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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엘과 체르니

페이지 정보

작성자 Noeli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0건 조회 2,796회 작성일 15-02-28 23:59

본문

저도 어렸을 때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때 빨간 가방에 어린이 바이엘 교본을 넣고 엄마와 피아노 선생님 집에 갔었습니다. 유치원 친구, 친척 여자아이들이 다 그렇다보니 원래 여자아이들이란 모두 그렇게 피아노를 배우러 다니는 줄 알았습니다.

요즘 한국에 전혀 악보를 못 읽는 사람, 서양악기 한 가지 다룰 줄 모르는 사람 드물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피아노같은 악기가 서양악기라는 느낌이 평소에 전혀 없기는 합니다만. 아무튼 고전음악 작품 몇 개는 제대로 알아야 하고 음악 안 좋아해도 고전 음악회에 가끔 들려야 지성인인가 합니다. (표현이 좀 진부합니다)

그런데 이런 풍습이 물론 조선 시대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고 다른 동양의 이웃나라 혹은 이슬람 세계,  심지어 서양에서도 모든 나라에 이런 풍습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19세기에 독일은 유럽에서도 음악 분야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업적을 이루어 냈습니다. 쇼펜하우어, 니체 등 철학자들은 음악에다 인간 정신의 가장 고귀한 산물이라는 지위를 부여했습니다. 작곡가나  작품의 이름을 일일이 굳이 나열할 필요도 없겠습니다. 이 19세기 독일음악은 당시 시민계층 (Bürgertum)의 독점 문화였습니다. (독일어의 이 시민층 Bürgertum은 독일어에서도  그 정의가 학자, 학파 분야 마다 달라 누가 언제 어디서 쓰는가에 따라 의미가 조금씩 달라집니다. 대학에서도 빌레펠트 학파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시민층 정의가 다릅니다. 더구나 교육을 통해 사회의 충심 계층이 된 Bildungsbürger 는 정확히 외국어로 번역되지 않는 단어 중 하나입니다. 엘리트와는 개념이 다릅니다. 하나의 정의만 갖다 붙였다 항의하실 분이 계실 것 같아 불안해서 일단 첨가하고 봅니다... ;; ) 이글에서 시민층은  대충 귀족출신이 아니더라도 육체 노동하지 않는,  경제적 안정을 누리는 지위에 오른 사람들이라고 해두겠습니다.

이들에게는 관심이 있건 없건, 귀찮거나 말거나 오페라나 음악회를 가는 것은 사회에서 빠지지 않기위해 꼭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자녀에게 음악 개인 교습을 시키는 것은 의무였습니다. 특히 딸들은 재능이 있건 없건 피아노를 배워야만 했습니다. 여기서 나온 말이 klavierspielende höhere Tochter 입니다.  베토벤의 제자였던 체르니 (Carl Czerny 1791-1857)는  이 딸들을 위해 500곡의 피아노 연습곡을 써서 유명해졌고 바이엘 (Ferdinand Beyer 1803- 1863)도 작곡가가 아니라 피아노 교본 저자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일본이 독일문화를 고스란히 받아들였습니다. 70년대만 해도 독일의 한 젊은 피아노 교수가 일본에 초청되어 공개렛슨을 하면 그 장면을 일본 공영방송에서 생방송으로 전 일본에 중계를 하고 모두 티비앞에 앉아 공부를 하곤 했습니다. 독일에서 그런 대접 못 받던 교수들 감명 많이 받고 왔었지요.

