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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에서 사는 법…

페이지 정보

작성자 e-donga 팬이름으로 검색 조회 3,464회 작성일 04-02-22 23:09

본문

김기현 모스크바특파원 kimkihy@donga.com

모스크바에서 살면서 아직도 러시아 사회 곳곳에 남아있는 구체제의 잔재와 맞부딪칠 때가 있습니다. 대개 외국인은 이해하지 못할 황당한 일들이 대부분입니다.

제가 집과 사무실을 겸하고 있는 아파트는 세계 최대의 가스회사인 가스프롬(러시아국영가스공사)의 직원 아파트 단지에 있습니다. 집주인은 가스프롬의 자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30대의 여성 회계사입니다. 그녀는 어린 딸과 함께 친정 부모님 댁에서 사는 대신 자신의 아파트를 제게 세를 줬습니다. 남편은 없는 듯하지만 이혼녀인지 미혼모(?)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이혼율이 50%가 넘고 혼전동거가 일반화된 러시아에서 그런 걸 따져서 뭐하겠습니까만).

집주인은 이 집을 아주 저렴하게 회사로부터 분양받았습니다. 시가의 10분의 1도 안되는 가격에, 그것도 집값을 20년 이상 장기 분할 상환하는 조건이랍니다. 주택을 무상으로 공급하던 과거 사회주의 복지 시스템의 변형된 형태랄까요. 국영기업이 아파트를 지어 직원들에게 저렴하게 분양하는 것은 물론 혜택을 받은 직원들 입장에서야 고맙기 짝이 없겠지만 러시아 사회 전체로 보면 문제입니다.

이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거대 공기업의 직원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이들이 시가보다 형편없이 낮은 가격에 분양받은 아파트를 몇 배나 되는 가격에 되팔면서 ‘폭리’가 일어납니다. 물론 아파트를 지어주는 동기도 그리 순수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면 경영진이 자신의 친지가 운영하는 건설업체에 공사를 맡기는 식입니다. 수익성이 그리 중요하지 않은, 독점을 통해 이익을 내는 국영기업에서나 가능한 일이죠.

그건 그렇고요. 러시아 사회의 불합리성을 따지기보다는 가족의 주거 문제가 급했던 저는 3년 전 이 아파트를 구해 이사 왔습니다. 일반 아파트 단지보다는 안전하고 관리가 제대로(?) 되는 편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 황당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파트 안으로 주민들의 차가 들어오는 것을 경비원들이 막았기 때문입니다. 관리사무소의 설명으로는 아파트 단지 안으로 차가 들어오면 ‘폭탄테러(!)’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나요. 폭탄을 실은 차량을 건물 옆에 세워두고 원거리에서 폭파시키거나 건물로 돌진하는 자살테러에 대비한다는 거죠. 순간 말문이 막혔습니다. 공공건물도 아닌 아파트 단지에 웬 폭탄테러…. 물론 회사 간부들의 차는 단지 안으로 넣어주고 있었습니다.

직업적 특성(?)을 숨기지 못하고 분주한 경비원들을 잡고 ‘사태의 배경’을 파악했습니다. 과거 잘 나가다가 푸틴 정권에서 바뀐 신임 경영진 때문에 직원주택관리사무소장으로 좌천돼 내려온 신임 소장의 ‘작품’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는 재기를 꿈꾸며 경영진의 눈에 다시 들 묘안을 생각한 끝에 직원주택 단지의 경비와 안전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겠다며 회심의 카드를 내놓은 겁니다. 제 추측으로 그는 한직으로 밀려나자 심심한 나머지 테러나 전쟁을 소재로 한 액션영화를 지나치게 많이 보지 않았나합니다.

어쨌든 영하 20도의 추위에 아파트 단지 밖에 차를 세워놓고 걸어 들어오려니 화가 치밀더군요. 많은 주민들이 단지 주변의 길가에 차를 세워놓는 바람에 근처 교통까지 마비됐습니다. 원래 모스크바에서는 겨울에는 눈 때문에 도로가 1차선 정도 줄어듭니다. 그런데 수백 대의 차가 한꺼번에 불법주차까지 했으니…. 결국 ‘뭔 큰일이 난줄 안’ 이웃 주민들의 신고로 경찰까지 출동했습니다.

그런데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우리 아파트 주민들의 태도였습니다. 별다른 항의조차 없더군요. 불합리한 지시에 순응하는 것이 여전히 몸에 배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땠을까요? 물론 있을 수 없는 얘기지만요. 이쯤 되면 주민들을 위한 관리사무소인지 관리사무소를 위해 주민들이 존재하는지 헷갈리네요. ‘인민을 위해서’ 인민의 위에 군림하던 구소련의 방대한 관료제도가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되고 있냐고요? 차량의 통행을 막는 규칙은 여전히 ‘엄격히’ 시행 중입니다. 그런데 경비원들은 며칠 지나니 평소 안면 있는 주민들의 차는 슬슬 넣어주기 시작하더군요. 자기들도 그 지시가 얼마나 황당한 건지 잘 알고 있으니까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제 차도 바로 집 앞에 세워져 있습니다. 어떤 주민들은 “볼 일이 있어서 잠깐 들어갔다 나오겠다”고 둘러대고 들어와서는 그냥 차를 세워 두고 있습니다. 결국 정말 고지식한(?) 몇몇 주민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주민들은 예전처럼 평온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든 차량의 통행을 금지한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는 아파트 단지 정문을 차들이 분주하게 드나들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던 겁니다. 어떤 불합리한 상황이 닥쳐도 조금만 참고 지내면 저절로 해결이 된다는 것을요.

문득 얼마 전 어느 러시아 기업인과의 대화가 생각났습니다. 푸틴 정부가 올해부터 세금징수를 ‘법대로’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러시아는 세금이라는 것이 너무 터무니없이 높아서 개인이고 기업이고 탈세를 하지 않을 재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정부도 대강 눈감아주고 지내 왔었는데 앞으로는 안 봐주겠다는 거죠. 기업하는데 어려움을 겪지 않겠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스터 김, 넷 프라블렘(문제없다)! 며칠만 기다리면 피해갈 방법이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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