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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 대전 후 과거 청산 실패의 휴유증이 우리나라의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닌가합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alberto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6건 조회 1,339회 작성일 23-01-20 12:01

본문

*글이 좀 길 수 있으니 참조부탁드립니다.

제가 이 게시판에서 최근 정치관련 글을 많이 올렸는데요.

아무리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고해도, 정치라는게 좌/우 스펙트럼에서 완벽하게 벗어나기가 힘들고 그 균형을 항상 매우 균등하게 유지하기 쉽지 않은 면이 있어서 많은 분들이 불편해하시고 비난하시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에 실제하는 심각한 사회 문제들(서울과밀화, 일자리 및 한정된 기회를 향한 극단경쟁화, 초저출생 및 초고령화, 격해지는 남녀, 세대, 장애인/비장애인 및 노동자끼리의 갈등 등등..)이 정치와 무관할 수 없고, 그 정치에 대한 개개인의 관심과 참여가 부족할 때 어떠한 상황을 맞이할 수 있는지를 분명 많은 분들이 느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참 흥미롭게도 혹은 안타깝게도, 저는 이러한 정치적인 문제들이 우리의 근/현대 역사에서 청산하지 못한 문제 때문에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아시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멋진 민주주의를 가진 나라이지만, 한편으로는 과거의 장애물들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상태로 시간을 지내왔고, 지금은 그 결과가 우리의 발목을 크게 잡는 상태까지 이르고 말았습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1/2차 세계 대전 이후 패전국에 대한 배상과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일본이 국제 정세의 운 덕분에 전쟁범죄자들을 처단하는 책임에서 자유로웠다는 것입니다. 전쟁 발발 당시 일본은 우리도 잘 아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통해 미국이 필리핀을 지배하는 조건으로 일본의 조선 침략 및 합병을 묵인하였습니다. 이는 당시 청나라와 러시아를 꺾으며 기세 등등하던 일본의 국력을 미국을 비롯한 서방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판단도 있었을 거라봅니다. 그렇게해서 일본은 이미 당시 서방 국가에서 열강과 비등한 존재로 대우를 받기 시작했고, 적어도 조선의 지배에 대해서는 그들을 막을 수 있는 존재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악랄한 일본의 조선에 대한 착취가 시작되었고, 전세계 그 어느 제국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정도로 가혹한 문화 말살 정책을 폈습니다. 창씨 개명은 물론이거니와, 조선어를 쓰면 가혹한 처벌을 받았고, 이 과정에서 오히려 일본 군보다도 악랄한 매국노 들이 많이 등장했습니다. 이들은 곧 일제의 식민지가된 조선의 기득권으로 성장했고, 지금까지 이들의 후손이 우리 사회 곳곳에 지도층으로 자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런 기득권들이 처단이 되기 힘들었던 것 일까요? 그것을 밝히기위해 2차 세계 대전의 다른 전범인 독일의 역사적 상황을 일본의 상황에 빚대어 비추어 보려고 합니다. 꽤 긴 여정이 될 수 있습니다.

-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독일 주변 정세

2차 세계 대전 이후 연합국(영국, 프랑스, 미국, 소련)등은 독일에 입성하여 전후 배상을 논의합니다. 당시 프랑스와 영국 등 독일에게 큰코를 다친 타 열강국들은 독일이 다시는 일어설 수 없게끔 막대한 배상금을 청구하기를 원했고, 영원히 독일이 다시 힘을 키우지 못하도록 무장해제하는 것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생각이 달랐습니다. 미국은 1차 대전 이후 독일의 심각한 인플레이션으로인한 경제적 타격이 결국 히틀러라는 끔찍한 인물에게 권력을 주었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독일이 다시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경제적 타격을 입는다면, 독일이 또다시 암울한 현실에 대한 광기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를 한 것입니다. 대신, 독일에게 엄청난 경제적 원조를 하면서 독일이 경제적 안정을 찾기를 원했습니다. 당시 소련의 지배에 들어간 동독을 제외하고, 서독은 본래 가지고 있던 강력한 산업 및 과학 기술력을 바탕으로 금방 다시 일어섰습니다.

저는 이러한 미국의 독일에 대한 마셜 플랜(Marshall Plan)이, "가난할수록 인간은 포악해질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사회 구성원에게 안정적인 경제적 기반을 마련해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해 준다는 면에서 오늘날까지도 세계 정치사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으로도 국민의 삶이 어려웠던 사회는 대부분 정의롭게 흘러가기 어려웠습니다. 그만큼 먹고 사는 문제에 함몰되어 당장 눈앞에 있는 문제만 해결하기 바빠지는 삶을 살게되면, 장기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러한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과 나치에 가담한 전범들에대한 엄격한 처벌 및 반나치 관련 법 도입등을 통해, 서독은 다시금 우경화될 수 있는 가능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고, 당시 미국이 우려했던 공산주의 세력의 확산을 방어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면서 점차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아갔고, 이후 서독은 영국과 프랑스를 넘어서 유럽 경제의 최강국으로 부상하게되죠. 오늘날 독일이 주도한 EU가 만들어 질 수 있는 발판이 이때 형성되었다고 봅니다.

