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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독교, 혹은 개신교에 대해서…

페이지 정보

작성자 팬교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1건 조회 3,450회 작성일 07-08-06 05:13

본문

제목은 저렇게 거창하게 써놨지만, 제가 배움이 워낙 부족해서, 사실은 '기독교'나 '개신교'에 대해서 글을 쓸 능력은 무척 모자랍니다.  그래서 그 앞에 굳이 '한국'이라는 말을 집어 넣었습니다.

한국 기독교, 정확히는 개신교의 교회를 5살 때부터 다녔습니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다녔으니까, 20년 정도는 다녔겠네요.  그러니, 결코 피상적인 경험만이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0년 정도 다니다가 안 다니게 되었을 때에는 물론 이유가 있겠죠.  당연히, 40년을 다니신 분들도 나름 이유가 있을 겁니다.

결혼 후, 처가와 집사람도 모두 개신교도들입니다.  왜 교회를 안다니느냐에 대해서 상당히 갑론을박이 있었습니다.  결론만 말씀드리자면, 계속 다니는 처가 식구들과 저, 양측이 모두 패배자입니다.  제가 교회를 안다니니까, 어느날, 장인께서 책을 하나 사서 보내셨습니다.  이X재라고, 나름 유명한 칼럼니스트가 쓴 '교회다니기 싫은 77가지 이유'라는 책이었습니다.  니가 교회 안나간다는 이유는 모두 핑계다.  이 책을 보면 그 핑계거리를 다 해소할 수 있다고 믿으셨던 모양입니다.  물론 저는 그 책을 다 읽었습니다.  읽고난 결과, 한국의 개신교는, 정말 기독교가 아니다 라는 결론만 얻었습니다만.

대표적인 예로, 77가지 이유 중의 하나가, "교회 일부 목사와 교인들이 썩었다."라는 것에 대한 설명이 있었습니다.  이X재라는 분의 해명은, 교회란 일종의 부페 식당이라고 보면 된다.  부페 식당에는 썩은 음식이 있을 수도 있다.  우리는 안 썩은 음식만 골라먹으면 된다 라는 겁니다.  저는 이 내용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비유라는 것의 한계를 감안한다고 쳐도, 이런 말도 안되는 글을 쓸 수 있는 작가의 머릿속을 좀 들여다 보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 비유의 틀을 벗어 나지 않는 선에서 말하자면, 부페 식당에는 썩은 음식이 있으면 안됩니다.  무조건 식당 문을 일단 닫아걸고, 썩은 음식부터 치워놓고 그 다음에 다시 개업을 해야 합니다.  저는 그 작가가, 어느 부페 식당에 실제로 가족들과 함께 가서, 썩은 음식을 발견했다면 뭐라고 했을까가 궁금합니다.  '괜찮아, 우리 모두 안 썩은 음식만 골라 먹고 나가자.'라고 했을까요?

AMICUS님의 말씀대로, 한국 개신교의 썩은, 또는 안좋은 목사나 교인들이 몇 %나 되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1%에 불과할지, 99%일지 누구도 수치로 말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수치가 아닙니다.  1%라도 엄청난 문제입니다.  식당의 예를 도입해보시면 금방 이해가 가실 겁니다.

좋은 목사님도 많이 계시다는 것, 잘 압니다.  비록 저는 평생에 좋은 목사님을 단 한 분밖에 만나지 못했습니다만, 매스컴을 봐도 좋은 목사님들이 계시다는 사실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제가 접한 좋은 목사님은, 사실은 제 대학 동창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운동권에서 일하다가, 선교 백주년 어쩌고 하는 기관에서 일을 하다가, 이 친구는 마침내, 신학대학원을 가서 목사가 되기로 합니다.  그 이유가 정말 가관입니다.  나름대로 좋은 대학을 나와, 실력으로 꽉 찬 제 친구조차도, 그 기관에서는 목사의 아랫사람이었답니다.  새파란 놈들이 목사라는 신분 하나로, 그 기관에만 오면 나머지 사람들에게 반말짓거리, 심부름 시키기, 싸가지 없는 행동들... 편가르기 등등, 일반 사회인들보다 더 못한 도덕적 기준.

제 친구는 목사가 되고 난 다음에, 아예 일반 교회로의 진출을 포기했습니다.  여태까지 교도소에서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처음 일반 교회에서 전도사를 할 때에는 제가 쓰던 포니2라는 낡은 승용차를 무료로 불하받아서 타고 다녔습니다.  그 차가 폐차되면서, 티코를 사서 몰고 다녔죠.  지금은 집에 자전거 하나 있습니다.  차가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일반교회를 맡게 되면, 같이 썩을 수 밖에 없다고 믿는 친구입니다.

진정한 한국 개신교의 신자분들, 목사라고 자부하시는 분들께 여쭙습니다.  여러분들은 도대체 식당의 썩은 음식을 치우기 위해서 무슨 일들을 하고 계십니까?  그것들 그냥 놔두고 식당 영업 계속하겠다는, 안 썩은 음식만 골라먹으라는 주장을 하시는 강심장을 가지시고도 여러분들 스스로 개신교 신자, 목사라고 자부하십니까?  용감들 하십니다.

성경이고 신학이고 나발이고를 다 떠나서, 묻고 싶습니다.  썩은 음식들을 그냥 놔두면서 영업들 계속하실 겁니까?  일부니, 전체니, 대부분이니의 문제가 아닙니다. 1%라도 썩은 음식이 있으면 빨리 치워야 합니다.  그래야 식당을 운영하실 수 있는 최소조건이 충족됩니다.  여러분들, 썩은 음식을 치우기 위해서 어떤 노력들을 하고 계시는지 좀 알려주십시오.  나만이라도 깨끗하겠다?  뭐, 그것도 좋습니다.  그러시다면, 다른 사람들이 썩은 음식 욕할 때에, 나머지 음식은 깨끗하다~라고 말도 안되는 주장들은 좀 참아주십시오.

아주 아주 불쾌하고, 논란의 거리가 될 주장이 될 줄, 뻔히 알면서, 저는 한국 개신교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분명히 외칩니다. 

개신교임을 자처하시면서, 썩은 음식을 치우지 않고 계시는 여러분들.  여러분들 모두가 방조범입니다.

성경에서 나오는 '적 그리스도'는 분명히 한국 교회의 내부에서 지금 엄청난 세력으로 성장해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그 '적 그리스도'를 돕고 있는 방조범입니다.

여기서, 나쁜 목사들을 비난하는 목소리에다가, 좋은 목사들을 끌어들이시면서 옹호하려고 하지 마시고, 차라리 빨리 나쁜 목사들을 처단하는 일에 앞장을 서셔야 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썩은 음식이 '일부'라도 존재하는 한, 그 식당은 썩은 식당입니다.  하다못해 식당만 운영하더라도, 썩은 것부터 치워야 한다는 정도의 상식은 있습니다.  목사는 아무리 그래도 식당 주인보다는 상식이 좀 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상식들도 없이 무슨 목사를 하십니까? (식당 주인을 무시해서가 아닙니다.  일반인보다도 못한 상식으로 목사들을 하고 계시는 분들을 무시하고자 함입니다.)

