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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금지 된 것, 그리고 자유

페이지 정보

작성자 펌돌이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4건 조회 2,890회 작성일 06-04-14 17:52

본문

어려서 운동 신경이 계집아이 같았던 나는 누나의 소꿉장난이 하고 싶었다. 어른들은 절대 못하도록 금지 시켰고, 누난 친구들과 놀이가 끝나면 몰래 나와 소꿉장난을 하곤 했다. 들키는 날엔 호되게 야단맞으면서. 그 놀이를 했다는 것이 나의 성장기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진 못했다.

입시뎃생은 팔을 길게 뻗어 어깨 관절을 사용하여 가로 방향으로 직선만을 사용해야만 했다. 안 그러면 혼났다. 난 손목을 사용하여 세로방향으로 곡선을 즐겨 사용했다. 대학 못 간다고 호되게 야단맞으면서. 대학 입학한 첫 학기 첫 드로잉 수업, 선생은 자기소개도 없이 ‘자신의 선을 그어라’는 이야기만 남기고 나갔다. 그리고 한 학기 내내 자신만의 선을 찾는 수업만 했다. 난 처음부터 어려움이 있을 수 없었다. 벽에 먹물을 뿌리고, 합판위에 석고를 개어 선을 긋고, 바닷가 모래사장에선 달리고 몸을 던져 선을 그었다.

인체작업은 찰흙 소조로 작업한 후에 캐스팅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난 석고직조로 작업을 했다. 두상에서부터 등신 전신상 까지. 모두들 답답해하고 말렸지만, 약 일년 후, 더 적은 석고 양으로 더 짧은 시간 내에 작업을 마쳤다. 그리고 아무도 내게 석고직조에 대하여 뭐라 하지 않았다.

당시 모든 남성들은 규격화된 머리 길이를 지니고 있었다. 난 머리를 길렀다. 계집애처럼.
한 선배가 말한다. “계집애같이 생겨서,, 니 얼굴엔 흉터 하나 그어야겠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여아이로 오인 받았을 정도로 여성스럽게 생긴 놈이 머리까지 기르는 것은 당시 모든 사람의 비웃음 섞인 눈총을 받기 좋았다. 난 그걸 즐겼다. 비웃어라, 가열차게.
법과 도덕, 윤리와는 관계없이 금지 명령 내려진 것이 많았다. 사내자식이어서 그렇게 웃으면 안 되고, 사내자식이어서 머리를 기르면 안 되고, 사내자식이어서.. 계집아인 어떨까? 학교 앞 편의점에 처음으로 500ml 맥주캔이 진열되었을 때, 한 여학생과 난 손엔 맥주를, 입엔 담배를 꼬나물고 지하철역까지 걸었다. 당시 여자가 길에서 담배를 피우면 폭행을 당할 위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우리에게 그 따윈 금지된 것이 아니었다.

군대 제대하고 약 일년이 지났을 때였다. 예비군복을 작업복으로 입고, 작업에 방해되는 산발한 머리는 머리띠로 올리고, 아침 먹고 잠자러 집에 들어갈 때까지 작업만 했다. 사포를 약 500여장 쌓아두고 석고를 갈고 쇠를 갈았다, 광이 나도록. 어느 날 친하게 지내던 여학생들이 뒤에서 걱정스런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오빠, 산발한 머리로 하얀 먼지 가득 뒤집어쓰고 아침에도 사각사각.., 점심 밥 먹으러 갈 때 봐도 사각사각.., 밤이 되도 사각사각.., 오빠.., 오빠 미친년 같애..”
미친년, 난 그 소리가 듣기 좋았다. 다른 것도 아닌 예술에 미친 거라면 말이다.
독일에 온지 몇 년 후, 한국에선 남자들이 머리를 기르고 머리띠 하는 게 유행이었다. 난 더 이상 머리띠를 하지 않는다.

입시 지옥에서 해방된 첫해, 한달에 두 번 꼴로 바다를 보러갔다. 소금 냄새에 젖어 부서지는 파도 앞 모래사장에 누워 있곤 했다. 네 시간을, 여섯 시간을, 배가 고파 올 때까지. 작업으로 채울 수 없는 자유의 갈증은 바다만이 해갈해줄 수 있었다. 수업을 땡까고 바다 앞에서 삼일을 지내며 그림을 그려온 날 보고, 출석을 인정해주고 그 그림으로 채점을 해주셨던 회화 교수께 감사드린다.


