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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코베인

페이지 정보

작성자 나디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7건 조회 3,772회 작성일 05-08-04 09:36

본문

락 음악에 빠져들게 된 것이 순전히 기타 때문있었듯이, 아직도 그러하지만 음악을 들을 때엔 가사의 의미나 그 노래가 추구하는 정신(예를 들면 정치적 성향)등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었다. 거창하게 이야기하자면 직관적으로 포용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었고, 가볍게 이야기하자면 내 가슴을 후벼파 줄 수 있는 것을 좇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헤비메탈을 대표하는 찢어지듯 갈라진 거친 보컬이 아니라 매우 기교적인 연주가 그것을 채워주었다. 소위 트래시 보다는 바로크메탈을 들었다.
 
대학을 입학하고 락음악에서 한동안 멀어졌던 것은 실기실에서 미친듯이 작업에 열정을 풀어내는 시간 덕택?이었을 거다. 삼 사일은 잠도 없이 작업을 하다 축축한 실기실 소파에 몸을 기댔다가 정신을 잃듯 잠에 빠져들곤 했으니, 그렇게 지치도록 무엇을 빼내고 나야 응어리진 무엇들이 겨우 잠잠해지는 듯 했으니.
 
전공이란 것이 그렇듯, 시일이 지나면 익숙해지고 시간 조절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3학년 때, 작업이 끝난 밤이면 종종 락카페를 갔었다. 사실 그때 나는 작업의 슬럼프에 빠져서 아무일도 하지 않고 허우적거리기만 했던 시기이라고 하는게 솔직하지만. 그곳에서 커트코베인의 음악을 처음으로 관심있게 들은 셈이다. 들은게 아니라 느낀 것이라고 해야할까, 정말 미친듯이 춤을 췄다.
 
Underground라는 락카페, 커트코베인을 신청하며 전 앨범을 다 틀어주기도 했었다. 음악에 맞춰 진정으로 몸을 흔들어댈 수 있는 것이 그의 음악이었던 것을 이해해보려 하지도 않는게 내 성격이나, 오늘 어느분 블로그에서 글을 읽다보니 싱겁게 웃음이 흘렀다.
 
 
 내오랜꿈 2002/03/27
 
NIRVANA(2), 『Unplugged In New York』 : 더 많은 예술, 더 많은 대안을 위해

니르바나로 대표되는 '얼터너티브'는 "음악적 스타일이기 전에 태도이고 지향이고 운동이다."  "그들은 마이클 잭슨이나 마돈나처럼 휘황 찬란한 의상을 자랑하지도 않고, 매력적인 춤을 선보이지도 않고, 잘 손질된 머리카락을 휘날리지도 않았다.  대신 그들은 지저분하게 머리칼을 헝클어뜨리고, 플란넬 셔츠와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노동자가 신는 부츠를 신고 다닌다."
(신현준 엮음, 『얼트 문화와 록 음악 1』, 한나래, PP.73~74)

이런 니르바나에게 『Nevermind』의 엄청난 상업적 성공은 전혀 예기치 못한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이 성공을 바탕으로 거들먹거리거나 흥청망청대지 않은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니르바나 멤버들의 집에는 보디가드도, 그루피도, 홍보 담당자도, 비서도, 하녀도 없었다.  그들의 집에는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더 많았다.  전통적으로 락스타들은 성공을 거둔 뒤 궁핍했던 시절의 고통을 일거에 보상받으려는 듯한 행태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니르바나의 경우는 물질적 풍요나 그와 연관된 쾌락을 즐긴다는 증거는 아무 데도 없었다.