카톨릭이 썩었을 때, 분연히 일어난 루터의 모습을 따르고자 모인 집단이 개신교입니다.  그리고 한국 개신교가 썩고 있는데, 아무도 일어나지 않는 집단이 '한국 개신교'입니다.  이런 제 표현에 화가 나십니까?  제게 화를 내지 마시고, 썩은 자들에게 화를 내십시오.  그게 순서입니다. 

다른 순서를 주장하실 분이 계신다면, 답글 환영합니다.
추천14

댓글목록

Lisamarie님의 댓글

Lisamari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우리 한국인들 불의에 대항하는 정신과 행동으로 옮기는 것 , 어느나라 국민보다 강합니다.

그 살인적인 정부 아래서도 민주의를 향해 항의 하고 엄청난 권력을 지닌 기업체에 대항하고. ㅡ 세계에서 파업일수 가장 높은 나라가 한국 입니다.

기독교가 그렇게 썩었는데 저항을 안하는 이유가 뭘까요.
하나는 정 싫으면 일단 팬님 처럼 안믿어 버리면 되니까 그렇겠지요.
부패한 식당에 나만 안들어가면 아무 일  안나는데 무슨 식당패업하라고 주장하겠습니까.
루터가 종교개혁하던 시대는 종교를 싫으면 안 믿거나 다른 종교를 믿거나 , 나하고 싶은데로 하면된다하던 시대가 아니고 기독교가 인간의 삶의 유일한 , 모든것 이던 시기였죠.

그리고 지상의 교회도 ( 신이 아니라 ) 사람의 일인한 전적으로 완벽하게 부패가 없는 것은 기대할 수 없지요. 말씀하신대로 1펴센트인지 얼마인지 , 극소수의 부패는 인간세상 어디나 존재하겠지요. 그렇지 않다면야...이곳이 속세가 ,인간세상이 아니겠지요.

그런데도 아직 인구의 30% 나 되는 이유가 뭘까요.
그것도 사회의 각계 각층에서. 그들이 모두 지능이 낮아서, 모두들 사고를 할수가 없어서 기독교 믿는 것 아닐겁니다. 저항을 안하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오랫동안 있어온 무속신앙처럼  어느정도 우리의 정서에 밀착되어 있는게 있는 건 아닐까요.
저항을 안하는 이유가 어디있다고 팬님은 생각하십니까. 궁금합니다.


그리고 한국내 다른 종교들도  만만치 않던데요.
종파가 다른 스님들 끼리 폭력을 동원 싸우는 데 출동된 경찰의 소방용사다리가 무너져 경찰수십명이 아래로 추락을 하고.올해 한국갔을때는 어떤 사찰의 여주지스님이 신자들 보고불치병 낫게 해준다고 , 사업잘되게, 아들 대학붙여준다고 , 심지어 미운사람 경쟁자 죽여주는 부적을 한장당 수천만원 수억원을 받고 팔고 명약이라고 시체썩은 물을 신자들에게 먹게한것도 봤습니다.
이해할수 없는 건 그 방송을 보니  그런 사실을 알고도 계속 그 사찰을 찾아가는 신자들이 있더란 말입니다. 왜그럴까요. 이런신자들이 계속 존재하는 한 이런 사찰도 앞으로 계속등장하지 않겠습니까.

Lisamarie님의 댓글

Lisamari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다시말씀드리면 한국의 개신교가 그렇게 썩었다면, 모두들 확신한다면
" 이건 나의 신의 모습이 아니다 "
라고 교회에 나가지 말고 헌금갖다 바치지 말고 외면하고 자기 혼자 일단 "신과 교재 " ( ? )
하면 됩니다.
신을 떠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면 교회장사해서 돈 모으고 권력행세하는  가짜 목사, 집단이 존재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왜 그렇게 안하는 거지요.
왜 모두들 대부분의 신자들은 그런데도 많은 헌금 갖다바치고 교회에 '충성'하는 거지요.
한나라 국민의 30% 가.
이유를 설명해 주실분 계십니까.

다른 종교도 그렇고.

meanwhile님의 댓글의 댓글

meanwhil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많은 신자들이 아직도 교회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생각해보니 서너가지 정도가 떠오르네요.

1. (세뇌당한 것이 깊게 자신의 내면을 지배하기 때문에) 떠나면 무슨 봉변이라고 당할 듯 생각되어.

2. 교회 내에 많은 지인들과의 관계가 그동안 너무나 '돈독'해서: 사회생활이 교회생활과 분리되지 않는 동심원 안에 들어가 있는 분들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보통 오랫동안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시는 분은 소위 주변의 '불신자'와는 별로 좋은 관계를 갖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1번과 관련되어 '영적교류'가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믿기 때문이죠. 사실 스스로 관계를 차단하거나 한계를 그었던 것이지만요.

3. 그동안 교회에 '투자'한 시간과 금전이 아까워서.

4. 아직도 '간구'(갈구)해야 할 여러가지 욕망, 즉 '기도제목'을 교회에 남겨두고 와서 - 강한 기복신앙적 고착.

Lisamarie님의 댓글

Lisamari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감사드려요 .
meanwhile 님
그런데 게시판을 보면서 느끼는점.

한국개신교가 문제가 많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 합니다.
그렇다면 병을 알려면 병의 원인규명부터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러식으로 글쓰기가 되면 어떨까요.

1. 한국개신교의 지금과 같은 병의 원인분석 ㅡ 사회적 역사적으로.
2. 처방은 어떤것이 있을까 ㅡ 전문가가 아니라도 각자 의견을 내어봄.

모두들 무조건 덮어놓고 잘못되었다고 외치기만 해봤자 힘만빠지고 괜히 에너지소비 아닐까요.

그럼 제의견 부터.
한국의 수천년전부터 전해져 오는 무속신앙이 있습니다. 그 삼신이 대답을 했건 안했건 병 낫게 해달라고 과거급제 시켜달라고 복내려 달라고 돈과 정성을 바치며 빌던 대상이 있었습니다.
6.25를 전후해서 서양에서 들어온  능력있어 보이는 기독교의 신에게 많은 이들은 기대를 걸고 찾아갔습니다. 즉 한국의 개신교는 삼신이 이름만 하나님으로 바뀐 것 뿐입니다. 불교도 마찬가지고요. 과거급제 , 아들낳게 해달라고 백일기도하고 복채바치던 것이 정신 , 육체의 만족, 일류대학 입학 금전적 이득의 기대등으로 바뀐 것 뿐이죠. 한때는 미신으로 많이 몰렸지만 요새는 이 무속신앙을 한국인의 정서로 다시 찾아내서 보존해야할 민족의 전통으로 봅니다. 최신 컴퓨터 회사들도 창업식인가 하는데서 천문학적 숫자의 돈을 내고 무당을 모셔다 귀신쫒는 굿을 해야만 시작을 할수 있다고 하죠.
이런 무속신앙이 비난이 안되는 것은 "전통을 찾는다는 " 자각에서 , 그리고 정제계, 배웠다는 한국의 지배층들에게 있어서 기독교만큼 큰 영항을 끼치지는 않는 , 즉 아직 주변현상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면 그 오래된 민족정서가 반영된 , 독특하게 성장한 한국의 개신교를 어떻게 하루 아침에 새롭게 뜯어 고칠수 있을까요. 못살겠다 갈아보자 해서 될일이 아닌것 같습니다. 단지 하나의 제도가 아니라 정서에 , 의식속에 깊이 뿌리를 밖고 있는게 종교아닙니까.그래서 단지 기독교 하나에만 대고 비난 할 일이 아니라 우리 모든 한국사람들이 한번 생각해봐야할 문제라고 저는 보는 겁니다. 신구교합해 일구의 절반 가까이 되지 않습니까.

