 구조를 자기 내면에 짜 올리는 작업은 그 사람의 인생에서 대단히 위대한 부분일 겁니다. 풍부한 수분과 열기가 동시에 필요하죠. 건조한 상태에서는 파편같은 역사 지식들이 잘 연결되지 못할거에요. 촉촉하게 짝 들러 붙지 못하면 무조건 외워야 되잖아요. 그러면 재미없고 지루하고 지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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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리님의 댓글의 댓글

또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성격의 문제라기보다, 성향의 문제 같습니다. 데모와 투쟁의 경험 부족도 큰 이유겠죠. 운동권 바로 뒷세대인 저는 간접 경험으로만 열기를 느낄 뿐이죠. 2008년 촛불 정국 때는 이미 독일에 살고 있었고요.

건조한 역사라는 표현은, 5.18을 각자 부모에게 듣는 것보다는 개인의 성향, 이념에서 좀 더 중립적인 공교육에서 배우는 게 낫지 않은가, 하는 의미였습니다. 음, 그런데 제 입장을 꿰뚫는 분이 친절한 시선님이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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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시선님의 댓글의 댓글

친절한시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글쳐글쳐 성향. 안그래도 아침에 성격이란 단어 쓸 때 이게 아닌데 싶긴했습니다 ㅋ.
그리고 솔직하게 말씀 잘 해 주셨어요. 제 생각에는 또리님이야 말로 어느 순간에 훅! 득도하실 것 같습니다. "도그마에 빠져선 안돼. 도대체 그 사건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거야?" 이런 기본기를 갖고 계시는 냄새가 물씬 풍기거든요. (냄새....-_-.... 이것도 좀 이상한데.....)

518 직전에 10만 386 운집이 있었다는 것 (물론, 그 때는 386이란 단어가 없었지만), 전두환 직전에 박정희가 피살당한 것, 그때 거대한 부산마산 항쟁 중이었다는 것, 부마항쟁은 박정희 경제실패에 대한 국민들의 최종적 반응이었다는 것, 박정희는 전쟁후 가장 빠르게 성장하던 부산과 마산을 고의로 꺾어 버렸음, 등등등.

518은 단순히 민주주의를 열망한 시민들이 참다참다 갑자기 뚝! 터져 나온 것이라고만 인식될 문제가 아닐거에요. 저는 오히려 저 민주주의라는 말이 518의 진짜 모습을 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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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elie님의 댓글

Noeli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518기념 의식 순에 이 노래를 "제창"으로, 아니면 "합창"으로 할것인가를 놓고 정계, 국론이 분열되어 있습니다. 벌써 몇 년째, 주요 시민단체들은 기념식 참가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제창이라고 되어 있으면 기념식 참가자들이 같이 부른다는 것이고, 합창은 합창단이 부르면 참가자들 중 원하면 같이 따라 부른다는 것입니다. 518시민단체, 야당과 일부 여당 의원도 내년에는 합창이 아닌 제창으로 정하고 말겠다는 의지를 확인했습니다. 합창은 518의 정신 폄훼, 거부로 평가됩니다.

왜 노래 한 곡의 한국의 합창과 제창의 의미가 이렇게까지도 크고 다른 것일까. 어떤 개인적인 의도에서 식장에서 노래를 따라 부르지 않는 사람은 518 정신 거부자, 정치인의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까지 생각할까. 

그 원인에 대해, 지금 컴을 열었는데 나가봐야 해서 오늘 밤이나 내일 다시 들어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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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시선님의 댓글의 댓글

친절한시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러니까 이것이 웃긴 일이라 이거죠.

또리님의 마음은 이런 것하고는 별 상관이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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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elie님의 댓글의 댓글

Noeli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하나의 노래, 혹은 하나의 노래를 같이 부르는가 아닌가 같은 단순한 행위가 특정 역사적 사회적 상황에서는 무한한 의미를 지닌 상징이 될 수 있습니다. 과거 80년대까지 중국에서는 소위 서양 고전음악을 연주하거나 부르면 인민재판에서 사형을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베토벤의 "너를 사랑해" 라는 한 여인에게 단지 애정을 표시하는 노래 때문에 사람이 죽어야 한다니? 문화혁명이후, 20세기 초반 이전에 서양에서 만들어진 음악은  노동자의 적인 자본가, 착취계급의 전유물의 상징으로 여겨져 금지된 탓입니다. 90년대부터는 서서히  바뀌었지요.  지금은 독일 음대도 중국학생들이 많이 있으리라 짐작됩니다.

 이 예는 지금 임을 위한 행진곡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한 노래가 사회적으로 무한한 상징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로 든 예일 뿐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선을 긋고 글 새로 시작.
........................................................................................................................................

임을위한 행진곡 제창이 한국 사회에서 왜 그렇게 큰 의미를 지니는 가는 따로 서술할 필요도 없겠고 저 위에 가아난양님의 글에서도 써주셨고요. 