또한, 그들은 주류(락음악)의 세계가 부패하고 타락했다는 생각을 견지했고, 그 세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노골적인 야유를 퍼부었다.  단적인 예는 1992년 4월 『롤링 스톤』지와 인터뷰 할 때 발생한 사건이었다.  『롤링 스톤』은 니르바나를 커버스토리로 다룰 계획을 알리고 사진 촬영을 위해 커트 코베인을 불렀다.  그런데 촬영장에 나타난 그의 티셔츠 위에는 '재벌 잡지는 여전히 메스껍다 CORPORATE MAGAZINE STILL SUCKS'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생각해보라.  자신을 커버스토리로 다루면서 표지모델로 삼겠다는 잡지의 표지사진을 찍으러 오면서 '니네 잡지는 엿같다'는 문장이 새겨진 옷을 입고 나오는 뮤지션을....  1960년대말 '혁명가들'에 의해 창간되었지만 이제는 주류에 확고하게 자리잡아 요트와 대형차를 광고하는 『롤링 스톤』도 커트의 냉소를 비켜갈 수 없었다.

그리고 니르바나는 백인 남성 우월주의에 젖은 80년대 주류 락음악의 추악한 전통에도 도전하였다.  작은 키와 창백한 안색과 부드로운 목소리를 가진 커트 코베인은 건스 앤 로지스(Guns & Roses)의 액슬 로즈(Axl Rose)로 상징되는 마초(marco) 이미지의 락스타와 대조적인 이미지를 지니는 인물이었다.

코베인에게 동성애 혐오자, 성차별주의자, 스판덱스(spandex)는 동의어였다.  그들은 동성애자를 비롯한 '마이너리티'의 권리를 옹호하는데 진지하고 당당하게 앞장 섰다.

그러나 현실은 커트의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자신들이 그렇게도 혐오하고 부정하는 주류의 세계를 그대로 답습하는 자신들의 위상...  『Nevermind』가 공중파 라이오와 MTV를 점령하면서 니르바나는 '이전의 주류를 대체하는 또 하나의 주류'로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Smells Like Teen Spirit」이 파티장 곳곳에서 흘러 나오거나, 일부 팬들이 '니르바나와 건스 앤 로지스를 동시에 좋아할 수는 없느냐?'라고 물어보는 일 정도는 그러저럭 넘길 수 있었지만 두 청년이 니르바나의 노래를 부르면서 한 소녀를 윤간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영화를 보더라도 니르바나가 어떤 식으로 수용되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뮤리엘의 웨딩』에는 아직도 아바(ABBA)를 듣는 뚱뚱하고 못생긴 뮤리엘에게 세련되고 예쁜 그녀의 친구들이 니르바나의 음악을 권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녀의 친구들이 뮤리엘보다 더 속물적이고 그녀들에게 니르바나는 그저 아바를 대체하는 첨단의 '연예인'에 지나지 않는다.

또 『보이즈 온더 사이드』에서는 마약 딜러이자 여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개망나니가 우피 골드버그의 옛 애인(그는 동성애자이다)의 남자 친구로 나온다.  그런데 그가 사는 집에는 니르바나의 데뷔 앨범인 『Bleach』를 확대한 앨범 포스터가 붙어 있다.  그의 사고나 생각은 주류 팝과는 다르지만 그것을 수용하는 입장에서는 또 하나의 '연예'일 수 밖에 없는 이 모순.

결국 니르바나는 락음악이 주류 팜음악의 세계와 맺는 미묘하고 복잡한 관계를 재현하고 말았다.  언더그라운드의 순수성만 가지고는 폐쇄적인 공간에 머무를 수밖에 없고,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 상업성을 감수하면 산업화된 생산의 논리에 종속되고 만다.  이중구속.   언더그라운드 펑크 씬의 순수성에서 성장한 커트 코베인은 이런 상황에서 빠져 나올 무기를 발견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1993년 9월 세번째 앨범인 『자궁 속에서 In Utero』를 발표하면서 언더그라운드의 순수성으로 돌아갈려는 메시지를 던진다.  자궁이란 그가 돌아가려는 언더그라운드의 순수성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앨범 발표 뒤에 그를 찾아온 현실은 더욱 혼란스러운 것이었다. 『In Utero』가 발매 1주일 만에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을 차지한 것이었다.  '실패'를 노래한 그에게 청중들은 더 큰 '성공'으로 보답한 것이었다.  그는 점점 더 분열적이 되어 헤로인에 젖어들게 된다(신현준 엮음, 위의 책 PP.73~89에서 정리)'