일본서 이렇게 받아들인 문화가 한국으로 넘어와 60년대 후반인가, 피아노를 새끼줄로 묶어 수레에 싣고가는 장면의 흑백 사진은 제게도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즉 피아노가 필수교육 비슷한 지위를 누리는 것은 19세기 독일이나 최근 한국이나 비슷한 것 같습니다. 차이점이라면 당시 독일에서 höhere Tochter,  딸들은 피아노를 전적으로 사교를 위해,  거실을 위해서 배웠습니다. 당시 피아노 교사는 사회적 지위가 매우 낮았기 때문에 피아노를 직업으로 하는 것은 부모들이 원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대가 바뀐 20세기 한국의 70, 80년대에는 세계적 피아니스트를 목표로 하는 이들이 그렇게 많았습니다. 물론 남자아이들은 모두 대통령이나 장군 되라고 하던 때인 만큼, 모두가 정말 세계적 피아니스트가 될 수는 없었겠지요. 그래도 요즘 세계적인 음악 콩쿠르 입상자, 젊은 수재는 한국에서 제일 많이 나옵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내심 은근히 이만저만 자랑스러운 게 아닙니다만)

그동안 독일은 또 세월이 흘러 사회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요즘 어린이들은 일반 학교에서 영어 배운다고 미국 노래, 팦송 부르고 좀 크면 뮤지컬 보러갑니다. 어느 회원님 말씀대로 "DSDS, 독일은 수퍼스타를 찾는다"에 환호하는 세대입니다. 고전 음악회 방문자 평균 연령이 십 년 전 40세가 넘었는데 지금은 50 정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젊은 독일인 중에 고전음악에 탁월한 재능을 드러내는 이들도 간혹 있긴 한데 그들 중에는 자세히 알고 보면 구 소련에서 온 Aussiedler, 즉 독일계 이주민도 대단히 많습니다. 이들은  소련시대 교육의 영향으로 아직 고전음악에 가치를 크게 두기 때문입니다.

사실 변화하지 않는 게 없으니 앞으로 독일 음악문화가 어떻게 바뀔지 두고 봐야겠습니다만. 여느 학자들은 인문학이 점점 기우는 현상, 그리고 어제 어느 회원님 말씀처럼 종교가 영향을 잃어가는 것과 고전음악이 빛을 잃어가는 것을 연관짓기도 합니다. 




추천4

댓글목록

Noelie님의 댓글

Noeli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어제 제가 글을 하나 올렸다 삭제했는데요. 댓글로 어느 회원님이 19세기 독일의 음악생활과 요즘 한국이 비슷한 데가 있다는 것이 금시초문이고 흥미롭다고 하셔서 짧게 정리했습니다.

rhein님의 댓글의 댓글

rhein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러게요 노엘리님. 며칠전 분명 봤었걸랑요,  아꼈다가 주말에 시간나면 읽을까 해서 딱 꼬불쳐뒀었는데 말예요. 원문을 다시 올려주심 안될까요? 기억으로는 '간추린 독일 근대 현대음악사?' 였던 것 같은데요.

  • 추천 4

Noelie님의 댓글의 댓글

Noeli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 글 중 대충 쓰다보니 제가 다른 곳에 독일어로 기고한, 음악과 관련되지 않은 내용이 한 두 문장이 들어있더군요. 아무 상관 없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출판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중에 생각하니 좀 불편해서 날려버렸습니다.

관심에 늘 고맙습니다. 라인님  ^^

waffel님의 댓글

waffel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시민계급 문화라고 말씀하셨지만, 정확하게는 살롱 문화가 가능해야 합니다. 말씀하시는 내용은 주로 피아노 소품에 관련되어 있지만, 수준 높은 실내악을 공연할 만큼 넓은 공간을 가진 (당연히 부유한) 이가 있어야 합니다. 더군다나 파티와 연회까지 겸하려 한다면 더욱 그래야 하겠지요.
돈과 여유가 있는 이들이라면 악기를 배웠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동네 합창단에서 노래하기도 했습니다. 19세기는 합창단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때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아마추어 합창단의 유래가 이 때입니다. 시인들은 어려운 운율 뿐 아니라 소박한 민요 운율에 시를 썼고, 작곡가들 역시 이를 바탕으로 좋은 음악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누구나 부를 수 있는 민요의 이상은 심지어 난해한 음악가 쇤베르크까지 꿈꾼 이상이었습니다. 노래를 통해 하나가 되고 싶어 하는 소망이 장려되었고, 음악이 새로 발견되었습니다.
교회 음악 뿐 아니라 세속 음악이 발달했고, 교양 음악 뿐 아니라 즐거운 (통속) 음악도 발달했습니다. 음악의 즐겁게 하는 힘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면서 어려운 음악도 듣지 않으려 했습니다. 슈만의 <어린이의 정경> 같은 음악은 오늘날의 귀로 들으면 뉴 에이지 음악에 유사할 정도입니다. 전문 음악가들도 소품을 쓰던 시대였습니다. 그만큼 적당히 겉멋 부리면서 음악도 듣고 연주할 줄도 아는 교양 속물들을 위한 작품들이기도 합니다.
교양 시민 계급도 있지만, 교양 속물들의 역할도 대단합니다. 음악과 예술이 점점 후자로 흐른 것은 통속음악은 수준이 떨어져서 듣기 싫고, 남보다 잘난 척은 하고 싶은 이들이 음악을 위해 돈과 시간을 쓴 결과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전문적인 능력은 갖고 싶어 하지 않는 이들이지요. 1840년 이후 비더마이어들은 바로 이런 교양 속물들에 해당합니다. 물론 이를 통해서라도 문화가 활성화될 수 있었다면 다행이겠습니다.