이 가운데 또리님은 말씀하십니다. 역사적 가치는 인정하나 그러한 한 형식에까지 절대적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은 개인주의자로서 부르지 않을 자유도 인정해야 한다고. 이런 주장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한국처럼 사회에 골이 깊게 파여 있는, 아픔이 많은 사회에서는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는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안타깝기도 합니다. 그만큼  하나의 노래 뒤에, 드러나지 않는 의미에다가 절대적 가치를 두는 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떻다고? 이 다음은 제가 맨 처음 쓴 댓글의 내용으로 이어집니다.
…………………
또 하나 첨가. 제가 이 게시판 갑자기 댓글로 뛰어든 이유는 어떤 특정 제 개인의 주장을 밝히고, 싸워서라도 옹호하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베리에서 저는 그러한 글은  쓰지 않으며 제 역할도 아니랍니다. 단지 사회적 역사적으로 보면 이렇다는, 토론 중  Moderatorin으로 나타난 노엘리였슴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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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야님의 댓글

미키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 글의 이야기가 현실로 성사되려면 5.18 민주항쟁 당시 시민들에게 총을 쏜 군인들과 명령을 내린 지시자들 그리고 그 당시 군부독재 세력들에게 협력했던 군인,정치인, 지식인, 언론인 그리고 그 외 모든 사람들이 깨끗하게 척결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완전한 해결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힘들것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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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리님의 댓글의 댓글

또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미키야님 의견에 반대할 수가 없습니다. 당연히.
사실 제가 따로 답글을 열어 생각을 이렇게 정리해본 것도 미키야님 입장에 대한 제 해명 같은 거였고요.
내 뱃속 느낌이 그렇지가 않은데(따라 불러야 한다??), 이걸 주장하면 5.18 왜곡 쪽에 힘을 실어주는 게 되나? 노엘리님 표현대로 딜레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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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야님의 댓글의 댓글

미키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진정한 개인주의 사회(이기주의가 소멸된)에 대한 열망은 저 역시 또리님 처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더욱 5.18항쟁을 기리는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한 제창에 적극 찬성하고 있고요.

또리님의 의견은 충분히 공감하며 또 찬성합니다. 

5.18을 비롯한 과거사가 깨끗하게 청산이 된다면!
정말로 우리나라가 민주공화국이 된다면, 분명 또리님의 의견이 반드시 현실로 이루어 질 것 이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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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시선님의 댓글

친절한시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한국에서 그런 마찰이 있는 건 저도 알고 있었죠. 근데 그건 쪼잔한 무리들이 늘상 해 오는 딴지걸기, 이상한데서 의미 부풀리기 같은 꼼수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실제 체감하기에는 이 노래 자체가 그렇게 막 사람들을 달아 오르게 하고 그런다기 보다는 518을 위해 사람들이 모인 그 자체가 위력있어요. 그런 다음에 이 노래를 같이 부르기 시작하면 증말 훅훅 달아오르죠. 므악 소름 돋고 악받치기도 하고 이어서 다른 노래 또 부르고싶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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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시선님의 댓글

친절한시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리고 어차피 편하게 이야기 하는 자리라 드리는 말씀인데 최루탄까지는 눈물 콧물 질질 흘리며 꾸웩꾸웩 어찌 견디겠는데 곤봉으로 "해골 까고" 우와... 직격 최루탄도 아니고 살상용 실탄을 사람을 향해 쏜다면 저는 못합니다. 고백컨데 저는 해골까이고 포기했습니다. 그러니까 정말 518 저항이란 것은 저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현대사구요 그때 제가 부산에서 초등학교 다니며 한국땅에 살아 있었다는 사실도 믿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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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롱님의 댓글

초롱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와우, 오늘 날씨가 좋아서 자전거 한바퀴 더 타고 왔더니 이렇게 좋은 말씀들을 많이 써 놓으셨네요. 전 이래서 베리가 좋아요.

여러분들의 정성어린 댓글을 열심히 정독하고 나서 갑자기 든 생각: 옛날에 이 노래가 제창이었을 때도 부르고 싶은 사람만 부르고 부르기 싫은 사람은 안 불렀더군요. 동영상 보니까. 그리고 지금 합창으로 되었는데도 부르고 싶은 사람은 따라 부르고요. 제창이든 합창이든 결과는 어차피 똑같네요. 근데 이걸 관습화되어온 제창에서 굳이 합창으로 바꾼 사람들의 의도가 좀... 너무 속이 보이는데 그 속이 너무 좁아요. 노엘리님은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미키야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그 당시 군부독재 세력에게 협력했던 군인, 정치인, 지식인, 언론인 등 모든 일반인 협력자들에 대한 철저한 단죄가 이루어져야 진정한 역사청산이 이루어져 재발의 고리가 끊길 것입니다. 가아닌양님이 지적하시는 작금의 현상은 역사청산이 얼마나 시급한지 보여주고 있지요. 가아닌양님, 잘 읽었습니다.