자살하기 6개월전인 1993년 11월 MTV 언플러그드 공연을 보면 초췌하고 어딘가 몽환적인 모습을 보이는 커트를 볼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이 MTV 언플러그드 앨범을 니르바나를 가장 잘 표현한 앨범이라고도 한다.  솔직히 나도 이 앨범을 듣고 있노라면 커트의 그 절규하는 듯한 보컬이 머리 속에서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이 언플러그드 공연이 마지막 공연인데, 앵콜 곡으로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을 불렀다.  이 곡은 전설적인 흑인 포크 뮤지션 리드벨리(Leadbelly)의 곡으로 유명한 전래 민요인데, 이 곡의 내용을 암시하기라도 하는 듯 커트 코베인은 1994년 4월 8일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 '모든 변명'(All Apologies)을 넘어서.....

아마도 그는 전혀 원하지 않았겠지만, 이로써 커트는 하나의 '신화'가 되었다.  더 많은 '예술', 더 많은 '대안'을 추구하는 얼터너티브 락 음악의 역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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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가을님의 댓글

가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늘, 나댜님을 닮은 한 젊은이를 만나고 왔습니다. 개인전 팜플렛을 주더군요..
그에게 나댜님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는 아주 달콤하게 웃었습니다.
대학원 마지막 학기를 남겨둔 그에게 앞으로 어떡할거냐고 물었더니 또 웃었습니다. 그래서 나댜님처럼 기타를 쳐.. 라고 말하고는 나도 마주 웃었습니다. 황당한, 무책임한, 아주 무성의한 대답이었기 때문입니다..
조만간 그의 그림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이해불가한 그림.

아주 피곤한 하루였습니다. 작업때문에 밤 늦게 메일을 확인하다가 문득 그대의 글을 읽고서 괜히 그가 떠올라서 참견해 보았습니다.

아카드님의 댓글

아카드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건스엔로지스는 같이사는사람이 무지좋아하는데.. 공연 비디오를 이따끔씩보고는 흥얼거리는것을 보았거든요...
갈수록 나디아님이 궁금해집니다..emoticon_127

Lisa-marie님의 댓글

Lisa-mari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전 쇼팡 이후에 작곡된것 들은 안듣습니다. 안들어요.
나댜님.
제 목을 매시거나 저를 사형대로 보내시거나 마녀재판을 하십시오.
못 듯습니다요.

Lisa-marie님의 댓글의 댓글

Lisa-mari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춤이라면 저는 주로 고전 발레나 귀족들의 메누엣 이 전공 이지만.....

진짜 잘 하는건 디스코 입니다.
학생 때 날렷죠.
저 하고 남친 파티라면 빠지는데가 없었습니다.
초대를받았건 안 받았건....
지금도 디스코텍 가끔 가요.

우리 방학인데 한번 모여서 디스코 파티열면 어떨까요?
저 학생때 보다 실력 조금도 줄지 않았음.

저 그런데 진짜 관심 있는건 한국 전통 고전무용 이에요.
저 잘 할수 있을거에요.
티비에서 보고 따라한적 있거던요.
어디서 배운담..... 그런데 비데오 있으면 저 혼자서도 배울수 있을것 같아요.

무스타파님의 댓글의 댓글

무스타파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왜 쇼팽 이전의 음악만 들으세요? 뭐 취향이야 다들 다르지만...
전 주로 쇼팽 이후의 음악 위주로 듣거든요.