  • 추천 1

Noelie님의 댓글의 댓글

Noeli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말씀하신 19세기 살롱 살롱문화는 넓은 의미의 시민층 (Bürgertum) 이라기보다 귀족이나, 당시로서는 우아한 살롱, 더 나아가 소규모 실내 악단을 가질 수있는 시민층 중에서도 상류계층에 해당하는, 사실 넓은 의미의 소시민에게까지 해당되지는 않지요. 프랑스 귀족, 상류사회에서 쓰이던 말이 살롱입니다.

한국의 피아노문화와 연결시켜 쓰다보니 시민계급의 피아노 이야기가 주로 많이 나온 이유이기도 합니다. 제목부터 그렇게 붙였고요. 피아노는 사실 시민계급에 가장 많이 보급된 음악 형태로 1900년 경, 인구가 지금과 비교가 안 될 당시 베를린에 400개의 크고 작은, 주로 피아노를 가르치던 콘세르바토리가 있었답니다.

19세기의 음악은 연주자와 청중이 분리되는, 극단적인 기교주의가 생겨난 시대이기도합니다. 이에 반발하고 또한 속물적 시민계급의 음악문화에 저항하며 16, 17세기 민요, 그리고  합창문화를 다시 크게 부활시키고, 독일 전역을 순회하던 이들은 20세기 초반의 반더포겔, 그리고 이어지는 청년운동을 하던 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시민 계급중에서도 가난한 소시민 계급에 속하나 교육의 기회가 있었던 학생들 이었습니다. 이들의 민요책 Zupfgeigenhansl 은 당시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고 민요의 가치를 주장하던 헤르더의 저서가 다시 유행하던 시기이기도 했지요.

 1차 대전 후 분열되고 혼란한 사회에서 이 청년운동을 하던 이들은 민요와 합창을 통해 사회를 개혁하고 사회통합, 게마인샤프트를 이루려 했었지요. 물론 힌데미트나 아이슬러같은 거장들에 의해 '실용음악' 개념이 생기기도 할 무렵이었지요. 이때 재발견되고 이들이 부르던 민요가 일본을 통해 일제 강점기에 한국으로 들어와 개사가 되어 한국 민요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과거 독일의 정신과 뿌리는 찾겠다는 민요를 부르는 합창운동은 나치시대에 크게 환영받으며 계속이어지고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소위 그 재교육을 통하면서 음악도 '집단'이 아니라 '개인적'이 되어야 한다는 의식이 자리하기 시작했습니다.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이 청년운동과 합창운동이 파시즘의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고 신랄히 비판하기도 했었습니다. 이후 독일은 자신들의 민요를 잊은, 노래를 잃은 카나리아가 되었다고 할까요.