또한 동독은 비록 공산주의 진영이었어도 동구권에서 그나마 가장 경제적으로 탄탄한 사회였고, 서독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전 유럽에서도 가장 풍요로운 공동체였죠. 동구권의 많은 사람들이 동독으로 유학이나 일을 하기 위해 모여들었고, 서독 역시 외국에서 많은 노동자를 받아들였죠. 지금의 터키계 독일인들이 많은 이유도 그들의 선조가 독일에 노동자로 일하기위해 들어온 것이고, 우리나라도 <국제시장>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최근에 알려졌듯이, 많은 광부와 간호사등이 파견되어 아직까지도 그들의 후손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각 진영의 풍요로움 덕에 동독은 동구권에서는 드물게도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및 북한 등 여러 동구권의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서독도 마찬가지로 여러 이민자를 받아들이며 점점 더 인종적/문화적 다양성을 포용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저의 시선으로는, 경제적 풍요로움을 기반으로한 이러한 사회적 다양성은 필연적으로 기존에 존재하는 낡은 법률과 관행에 대한 재성찰을 할 기회를 만들어준다고 봅니다. 결정적으로, 비록 우리나라에서는 그 흔적이 없지만, 68혁명이라는 거대한 문화적 개혁 운동을 통해 유럽은 점차 그 이전 시대의 관행으로부터 급격하게 멀어지는 변화를 겪게됩니다. 2차 세계대전이후 냉전으로인한 이념 갈등, 베트남 전쟁을 통해 생중계된 전쟁의 참상 등은 신세대로 하여금 이전 세계의 시스템과 관행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갖게 만들었고,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세상에 맞는 가치는 무엇인지를 질문하게 하였습니다. 프랑스에서부터 시작한 이 운동은 전 세계를 휩쓸었고, 독일에도 많은 사회적 변혁을 야기합니다. 가장 큰 예로 교육의 방식이 바뀌었습니다. 우리나라 등 기존의 동아시아 국가에서 아직까지도 채택하는 주입식 교육 방식에서 벗어나 학생들에게 "정해진 답을 찾는 목적"에서 벗어나 "질문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태도"를 길러주는 방향으로 바뀌었습니다. 특히, 히틀러라는 무서운 괴물을 탄생시킨 독일에서는, 전쟁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더 이상 윗사람이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지식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형태의 교육에서 벗어날 필요성이 그 어느 사회보다도 컸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도 독일이 사회 체계의 변화를 수용하는데 있어 큰 추진제가 되었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동독과 서독이 어느 정도 교류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1973년 서로 관계를 정상화하면서 그 교류가 더 활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빌리 브란트 총리는 분단된 독일이라 할지라도 유럽 사회의 평화를 유지하고 서로 더 협력하고 교류하며 이해의 폭을 넓히려는 햇볕정책을 적극적으로 편 인물이었습니다. 독일이 통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일단 유럽 사회의 안보 보장과 정치적 안정이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운 좋게도 서독과의 관계개선을 원했던 소련이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나섰고, 다수의 소련군이 포진해있던 당시의 동독은 소련의 의사를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동독에서도 서독과의 관계 발전으로 독립적인 주권국가로써 인정받을 수 있다는 판단이 동독 정부에서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외부적 요인들과 내부적 필요 요인들이 매우 적절하게 겹쳐 동서독의 한정적이지만 점차적인 교류를 늘려나갈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1989년 세기에 남을 말 실수로 인해 사실상 독일의 통일이 이루어집니다. 당시 자유를 열망하는 동독 주민들의 시위를 무마하기 위해 연 기자회견에서, 동독측 공산당 대변인인 귄터 샤보브스키(Gunter Schabowski)가 서독에 대한 여행자유화가 언제부터 시작되는지에 대한 한 기자의 질문에 "지금 당장"이라고 대답한 것이죠. 이에 열광한 동독 주민들은 경비원들을 물리치고 베를린 장벽을 붕괴하게 됩니다.

