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유성 베이징특파원 yshwang@donga.com

중국이 '세계의 바이러스 공장' 같다는 말을 최근 누군가에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고도 경제성장을 거듭하며 세계의 제조업을 석권해가고 있는 중국을 '세계의 공장'이라고 말하는 것을 본딴 것이겠지요.
세계의 바이러스 공장이라는 말은 지난해 중국 남부 광둥(廣東)성에서 발생해 전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뿐만 아니라 최근 조류독감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에 생긴 말일 것입니다.
얼마전 영국과 캐나다 등에서 어린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살인독감도 푸젠(福建)형이라는 중국 이름이 붙었으니…. 일부 전문가들은 조류독감도 지난해 중국에서 생겨나 인근 베트남과 태국 등으로 퍼졌을 것이라고 의심하는 실정입니다.
중국이 세계 바이러스의 온상으로 비치는 것은 중국인들의 비위생적인 생활 습관을 보면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짐승이란 짐승은 한꺼번에 기르면서 먹지 않는 것이 없는 것을 보면 더더욱 그런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사스에 대한 인상이 워낙 강렬해서인지 중국하면 이 전염병이 가장 무서운 것 같은데 최근 중국 위생부 발표를 보면 더 겁나는 병이 있습니다.
바로 광견병입니다.
지난해 중국에서는 광견병에 2037명이 감염돼 1980명이 죽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치사율 97.2%로 미친 개에 물렸다하면 그냥 죽고만다고 보면 틀림없지요. 중국에서 이처럼 광견병이 무서운 것은 집에서 기르는 개에 예방주사를 맞히는 사람이 아예 없다시피 한데다 길거리를 떠돌아다니는 주인 없는 개도 많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광견병 피해를 줄이기 위해 주민들에게 애완용 개들을 모두 경찰에 등록토록 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는 있습니다만 당국이 시키는대로 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무엇보다 경찰에 등록하는데 1000위안(약 15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등록비를 내야하기 때문이지요.

광견병 다음으로 무서운 전염병은 폐결핵 1106명, 간염 1063명, 신생아 파상풍 398명, 에이즈 379명, 유행성 B형 뇌염 366명 등의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사스는 지난해 5327명이 감염됐고 이중 349명이 숨져 사망률은 6.6%로 6위에 불과했습니다.
법정 전염병 가운데 감염자수가 가장 많은 질병은 간염으로 92만4324명이었습니다. 병에 걸린 사람이 많은 만큼 사망자수도 3위를 차지했지요. 이는 중국인들이 길거리의 좌판점이나 비위생적인 음식점에서 외식을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중국에 오는 외국 사람들은 반드시 간염 예방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충고가 빈 말이 아님을 여실히 느낄 수 있지요.
이어 폐결핵 70만6087명, 이질 46만5459명, 임질 19만58명, 홍역 7만4813명, 매독 6만654명, 티푸스 5만6288명, 학질 4만506명, 유행성 출혈열 2만2653명, 성홍열 1만63명 등으로 감염자 숫자에서 상위 2위부터 10위까지를 차지했습니다.
이를 보면 아직도 폐결핵이나 이질, 티푸스, 학질 등 후진국형 전염병이 중국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순위에서는 빠졌지만 이미 세계적으로 없어지다시피 한 페스트 같은 전염병도 지난해 중국에서는 13명이나 발생했습니다.

위생부 발표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지난해 27종의 각종 법정 전염병이 발생해 259만1512명이 감염됐고 무려 6474명이 숨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2002년의 244만588명 감염에 5194명 사망에 비해서는 발병률은 5.45%, 사망률은 23.8% 높아진 것입니다. 중국이 세계의 바이러스 공장이라는 말이 별반 듣기 좋은 것은 아니지만 꼭 잘못된 것만도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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