친절한시선님 덕분에 이 노래가 불리던 시위 현장을 떠올렸습니다. 518의 광주는 상상할 수 없는 두려움의 현장이었겠지요. 그런 자리에서 내 자식들보다 어린 청소년들이 죽기를 결심하고 민주주의를 지켰다니... 

또리님, 인생이 살만한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를 판단하는 것, 이것이 철학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라고 했다는 카뮈의 말에 동의하시나요? 그게 철학의 근본적인 대답인지 아닌지는 제가 모르겠으나,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해요. 우리는 그냥 사는 거 아닌가요? ^^ "내 방식대로 후회 없이 변덕 부리며 당당하게 일관성 없이 하고픈 거 하며 살자..." 좋아 좋아~

베리님들 덕분에 공부 많이 했습니다. 밤마실 나와서 횡설수설하다가 다시 들어갑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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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리님의 댓글의 댓글

또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언제 한번 카뮈의 말에 관해 토론해보고 싶네요.
저는 2년 전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뒤로는, 한쪽 귀퉁이에 죽음에 대한 생각을 포개 놓고 삽니다. 죽음을 늘 염두에 두고 사는 삶이야말로 값진 걸 테니까요. 그래서 모순 투성이 나를 편하게 생각하자, 일관성 그냥 버려 버렷! 이렇답니다. 나도 꼭 "죽기 전 장례식"을 열고 싶고요.

좋은 꿈 꾸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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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elie님의 댓글의 댓글

Noeli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초롱님
안녕하세요. 오늘 비 정말 엄청 왔지요? 베리에 오래간만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제게 질문을 하셨지만 뒤로 미루고, 조금 딴소리, 제가 아는 어느 한  할아버지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분은 젊은이들과는 아예 처음부터 말이 안 통하는, 극단적인 보수성향의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언젠가 그분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그분 개인의 이야기라 이곳에 쓰기는 뭐하고, 비슷한, 어느 작가가 6.25때 경험을 토대로 쓴 소설의 한 대목을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어느 시골 동네 소학교에서 인민재판이 있었습니다. 오랏줄에 묶여 앞에 나온 사람 중에는 순경의 아내도 있었는데, 그녀의 죄목은 남편이 순경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구경꾼이 운동장에 가득 모여있고 장정들이 장작으로 그녀를 패 죽이는 데, 그녀가 피투성이가 돼서 쓰러질 때 구경꾼 사이에서 한 네 살쯤 된 계집아이가 뛰어나와 피가 낭자한 순경 아내의 허벅지에 감기며 엄마하고 울면서 쓰러집니다.

물론 당시 이런 비슷한 경험은 많은 사람이 했기 때문에 특별한 것도 아닙니다.

저는 사람들 앞에서 맞아 죽은 어머니도 그렇지만, 피묻은 엄마 다리를 껴안았던 네살 배기 소녀가 그 후 한반도에서 50, 60, 70 년대를 거치며 살았던 삶이 어떤 것이었을까를 상상해 봅니다. 제가 위에 쓴 그 할아버지도 비슷한, 그러나 훨씬 더한 경험을 하신 분이었습니다. 저는 그 할아버지에게 "사리분별을 못 하는 가스통 영감이니 선거  때 제주도 보내서 투표만은 못 하게 막아 좋은 나라를 만들자"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50년대도 아닌 80년, 한국의 한 대도시에서 아들이 억울하게 처참한 죽음을 맞은 것을 알면서도 혹시 돌아오지 않을까, 30년이 지나도 밤에 대문을 못 잠그는 어머니 보고 융통성 좀 있어 보라는 말씀은 드리지 않습니다.

사실 아픔으로 치자면 20세기 들어서도 우리가 살고있는 서양, 유럽에서 반인륜적인 두 번의 세계 대전이 있었고, 당시를 살았던 사람의 고통은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 이후 이들은 이 사회를 그래도 어느 정도 살만한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중세 이후 발전하며 쌓여 온 정신적 가치라는 탄탄한 지하실 위에 집을 지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서양에서도 역사적으로 물질문명, 과학과 기술의 발달이 사회구성원들 의식의 발달보다 앞섰습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에 서양에서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발명과 과학기술의 발달은 우리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전체 의식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에 그 괴리에서 생긴 부작용이 인류 사상 최악의 두 번의 대전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이들은 어느 정도 복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한반도에 살던 사람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했습니다. 맨손으로 벤 나무를 엮어 맨땅에 집을 지었습니다. 남들은 기적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크고 아름다운 집을 잘 지었다고 한숨 돌리고 나서 보니 여기서 금이 가고, 저기서 물이 새고, 어떨 때는 이놈의 집이 아예 무너지지 않을까 절망의 절규를 하기도 합니다. 지하실이 튼튼하지 못하다 보니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드러나지 않아도 내면 깊숙한 곳에 깔려있는 그 많은 아픔들을 저도 느끼며, 저렇게 깊은 골이 파여 서로 적대하고 불신하는 지금 이 우리의 모습도, 결국 겪어야만 할 역사의 과정이구나 생각하며 늘 깊이 주시하고 있습니다. 눈에 띄지 않게 그래도 그 집을 정성스럽게 보듬는 사람들도 지켜보며.