후추님의 댓글

후추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커트 코베인은 94년 4월 8일에 죽은 채로 발견되었지요. 자살 추정 날짜는 4월 5일입니다. 그리고, 권총이 아니라 레밍턴 20구경 라이플로 머리를 쏴서 자살했습니다.
이 총입니다. http://iron-horse.us/graphics/hunting/jason01.jpg (끔찍한 사진 아님.)

이 총 얘기를 좀더 하자면, 커트 코베인은 자살한 게 아니라 타살되었다고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제기하는 의문점은, 자살 (또는 살해되던) 당일 커트 코베인은 치사량의 세 배가 넘는 헤로인을 먹었다는 점, (즉 저절로 죽게 되어 있었다는 소리.) 어쨌거나 이 때문에 팔을 제대로 가눌 수도 없었다는 점, 머리에 총구를 대고선 커트 코베인의 팔은 방아쇠에 닿기엔 짧았다는 점, 그래서 발가락을 사용했어야 했는데 발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기고 나서의 결과가 흔한 모습이 아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즉, 장총 자살할 땐 대부분 총구를 턱에 괴게 되는데 -2차대전 때에 일본 군인 자살하는 장면처럼- 만약 이렇다면 얼굴은 남고 뒤통수쪽이 날라가야 하는데, 커트 코베인의 경우엔 얼굴과 뒤통수가 거의 대부분 사라져 버렸죠. 그 다음에 넘어진 모습 또한 자살이 아니라 저격된 것'처럼' 되어 있었죠. 기억이 가물가물한 관계로 이 부분은 자세히 묘사할 수 없습니다. 사진 다시 보기는 죽어도 싫습니다emoticon_055)

어쨌거나 커트 코베인은 어느 인터뷰에서 종종 비틀즈의 음악 행로가 "I wanna hold your hand"에서 "Sgt. Pepper's..."로 변화를 겪었듯이, 자신과 그룹 또한 어떤 새로운 음악적 실험의 단계에 이르렀고 그 실험을 해보고 싶다고도 한 적이 있는데, 그가 계속 살아 있더라면 어떤 음악이 나왔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흠...그러고 보니 언젠가 커트니 러브가 커트 코베인을 존 레논에, 자기를 오노 요코에 비유한 적이 있군요.)

여름비님의 댓글의 댓글

여름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타살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 저도 들었습니다. 용의자로 커트니 러브를 지목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심증은 있어도 물증이 없는 관계로 더 이상의 진전이 없다는군요. 살인동기로는 그녀의 질투를 꼽죠. 커트 코베인이 죽기 얼마 전부터 그는 그녀와 이혼할 결심을 했었고, 그녀는 그것을 절대로 받아줄 수 없었다네요. 워낙에 폭력적 성향이 있는 (그녀는 그때문에 가끔씩 법정에 서기도 합니다) 커트니 러브라 더욱 그 의혹에 신빙성이 가해지는 겁니다. 하지만, 진실을 누가 알겠어요? 전설적인 인물의 사망은 용인하기가 힘들죠. 그래서 아직도 엘비스 프레슬리가 어딘가에 살고 있다는 소문도 들리는 것 아니겠어요.

후추님의 댓글의 댓글

후추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커트 코베인은 저한텐 별로 전설적인 인물이 아니라서인지 사망 용인하기 별로 안 힘듭니다. 커트 코베인이 살해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한텐 커트니 러브의 거칠고 질투심 많은 성격이라는 막연한 주장말고도 다른 그럴 듯한 정황증거들이 있지요. 그런데 그 정황증거들이 논리적으로 설득력을 가지는 딱 그 만큼, 자살했다는 논리 또한 충분한 설득력을 지닙니다. (전 커트 코베인이 살해당했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그의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다라고 주장한다면 뭐, 할 말을 잃겠지만.)
어쨌거나 자살 도구는 (우아한) 권총이 아니라 장총되겠습니다.