“난 후회 안 한다.”
올드보이에서 나의 가슴을 가장 후볐던 장면은 오대수가 혀를 자르는 장면도 아니었고, 미도가 지하철 안에서 검은 눈물에 젖은 모습도 아니었으며, 혀가 없는 대수의 손을 비비고 입김을 불어넣으며 사랑 고백하는 장면도 아니었다.
동생과 자신의 영혼을 포박한 현실에서 해방되고자, 높은 둑방에 매달려 동생에게 이제 그만 놓아달라고 부탁하는 수화의 마지막 한 마디,
“난 후회 안 한다, 너는?”
그들은 그 어느 누구에게 해가되는 짓을 한 게 아니었다.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사랑을 했던 것, 그것이 단지 금지 명령되었던 것뿐이었다. 그 터부를 깨뜨려야 한다고 주장할 생각이 조금도 없으면서도, 그 장면에서 펑펑 울음을 터뜨렸던 건 나만이 아니었다. 쿠안틴 타란티노도 그렇게 울었다고 한다.



이제 더 이상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맥주나 포도주 한 방울도 허락하지 않는다, 혹은 허락되지 않는다.
이제 더 이상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담배연기가 자욱한 카페나 파티장에도 가지 않는다, 혹은 못한다.
이제 더 이상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혹은 어떤 두려움에 커피를 입에 대지 못한다.
이제 더 이상 나는 바다를 그리워하여 기차 위로 몸을 던지지 않는다. 여전히 바다를 그리워하면서도.
20대를 끊임없는 연애생활로 보냈던 나는 더 이상 연애를 하지 않은지 8년이 넘어섰다. 그 보다 더 끔찍한 사랑을 만났기 때문이다. 어쩌면 몇 년 후, 난 이 사랑마저 포기해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후회하진 않을 거다. 사랑할 수밖에 없어서 사랑을 했고, 하고 있고, 그 사랑을 향해 내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 행복이고, 비록 많은 것을 포기하고 몸은 감금당했다고 할 수도 있으나 그로서 더 큰 자유를 향하고 있으니까. 비록 그 자유에 온전히 빠져드는 날이 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추천4

댓글목록

디디님의 댓글

디디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답글을 쓰라는 것은 아니지요?
그래도 좋은 글을 읽고(사실 '좋은 글'이란 표현 이상이지만...)
오늘이 독일에서 마지막 날입니다.
제 정신 차리고 차분한 마음으로 카페에 글 한 자 올리겠습니다.

독일에 있으면서 하시는 일이 잘 되기를 가장 많이 바라게 된 분이

나디아 님이 되었습니다.

apfelsaft님의 댓글의 댓글

apfelsaft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헉, 디디님 벌써 가세요? 저런... 식사대접도 한번 못 해드렸네요. 죄송합니다.
중국으로 돌아가시는 건가요? 마지막 날, 잘 마무리 하시구요, 건승하십시오.

펌돌이님의 댓글의 댓글

펌돌이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 가.. 감사.. emoticon_012

왕새우 잊지 못합니다. 히죽^^
국제적으로 바쁘신 몸, 항상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 항상 잘 되길 바랍니다.

apfelsaft님의 댓글의 댓글

apfelsaft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흐미, 펌돌이님도 베를린 언제 한번 오시랑께요~
> 근데, 술/담배/커피 빼면 무얼 대접해 드려야 할지 고민스러웠는데, 왕새우 소금구이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로스톡까지 달려볼까요? ^^*

the moon님의 댓글

the moon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
일진 광풍 .
우리의 인생 이란 한 바탕 의  회오리 바람  ( 폭풍 !)
.....
한 바탕  폭풍 뒤 의 잔잔히 가라앉은  잔해  의 평화 ..

<<사랑할 수밖에 없어서 사랑을 했고, 하고 있고, 그 사랑을 향해 내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 행복이고>> 
속에서 ..오래동안 ..행복 하시길 빕니다 .

감동적인 글 잘 읽고 갑니다 .펌돌이
음악 이 몹시 좋군여  !

ps: 미치지 않고는 예술 을 할수 없죠 ...작품이 ..아무때나 ,..나오는게 아니니까요  !

betrunkener Kobold님의 댓글

betrunkener Ko…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 역시 펌돌이님은 작가셨군요.
' 이제 더 이상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맥주나 포도주 한 방울도 허락하지 않는다,
혹은 허락되지 않는다.
이제 더 이상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담배연기가 자욱한 카페나 파티장에도 가지 않는다,
혹은 못한다.
이제 더 이상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혹은 어떤 두려움에 커피를 입에 대지 못한다.
이제 더 이상 나는 바다를 그리워하여 기차 위로 몸을 던지지 않는다.
여전히 바다를 그리워하면서도.'
반어법을 쓰신 건가요? emoticon_007
왜 제가 슬퍼지죠? 딸꾹!

펌돌이님의 댓글의 댓글

펌돌이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 저.. ㅇㅏ..  사실은 첫 부인 미술을 버리고 바람 피우다, 이혼 맞고, 두번 째 부인 음악과 함께 산답니다.. -_-;;

그리고 그거 반어법이 아니구여.. 에.. 흙흙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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