아마 제글을 읽고 그렇게 생각하실 것 같습니다. 한국정치 이야기 하자는 데,  은하계 밖에서 천문망원경으로 한반도 땅을 관찰하는 듯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요. 네 그렇기도 합니다. 상세한 한국사회 이야기는 언젠가 초롱님과 한 번  물소리 나는 개울가에서 만나 밤을 새우며 한풀이 한 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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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시선님의 댓글의 댓글

친절한시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럼 이제 어쩌면 좋지요? 땅위의 집을 살짝 옮겨 놓고 지하실 새로 만든 후 다시 가져다 놓을 수도 없고 ... 완전히 다른 집을 지어 옮기는 것이 낫겠네요. 물론 그 새 집은 지하실부터 튼튼히.

궁극의 긍정적인 마인드로 이야기 하자면, 어쩌면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지하실 짓고 있었는지도 몰라요. 1000년 정도는 넉근히 나갈 집을 지으려고. 물론 저는 이렇게 많은 희생을 요구하는 신과 역사를 동시에 미워합니다. (-_- ..... 신은 귀가 간지럽겠다 뜬금없이.....)

Noelie님의 댓글의 댓글

Noeli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모인모인! 친시님
저도 긍정적인 마인드입니다. 집도 세워놓고 우리는 지금 탄탄한 지하실을 짓는 과정에 있다고 봐요. 오래 걸리는 일이지만 우리 세대, 다음 세대들을 거쳐서 이루어 지겠지요. 물론 숱한 시행착오도 겪을 것이고요. 총체적으로 사회 전반에 걸친 모든 분야에서 각자가 자기가 맡은 단단한 벽돌장 하나씩 쌓아 올리는 작업이니까요.

말씀을 듣고 보니, 그 누구더라, 아우슈비츠에서 생존할 수 있었지만 그 후 자신은 무신론자가 되었다고 인터뷰에서 말한 유명한 작가가 떠오릅니다. ..... ....

티나님의 댓글

티나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은 글들 잘 읽었습니다ᆞ
이야기가 얼추  정리된 듯 해서 뜬금없이 몇자 적어봅니다ᆞ

요새도 kbs가요무대 방송을 늦은 밤에 하지요?

어릴적에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옛노래를
매일 감격스레 따라 부르는 옆집 아저씨가 이상했지만
이제 나이들어 지나고 보니
노래는ᆢ
그냥 노래가 ᆢ아니었습니다ᆞ

ㅡㅡㅡㅡㅡ
대학입학해서 강의실보다 거리에서 더 오래 있었고
전공서적보다 대자보와 유인물 작성에 시간가는 줄 모르던 시기였습니다ᆞ

6.10민주화 항쟁으로 전두환에서 노태우로 대통령이 바뀌기까지 
서울의 주요 거리 거리에서 작은 전쟁을 치루며 불렀던.
 일종의 군가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었습니다.

이제
이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이 노래를 불렀던.
아니 목이 터져라 수없이 외쳤던.
그 때 그 시절 그 사람들이 끝없이 기억나고
그때 자신이 어느편에 서 있었던가를
지금은 어느 편에 서 있는가를 자각하게 하고
과거에서 튼튼히 이어진 현재를 보여주는 거죠.

(자신의 의지를 담아 )부르지 않았다기보다는
(자신의 의지로는 도저히)부를 수 없었다는게 더 나은 표현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해봅니다ᆞ

군화에 밟혀도 곤봉에 맞아 죽어도 찍소리 못했던.
민중의. 국민의.시민의. 소시민 뿌띠부르조아라 칭하던  아랫것들이
어느사이에
어느장소에서나
늘 부르던 그 노래를

그 단단한 바위같은 함성을
그 파도같은 무리들을
종국에는
역사를 확 바꾸던 그 때를.

끔찍해서 
기억하기도 싫었던
그 기억을 살리는
그 노래를 어떻게 부를 수 있었겠습니까ᆢ

  • 추천 2

초롱님의 댓글

초롱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노엘리님, 친시님 방가. 수다떨 기회를 매일매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중. 티나님 글 읽고 깨달은 게 있어서 언제 한번 들르려던 참이었어요. 이번 주 내로 기필코 접속하리다. 좋은 밤.

초롱님의 댓글

초롱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노엘리님도 김원일의 부망기를 읽으셨군요. 반가워라. 저는 그 소설을 참 좋아해서 여태까지 거짓말 조금 보태서 백 번쯤 읽은 것 같아요. 전 좋아하는 책을 몇십 년 동안 반복해서 읽으며 두고두고 즐겨요.

여러 분들과 대화하며 생각이 좀 정리 되었는데 마지막에 티나님의 글을 읽으며 확신이 들었어요. 임을 향한 행진곡은 특별한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만이 주먹을 부르쥐고 가슴 뜨겁게 부를 수 있는 노래라는 걸요. 최류탄이 터지는 속에 서로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며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함께 노래 부르던 특별한 경험...