  • 추천 2

또리님의 댓글

또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은 글 감사합니다.
노엘리 님 글과, 두 분의 댓글을 읽으니 생각나는 영화가 있어요. 아주 오래전에 봤던 존 말코비치, 앤디 맥도웰이 나온 The Object of Beauty라는 블랙 코미디인데, 취향의 사회학에 대한 딴지랄까요? 척하는 속물 두 사람이 고급 호텔에 빌붙으며 헨리 무어의 작은 조각품으로 사기 칠 궁리를 하는 와중에 그 작품을 호텔 청소부인 폴란드 소녀가 훔쳐갑니다. 나중에 훔친 이유를 고백하는데 작품이 "아름다워서"라는 그 장면이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취향, 교육수준의 대물림이나 소위 고급예술에 대한 속물적 요소를 백분 이해하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본능이겠죠. BH를 불태우던 부류의 페미니즘이 유행하던 시대에도 통속, 신파극인 이탈리아 오페라를 사랑하던 페미니스트가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저만 생각하면 사실은 늘 한국에서 살고 싶은 사람입니다. 여건이 안 돼서 여기 살지요. 그런데, 고전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한국의 문턱은 너무 높아요. 돈이 어마 무시 들어가요. 독일은 문턱이 그냥 없습니다. 정책상 앞으로도 쭉 유지될 거라 보고요. 이게 납세자와 국가 때문만이 아니라, 음악계 분위기상 열려있다고 할까요? 물론 전공자 처지가 아닌 순수하게 즐기기만 하는 관객 입장에서 보면요 (오케스트라 수준이 높을수록 동양인 안 뽑는다고 하더군요). 예를 들어 한국은 연주가 끝난 후 열심히 박수 쳐 앵콜을 외쳐놓고는, 막상 앵콜 곡을 시작하면 우르르 다 나갑니다. 민망스럽게요. 왜냐, 사인회에 줄 서기 위해. 발 도장, 눈 도장 찍기 위해 공연에 오는 사람이 많은 것도 같고. 여긴 연주가 끝나면 누구나 무대 뒤로 들어가 바렌보임이건, 래틀이건 오늘 공연은 어쩌구 어쩌구, 한마디 해줄 수 있습니다. 친지나 관계자만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라, 팬들이 들어가고 공연자는 이런 피드백을 매우 좋아합니다.
물론 요새는 사회 전반으로 독일이건 한국이건 어디나 비슷해지는 경향이 있고, 고전 음악계도 마찬가지가 될 수 있겠죠.
사실 문화, 취향의 대물림은 심각한 현상이 아니라고 봅니다. 건강과 수명의 대물림이야말로 심각하죠.
이상 생각나는 데로 적어봤습니다. 또 들리겠습니다.

Noelie님의 댓글의 댓글

Noeli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또리님
늘 좋은 댓글(주로 댓글을 많이 쓰시기 때문에 .. ;;) 감사드립니다
바로 그래서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 공립음악학교 제도가 생겼습니다. 처음엔 수업료도 없었답니다. 지금은 운영비는 한 없이 오르고 시와 정부의 지원은 계속 줄기 때문에 수업료도 모락모락 오르는 추세입니다만 그래도 부모의 소득 수준이 높지 않을 경우, 시나 아니면 후원회의 지원으로 무료나 아주 적은 금액으로 수업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악기 대여도 그렇고요. 재능있고 가난한 독일계 이민자 자녀들이 많이 이용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음악의 관심은 날로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베를린의 경우, 물론 보셨겠지만  음악학교에  터키 전통악기 등도 날로 늘어 간답니다. 원래 고전음악 경연대회인 전국 청소년 음악 경연대회 Jugend Musiziert에  뮤지컬보칼 분야가 생겼는데 제일 인기입니다.  물론 다문화 시대에 당연한 흐름이기는 하겠지요.

한국 앵콜 얘기 정말 재미있습니다. ^^ 한국하니까 저도 여러가지 기억이 나는데요. 독일의 어느 교수분이 한국 음대에 초청되어 갔을 때 딸이 피아노 치는 어느 부자 가족이 교수를 집으로 모셔서 딸 개인렛슨을 부탁하고 선물을 기가 막힌 것을 했더군요. 교수 렛슨비가 요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한 시간에 수 백만 단위였었지요.