물론 각자가 자각해야 함이 일단 첫 걸음이겠지요.

어떤 방법들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의견발표들 해봅시다.

디디님의 댓글

디디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처음이란 것은 중요한 가 봅니다.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이럴 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가끔 드는 생각들이 베리가 가진 영향력은 얼마나 될까? 입니다.
주옥같은 말씀을 해 주시는 여러분들에 비해, 그 파급력은 참 약하지 않은가? 하는 안타까움이 종종 듭니다.

기독교에 대해서 요 몇 일간 올라온 글들을 통해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십일조에 대한 의미도 처음으로 많이 생각해 보았고요.

논쟁은 종교가 아니라 종교 구성원들이 하는 방식에 대한 비판이고, 그에 대한 반론 같습니다.

그리고 동의 하는 부분은 기독교에도 썩은 부분이 있다!
라고 받아들였습니다.

이제, 썩은 부분을 어떻게 도려낼 것인가? 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요!

그런데 어떻게? 불가능한 것을 가지고 열심히 이야기할 것 같은 우려가 이 새벽에 들더군요.
(독일은 한 낮이어도 여긴 새벽임^^)

교회가 썩은 것은 목사님 한 분으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속한 어떻게 표현할 지 몰라서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 하면,
"교회 운영위"가 전체적으로 썩었기 때문입니다.

예전 학교 다닐 때도 학부모 운영위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일부 학부모가 선생님께
돈이나 선물을 드리자!
라고 이야기 하시면, 대부분 사람들은 대놓고 반대를 하지 못합니다.
선생님께서도 반대를 하시지만, 이런 학부모가 계시면, 이기기가 여간 힘드신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안 받으시면, 사모님에게라도 전화를 해서 기.필.코. 드려야 속이 풀리시는 분들이니까요.
문제는 이런 분들이 죄책감 없이 오히려
잘 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교회도 운영 방식은 별반 다를 것 없다고 봅니다. 처음에 이런 분들이 길을 만들어 놓으면, 다른 분들은 그 길을 따라갈 수 밖에 없습니다.

싫으면?

다른 교회를 갈 수 있는 선택권이 있지요!
그래서 이런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 교회의 여러가지 장점들에 시나브로 익숙해 지고, 더불어 단점들도 넘어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교회는 이익 집단도 아니고, 정부에서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매우 적습니다.
그런 곳의 비리는 내부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바깥에서는 아무리 이야기 해도 되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그들은 가진 자이기 때문입니다.
바꿀 수 있는 방법은 하나 있습니다.

신도들 단체가 있으면 됩니다. 교회 운영위에서 감사와 집행을 다 하는 것이 아니라 신도들이 모두 볼 수 있고, 대부분 집행 안 건들을 신도들의 투표에 의해 진행하면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게 실현 가능할까요?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비판들을 해 봤자, 노력에 대한 댓가가 너무 없습니다.

다음에 또 그들의 목적을 위해, 대다수 사람들이 가슴 아퍼 하는 일들만 없으면 좋겠습니다.

팬교주님께서 말씀하신 것 역시 옳다고 생각하지만, 옳은 것으로 개선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은
헛웃음이 나오는 상황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목로주점님의 댓글

목로주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달아달라는 답글은 정작 5개뿐인데 추천만 벌써 12개군요. ㅎㅎ

이리저리 재고 따지는 과목이 아니라 무조건 믿고 봐야하는 분야다보니 우리 신성상 틀린 일에 조목조목 사사건건 따지지 않고 넘어가다보니 이 상태까지 되었겠죠.

물이 넘치려면 먼저 독이 가득 차야하잖아요? 전 지금 '한국 기독교'라는 독이 가득 채워지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팬교주님의 댓글

팬교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마, 방법들이 안 나올 겁니다.  어려워서가 아닙니다.  모두들 너무나 잘 아는 방법이기 때문이죠.  개신교 본인들도 다 아는 방법입니다.  알면서 안 하는 방법이죠.

교회정화운동 한번 하시면 됩니다.  한번이 아니라, 정화될 때까지 하면 됩니다.  한국 개신교는 교인 배가 운동은 하는데, 정화운동은 절대로 안 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자신들이 짤려나갈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깨끗하다고 자부하시는 분들조차도 되지도 않을 정화운동, 제시하지 않죠.  차라리, 나 혼자라도 깨끗하자 라고 다른 운동들을 하시죠.  애써 더러운 쪽은 외면해버리는 겁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시겠지...라고.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저런 썩은 인간들이 계속 교회에서 집권을 하고, 철밥통을 누리는 것을 볼 때, 정말 하나님이 계신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런 자들 스스로, 하나님이 있는 것을 믿는다면 저렇게까지 엉터리로 살 수 있을까요?  후환이 두려워서라도 저러지 못 할 텐데요.

교회 정화운동, 새로 태어나기 운동 같은 것, 시작하실 한국 개신교 신자나 목회자 분 계신다면, 그분들께 십일조 바칠 용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런 분이 계실까요?  깨끗하다고 하시는 분들조차도 하나님보다는 기존 교회 기성권력을 더 두려워 하고 있습니다.

amicus님의 댓글

amicus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따로 글을 쓸까하다 이곳에 이렇게 글을 씁니다.

오늘 낮에 잠간 팬교주님의 글을 읽고 나름 많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Lisamarie님께서 '한국교회의 문제점에 대한 원인분석을 해보자'라는 제안 역시 제 자신뿐아니라 제가 속한 교회를 다시한번 진지하게 돌아보게 했던게 사실입니다.