그런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에게 이 노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동시대를 살았어도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해를 못하니 괜히 불편해지고, (자존감의 부족으로) 혼자 뻘쭘하게 서 있기 민망하니 다 같이 부르지 말자고 떼를 쓰거나 아예 없애려고 드는 거겠지요. 공감능력의 부재이기도 하고, 민주화운동으로 손해 본 사람들의 심술 또는 계략이기도 하겠지요.

저는 우리나라에 참 자랑스러운 게 하나 있어요. 국민이 탄압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존엄성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는 용기요. 1986년 필리핀에서 민중이 들고 일어나 독재자 마르코스를 축출했을 때 서방에선 아낌없는 존경과 찬사를 보냈었지요. 대한민국의 419 혁명은 대체 언제 일어난 일입니까? 까마득한 1960년의 일이지요.

4대강사업 때 독일의 가장 큰 환경단체인 BUND 대표 바이거 교수가 한국에 다녀와서 자기네 회원들에게 역설했어요. 진정한 투쟁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한국에서 보고 왔다고, 독일인들도 배워야 한다고요.

얼마 전에 뮌헨에서 "위로공단" 영화가 상영되어서 남편과 함께 보고 왔습니다. 1970년대 험악했던 노동운동의 실지 현장을 영상으로 볼 수 있었어요. 남편이 나중에 참 이상하다고 그러더군요. 절박한 상황인데도 사람들이 북 치고 장구치며 웃는 모습을 보이더라구요. 무서운 순간에도 그렇게 노래하며 투쟁하는 언니들이 전 참 자랑스러웠습니다.

친시님과 노엘리님이 지하실 얘기를 하시는데 저는 이런 게 바로 대한민국의 지하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답니다.

모두 좋은 밤 보내세요.

친절한시선님의 댓글의 댓글

친절한시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존엄성을 위해  끊임없이?

... 뭔가 찝찝한데 ...

근데 518은 맞아요. 숭고한 '존엄'을 위해 맞선 저항의 정점이에요. 아무것도 비교 못합니다.
임을위한 행진곡은 참 명곡이고요.

70년대 험악했던 도시 노동현실은 결국 새마을운동과 정경유착의 산물이라고 봅니다.
도대체 박정희가 단 한번이라도 한국경제를 살렸던 적이 있으면 그게 언제인지 누가 좀 가르쳐 줬으면 좋겠습니다. 더군다나 80년대에는 주변 나라 우두머리들 앞에서 으스대느라 통크게 이것저것 다 사주면서 나랏돈 펑펑 쓰더니 나라가 엉망진창이 되잖아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합치면 일제시대보다 더 길어요.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오직 그 시절의 부와 권력을 회상할 뿐입니다. 그런데 그 둘이 선거를 통해 당선었다는 것이 함정~. 근데 두 사람 다 뭐~언가 선거과정에서 너무 심한 자충수를 둔 것 같아서 곧 반전~. '내가' 라는 주어 없이 BBK 를 세웠다라고 말했으므로 그가 BBK 를 세웠다고 할 수 없다. 정말 그날 100분 토론 보고 받은 정신적 충격이 아직도 그대롭니다. 그 이명박 대변인 이번 20대 국회의원 선거 지역구 당선되셨잖아요. 무려 4선의원입니다. 한국인들이 자기 존엄 앞에 얼마나 무지한지를 보여 주는 단면이기도 하구요.

초롱님의 댓글의 댓글

초롱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아, "주어 없다" 발언이요. 그 저열함과 유치함에 저도 정말 충격 받았고 아직도 그 충격에서 못 벗어나고 있어요. 우리나라 정치계의 수준을 땅으로 떨어뜨린 사건이지요.

아이쿠, 그건 그렇네요. 그 사람이 아직도 많은 시민의 신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돌아보니, 한국인들이 자기 존엄 지키는 일에 선진국민이란 말 하기가 쫌 낯뜨거워졌습니다. 옙, 그대가 이겼습니다!

친절한시선님의 댓글의 댓글

친절한시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크게 보면 모든 저항이 다 자기 존엄을 지키려는 의밍하 연결되겠지만 구체적으로는 오히려 '밥' 과 더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여기서 밥은 뭐랄까요, 내 배를 (욕망을) 채워주는 것들을 대표한다고 보면 되겠죠. 우리가 성토하는 그들에게는 저항하는 자들이 민주주의를 외치면 외칠 수록 더 유리합니다. 왜냐하면 누구도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모르거든요. 불분명한 목표에 매몰되도록 몰아 놓고 뒤로는 밥을 싹 챙겨가지요.  인간의 존엄이란 또한 무엇인가요?  밥이 좋은 예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항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밥을 쫒는 그 즉물적인 마음을 맨 앞에 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저항하는 자들은 그 저항에 관념적 명분을 부여하는 자들을 존재케 하기위한 민중으로 관념적 격상 되지요. 민즁~~~에 넉씨 쥬우인데는~ 차암 세상 쟈유 위~하여 .... 임을 위한 행진곡 만큼이나 명곡이지만 이곡 역시도 뭔가 감정이입하기 부담 스러울 수 있습니다.