또리님의 댓글의 댓글

또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마 '독일인'이 안 한다면 전 세계에서 몰려와 할테니, 전 독일이 현재의 환경만이라도 유지시켜주면 좋겠어요. 그래서 세금 열심히 내고 있습니다. ㅋㅋ 고전 음악을 업으로 삼거나 듣기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 수는 결국 어디나 비슷하게 유지될 것 같아요. 절대 없어지진 않을거고요. 다른 좋은 음악 장르도 많으니, 뭐 괜찮죠.
몇 년 전까지도 베를린에 고전 음악 팬 젊은 노마드 족이 많았어요. 만 30세 미만이면 껌값으로 최고 연주 볼 수 있겠다, 집 값 싸겠다, 요새처럼 인턴이나 직장 노마드가 흔한 세상에 여기로 많이 몰려왔죠. 보통 공연 전 표사러 줄 서 있으면 낯 익은 애들이 그 애들이라 서로 친구가 되기도 하고요. 저도 그렇게 사귄 친구 중 프랑스 Eisenbahn 엔지니어가 있었는데, 뉴욕도 음악 듣기 좋다고 거기로 가더니 돈 없는 사람은 최소 2 jobs로 일해야하는 그 곳에서는 음악 들을 여력이 없더라고, 다시 유럽으로 왔더군요. ㅎㅎ

Noelie님의 댓글의 댓글

Noeli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말씀하신 것처럼 사실 베를린은 가난한 도시지만 문화에 투자하는 세금이 다른 나라 어떤 도시와도 비교가 안됩니다. 벌써 최상급 오케스트라가 몇 개나 됩니까! 거기다 크고 작은 박물관, 이런 저런 문화사업에 돈 많이 때려넣습니다. 저는 이게 베를린의 진정한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전 세계에서 예술을 하는, 혹은 사랑하는 젊은이들이 베를린으로 몰려오기도 하고요. 이게 가능한 것이 역시 또리님 말씀처럼 문화에 대한 오랜 전통에서 나온 의식이겠지요.

Noelie님의 댓글

Noeli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바이마르 시대에 국민 교육은 일반 교육 (초중고 대학 직업 교육) 뿐 아니라 음악이나 평생 교육도 '사적인 분야' 가 아니라  '공적인 분야'라는, 즉 이런 분야도 국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개념이 자리를 잡고 공립기관인 시민대학 Volkshochschule 등도 이 시대에 번창하기 시작했습니다.

바이마르 공화국을 자꾸 언급하다보니 기억나는 이야기가 있어 잠시 딴길로 빠져보겠습니다.

몇 년전 한국의 어느 유명인사께서 독일 바이마르 헌법 언급을 하더군요. 비스마르크식 사회 보장개념이 많이 들어간 헌법이라고요. 그러면서 하는 말씀이 그런데 그 헌법에서 15년 후 나찌가 등장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이분 논지는 복지타령하면 나라 망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아, 제가 흥분을 들입다 해서 메일을 하나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그분 다른 글들을 읽어보있더니 실은 독일에 관심이 전혀 없는 분이었어요. 그래서 그만 두었습니다.

그런데 실은 1948 공포된 대학민국 헌법은 그 바이마르 헌법의 한국어판이랄까. 영향을 아주 많이 받았지요. 물론 한국 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당시 가장 민주적이라던 바이마르 헌법을 많이 받아들였었지요.

혜진님의 댓글의 댓글

혜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노엘리님의 좋은 글들 늘 잘 읽고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이 독일 헌법의 영향을 받았었군요!
저는 미국법을 많이모방했으리라 생각했었는데 아니군요 .

