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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오인호를 아십니까?"…

페이지 정보

작성자 송단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4,767회 작성일 08-05-18 23:39

본문

한국기독교가 세인들의 비난을 받고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특히 사학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벌어진, 소위 지도부격인 기독교 기득권자들의 범죄에 가까운 행위들, 경멸감을 일으키는 언행들, 최근 미국 소고기 수입을 둘러싸고 일어난 논쟁들 중에 조용기 목사의 상식을 초월하고 국민들을 우롱하는 발언들, 오정현목사의 망언들, 목사들의 셀 수도 없는 반 민족적인 언행들은 많은 의식있는 기독인들을 절망내지는 허탈감으로 몰아 넣으며, 반기독인들을 부추기고 있다.

목사들이 어떻게 그렇게도 인간 이하로 타락할 수가 있을까 생각하며 분노를 하지만, 그러나 기독교가 사람을 인간 이상으로 변화를 시킨 예도 수없이 많다. 그 중에 하나를 고개한다.
출처:
http://cosamo.net 



오인호 가족의 원수사랑 이야기


1. "한국인 오인호를 아십니까?":

“한국인 오인호를 아십니까?” 1978년 5월 경,  미국 몬트리트대학 학장 박대위 박사(David Park)가 내게 던진 질문이다. 내가 처음 미국에 도착한 노스캐로나이나 주 서부 애쉬빌이라는 곳은 미국 개신교 대교단들의 휴양소가 밀집된 아름다운 곳으로 산들로 둘러 쌓여 있다. 인접한 몬트리트에는 부흥사 빌리 그래함이 살고 있었다. 그곳에는 남장로교회 역사자료보관소와 몬트리트대학(당시 2년제 인문대학)이 있다. 박 박사는 공학도로서 한국에 선교사로 봉사했고, 한국인들과 가까이 지냈다.

박 박사가 “한국인 오인호를 아느냐?”고 물었을 때 그 이름은 내게 생소했다.  “내 나이 또래의 미국인으로 오인호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한국’하면 ‘전쟁’과 관련시켜 기억할 것으로 생각했던 미국인이 나에게 들려준 그 말, 즉 ‘한국인 하면 오인호로 기억된다'고 한 것은 내게 매우 흥미로웠다. 그 당시 나는 20대 후반이며, 그는 50대 중반이었다.

박 박사가 들려준 오인호 씨의 이야기는 대충 다음과 같다.

오인호는 필라델피아의 어느 대학에서 유학을 하던 중 흑인 불량배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이 사건은 즉각 전국에 보도되었다. 중요한 것은 그 비극적 소식을 들은 그의 부모가 필라델피아 시장에게 편지와 돈을 보낸 것인데 그것이 미국인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한국에 있는 오인호 아버지는 기독교인이었다. 아들의 비보를 접한 그는 애통하면서도, 그 비극을 기독교 신앙으로 승화하고자 했다. 장례식에서 가족들에게 호소했다. 아들은 살해되어 주님 곁으로 갔지만, 우리는 이 비극을 신앙적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살인범 불량배들이 돈 몇 푼을 위해 범행을 저지른 것은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을 교화하도록 우리가 돈을 모아 필라델피아 시장에게 보내자 하고 호소했다.

편지와 돈을 받은 필라델피아 시장은 한국인의 원수사랑의 이야기를 언론사에 제공했다. 그 소식은 ‘한국인-전쟁’ 이미지를  ’한국인-원수사랑’ 이미지로 바꾸었다. 한국인은 원수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이웃하고 지내고 싶은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박 학장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는 여기까지이다.

2. 미국인들을 놀라게 한 오인호의 부모

뉴스앤조이(www.newsnjoy.co.kr)는 최근 미주뉴스앤조이 기자 박지호 씨가 이에 대한 좀 더 상세하게 쓴 글을 실었다.  “아들 죽인 범인 용서한 한국인 부모, 미국인들에게 감동: 오인호 기념 장학 사업 지속 …이스턴대학 해마다 추모 행사”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당시의 신문에 실린 사진들과 비문을 곁들여 싣고 있다. 아래의 글은 위 글을 간추린 것이다.