아마도 제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던 시기가 팬교주님과 비슷한것 같은데요...저 역시 5살때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한교회에서 주일학교, 중고등부 그리고 청년부를 거쳐 신학교를 나와 지금 이곳 독일에서도 신학을 전공하고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동기들과 가장 많이 얘기를 나누었던 부분도 바로 '한국교회의 구조적 모순에대한 문제'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팬교주님께서 읽으신 그 책의 '비유'를 보며 저역시 그러한 비유가 적절치 않음을 공감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팬교주님께서 교회와 기독교를 향해 그런 "썩은 음식"을 치우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에서... 저역시 '차라리 썩은 음식이었으면 좋았겠다'라는 생각을 해보았죠. 차라리 썩은 음식이 부페식당에 있다면 님의 말씀처럼 그런 가게에 않가든지, 주인이 그것만 따로 버리든지 그것도 아니면 경찰에 신고를 하면 깨끗하게 그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은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지금은 제가 생각하는 중요한 한가지만 말씀드리려합니다.

중요한 원인중 하나를 저는 '개교회주의와 수많은 교파들의 난립'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유독 한국의 기독교가 다른 종교 보다 두드러지게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지탄받는 것이 사실이죠.

천주교를 예를 든다면<어쩌면 이러한 모형이 궁극적으로 하나의 해결점이 될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천주교는 '하나의 교회'를 지향합니다. 비록 지역마다 성당이 있어도 이들은 '교황'을 중심으로 하나의 교회이죠. 게다가 신부들은 몇년에 한번씩 교구를 이동합니다. 또 신부들은 결혼을 하지 않았기에 생활에대한 부담이 개신교목사들보다 상대적으로 적고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신부들은 모두 일정액의 생활비를 균등하게 지급받죠.

사실 개신교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저로서도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이러한 천주교의 제도가 한편으로 부럽기까지 했던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와는 다르게 개신교의 교회들은 소위말하는 '각개전투'를 해야합니다. 제가 속한 교단의 조직은 대략 이렇습니다. 제일 위에 '총회'가 있고 그 아래로 각지역 '노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노회' 안에 보다 작은 지역을 묶어서 '사찰'이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지역에 얶메여 노회가 구성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정작 이러한 교단의 조직이 각 교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주 미미한 수준입니다. 다시말해 한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와 당회<목사와 장로로 구성>가 실제적으로 그 교회를 주도하고 움직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마 한국개신교의 대부분의 교단들 역시 이와 비슷한 형태의 조직일거라 생각되구요.<감리교는 조금더 조직적이라 들었습니다.>

일단은 여기까지가 한국교회들의 객관적인 구조적 형태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이러한 구조적 형태로부터 구체적으로 어떠한 문제가 파생되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러한 구조적 형태 속에서는 마치 천주교 신자가 느끼는 '하나의 천주교'라는 일체감이 한국개신교인들에게는 매우 희박하다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이문제를 '자신의 교회만 잘되면 되나?'라는 비판으로 몰고가진 말아주십시요. 이 문제는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보아야합니다.> 물론 개신교 교회들이 일년에 한번 부활절이 되면 연합예배도 드리고 특별한 행사때엔 잠실운동장을 가득메우지만...그것은 그저 일년에 한두번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 것 뿐이죠. 이때 개신교신자들에게 중요한건 서로가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이라는 인식이지 '개신교'라는 명칭안에서의 일체감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개신교의 신자들은 서로 서로 '그리스도에대한 믿음'으로 하나가 된다고 생각하지 천주교에서 처럼 '하나의 교회에 속해있다'는 생각은....조금 생소한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개신교의 신도들은 상대적으로 시야가 좁은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가 교회의 전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개신교의 신도들은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를 자신이 아는 교회의 전부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죠.

아주 비근한 예로 개신교에 출석하는 사람들에게 한번 물어보십시요. '당신 교단이 어떻게 되십니까?' 물론 이 질문에대한 대답은 쉬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교회는 어느 노회 소속이죠?' 또는 '당신 교회는 어느 사찰 소속인가요?'

아마 적게는 70%이상 많게는 90%이상이 잘 모르거나 잘 못대답할거라 저는 생각합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할까요?

한국의 개신교<최소한 제가 속한 교단을 보면> 신도들은 '개신교'로서의 일체감 내지는 교단에대한 소속감이 적거나 상당수 결여되어 있고 심지어 관심 밖이라는 점입니다.

한 교회를 저와 같이 어릴적부터 다녔든 나중에 선택해서 그 교회에 출석을 하든 일단 그 교회에 몸담고 교회를 위해 열심히 봉사를 한다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교회에대한 상<Image>는 '하나의 개신교 교회'가 아닌 자신이 속한 교회라는 겁니다.

물론 한국개신교의 개교회주의와 이로인해 나타나는 이러한 신도들의 교회에대한 인식이 그 자체로 부정적인 것은 결코 아닙니다. 문제는 지금 사회로부터 '한국의 개신교'가 비판을 받고 있는 싯점에서 나타납니다.

물론 이러한 비판에대해 기독교에 속한 사람들은 저마다 '책임감'을 느낀다 말을해도 그것을 '전체 개신교의 문제'로 보기 보다는 문제가 있는 '각 교회' 내지는 '그교회 소속의 목사'에게 있다고 생각을 한다는 점입니다.

다시말해 기독교 밖에서 비기독교인들이 교회를 볼때에는 그게 어떤교회이든 그것을 일단 '전체 개신교'로 보고 또 그렇게 비판을 합니다. 그러나, 개신교에 속한 신도들은 그렇게 "전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개 교회'를 바라보며 혹여 문제가 생겼을때엔 그저 "같은 신앙인"으로서 마음이 아프고,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지 "개신교라는 테두리에 속한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느끼는 것은 다소 생소한 모습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아마도 인터넷 사이트에서 기독교인들과 비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이러한 주제로 논쟁을 벌이는 것이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때문이라고 생각 해봅니다.<물론 역시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생각이 제게도 자리잡고 있어서 그랬는지 아래글에서도 "일부"라는 표현과 함께 다른 "많은 좋은 목사들"을 보도록 주장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이 더이상 길어지길 저도 원치 않기에 이즈음에서 첫번째 문제를 맺을까 합니다.

한마디로 정리해서 개신교 성도들은 자신이 속한 교회에서의 연대의식은 높지만 전체 개신교에대한 연대의식은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입니다.

zwischen님의 댓글의 댓글

zwischen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현 한국교회’들’의 문제점들 중에서, amicus 님이 지적하신 바에 저 역시 오래 전부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님이 말씀하시는 „연대의식“이란 게 뭔지 좀 더 들을 수 있을까요?

amicus님의 댓글의 댓글

amicus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zwischen님,

여기서 '연대의식'이란 여러가지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겠는데요...그중하나 쉬운 예로, '책임의식'이란게 이러한 연대의식 가운데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내가 어떤 문제에대해 진정한 책임의식을 갖고 있다면 단지 마음으로 안타까워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 들것이고 그 부조리함에 맞서 심지어 투쟁할 수도 있는게 "책임의식-연대의식"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볼때 한국 개신교 각각의 교회들과 성도들은 "전체 개신교"에대한 이러한 '책임의식-연대의식'이 결여되었다고 보는게 저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개별 성도에게 그러한 '책임 또는 연대의식'이 아예 없다는 것은 또 아닙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최소한의 신앙인으로서 느끼는 '연대의식'은 있다는 말이죠. 위에서도 이미 언급했듯이 "같은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으로서의 연대의식" 정도...