초롱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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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베를린에서 "위로공단" 상영해요. 두 번 다시 없는 기회이니 많이 가보세요. 정말 좋아요. 

-때 : 6월 15일(수) 18시
-곳 : IG Metal Berlin Alte Jakobstr. 149 10969 Berlin
-영화: 독일어 자막 / 행사 : 한국어, 독일어 동시통역
-입장료 없음

상세정보는 여기에 --->
http://www.berlinreport.com/bbs/board.php?bo_table=event&wr_id=14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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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elie님의 댓글

Noeli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간혹 한국의 작은 언론사에서 그런 기사들을 쓰지요. 독일과 한국을 비교해서 "독일은 전후, 탁월한 정치가들이 나라를 이만큼 만들어 놓았는데, 한국은 정계에서 물러나면 감옥 가는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있다가 나라를 망쳐놓았다"고.  그렇다면 하늘나라에서 어떤 신이, 옥황상제가 착하고 재주있는 누구는 독일수상으로 보내고, 부패한 누구를 골라 한국으로 내려 보냈을까요. (Nongdam입니다....;; ) 아니지요. 국민들이 선거로 뽑습니다.  그러면 어느 나라 국민들은 독일국민처럼 사람보는 안목이 있고, 한국인은 안목이 없어 감옥 갈 사람을 뽑았을까.  아니지요. 사람이란 다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예로 북한이나, 소말리아나 아프가니스탄의 국민들이자신들의 손으로  스웨덴같은 나라를 만들려면 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그렇다면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

중세 때까지만 해도 서양은 결코 앞서있던 사회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우리가 있는 독일을 보면 금속활자가 실용화되고, 320년 전에 최초의 일간지가 생겨나고, 커피집 (이 커피집은 민주시민사회 형성의 장소로 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이 등장하면서,  일간지를 놓고 누구나 토론에 참여하는 장소가 생겼습니다. 프랑스 혁명의 이상은 유럽 전체의 가치를 바꾸어 놓기도 했고, 산업혁명 이후, 많은 시민들이 혹독한 고난을 겪으며 사회보장제도라는 것이 탄생합니다. 수 백 년  동안 사회가 총체적으로 발전하면서 같이 체계가 잡혀 간 것이 소위 지금의 서양의 민주주의입니다. 즉 오랜 시간에 걸쳐 폭넓게 누적되는 사회 전체의 의식과 가치관이 생겨나고, 그 사회 안에 태어나는 사람은 그 의식 속에서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과정이 전혀 없었고, 이들이 만든 제도만 급급히 들여왔을 뿐입니다.

그러다 보니 민주주의는 동양에서 발전한 것이 아니고 그런 가치는 필요도 없다는 싱가폴 정치가, 학자들의 주장도 있었습니다. 개인주의적인 서양식 민주주의가 아니라, 유교적 군자에 의한 어진 독재가 답이라는. 한국의 김대중씨는 개소리 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사실 민주주의란 처칠이 유머스럽게 말했듯 "가장 나쁜 제도, 다만 지금까지 있어왔던 다른 모든 제도는 예외로 하고"일 뿐입니다. 잘 시행되기 위해 오래 시간에 걸쳐 형성된 시민의식, 경제수준 등  많은 전제가 필요한 제도이기도 하고요. 70년대는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쉽게 말하는 중,북 유럽, 북미 등 제 1세계만이 민주제도가 어느 정도 움직이던 사회고, 지구의 거의 대부분의 사회는 독재치하에 있었습니다. 역사의 발달 과정에 속하는 일이지요. 한국은 물론 아직 성숙한 단계는 아니고 갈길이 아직 멀지만 그래도 이만큼 이루어 놓았습니다.....

친절한시선님의 댓글의 댓글

친절한시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안뇽ㅎ세요 노엘리님.
글 주욱 읽고 나니, 말씀하시는 민주주의란 바로 절차적 민주주의를 말씀하시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서양이 오랫동안 민주주의 제도를 확립하기 위해 쌓아 온 경험이 분명히 한국에는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또 놀라운 것은 419 아닙니까? 대강 시간을 되짚어 보면, 45년에 해방되었지만 남한은 사실상 내전상태나 마찬가지였지요, 50년부터 3년 동안 전쟁했지요, 전쟁후 제대로 정신차릴 틈도 없이 이승만 독재가 다시 기승을 부리며 먹고 사는데 급급하며 5-6년 후다닥 지나갔잖아요. 그 여유 없는 틈에 한국 사람들이 특별 학습을 했는지, 민주주의 의식의 쩜프!가 일어났어요. 419 혁명후 곧바로 의원내각제 시작하고 지역자치(지방은 정말 잘못된 명칭) 시스템 구축하잖습니까? 이런 것을 보면 한국이 또 서양의 민주주의 제도만 급급히 답습했다고만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그렇습니다. 물론 1년을 채 못가서 박정희가 전투화 발로 자근자근 밟어 버렸지만.

