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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또는 이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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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가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2,636회 작성일 05-08-15 18:47

본문

지금 읽고 있는 독일어 책의 몇 줄을 한국어로 옮겨본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의복이 A, 그녀를 감싸고 있었고 그녀의 주위를 빙 둘러 그녀의 여자 친척들이 반원을 그려서 앉아있었다. 그녀들은 사랑의 고통에서 오는 슬픈 노래를, 그리고 환멸감만 불러 일으켰던 그녀들의 동경과 그에 대면해서도 절대 좌절하지 않을 희망에 관한 노래를 불렀다. 신부와 가장 가깝게 앉아 있는 여자는 신부의 팔과 위쪽 허벅다리를 때렸다. 곧 A는 마음이 격해져 아픔과 조만간 만나게 될 미지의 남편에 대한 공포로 울기 시작하였다. 여자들의 손은, 불행과 악한 귀신들로부터 보호해 준다고 믿어지던 붉은 염료로 붉게 칠해져 있었다. 신부가 이 ‘키나 게체시(신혼 전야제)’ 에 흘리는 눈물만큼 그녀가 미래에 흘리게 될 눈물이 덜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신부가 많이 울면 울수록, 눈물이 많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부부는 걱정근심이 없는 미래를 얻게 되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남자들은 이와 아주 다른 방식으로, 신혼전야의 저녁을 축하했는데, 생기발랄한 노래를 부르고, 경쾌한 춤을 추고, 즐거운 음악을 연주하고 유쾌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이들에게서는, 신부 쪽의 괴로움과 아픔으로 가득 찬, 미래에 대해 불안한 예감으로 우울한 그런 감흥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감정이입. Einfühlung. 타자의, 혹은 다른 사물의 기분을 그대로 느끼는 것.
 
아주 어린 날, 아주 무서운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마다 내가 공포에 사로 잡혀 눈을 크게 뜨면, 아빠는 말씀하셨다. 가을아, 저거 다 쇼야. 저거 다 꾸며낸 거야. 가짜야. 진짜 아니야. 무서워 할 건 하나도 없단다.. 아무리 그 분이 그렇게 말씀 하셨어도 난 아빠의 말을 믿지 못했다. 더 커가고 아빠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이입된 감정 속에서 탈출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리고 더 커가고 감정이입이 너무 쉬운 내게, 감성이 풍부해서 그러는 게야. 그리고 그건 부끄러워 하지 않아도 돼..라고 규정되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었다. 그리고 이제 더 크자, 아니 더 나이가 들자 눈 깜박이는 것처럼 쉽던 감정이입은 갇힌 물처럼 흐르지 못했다.  

얼마 전이었던가. 서로 잃어버렸던 엄마와 아들이 삼십여 년 만에 재회하는 티브이 프로를 본 일이 있었다. 내 엄마는 연신 눈물을 흘리시며 우셨다. 코까지 핑핑 풀어가며 말이다. 난 하지만 아주 담담했다. 아니 그보다는 감정이입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았다. 설혹 그것이 가짜가 아니라 진짜였고, 그건 드라마가 아니라 실화였다고 하더라도 난 굳게 거부하고 있었다.  어쩐지 너무 눈물이 헤프다는 자격지심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고, 연신 눈물을 흘리는 엄마에 대한 묘한 정서적 반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울 엄마는 정말, 정말 대책 없이 잘 우신다...
“뭘 그렇게 심하게 우시고 그러세요?”
던지듯, 비아냥거리듯 엄마에게 말을 던지자 엄마는 토끼처럼 벌건 눈을 훔치시며
“넌 눈물이 안나오냐? 난 슬프다..”
라고 말씀하셨다. 난 그냥 피식 웃었다. 아마 엄마의 감정을 모욕하거나 그들의 눈물 나는 재회를 모욕하고 싶었나 보다. 못됐다.
며칠 전에도 엄마는 내게 전화하셔서 마구 우셨다. 난 짜증이 나서 그 분의 말을 듣는 대신 다른 일들을 생각했다. 엄마의 슬픔에 동참하고 싶지 않았다. 이입되고 싶지 않았다. 지겹다고도 생각했다...  그 다음날, 엄마가 또 우시자 난 참지 못하고 대답했다.
“엄마, 도대체 그 문제에 대해 제가 어떻게 해주길 바라세요? 엄마가 그렇게 울면 그 문제가 해결되나요? 그 분이 건강해져서 더 오래 사실 수 있나요? 내가 뭘 어떻게 해주길 바라세요? 함께 울어 드릴까요? 어쩌나, 난 그럴 생각이 없는데..”
지겹다. 우는 것, 눈물 흘리는 것... 정말 지겹다. 누구든.. 그만 울어라..
 