waffel님의 댓글

waffel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도르노가 “Musikant” 개념을 비판한 글을 언급하다니 놀랍기도 합니다. 그 글은 아도르노의 대표작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아도르노의 이 글은 보편타당하게 받아들일 수만은 없으며, 아도르노의 남다른 성장 배경에서 비롯한 고전 음악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합니다.
아도르노처럼 아버지가 부자이고 어머니와 이모가 각각 오페라 가수와 피아니스트로 활동했던 능력을 소유한 사람이라면 그야말로 상류 계급 출신에 해당하지요. 어머니와 이모에게서 음악을 배웠습니다. 참 좋은 환경이지요. 그가 평생 동안 고전 음악을 기반으로 이론을 전개한 것도 다 어렸을 때 자양분을 뽑아낸 결과입니다. 물론 아도르노가 청소년기에 Dr. Hochsche Musikschule에서 당시 표현주의 오페라 작곡가로 유명했던 이에게서 작곡을 배웠다는 사실도 유명합니다. 김나지움을 졸업할 때에는 벌써 연극평론과 음악평론으로 이름을 떨칠 정도였으니까 – 그 이야기는 다른 말로 하면 그만큼 많은 돈을 공연 관람에 썼다는 말도 되겠지요. 한편 운도 좋았습니다. 독일에서 황금시대에 해당하는 1920년대 아도르노가 살았던 프랑크푸르트에서는 그 어떤 시절보다 더 많은 음악 공연이 있었으니까요. 심지어 음악을 공연할 때 합창단에 프랑크푸르트 시장까지 같이 노래를 부를 정도였다는 기록까지 있습니다. 그만큼 도시 전체가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들끓었습니다.
아도르노에게 음악은 취미 생활이 아니라 삶 자체이며 철학이며 사회학입니다. 아도르노는 음악을 즐기는 것 못지않게 음악을 기술적으로 익혀야 하고 음악을 분석할 능력을 요구했습니다. 그는 딜레탄트, 아마추어 그리고 속물을 비판합니다. 나치로 이어졌다는 비판이 의미있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특정한 기능에 종속시키는 것에 비판했고, 음악을 분석과 이해의 대상으로 삼는 대신에 즐기는 태도를 가차 없이 비판했으며, 고전 음악의 힘에 매료되지 못하는 이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비틀즈와 엘비스로 대변되는 대중음악을 혐오했고, 재즈를 참아내지 못했던 이가 아도르노입니다. 고전음악의 수호자로 아도르노를 들 수 있겠지만, 그가 말하는 유럽의 자산인 “문화”는 전통 계승의 문제에서 보자면, 협소한 편입니다. 그가 말하는 “문화”는 우리가 말하는 Subkultur를 포괄하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오늘날 보편적인 음악 또는 미적인 체험의 관점에서 아도르노를 말하는 것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구체적인 Subkultur를 포함하여 다양해진 음악의 사회학적 현상을 판단하려 할 때에는 그다지 유효하지 않습니다. 음악에서 사회학을 발전시키기는 했지만, 너무 테두리가 좁지요.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거치면서 자신에게 익숙한 문화를 보편적 차원으로 끌어올린 결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와 존 레논처럼 전문적인 음악 공부를 하지 않은 채로 좋은 곡을 쓸 수 있는 이들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김태원도 그렇다고 하더군요. 물론 이들에게는 남들에게 없는 특별한 “감각”이 있었겠지요. 음을 떠올리는 능력 – 이것은 훈련되면 더욱 발전하지만, 없는 사람에게는 정말 갖기 힘든 능력입니다. 이 사람들은 아마추어이며 딜레탄트이기는 하지만, 자신에 내재한 재능을 극단적으로 발달시킨 사람입니다.
물론 이제는 그런 작곡가이면서 가수인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어집니다. 아도르노는 작곡가이면서 연주자인 사람을 좋아했습니다. 자기가 작곡가였고 자기가 피아노를 칠 줄 알았으며 자기가 노래를 부를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곡을 분석했습니다. 그런 사람은 거의 없지요. 오죽하면 그를 두고 “마지막 천재”였다고 말할 정도였는지 이해가 갑니다.
물론 비틀즈처럼 작곡 실력과 연주 실력을 두루 갖춘 가수들이 사라지고 이제는 가사는 쓰레기 같고 곡은 어디에나 붙여도 상관없을 정도로 똑같은, 마치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같은 음악이 유행하는 시대입니다. 대신에 현란한 의상과 춤 그리고 퍼포먼스가 가창력을 대신하지요. 음악은 퍼포먼스라는 생각이 드는 시대에, 불이 꺼지고 고적하게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하는 이를 꼼짝없이 지켜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많은 이들이 현란한 뮤직 비디오를 즐기거나 춤을 보며 같이 추고 노래 부르고 소리를 질러야 직성이 풀립니다. 공연하는 사람과 공연을 보는 사람 사이에 경계가 사라진 채 전체가 퍼포먼스로 구현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비디오 예술이 발달한 결과로도 보입니다. 기술 발달이 음악 공연 방식까지도 바꿀 뿐더러 체험 방식까지도 바꾸지요. 어느 한쪽이 병리적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시대를 살아갑니다.