정말 한국은 이해하기 어려운 나라입니다. 나도 한국 사람인데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Noelie님의 댓글의 댓글

Noeli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현대사에서 경제 못지않게 민주화를 이렇게 이룬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입니다. 친시님 말씀대로입니다. 마치 반에서 꼴찌 하던 아이가 과외도 없이 노력으로 순식간에 2등하는 정도라고 할까요. 그러나 그러자면 사람이 얼마나 진이 빠지고 골병이 들었을까, 지금의 한국사회는 그 후유증을 앓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당장은  눈에 뜨이지 않으나 생략하고 만 기초도 많을 것이고요.

아,  제가 언급한 사회 전체의 의식이나 사고방식이라는 부분에 부연이 필요하겠군요.  예를 들면 이런 것인데요. 과거에 만연했던 공직자의 부정부패도 단지 한 개인의 부덕을 넘어 뿌리가 깊습니다. 과거 농경사회 유교적 의식구조에서는 사회관계 자체를 부모와 자식, 임금과 신하등의 사적인 관계로 보았습니다. 임금을 섬기고, 아랫사람을 돌보며,  효도를 최고의 덕목으로 알며 사는 사람은, 한 개인으로는 좋은 사람이었겠지요. 그러나 공적 영역의 확립이 시민사회의 기초일진저,  공적 영역이 사적 인륜관계 아래에 있다고 생각하는 농경사회적 윤리는 소위 서양에서 근래에 발달된 법치주의와는 맞지 않습니다. 이미 100여 년 전에 한중일 동양의 학자들은 진정한 근대화를 위해서는 공적 영역의 확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논리를 폈고, 이런 사적 관계에 기초한 의식구조 위에 서양의 물질문화, 제도들이 들어 오면 큰 혼란이 올것이라고 내다 보았습니다. 어느 정도는 예상이 맞아 떨어지기도 했고요.

긍까 (이 표현, 옛날에 친시님께 배웠음), 과거 60, 70년대에는 시골에서 올라와 고학하면서 차린 슈퍼마켓이나 복덕방이 잘 돼서 고향 후배들 대학 등록금 대어주는 일들도 드물지 않았지요. 어려울 때 이렇게 지내던 선후배, 향우들이 나중에 정치경제분야에서 한가닥씩 하면, 그때는 의리를 지키려 듭니다. 은혜를 갚으려 들고, 약값을 바치고, 후배 뒤를 봐주고. 그러나 정치가, 경제인들이 그렇게 하면 우리는 그것을 부정부패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인의염치하는 미덕이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한국도 이런 사회는 지나갔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아직 사회 곳곳에 드러나지 않게 민주사회에 맞지 않는 구시대적 사고방식의 흔적은 보입니다. 실은 아직은 그것은 당연한 것이고요. 

친시님 말씀대로 수 많은 학생 시민들의 희생덕에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얻었고, 실천 하게 되었고, 시민 사회 의식도 빠르게 성숙해 가고 있지만 아직은 완전히 탄탄하지 않다는, 대충 그런 의미였답니다.

늘, 일 년에 몇 번씩 한국에 가고 싶은 노엘리입니당.. 친시님 초롱님 모두 건강한 여름 보내세요…

친절한시선님의 댓글의 댓글

친절한시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래용. 종종 연락하다보면 한국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

// 아, 그리고...

"이미 100여 년 전에 한중일 동양의 학자들은 진정한 근대화를 위해서는 공적 영역의 확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논리 ... ... " 당시의 이런 분위기를 노엘리님이 알고 계신다는 사실이 촠흠 놀랍습니다. 특히 일본은, 조선과 중국의 훌륭한 벤치마킹 대상이었던 적이 분명히 있었거든요 ... 물론 그 때는 서~~~~~얼마 일본이 처들어 와 자기들을 개차반 낼 줄은 꿈에도 몰랐겠죠. 그런데 일본도 제국주의 시절, 달리지 않으면 쓰러지는 자본주의 모순이 아니었으면 굳이 그렇게 무리해서 조선을 식민화하려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또리님의 댓글

또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6.25 이후 미국과 너무 가깝게 지내다 보니, 특이하고 역동적으로 발전한 면이 있지 않을까요? 최고 우방이 미국이 아니라 예를 들어 서유럽 어느 나라였다면 어땠을까. 한국을 발전시킨 정치, 문화(종교) 엘리트층에 미국통이 참 많기도 하고요. 독일에 비하면, 미국이나 한국이나 참 역동적이죠. 홰까닥 뒤집히기 너무 쉬운. 투표에서 이기고 개표에서 지는 것도 독일보단, 미국이나 한국에 더 어울리는 현상 같고요. 정치문화에 합리보다는 감정이 큰 역할을 하는 것도 같고. 냉철한 이성을 가진 사람이 차갑다고 말하지만, 사실 더 무서운 사람은 감정이 넘 뜨거운 사람이겠죠, 아니면 이성이 없는 사람...

