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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근세사를 잘 설명한 유윤종 기자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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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라인강이름으로 검색 조회 3,762회 작성일 02-02-04 09:41

본문

제목 오스트리아가 독일땅인가요?

꽤 오래 된 일입니다만 독자로부터 '유별난' 항의편지를 받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모차르트는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오스트리아에서 삶을 마감했는데 왜 독일음악이라고 썼느냐구요.
어떤 분은 '기자가 실수했구먼' 하실 겁니다. 어떤 분은 그저 웃고 넘어갈 일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고개를 갸우뚱 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듣고 보니 그러네. 모차르트는 오스트리아 사람이잖아. 하지만 독일음악의 거장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것 같고. 어떻게 된 거지?"

유럽사를 잘 아는 분들에게는 사실 이것은 간단한 문제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것은 낯선 문제이기도 하죠. '독일문화와 오스트리아 문화는 어떻게 다른가?' 이렇게 물어보면 차이를 콕 집어내기 힘든 분들이 대부분일 겁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대한 이미지들은 대부분 우리 머릿속에서 구분하기 힘들게 겹쳐집니다.
특히 클래식 음악의 입문자들에게 독일과 오스트리아, 두 나라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제가 아는 바를 정리해보기로 하겠습니다.
비유를 들어 보기로 하죠.

왕건과 견훤이 삼한통일의 주도권을 놓고 다투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역사에 따르면 왕건이 승리하고 후삼국을 통일하게 되죠. 그러나 이렇게 상상해보죠. 후백제와 치열하게 겨루던 어느날, 왕건이 뇌염모기에 물려 고열에 들뜨다가 덧없이 죽어버렸다구요.

그 결과 고려는 통일의 주도권을 상실합니다. 견훤도 결정적인 승기를 잡지 못합니다. 몇십년이 지나자 백제는 신검나라와 금강나라로 갈라지고, 고려도 몇 개의 나라로 또 뿔뿔이 갈라집니다. 신라땅도 갈라지고…. 그래서 한국은 여러개의 소국으로 분열됩니다.

그런데 이중에 '함경나라'라는 나라의 왕은 머리가 좋았던 모양이죠. 딸들을 여러 다른나라 세자들에게 시집보냈던 겁니다. 예를 들어 제주나라라고 할까요. 그러니까 함경나라 공주가 제주나라의 세자빈이 되는 거죠. 세월이 흘러 그 공주의 아들이 왕이 되면 할아버지 나라인 함경나라에 어딘지 친근한 기분이 들겠죠?

그러다가 그 왕이 아들이 없이 죽게 된다, 그런데 이런 저런 새 왕 후보들을 보니 마음에 들지도 않고 원래부터 왕 자리를 넘봐왔던 것 같기도 하고, 에라, 내 저런 놈들에게 왕 자리는 못주겠다. 차라리 지금 함경나라 왕이 내 할아버지의 맏손자, 그러니까 내 외사촌이 되니 그가 제주나라 왕까지 겸하라고 해라, 꼴깍! 이렇게 됩니다. 그러면 지리상으로 동떨어진 제주나라와 함경나라가 한 나라가 되겠죠? 이런 식으로 함경나라는 점점 커졌습니다.

국력이 커지다 보니, 우리 북쪽에 있는 오랑캐와 한판 붙자. 와장창…. 그래서 여진족을 쳐부수고 남만주를 차지했죠. 더욱 기세등등! 옛날 광개토대왕이 가졌던 땅을 다 차지했습니다. 자, 어떻게 됐을 까요. 함경나라가 가장 크죠? 만주 전부와 함경도지역. 나머지 평안도에서부터 삼남까지는 계속 여러 나라로 찢겨 있네요.

그런데 지식층이 언제부턴가 들썩거립니다. 중국과 일본은 일찍이 통일국가를 이뤄 잘난체하고 있는데 우리는 남남으로 갈라져있으니 이게 뭐냐. 우리 통일하자. 그래서 각국에서 대표를 모아 회의를 엽니다. 여러분이 함경나라 대표라면 어쩌겠어요? 우리가 다른 나라들하고는 비교도 안되게 크지 않냐. 그러니 우리나라 주도로 통일하고 우리 임금님이 통일제국의 황제가 되어야 한다구요. 그러나 다른 나라들 입장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렇게 큰 놈을 모시자면 우리는 다 무시되고 탄압받을거야. 그냥 고만고만한 나라들끼리 뭉치는 게 낫지. 그래서 '대한주의'와 '소한주의'가 대립하게 되죠. 대한주의는 함경나라가 주축이 돼서 큰 나라로 통일하자. 소한주의는 함경나라는 빼고 작은 나라끼리 통일하자는 겁니다. 소한주의도 나름대로 명분이 있습니다. 함경나라는 오랑캐의 땅까지 아우르고 있는데 대한주의로 통일하면 말과 습관이 다른 여진족들까지 '우리나라'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거죠.