대신 이들의 강한 연대의식은 "전체기독교"를 위해 나타나기 보다는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개별 교회>'를 위해 표출됩니다.

님께서도 종종 메스컴을 통해 보셨겠지만...실제로 한국교회 성도들...자신들의 교회문제에 있어서는 목숨을 걸고 그 문제에 메달리고 그문제로 인해 대립합니다. 물론 그런 모습 조자도 자주 비상식적으로 보이지만요. 그래서 항간에 자주 제기되는 비판이 "자신들 교회이익을 위해서는 목숨을 걸면서 기독교의 비리에대해서는 무관심하다"는 소시를 듣기도 합니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개별교회 그리고 각각의 성도들이 갖고 있는 지극히 실제적인 모습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국의 개신교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전 개신교인들이 들고 일어나 그것에 반대하거나 정화운동을 벌이는 일이 극히 드물고 아마도 제 기억으론 거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신학생들의 경우는 예외이고...그래서 그나마 제가 한국개신교의 개혁을 신학교에 두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문제를 바라보면 최소한의 연대의식 내지는 책임감으로 안타까워하면서도 그것을 "그 개별교회의 문제"로 생각을 하고 더이상 개입하려 들지 않는게 현실입니다.

예를 들어 ㄱㄹ 교회 김ㅇㅇ목사가 여자문제로 스캔들이 알려지고 공금횡령에다 설교시간에 정치적 발언을 해도 다른 교회들은 소극적인 비난을 할뿐 그 교회에 몰려가 데모를 하는 그런 적극적인 행동은 생각지도 않고 있죠 그리고 그것을 그교회와 목사의 문제로 인식을할 뿐이죠. 그리고 그 이상으로 더 나아가 "개신교"전체로 그 문제를 비기독교인들이 보는 방식으로 바라보지 않는 다는 점입니다.

 현 기독교는 현재 발생하는 개신교의 부조리한 모습앞에서 이러한 개신교의 구조적 문제를 등에 엎고 그렇게 무기력하게 세상앞에 비쳐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zwischen님의 댓글의 댓글

zwischen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답변 감사합니다.

연대의식이 보여주는 여러 가지 모습들 가운데, 말씀하신 것처럼 그 중에서 „책임의식“이 우선 떠오르는 게 일반적인 것 같습니다. 만일 그러하다면 우리는 "같은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으로서" „무엇/누구에 대한“, „무엇을/누구를 위한“, 무엇보다도 „누구의“ 책임의식인지? 그리고 "무엇 때문에" 그런 책임의식을 가져야(만) 하는지? 좀 더 물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을까요?

„교회에서의 연대의식“을 어떻게 표상할 수 있는지, 신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않은 저에게 무척 궁금한 질문들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님의 구분, „개신교 성도들이 자신이 속한 교회에서의 연대의식“과 „전체 개신교에 대한 연대의식“ 사이의 구분은 과연 가능한지, 그렇다면 어떻게? 아니면 양자가 연대의식이라는 이름 하에 연결되어야 한다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님은 생각하는 신학도인 것 같아서, 어떤 답을 얻고자 하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반가운 마음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담스러운 질문을 던져 봅니다.

amicus님의 댓글의 댓글

amicus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zwischen 님,

처음에 몰라뵈서 죄송합니다. 지난번 함께 저와 토론을 하셨었죠? 반갑습니다.

그러면 하나씩 한번 살펴볼까요?

1.
첫번째 질문을 저는...책임의식의 '대상', '방향<목적>' 그리고 '행위의 주체'에 관한 질문으로 이해를 했습니다.

누구에대한 책임의식인지는 각각의 상황 가운데서 나타날 수 있는 일이기에 일반적으로 이렇다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예를들어 만일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의 현실'을 보았을때에도 이런 '공동체적 책임의식-연대감'이 생겨나겠죠. 또는 지금 우리가 다루는 개신교의 부조리한 문제들에 직면해서도 역시 그런 그런 책임감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책임의식에대한 목적 내지는 방향역시 그때마다 교회가 직면하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그래도 궁극적인 목적은 신앙적인 표현으로 말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세상 가운데 영화롭게 하기 위함"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이러한 목적 역시 근본바탕은 "인간"을 위함이죠. 교회가 책임의식을 가지고 가난한 자들을 돕고, 또는 교회의 부조리를 없애기 위해 애쓰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고 해도 결국 그 근본에는 "인간사랑"이 담겨있으니까요.

그리고 세번째로 이러한 책임의 주체는 당연히 개별 성도 한사람 한사람이이 될 수도 있고 넓게는 "교회"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님께서 "무엇때문에" 이런 책임의식을 가져야하는가?에대한 질문을 "교회의 연대의식"을 어떻게 표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라 생각되는데요...

굳이 "신학적"인 깊은 연구가 없어도 일반적으로 교회의 연대의식에대한 표상을 이루게하는 중심 말씀이 고리도전서 12장 27절에 나타나는데요..."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부분이라..." 이러한 신앙고백 속에서 성도들과 교회들은 믿음 안에서 전체 교회와 신앙인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인식합니다.

그리고 이와같이 '한 몸'으로서의 교회에대한 구체적인 실천이 "성례전"이구요. 다시 말해 교회에서 행해지는 '성찬식(예수님의 고난을 기념하며 떡과 포도주를 나눈는 예식)'을 통해 교회는 '한 몸'으로서의 공동체를 인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 초대교회때에는 실제로 같은 지역의 공동체들은 하나의 빵과 하나의 포도주 잔을 돌리며 이 예식을 거행했다고 합니다.

대략 교회의 책임의식에 대한 '원론'적인 신앙적 근거는 이렇습니다.

그래서, 실제적으로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신앙적 그룬트를 가지고 교회가 직면하는 여러가지 문제나 상황들에 연대감을 가지고 움직이게 되는 것이구요. 굳이 "무엇 때문에 그런 연대의식을 가져야하는가?"라고 물으신다면 교회가 "한 몸"이기에 그러해야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2. 그러나 제가 위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한국교회의 "개교회주의"가 빚어낸 부정적인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마도 이게 zwischen 님께서 물어보신 다음 질문 "개별교회에서 나타나는 연대의식"과 "전체 개신교에서 나타나야할 연대의식"의 차이가 무엇인가에대한 질문도 될 것 같습니다.

실제로 작금의 상황, 그러니까 만일 대형교회든 조그만 교회든 목사나 교회가 세상에서 비난을 받고 중대한 잘못이있다고 드러났을때 당연 앞에서 언급된 "한 몸"으로서의 교회전체, 즉 개신교 모든 교인들은 적극적으로 책임의식을 가지고 이에대해 가슴아파하고 그 "썩은 부분"을 도려내려는 강한 의지를 보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한 몸"이기 때문이죠. 극단적으로 예를들어, 만일 누군가 그의 다리가 썩어들어간다면...가장 최선의 방법은 그 썩어들어가는 부분을 잘라내는 것일겁니다. 그래야 '그 몸'이 살 수 있죠. 이런 점에서 "원론적으로" 한국의 개신교 전체 성도들은 보다 적극적인 "책임의식"이 있어야만 "한 몸"으로서의 교회라는 그 고백이 모순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겠죠.