난 좀 더 강해지고 싶다고 생각한다. 나무 기둥처럼 쉽게 흔들리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함부로 너무 쉽게 감정이입하는 것은 정서가 풍부한 게 아니라 유치하거나 나이값을 못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난 엄마가 부디 그렇게 아무렇게나, 아무데서나 눈물을 흘리는 그런 분이 아니길 바랐다. 어느 영화에서처럼 슬프거나 고통스러워도 이를 악물고 입술을 질끈 깨물어, 담대하게 스스로의 감성을 이겨내는 견고함을 갖은 분이기를 바랬다. 그래서 엄마가 너무 유약하다는 이유로 엄마를 우습게 알기도 했었다. 엄마는 무조건 강해야 하는 거고, 아이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면 안된다고 여겨서.
물론 난 엄마만큼이나 아무데서 울고, 힘든 일에 대해 입을 앙다물지도 못한다. 난 너무 느슨하다. 스스로를 건조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당분간은 울 일도 없었다..
그러다가 이 구절을 읽었다. 신혼 초야의 전 날, 많이 울면 울수록 나중에는 울 일이 없을거라 여겨서 친척들로부터서 팔과 허벅지를 아프게 두들겨 맞는 여자. 맞을 때의 통증과 자신에게 다가올 낯선 미래와 생면부지의 남편에 대한 공포로 우는 여자. 많이 울어야 좋은 그녀들.

눈물이라는 게, 정량화되어 있는 그 무엇이어서 한꺼번에 많이 울어 버리면 다음에 울 일이 없는 건가? 전야에 많이 울면 더 담대해지고 대범해져서 다음 날의 미지의 공포로 부터서 더 자유스러운가? 아니라는 거 안다. 모를 그들이 아닐 것이다. 그저 저건 하나의 상징적인 행위일 테다. 하지만.. 하지만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다른 나라, 다른 시대의 그녀들이지만, 마치 내가 반원으로 둘러싸인, 붉은 염료로 손을 칠한 친척들에게 얻어맞고 있는 것처럼, 아프고 슬펐고 무서웠다.. 난 책을 읽다가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다음, 그들이 어떻게 결혼식을 치러내고 어떤 옷을 입고, 어떻게 장식하고..운운 하는 이야기들은 잠시 떨어져 있고 싶었다.
만약 가능하다면, 그들의 그런 믿음대로 세상의 눈물이 정량화 되어있다면, 엄마는 이미 아주 오래 전에 눈물을 그치셨어야 했다. 그 분의 눈은 물기조차 없어야 했다. 난 아주 조금만 울면 이제 울 일이 없어야 한다. 아니 애초에 결혼 전날, 그이의 친구들과 죽이 되도록 술을 마실게 아니라 친척들로부터서 내가 가진 눈물을 다 뽑아내게 해달라고 부탁했을 것이고 그 분들은 내 미래를 위해, 눈물 흘리지 않는 미래를 위해 기꺼이 그렇게 해주셨을 것이다.  정량화된 눈물이라니... 엉뚱한 감정이입이라니... 쳇. 
 
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종국엔 무엇이냐고 묻지 마시라. 내 이야기는 늘 미로처럼 여기저기를 헤메이고 기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였는지 내 자신도 모른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내뱉는다. 가끔 그것에 누가 마음을 다칠지도 모른다는 거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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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님의 댓글

도보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이들과 함께 하지 못하는 애미는 늘 안타까움을 가슴에 넣고 다닙니다.
하루는 작은 놈에게서 전화가와서 언니가 놀아주지 않는다고 울어댑니다.
큰 아이에게 동생이랑 놀아 주라고, 엄마가 옆에있으면 네게 이런 부탁 하지 않았을거라고
말하는데 눈물이 났습니다.
한참을 쉬다
 " 사랑하는 딸아 엄마가 많이 슬프고 미안하다."
 " 예, 엄마 같이 놀께요."
운전하는 동안 계속 눈물이 났다.
못난 애미의 눈물....
저도 왜 이야기를 늘어 놓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대화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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