Noelie님의 댓글의 댓글

Noeli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은 아침입니다. 이제 다시 새로운 주가 시작되는군요. 그래도 여기 날씨는 구름이 잔뜩 끼어 하늘이 무겁기만 합니다.

 전적으로 저 개인적으로는 아도르노 저서 중 한국에 많이 알려진, 혹은 아닌 것의 의미가 없답니다. 아도르노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게시판에서 아도르노가 토론 주제가 되는 것은 본적이 없는 것 같은데, 그것은 이 게시판의 성격때문이겠지요. 말씀하신 "음악은 취미 생활이 아니라 삶 자체이며 철학이며 사회학"라는 부분은 아도르노만이 아니라 20세기 초반 독일의 사상가, 철학자, 교육가 중에 '유행하기도 했던' 현상입니다.  쇼펜하우어, 헤겔에서부터 시작 20세기 초 교육자 할름에 이르러서는 사람이 음악을 "즐기는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삶 그 자체, 혹은 받들어야 할 정신의 주인, 여신으로 알아야한다"고 그런 목적으로 특수 김나지움 등 교육기관이 생겨나기도 했던 시기입니다.

2차 대전 후 그 무지칸트를 비롯, 그들의 중심 활동이었던 민요운동 (바로 그  Musikant 들의 조합이 그 중심이었습니다, 시민계급의 독점 고급문화, 혹은 속물화 된 음악생활에 개혁을 시도했었지요)을 비판한 이가 많았는데 아도르노도 그 중 한사람으로 그 이후 음악교육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나치로 이어졌다는 부분은 정치적, 고의적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아니라 그 딜레탄트 (Dilettant, 원래 이 단어의 의미는 요즘과 같은 부정적 의미가 아니라 음악을 애호하지만 직업으로 하지 않는 사람, 정도의 의미였습니다) 음악 활동에 중점을 둔 20세기에 민요 부활 운동이 파시즘의 정신적 근간이 형성되는데도, 그 속성때문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입니다. 게시판의 주제가 음악교육이고 20세기 초반의 음악 교육, 유행도 나온 만큼 그 부분만 언급한 것입니다.

waffel님의 댓글의 댓글

waffel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글 자체가 별로 알려지지 않은 것이기도 하고 이제는 시대에 뒤떨어져 별로 읽지 않거나 읽는다고 하더라도 아도르노가 얼마나 오래전 세대인가를 확인하려 들 때 딱 적합한 텍스트일 뿐, 시사성은 더 이상 없다고 봅니다. 말하자면 역사적인 도큐멘트에 불과하지요. 1920년대 실용음악 논쟁에 아도르노가 기여한 바도 아도르노 연구자들에게나 (특히 음악에 중점을 두는 이들에게나) 관심 있는 이야기일 뿐 미학 전반의 논쟁에는 그다지 큰 영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소 놀랐을 뿐입니다. 음악학 또는 음악 교육학 세미나에서나 어쩌다 읽을 글을 아는 사람이라면? 하는 마음 이상이 아니지요.
아도르노에 관심이 있다 보니 전집 12권부터 19권까지 실린 웬만한 음악 논문과 젊은 시절 쓴 평론까지도 다 읽었습니다. 다 어디엔가 써먹을 만한 좋은 기록들이지요.