그러나, "개교회주의"는 개신교 신도들에게 '전체를 하나의 교회'로 보도록 하는 대신 그 시야를 자신들이 출석하는 교회에 고정시켜서 그 안에서의 "성도의 교제와 화합"을 중요한 목표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일년 행사의 대부분이 그 교회의 내부적인 활동으로 정해지고 있는게 현실이죠.

그렇기때문에 성도들 역시 전체 교회를 하나로 바라보는 시각을 갖는대신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를 교회의 전부로 생각하며 신앙생활을 하게되는것 같습니다.

3.
님께서 주신 마지막 질문..."그렇다면 두 연대의식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가?"에대해서, 우선 원론적인 해결 방안은 목사님들의 열린 자세입니다. 타교회를 향한, 이웃교회를 향한 열린 마음과 그 마음 담은 가르침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실제적인 연결점은...글세요 물론 여러 다른 견해가 나올 수 있다 보여지지만...아마도 "교회재정"에서 찾아야된다고 보는데요...이게 무슨 말이냐하면, 각 개별 교회가 헌금을 거두고 관리하는게 아니라 교단이나, 작게는 노회에서 그 개별 교회의 헌금을 거두고 관리를 하고 교회의 규모에 맞게 다시 분배를 하는 것이죠.(제 생각엔 이것이 현재 개신교 교회 개혁의 핵심이라 생각되지만...현실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글이 길어져 이유는 기회가 있으면 다음기회에...)

재정이 통합되면 "교회일치"와 "개신교의 연대의식" 그리고 "한 몸으로서의 교회공동체"는 틀림없이 이루어집니다.

zwischen님의 댓글의 댓글

zwischen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amicus 님,


저의 질문이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미리 말씀 드린 이유는, 교회의 현실적인 문제들이 다시 원점, 즉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몸과 지체“라는 교리로 되돌아 가는 순환논리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순환논리가 지니는 부담스러움이란 자칫하면 그 수고에 비해서 별 달리 건진 것 없이 제 자리로 되돌아 온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허탈감일 것입니다. 그러한 허탈감에도 불구하고 //Re//formier//te//는 순환논리가 단순히 무의미한 동어반복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살아 있는 신앙의 논리라는 사실에 대해서, 흐르는 삶 가운데 보다 구체적인 질문과 그에 대해 대답하려는 몸부림 자체로, 그에 대해서 증인이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시대 속에서 예수의 증인이고자 한다면, 현 한국 교회들을 향한 다양한 비난과 비판의 목소리들에 대한 책임 있는 대답과 자기반성은 무엇보다도 한국 교회가 서양 기독교의 „기독론 (Christologie)“에 대해서 얼마나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있는가, 그에 대해서 얼마나 비판적으로 논의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우리 시대 속에서 어떻게 현재화시키고 토착화시켰는가를 철저하게 묻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다른 맥락에서 말씀 드리자면, 한국 교회의 자기비판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교리들의 자명하지 않음“부터 시작해야만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외적으로 강제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내적 강제와 그러한 반복으로 익숙해진 당연함 속의 모호함을 간과하면서 자기비판 한다는 것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비판하는 대상의 근본적인 구조적 모순 앞에서 멈춤으로써, 오히려 비판 대상을 옹호하거나, 은폐하면서 면역성만을 길러 주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기껏해야 별다른 개혁의 움직임 없이 비판행위 자체에 자위하는 걸로 머물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님의 답변 안에서 몇 가지 질문을 드립니다.

1. 신학에서는 어떤 근거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책임의 주체“일 수 있다고 말하는지 궁금합니다. 철학과 법학에서는 그 근거를 이성적 존재의 „자기규정/자기결정(Selbstbestimmung)“ 능력에서 찾고 있습니다.

2. „성도 한 개인“과 „교회“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여쭙자면,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고 있는 „성도 한 개인“만으로도 „교회“라고 말할 수 있는지? 아니면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모임“만을 „교회“라고 말할 수 있는지? 아니면 전자와 후자 모두 „교회“라고 말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다른 맥락에서 같은 질문인데, „교회가 한 몸“이라 할 때, 그것은 „보편성“을 염두에 둔 건 지, 아니면 „개별성“을 염두에 둔 건 지, 아니면 „보편성“과 „개별성“ 사이에 어떤 긴장과 모순을 염두에 둔 건 지 궁금합니다.
 
3. 오늘날 성도 한 개인 혹은 성도들이 „전체 교회를 하나로 바라보는 시각“을 획득할 수 있는지?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 지? 만일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에 대해서 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4. 마지막으로 „교회재정“ 관리문제는 님의 생각에 저 역시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하지만 „재정이 통합되면 "교회일치"와 "개신교의 연대의식" 그리고 "한 몸으로서의 교회공동체"는 틀림없이 이루어집니다“라는 님의 확신을 저는 당장 받아 들이기 힘듭니다.  교회 재정문제와 동시에 신앙생활의 당연함 속의 모호함을 해명하려고 몸부림치는 과정 속에서 의식개혁이 수반될 때야 비로소 가능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전망해 봅니다.

위의 질문들에 대해서 보다 구체적인 대답들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님이 말씀하시는 "교회일치", „성도의 교제와 화합“, "한 몸으로서의 교회공동체" „개신교의 연대의식“이란 것은 무엇을 말씀하고자 하는 것인지 여전히 모호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주체에 대한 고민 없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이럴 때는 „예수“와 „성령“을, 저럴 때는 추상적인 „(사랑하는 혹은 귀한) 성도“를 그 빈 자리에 다급한 대로 내세우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그러한 이헌령비헌령을 "믿음"이라고, "사랑"이라고 말하면서 타인과 자신을 기만합니다. 그 기만의 정체는 다름아닌 "책임전가"일 것입니다. 그럴 경우 외적으로 볼 때, "성도의 교제와 화합" 혹은 "연대의식"이 한 교회 안에서 잘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우리는 영혼과 정신이 없는 그 빈 자리에서 기독교인의 „자기부인/자기부정“이 아닌, 그 누구의 어떠한 책임도 묻지도 않고, 물을 수도 없는 „자기유지“나 „집단이기주의“ 혹은 „전체주의“만을 발견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Lisamarie님의 댓글

Lisamari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amicus 님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이번 피랍사건에 대해 독일언론의 글의 내용이 그렇습니다.
그 젊은이들이 선교의 목적으로 그곳에 간 것인가.아니라고 히더군요. 그들은 선교사도 아니고 일주일정도 그곳에 체류, 방문하는 것을 교화시켜서 믿음을 갖게하는 선교라고 볼수는 없다는 겁니다.
그럼 젊은이들의 불장난 일까요. 왜그런 불장난을 하까요. 그러면서 한국의 그 다양한 종파를 소개하면서 선교등등 많은 실적경쟁의식이 높은 한국 여러 교회들의 경쟁의식의 희생자들이라는 의견 이었습니다. ( 착잡하더군요. 그들을 순교자라고 해도 좀 그럴것 같더니, 또 선교도 아니라고 하는 것도 또 좀 그렇고 ...)