나디아님의 댓글의 댓글

나디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후추님 오랜만이네요.
사진을 봤는데 정말 엄청난 장총이군요. 코베인 죽은 사진은 어디서 보셨는지..
저는 전에 괴기영화인줄 알고 빌렸던 비디오가, 사고로 죽은 사람들 녹화한 다큐가 걸렸던 적도 있고, 시체해부하는 장면 모은 게 걸린 적도 있었습니다. ;; 그게 왜 호러에 있었는지 원..

여름비님의 댓글

여름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니르바나...
92년부터 독일에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마음이 답답하면 하루종일 방에 들어앉아 크게 틀어놓은 것이 메탈리카와 니르바나의 음악이었습니다. 친하게 지냈던 언니로부터 이게 무슨 음악이냐고 핀잔까지 들어가며 들은 음악인데, 감회가 새롭군요. Wiederholung으로 듣고 또 듣고... 그러고보니 음악도 음악이지만 커트 코베인도 참 좋아했었어요. MTV에서의 그 공연 아직도 기억납니다.

나디아님의 댓글의 댓글

나디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독일 오기 전에는 락카페에서가 아니면 찾아 듣지는 않았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제겐 춤곡이었죠.
독일와서 언젠가 친구 차 안 라디오에서 너바나의 노래가 나오는데 어찌나 반갑던지. 그리고 머지않아 TV에서 커트코베인 특집을 해주었죠. 그의 연주모습과 이런 저런 이야기들, 그리고 언플러그드 라이브 전체를 방송해 주었죠. 그거 녹화 해둔거 아직도 있습니다.^^
재밌었던 건, 뮤비 녹화하는 장면이었어요. 일종의 립싱크죠. 덮어 씌웠던 노래를 지우니까 커트 코베인은 이렇게 노래를 부르고 있더군요.. " 아임 너바나~~ 유아 마돈~나~~"

후추님의 댓글의 댓글

후추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한국에서 듣던 너바나 노래들은 저한테 춤곡이라기보다는 술곡이었죠. 저 또한 찾아들었던 건 아니라서 술집이 아니고선 들을 기회가 별로 없기도 했구요.
그러고보면 너바나에 얽힌 에피소드도 많군요. 지나가던 액슬 로즈한테 자기 딸 대부 좀 서달라고 농담했다가 사납게 거절당하기도 하고, 92년 MTV video musical awards에선 "리튬 "부르라는 피디 "명령"에 "레이프 미" 부를 거라고 뻣대다가 진짜 "레이프 미" 불러 버리기도 하고, 어느 작은 공연에선 링겔 꽂고 휠체어 타고 들어와서 섰다 하면 쓰러지고 섰다 하면 쓰러지기를 반복하다 겨우 일어서서 한다는 노래가 "some say love~~", 이러다 또 졸도하고... 그 노래 제목이 "roses"였죠.

혹시 녹화해둔 방송 중에서 옛날 고딩 때 여자친구 인터뷰한 것도 가지고 계신가요? 감동적인 인터뷰였습니다. 기억이 잘 안 나서 뭐라고 할 말은 없지만...emoticon_011

나디아님의 댓글의 댓글

나디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로우지즈가 백인 남성 우월주의가 있다고 사람들이 말하더군요, 뭐 전~혀 관심이 없어서.
어쨌든 TV로 중계되는 어느 공연에 많은 음악인들이 초청이 되서 노래 연주를 했는데 공교롭게도 너바나 - 건즈엔 로우지즈 차례였다고 합니다. 너바나는 연주가 끝나고 들어가면서 드럼세트를 완전히 부시고 나갔다고.. 그 뒤로 건즈엔 로우지즈는 연주를 위해 드럼을 새로 세팅했다네요. 성질머리하곤.ㅋㅋ(그게 마음에 드는 난 또 뭐냐 대체emoticon_001)
비디오를 다시 확인 해봐야 알겠지만, 여친 인터뷰는 아마 없었던 것 같아요. 아.. 궁금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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