Noelie님의 댓글의 댓글

Noeli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러셨군요. 저도 아도르노에 집중, 연구 많이 한 편인데요. 특히 독일 문화, 사회 발전과 그에 따른 제도 간의 관계에서 2차 대전 후 아도르노가 교육기관, 제도, 내용에 끼친 영향에 관해서입니다. 저서 못지않게 당시 교육자들과 그 아마추어 음악 교육에 관해 한 논쟁 등도 열심히 살펴봤습니다. 언젠가 따로 어디서 장을 마련해서 대화하면 참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Schluckauf님의 댓글

Schluckauf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바이엘과 체르니, 기복적이고 비교적 짧은 곡들이지만, 그 깊이는 상상이상이죠.
요즘은 진도 나아가는 교본 음악이지만,
한 때는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기 위한 곡들이었지요.

제 생각에는,
고전 음악이 사라져 가는게 아니라,
이미 현대 음악에 스며들어,
아침 햇살에 안개가 이르듯,
고요하게 대기를 맴돌 뿐이죠.

좋은 글에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한 주 보내세요.

Ehrlosigkeit님의 댓글

Ehrlosigkeit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또리님이 언급한 취향의 사회학은 십중팔구 위대한 사회학자를 암시하는데 문화와 취향의 대물림이 생각만큼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데 어느정도 동감을 할수는 있습니다. 질 리포베츠키의 비판을 생각해볼수 있고, 취향의 사회학이 가능했던 프랑스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학문적 전통을 생각해볼때 그것은 말그대로 '프랑스제 담론'에 불과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취향이나 문화의 대물림이 문제가 되는것은 철학, 더 깊게는 인식론, 존재론을 관통하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이 거장의 글이 난해한 이유들중 하나가 여기에 있는데, 그의 글(그의 주저만 놓고 본다면)에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1920년대 독일철학의 두 젊은 거인의 사상이 함께 녹아있습니다. 물론 그의 저서에는 여러 거인들의 사상이 녹아있습니다만...) 이런 의미에서는 거장의 사회학을 깊이 음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철학일반에 있어서는 위대한 사회학자의 칼날(그의 대표작)이 향한곳이 사실은 위대한 철학자(쾨니히스베르크의 중국인) 였기 때문에 더욱이 깊이 음미해야 할 주제일 것 입니다. 그의 주저의 부제가 이미 암시하고 있듯이 말입니다.

또리님의 댓글의 댓글

또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Ehrlosigkeit 님 덕분에 후다닥 위키를 뒤져보니 취향은 소비로 표출되고, 결국 경제, 즉 먹고사는 문제가 되기도 하네요. 저는 브르디외를 예전에 과제물로 읽어간 기억밖에 없고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제대로 읽어간 것도 아니라 수업시간에 앉아서 다른 학생들의 토론을 재미있게만 들었는지도 몰라요. 내 취향은 내 계급이다, 라는 류의 생각이 아주 신선했던 것만은 기억합니다...
반대로 생각해서, 고급 예술 딱지가 붙은 작품이 (헨리 무어) 교육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사람에게 (청소부) 감동과 소유 욕망을 불러왔다면 (청소부는 몇 푼 안 하는 목각 인형이라 생각해서 훔쳤을 겁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은 인간 본능이며, 어떤 사회학 이론에 대한 딴지일 수 있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댓글로 쓴 것입니다. (그리고 영국 의사가 연구했듯 '사회적 지위가 건강과 수명을 결정한다' 는 사실이 요새 더 구체적으로 와 닿기도 했고요.)

아무튼, 논리가 잠재울 수 없는 게 감정이고, 예술이 본능이라 믿는 저에게는, 예를 들어 톨스토이처럼 말년에 자신의 훌륭한 정치 이데올로기로 자신의 예술 본능을 마구 억누르려 한 사람을 보면 한편으론 존경, 한편으론 연민이 듭니다.

요새 베리에 좋은 글이 많아서... 제 컴에 베리 접속을 차단해버리고 싶습니다... 늘 들락날락, 괴로워요... 무튼, 좋은 하루 보내세요. 쓰신 댓글 후반부를 이해하려면 저는 잠수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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