그런 구조적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하군요.

그리고 제가 볼때 , 솔직히 말씀드리면 , 미국남부에서 들어온 교리중 하나로 부지런히 일하는 것을 신자의 도리로 보는 것은 좋지만 아직도 왜 이렇게 현세구복적 사상이 강한지 ( 한국적 교회인 세계에서 제일 큰 순복음 교회를 보십시오. 삼박자축복이라는 만사형통에 나만 잘되기 바라는 ) 이게 기독교사앙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이 경제개발에 몰두한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워낙 어려웠던 시기인 60.70년대야 어떤 독려로 필요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 아직도 저를 찾아와서 저는 같은 하느님을 믿는 가톨릭신자라고 해도 굳이 " 여호와 하나님을 믿어야 ( 자신의 교파를 말하는지? ) 너와 네 집안이 축복을 받고 죽어서 천당간다 " 고 하며 자신의 교회에 나오라고 하고  , 다음에 찾아왔을때 제가 없었는지 계속 전단을 편지함에 넣고 가는 그 루터의 개신교의 나라 독일에서 독일인에게서는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독일서 만난 한국 기독교 신자분에 대해 분노를 꽤나 느꼈던게 사실입니다.
( 그러나 저는 팬님과 다릅니다. 이런 개신교신자 저런개신교 신자 있다는 거 잘 압니다 . 90% 썩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 ^^)
이런 금전적 축복. 만사형통의 현세구복을 강조하는 교리는 부정적인 면이 생겨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떵떵 거리는 큰 부자가아닌 교회는 신앙심이 없어서 신의 축복이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사실은 . 교회가 사회에서 왜 부자라야 하는지요.
한국서도 그럴시대가 지났다고 저는 생각하는데요.

그러나 미국교회들이 부자가 많고 재벌 목사님들이 많으니 그 영향을 받고, 옆에서 지켜보는한 보는 한 의식이 바뀌지 않을 것 같습니다.

amicus님의 댓글의 댓글

amicus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Lisamarie 님,

동감합니다.
메스컴에서도 보도된것 처럼 이번 '아프간 한국인 인질사태'의 원인에는 한국 교회의 경쟁적 선교활동이 주요했다고 보여집니다. 우후죽순으로 개 교회가 선교사를 파견하다 보니 막상 선교지에서 많은 혼선과 부작용이 생기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다른건 몰라도 '해외 선교' 만큼은 개신교에서 연합된 기구를 만들어 통제하고 관리를 해야하는데...

하지만 이번 아프간에 봉사(단기선교)를 갖던 23명의 청년들문제를 저는 조금은 다른 곳에서 그 원인을 찾아 보았습니다. 과열 경쟁적 선교행태와 함께...그간 교회의 젊은 청년들 사이에서 하나의 '유행'처럼 번진 교회문화가 있었습니다. 바로 '찬양과 경배'인데요. 이 바람은 대략 90년대 초반에 미국으로 부터 한국에 상륙했는데 그당시부터 교회 청년들에게 굉장한 호응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80년대 말까지 한국의 개신교는 개신교에서 정한 '찬송가'와 '오래된 단순한 멜로디의 복음송'이 찬양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다 '새로운 스타일의 복음송'이 소개되었죠. 가사는 둘째치고 멜로디나 악기들의 구성이 감수성이 예민한 학생들과 청년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고 지금도 그렇게 이어져 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신선한 '찬양과 경배'의 바람이 청년들에게 '피상적 신앙' 을 심겨주었고, 한편으론 '종교적 만족감'에 심취하게 이끌었던게 사실입니다. 물론 종교, 특히 기독교에서 "찬양"은 매우 중요한 종교적 활동입니다. 또한 저 역시 지금까지 '찬양과 경배'에 속하는 '복음송'들에 깊은 신앙적 위로를 얻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게 교회에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를 잡고 예배를 주도하며 교회와 특히 그에 속한 학생들과 청년들의 신앙이 '감상주의'적으로 바뀌어 갔죠.

'인실사태'가 발생하며 인터넷에 이들 선교팀이 과거에 이슬람 사원에서 손을 들고 예배를 드리는 사진이 떠돌았었는데요...아마도 이게 전형적인 "종교적 감상주의" 내지는 "피상적 신앙"의 모습이라 보여집니다.

팬교주님의 댓글

팬교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amicus님의 성의있는 답글에 감사드립니다.

한국 개신교에 대한 애정이 없이, 저런 비판을 했겠습니까... 제게는 정신적 고향같은 곳인데.

여전히 저는 한국 개신교의 대부분이 썩어있다고 생각을 하고, 교회에는 나갈 생각조차도 안합니다.  심지어 주위의 교인분들조차 인정합니다.  당신이 나갈 만한 교회는, 적어도 10킬로미터 이내에는 없다, 라구요.  자신들이 보기에도 너무나 흠이 많다는 겁니다.  엄격히 따져서, 저는 그분들도 방조범이라고 얘기하곤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들 썩은 목사들은 정말, 하나님을 믿지 않고, 아마도 마귀들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면 절대로 못할 일들을 거침없이 저지르고 있거든요. 

amicus님은 훌륭한 목사님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특히 한국 개신교의 썩은 목사들을 되도록 많이 구원해주십시오.  님이 한분한분의 영혼을 인도해봐야 거의 헛일입니다.  그들은 한칼에 300여명씩을 망치고 있거든요.  님같은 분은 산술급수적으로 영혼을 맑게 하려고 애쓰시지만, 그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망칩니다.

좋은 목사님이 되시기를 다시 한번 기원합니다.