초롱님의 댓글의 댓글

초롱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 저는 여태까지 그렇게는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그럴 수도 있네요.

그쵸. 감정 뜨겁고 이성 없는 사람들이 제일 무섭죠. 군중심리에 휘쓸리기 십상이고. 그런 사람들이 독일의 나치를 가능하게 한 거 아니겠어요? 

또리님, 반가워요. 언젠가 위에서 하던 얘기 다시 해요, 우리. "노무현=> 유시민 책=> 그럼 난 어찌 살 것인가" 그리고 카뮈가 했다는 철학의 근본적인 문제...

또리님의 댓글의 댓글

또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녭, 제가 좋아하는 친구에게 유시민 책을 엥겨 줬어요(저 혼자 막 떼밀며). 다시 제 손에 돌아오면 발췌해서 올려볼게요.

제가 바로 위에 쓴 댓글에 관해 어느 분이 아주 길게 글을 올리셨는데, 제가 답변하려고 와 보니 자진 삭제하신 것 같더라고요. 없어진 글에 해명할 수도 없고 왠지 찜찜했는데, 초롱님이 말 걸어주시니 고맙네요. 그래서 덥석!

제 말을, 나는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며, 다른(반대편?) 누군가는 감정적으로 행동하니 나쁘단 뜻으로 받아들인 분도 있나 봅니다. 저야말로 감정적인 사람이고, 우리가 편하게 "여성적 가치"라 부르기도 하는(여자가 그렇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감성적 글쓰기"도 무지 사랑하는 데 말이죠. 하지만, 직업 정치인은 이성, 합리적으로 행동, 결정하려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뜻에서 쓴 댓글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정치인들이 세월호 진상규명/재발 방지에 힘써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공익을 위해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죠. 비극이 준 충격과 슬픔의 강도 때문에 정치인들이 국민감정을 반영해야만 한다기 보단요. 일상에서도 감정이 앞서더라도(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내가 해야 할 일을 이성적으로 해결하려 노력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종교, 예술 분야처럼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 일터나 학교에서 그렇게 해야 하죠. 그룹 프로젝트라면 더더욱. 저는 댓글 마지막에서 "이성 없는 사람" 흉내 내는 트럼프 예를 들었던 것이고요. 멕시코 이민자는 강간범이야, 이런 이성 없는 막말로 사람들 감정 자극해 인기몰이하는 게, 독일에선 아마 불가능하겠죠. 한국과 미국은 인물 중심, 독일은 절차/내용 중심인 경향도 있고요.

세 나라 정치문화를 단순 비교한다는 건 당연히 말도 안 되지만,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 차이점, 비슷한 점에 관해 서로 관찰 결과를 말해볼 순 있겠죠. 그 관찰에 공감하는지 아닌지 대화해볼 수 있겠고요. 차이를 말하는 게 그래서 그 나라가 싫다는 이야기도 물론 아니고요. "역동적"인 한국에 가면 편하고 좋은 게 정말 많잖아요. 지워진 다른 분 글 때문에 애맨 초롱님께 답글로 해명해봤습니다. 꾸벅~

친절한시선님의 댓글의 댓글

친절한시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말하기 좋아하고 열정도 넘쳐! 근데 무식해 . 책도 좀 읽고, 공부도 하고, 누군가 잘 아는 사람한테 이야기도 들어보고 좀 그러면 좋겠구만 얄파~~~~악 하게 뭘 좀 알게된 것으로 자기 딴에는 너무나 생소한 깨달음의 희열을 느낀 사람. 그래도 정녕 미워할 수는 없어서 너의 무식함을 슬쩍 알려 주게 되죠.

반응 - 무식과 무지는 다른 것입니다. 저는 무식할지는 모르지만 무지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래요. 그러니까 그렇게 나대지만 않으면 무식한 티도 안나고 자연스럽게 무지하다는 의심도 받지 않게 되지요. 라는 말을 매우 완곡하게 들려 줍니다. 

반응 - 그래서, 너는 그렇게 유식하냐?

그리고 무식한 자들이 안고 살아야 하는 설움을 마치 상처입은 천심인양 들이 밀면서 "너희 배운 작자들은 !!! " 하고 치고 나오지요. 이런 천편일율적인 반응 답안지를 이미 갖고 있는 무리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도그마에 빠져드는 그 모습, 이게 집단화 되면 무시무시할 때도 있어요.

적당히 분위기 맞춰 주고 얼른 빠지는 것이 상책인데, 정말 이들을 막아야 한다면 이이제이 방식이 좋습니다. 서로 쎈터를 먹으려 들기 때문에 "니가 그렇게 잘났냐?" 논리로 서로 맞싸우게 하면 제 풀에 지쳐 옆에서 지켜 보기 민망함이 상당히 통쾌하게 상쇄됩니다. 근데 이들이 놀랍게 진화하여 묘한 현실적 타협과 상황논리와 감정의 연결고리로 연대하면 그래요, 정말 위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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