1958년 4월 25일 금요일 밤 9시경 펜실베이니아대학 주변 해밀턴 거리 36가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한국인 유학생 오인호 씨(당시 26세)가 흑인 불량배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11명의 불량배들은 날카로운 철사가 달린 블랙잭으로 그의 머리를 내리치고, 콜라 병을 깨뜨려 몸을 찔렀다.

창밖을 내다본 이웃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오씨를 급히 병원으로 옮겼으나 이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오 씨는 작은아버지 오기항 목사 집에 머물고 있었을 때였다. 범인들은 사건 발생 이틀 만에 붙잡혔다. 근처 교회에서 열리는 청소년 댄싱 파티 입장료 35센트를 마련하기 위해 사람을 죽인 것으로 밝혀졌다.

언론들은 이 사건을 대서특필했다. 독자들은 35센트 때문에 사람을 죽인 흑인 범인들의 비인간성에 경악했다. 폭행 과정에서 잔혹성에 분노했다. 여론은 청소년들이지만 극형에 처해야 한다는 쪽으로 치달았다. 재판에 참석했던 대부분의 배심원들도 극형에 처할 것을 주장했다. 결국 11명 중 3명이 살인 혐의로 유죄를 선고 받았다.
  
미국시민들은 오 씨의 참혹한 죽음에 안타까움과 분노를 표했다. 장례식에 참석한 필라델피아 시장도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미국인들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그 후에 필라델피아 시장에게 날아 든 한 통의 편지였다.

오 씨의 아버지인 오기병 장로(부인은 권사)가 한국 부산에서 편지를 보냈다. 그는 필라델피아 시장에게 자신의 아들을 죽인 범인들에게 ‘최대한 관대한 판결을 내려줄 것과, 이들을 위해 가족들이 모금한 돈 500불을 보내니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필라델피아의 젊은이들을 교화하는데 사용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교육적 빈곤이 살해의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가독들이 모은 돈이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슬픔을 승화시켜 기독교적 소망을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 인호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믿을 수가 없었고, 큰 충격과 비탄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살인자들의 구원받지 못한 영혼과 인간성 마비에 대해서도 슬프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떻게든 살인자들의 영혼을 구원하고, 이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도구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가족은 가족회의를 열어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가장 관대한 판결이 내려지도록 청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 행위가 희생자 본인과 그의 가족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몰랐습니다.(중략).

교육적 빈곤이 살해의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가족은 이들이 석방된 뒤에 직업 교육 및 사회 적응의 목적으로 쓰일 수 있도록 기금을 적립하기로 했습니다. …이것은 죽임을 당한 이와 죽인 자들에게 생명을 주는 일이며 우리를 기독교적 사랑과 친교 안에 연결되게 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 우리는 다만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성령으로 우리의 소망을 밝혔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미국 국민들과 특히 우리의 피붙이인 아들을 죽게 한 이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기병(오인호 씨 아버지) 올림."

오인호와 그의 아버지 오 장로의 편지는 미국 사회를 들썩거렸다. 언론들은 아들을 죽인 원수를 향해 용서와 자비를 구하는 오 씨의 부모를 주목했다. “악을 선으로 갑는 자”( “To Return Good for Evil”, The Evening Bulletin 5월 2일자), "아들을 죽인 살인자들을 위해 500불 기부한 오 씨의 부모"(In Ho Oh's Parents to Give $500 to Help His Slayers)라는 제목의 기사들을 실었다. “미국에서 500불은 큰돈이 아니지만, 한국에서 일용직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2센트~35센트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오 씨 가족에게는 적지 않은 돈”이라며 오 씨의 가족이 보여준 원수사랑과 용서에 대한 진정성을 높이 샀다.
  
3. 오인호 기념사업

필라델피아 시는 유가족을 위해 모든 비용을 지불하고 오 씨의 시신을 한국으로 송환키로 했다. 그러나 오 씨의 아버지는 오히려 아들을 그곳 필라델피아 땅에 묻기 원했다. 아들의 무덤을 통해 미국 국민들이 교육적 빈곤이 청소년 범죄의 일차적인 원인임을 자각하고, 청소년 교육의 책임성을 절감토록 할 목적이었다.