Lisamarie님의 댓글의 댓글

Lisamari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초년생 대학생일때 한 목사님 딸 유학생언니와 가깝게 지냈습니다. ( 그 당시 아버지교회의 신자들이 유학비 대준다고 하던데 유감스럽게 평균이상으로 넉넉히 지내더군요. 학위는 못했습니다. 요즘은 다 바뀌었겠죠 )
그 분 말이 자신의 아버지는 70년대에 무슨 사업을 하다 망했는데 생각을 해보니 목사하면 돈을 잘 벌것같아  ( 그래서 사업이 아니라그게 원래의 하나님의 뜻 이었을거라고 ) 목사가 되었다고 공공연히 이야기 하더군요. 그분은 이런 발언의 문제점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을 해보면 왜 그 당시 한국에 '교회장사' 하면 잘 될거라고 믿고 실행에 옮기는 이들이 많았을까요. 이들이 모두 썩어빠진 목사가 된것 아닙니까.
그런데 장사가 혼자 됩니까 사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되는거지요!
매우 어려웠던 그 시절, 아직 기독교에 대한 이해는 없고 잘사는 서양사람들의 종교라니까 한번 믿어보면 무슨 뾰족한게 있지 않을까 싶어 교회로 찾아들어간 이들이 많아 한국기독교는 세계사에 없는 양적팽창을 했습니다.
거기다 극도의 정신적 고통을 겪는 이들이 많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즉 이런 가짜목사들이 돈과 권력을가질수 있게 아무것도 모르고 비판도 없이 그저 서양의 새로운 종교에다 무조건 갖다 바친 우리들에게도 큰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수 밖에 없던, 무언가 위로를 받을 대상이 필요했고, 땅에서 얻지 못하는 정의와 공평을 하늘에서나마 기대해 보기위해 , 아니면 끔찍한 가난을 신의 축복으로 극복해 보기위해 눈이먼채로 그저 교회로 달려갈 수 밖에 없었던 우리들 자신도 그 시대의 희생자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개신교, 한국사회가 변한만큼 ( 지금까지는 변화속도가 좀 느렸던듯 ) 앞으로 변해갈 게 분명 합니다.


휴, 교회도 바뀔덴데 그런데 그 사람잡는 교육제도는 , 수능때문에 해매다 죽는 어린사람이 생기고 아직도 일류대 나와야 사람대접 받는 그 사람잡는 교육제도와 사회제도는 언제쯤 바뀔런지?

leenett님의 댓글의 댓글

leenett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사람 잡는 그 교육제도와 사회제도 말입니다. 그것이 바뀌려면 먼저 사람이 바뀌어야지요.
종교가 사람을 바꾸어 주면 좋은데, 대부분 자기가 먼저 바뀔 생각은 안 하고 남만 바꾸려고 하니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 아니겠습니까...

디디님의 댓글의 댓글

디디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교육 제도는 사교육을 강제적으로 확!
줄이면 됩니다.
교육부와 학원 연합과 힘겨루기를 하면 누가 이길 것 같나요?
아쉽게도 학원 연합이 더 강합니다.
이들에게는 생존이거든요.
그러니 교육부에서 아무리 공교육을 위한 정책을 써도
사교육이 결국 우세한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이 해찬씨가 하려던 교육 개혁의 본 뜻이 현실에서 바뀌게 된 것 역시 마찬가지 사유입니다.
고로, 교육 제도 역시 바뀔 수가 없습니다. 사교육의 힘을 매우 약하게 만들 지 않는 한!

반칙왕이셔님의 댓글

반칙왕이셔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싸이코 소리함 지껄이겠습니다.
썩은 음식이라 하시네요!
사람이 살다보면 썩은 음식 접하기도 하고
머리카락 낀 반찬이나 밥 속에서 머리카락을 끄집어내기도 합니다.
그 머리카락이 빠져나오면서 밥을 한번 휘졌지고 하죠!
이걸 먹으시겠냐고요?
죄송하지만 저는 먹습니다.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거 안 먹으면 어떻게 할 겁니까? 잘 되는게 버려지는거겠죠? 아니면 다른 밥들과 다시 섞이던지!
그건 잘 하는 것입니까? 구데기때문에 장을 버리진 않습니다.
아니면 그냥 그 반찬은 빼놓고 안 먹을 것입니다. 심하게 썩었다면 말이죠!
그리고 식당주인에게 말을 하겠죠! 심하게 썩었다고요!
단지 음식을 접하는 저의 병신같은 짓일수도 있습니다.
저희 집에서도 가끔 찌게가 날이 더워 쉬기도 합니다.
전 어지간하면 먹습니다. 왜 먹을까요? 내 잘 못이니까요!
그러다 탈나면 어쩌죠? 제 벌인것이죠! 제가 감당해야 할 일입니다. 미친놈이라고 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안 그러면 어떡할겁니까? 또 버리시게요? 썩었으니까? 그럼 담에 또 썩겠죠!
본질로 살짝 돌아온다면 유일하게 썩지 안은 음식이 있으면 그 놈들 섞어놓으면
괜찮을까요? 혼자 있을때보다 더 빨리 쉬기 마련입니다!
교회가 썩어뭉드러지길 원치 않으신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냥 버려고 격리시키면 됩니까? 목사쉐이들이 썩었으면 그냥 감옥에 쳐넣으면 되는겁니까?
그 밑에 있는 또라이 신도들이 썩었으니 그냥 단체로 버리고 계속 까기만 하면 되는겁니까?
그 해답은 도대체 어디 있는걸까요?

동그라미님의 댓글

동그라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제 생각에는 믿는 사람이 있으니 교회가 유지되는 것이고, 믿는 사람들도 믿을만한 건덕지가 있으니 믿는 것으로 보는데요.

사람의 관점이란 참 희한한 부분도 있다고 말하고 싶네요.
그렇다고 믿으면 그런 것 같고, 또 그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더러의 신자들이 그렇게 생각하며 어떤 신인지는 몰라도 떠나지를 못하는 거 아닐가요?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저의 어머니(살아계셨다면 85세)는 옛날 고녀(여고를 옛날에는 이렇게 썼지요)를 다니신 그 당시에는 제법 신여성이셨는데 일찍 결혼을 했지요.
상대인 아버지는 일본에서 유학을 하시는 중이었고, 세력과 재산이 있었던 외할아버지의 주선이었지요.
그러나 아버지댁은 아주 가난했고, 어머니는 두명의 몸종을 데리고 시집을 가셨지요.

새댁이 시부모님 아침상이라도 차리는데 거들겠다고 부엌에 들어선 순간 어머니 눈에 띄인 것은 부엌 한켠에 정수를 떠놓고 비는 구석이 있더랍니다.

할머니는 아침마다 거기에 절하고 가족이 잘 되기를 빌었으며 새댁한테도 거기에 절을 하고 빌라고 하더랍니다.
저의 어머니 한 성질합니다.
물을 떠서 담아놓은 놋그릇을 부엌바닥에다 냅다 내동댕이를 쳤다네요.
그랬더니 그릇이 데굴데굴 구르는데 그치지도 않고 정말 뭐에 씌인 것 처럼 요란하게 굴르다가 제 풀에 꺾이더라고요.

인제 시집 온 새댁이 그랬다고 소문은 일만파로 퍼지고, 할머니의 노여움으로 시집살이가 편치는 않았겠지요.
할머니는 이제 집안에 우환이 오면 네 책임이라고 어머니를 볶았지만 우환은 무신........

나중에 물론 좋지 않은 일들이야 차례로 생겼지만 어머니는 콧방귀로 일관하시고.. 그 정도 우환없게 산 우리민족이 아니기에 그 문제는 아니라고 믿는 어머니와 그 문제 때문에 그렇다고 믿으셨던 할머니의 대립.

장래를 걱정하고, 빌어야 복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한 우리나라의 종교는 계속 번창할 것이고 그만큼 부패도 따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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