워낙 입장차가 크니 방법은 전쟁밖에 없습니다. 그만그만한 나라 중 그래도 질서가 잘 잡혀있고 군기가 바짝 서있는 '경기나라'가 함경나라하고 붙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경기나라가 함경나라에 강펀치를 날렸습니다. 수도 함흥을 함락시켜 버릴 뻔 했죠. 온정나미가 떨어진 함경나라 왕은 그래 알아서 해라, 니들끼리 잘살아봐라. 우리는 함경도하고 만주 가지고 그냥 잘먹고 잘살란다. 해버렸습니다. 그래서 한국은 통일됐습니다. 평안도부터 그 아래는 모두 경기나라가 주축이 된 '대한제국'이 됐고, 함경나라는 '함경제국'으로 계속 잘 나갔습니다.
이것은 물론 가상의 역사입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꾸며본 것은, 당시 독일의 상황을 우리나라의 지정학에 대입시켜 이해를 돕기 위한 것입니다.

중세시대 독일은 여러 작은 나라들로 갈라진 나라들의 연합체 '신성로마제국' 이었습니다. 이중 가장 동남쪽에 위치한 오스트리아는 동쪽 슬라브 국가들을 복속시켜 대제국으로 키웠습니다.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폴란드와 루마니아의 일부, 유고슬라비아 대부분, 이탈리아 북부가 모두 오스트리아 땅이었죠. 이 대제국에서 독일어를 쓰는 인구는 10분의 1 남짓에 불구했습니다. 19세기 후반, 민족주의 기운이 커지면서 북부의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와 일전을 벌여 승리한 뒤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독일을 통일했습니다. 1871년의 일이었습니다.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만 멘델스존 등등은 모두 사망한 뒤였고, 브람스 브루크너 요한시트라우스 등등이 한창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통일국가로서의 '독일'이 등장한 것은 19세기 후반이었고, 그때부터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다른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독일이 통일되기 전은 어땠을까요? 프로이센의 수도인 베를린이 아니라 대제국 오스트리아의 수도인 빈(비엔나)가 독일 최대의 도시였던 겁니다. 인구만 많았던 것이 아니고 문화적으로도 그랬습니다. 북쪽으로는 발트해에서부터 남쪽으로는 알프스의 티롤, 서쪽으로 스트라스부르에 이르기까지, 독일어를 쓰는 모든 지역의 가장 잘난 음악가와 문인들이 빈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자기 동네에서 난다 긴다 하는 재주꾼들은 누구나 빈으로 가서 성공해 볼 청운의 꿈을 꽃피웠습니다. 북부 함부르크 사람인 브람스가 수천리나 떨어진 빈에서 활동했던 것도 이런 이유였습니다.

그렇다고 빈 사람들이 브람스를 '외국인'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천만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때는 오스트리아 제국 내인 잘츠부르크나, 러시아에 바짝 붙은 쾨니히스베르크나, 모두 '우리 나라'였던 것입니다.

'오스트리아 땅' 인 빈에 가보면 특히 박물관이나 극장 등의 문화시설에 'Dem Deutschen Volke'라는 글자가 금박으로 양각돼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독일 국민에게 바침'이라는 뜻이죠. 통일 이전에 독일어를 쓰는 모든 사람은 (엄밀히 말해, 독일어를 쓰는 70%의 스위스인은 제외해야 하겠군요) '독일인'으로서의 민족적 아이덴티티를 공유했던 것입니다. 사실 이런 '대독일인'의 아이덴티티가 거의 완전히 사라진 것은 채 60년이 되지 않습니다. 아돌프 히틀러가 1939년 탱크부대를 몰고 빈으로 진격했을 때, 그리고 다음날 빈 왕궁 앞에서 '이제 오스트리아는 독일의 한 주(州)가 되었다' 고 외쳤을 때, 빈 시민들 대부분은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환호를 보냈던 것입니다.

이미 그보다 20년 앞서 1919년,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를 선언했을 때 이미 오스트리아는 제국이 아닌 한 소국으로 전락했었습니다. 그야말로 '민족자결'의 원칙에 따라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그밖의 다른 지역들이 독립국으로 다 떨어져나갔고 오스트리아는 기존 인구의 10분의 1만 거느리게 되었었죠. 패전국 독일의 약화전략에 따라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합병도 거부됐었습니다.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타인의 의지에 따라 이 가련한 나라는 연약한 발로 스스로 서라는 임무를 부여받게 되었다'라고 기록했습니다.

저는 최근 8년만에 빈에 들릴 기회를 가졌습니다. 아침에 호텔방 TV를 켰더니 우리나라의 '6시 내고향' 비슷한 프로그램이 나오더군요. 이 도시 저 도시를 연결해 지방 화제를 들어보는 순서였습니다. 놀랍게도 빈 잘츠부르크 등 오스트리아 도시를 거쳐 독일의 바이에른 주 도시들로 카메라가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 북쪽으로 올라가지도 않더군요. 통일 이전에 바이에른은 가톨릭 왕국으로서 같은 가톨릭 국가인 오스트리아와 문화적 친근감을 더 크게 가지고 있었지요. 지금도 바이에른과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거의 완전한 문화적 동질감을 갖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북부 독일의 '프로이센적 뻣뻣함'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있는 것도 똑같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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