필라델피아 시는 ‘오인호기념장학금’을 모금했다. 두 명의 한국 학생이 그 돈으로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박사 학위 과정까지 마쳤다. 필라델피아의 교회들도 160만 불이 넘는 기금을 모금해 숭실대학교에 전달했으며, 일부는 적십자사에 사회복지기금으로 기부했다. 1962년에는 미국 장로교회가 이 사건을 바탕으로 한 ‘An Epistle from Koreans’(한국에서 온 편지)라는 영화를 만들어 5,000곳이 넘는 미국 교회들에서 상영했다.

오 씨의 작은아버지 오기항 목사는 비극을 어떻게 기독교적 소망으로 승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고민했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도 상의했다. 가족들은 사재를 들여 ‘오인호 기념 코리아 센터’를 건립했다. 이 센터는 나중에 한인 유학생들과 교포들을 재우고 먹이는 '코리안 센터' 역할도 했다. 한인 2세들에게 한글과 한국 문화와 전통을 가르쳤다. 이민자들의 실제적인 필요를 채우기 위해 법률 서비스와 의료 서비스를 펼쳤다. 아시아법률센터를 설치해 한국인뿐 아니라 아시아계 이민자들에게 무료 법률 상담 서비스를 제공했다.

오 씨가 펜실베이니아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다닌 이스턴대학은 그가 살해당한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희생과 그의 가족들의 기독교 정신을 기리고 있다. 이 대학은 사건 발생 후 ‘오인호 장학금’을 만들었고, 도서관에 ‘오인호 기념 컨퍼런스 룸’을 만들었다.  이상은 뉴스앤조이에 실린 글의 핵심을 요약한 것이다.

4. 원수사랑은 윤리적 명제로 그칠 것인가?

오인호의 묘비명에 쓰인 글자 "To Turn Sorrow into Christian Purpose"(슬픔을 기독교적 목적으로)는 그의 아버지가 필라델피아 시장에게 보낸 편지에 담긴 문구이다.  '원수사랑의 삶'은 손양원 목사나 오기병 장로와 그의 가족들에게만 주어진 과제가 아니다. '하늘에게 계신 아버지의 아들'이 되고자 하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교훈이다.

원수사랑은 윤리적 강령으로 그칠 문제가 아니라 목숨을 다하여 실천해야 할 과제이다. '이웃은 사랑하고 원수는 미워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데 우리의 고민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쉽지 않은 것을 실천하는 데서 그리스도인의 구별성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는 만큼 실천하는 것이 쉽지 않다. 오른편 뺨을 치는 자의 왼편 빰을 치고 싶은 게 우리의 심정 아닌가. 우리는 신이 아니라 여전히 인간이 아닌가?

최덕성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역사신학)
추천6

댓글목록

전설인님의 댓글

전설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지금으로 부터 50년전 일이군요.
그당시는 신문 라디오 방송아니면 이런 미담이 세상에 널리 알려 질 수가 없었지요.
계산해 보니  자유당 정권 말기 때 ,
아마 내가 고등학생시절인것 같습니다.
그때 전혀 알지 못한 사실을 오늘에 알 수있다니...
자유당 시절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가 전국 각처에서 일어나고 고대 생들이 정치 깡패에 테러를 당하는 등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민중봉기와 최루탄을 맞은 김주열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 되는 등 부정과 폭력 독재정권이 기승을 부리던  어수선하고 암울한한 시절이라 뒷전으로 밀렸는지...
초등학교 교과서에 올라 어린 새싻에 널리 알려야 할 숭고한 미담의 주인공인 오인호씨를 왜 정작 한국에서는  모르고 있었을까.
황당한 일입니다. 
세계를 복음화한다는 기독교적인 사명감으로 물의를 일으켜 오던 한국의 기독교 교단에서는 오인호씨 부모님의 숭고한 박애정신을 왜 무시 했을까,
그리고 부흥 목사님의 부흥 설교에  주제가 될 <오인호씨 가정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기독교 정신을 정작 목사님들은 왜 모른 척 했을까.
등잔 밑이 어둡다는 우리의 속담이 불현 듯  생각이 납니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과 중국 대지진으로 인한 재앙등 우울한 소식만 연일 듣다가
오인호씨에 대한 글을 읽고  한껏 심신이 개운 한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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