이 모든 상황이 의도된 측면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면도 있겠지만, 저는 독일의 통일에 있어서 상당히 외부적인 요소들이 적절하게 잘 작용을 했다는 생각이듭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무리 이러한 외부적인 요소들이 작용한다고해도 동독과 서독의 시민들이 통일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면 1989년의 기적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겠죠. 적절한 타이밍에 외부적인 상황들이 독일의 통일에 긍정적으로 작용했고, 또 그 상황을 적절히 잘 이용한 동/서독 독일의 정치가 그 것을 가능케 했다고 봅니다. 특히 통일을 위한 서독 정치인의 노력이 매우 컸다고 생각하는데, 그러한 정치를 가능하게 한 것은, 무엇보다도 서독의 시민의식이 그러한 뜻있는 정치인들을 지지하고 일을 할 수 있도록 밀어주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 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을 둘러싼 정세

반대로 우리 독립의 키를 쥐고 있었던, 일본의 2차 대전 이후 패배 상황을 보죠. 독일과의 전쟁이 끝난 상황에서 당시 미국은 기세등등한 일본에게 “석유 수출 금지” 등 강력한 경제적 조치로 일본을 항복시키려하였습니다. 이미 유럽에서의 전쟁을 통해 세계 최강국으로 떠올랐지만, 많은 희생을 치루며 더 이상의 희생을 원하지 않았던 미국은, 삼국동맹의 다른 축들이 무너진 상황에서 일본이 순순히 항복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진주만 폭격으로 되려 미국을 도발하고 미국에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강력한 해군력과 여러 전쟁을 통해 얻은 경험을 등에엎은 일본에게는 무서울 것이 없었고, 미국은 일본이 더 이상 전쟁을 지속할 경우 발생되는 동아시아와 자국군의 더 큰 피해를 막고 싶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때마침 핵폭탄을 비밀리에 시험했던 “맨하탄 프로젝트”가 성공했고, 고심끝에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미국은 일본에 원자 폭탄을 투하하는 결단을 내리게됩니다.

물론 원폭투하에 대해서는 인권의 측면에서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무고한 시민을 죽이는 것은 좋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미국이 일본에게 그대로 전면전으로 맞섰다면 매우 큰 희생을 치렀을 것이고, 당시 일본의 기세로 보았을 때 조선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에게 더 큰 피해를 안길 것이라는 판단하에 정치적으로 보자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측면도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일본에게 항복을 받아내지 못한다면 전쟁을 장기전으로 끌고 갔을 수 있고, 당시 조선을 비롯해 일본에게 점령당한 많은 국가들은 그 비참한 상황을 좀 더 오래 겪어야했을 수도 있고, 아예 일본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워졌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자신들이 저지른 짓은 어떻게해서든 외면하고 자신들의 원폭피해가 부당하다는 말을 합니다. 원폭투하라는 극단적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본다면, 자신들에게도 상당부분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텐데도 말이죠. 결국 오바마 정부의 일본 방문때 미국의 사과를 받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까지도 그 사과를 결코 진심으로 받지 못하고 있죠.

어쨌든 전후로 미국은 일본에 대해서도 영국, 프랑스, 소련 등 열강국들과 다시 논의를 합니다. 그러나 일본을 둘러싼 정세는 독일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일단, 당시 승전국들은 미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들이었고,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 국가들 등 점령담한 피지배국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들은 대부분 서구 열강들이 지배했던 나라들이고, 당시에도 독립하지 못하거나 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라들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이들의 전후 논의 참여는 열강들의 이익에 반하는 상황을 낳을 수 있겠죠. 따라서, 한국은 물론 그 어떤 피지배국들도 전후 보상을 제대로 요구할 수 없었고, 자신들에게 올 불이익을 두려워한 열강들은 일본에게도 그 책임을 묻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따라서 전범에 대한 제대로된 처벌이 없이 전 후 배상 문제를 넘어가게됩니다. 독일처럼 열강들이 나누어서 지배하지도 않고, 힘을 약하게 하기위해 분단시키지도 않습니다. 당시 냉전으로인한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아야하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일본의 국력을 약화시켜봐야 좋을 것이 없다는 판단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일본에게는 운 좋게도 한국 전쟁이 발발하여, 전쟁으로부터 폐허가된 나라를 다시 복구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당시 연합군과 미국은 가까운 일본을 군수기지로 활용하여 엄청난 전쟁 군수 물자를 일본에서 생산하고 공급받았습니다. 이를 통해 가져온 이익으로 일본도 독일과 마찬가지로 다시금 경제적인 부흥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로 인해 제대로된 처벌을 받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의 전범들은 이를 기회 삼아 다시 사회 지도층 곳곳을 장악해 나갑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의 대표적인 기업인 미츠비시(Mitsubishi)등도 전범 기업이고, 아직도 일본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TVN <벌거벗은 한국사>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굉장히 크게 화가나는 사실을 하나 알게되었습니다. 일본의 패전 이후 일본이 한국을 점령하는 상황에 대해 뒤숭숭한 상황에서, 당시 조선에 거주한 일본인들은 자신들에게 돌아올 보복이 두려워 은행에 있는 자신들의 자산을 전부 인출하려 합니다. 덕분에 당시 조선 은행의 국고는 바닥났고, 일본군은 도리어 아직 일본의 점령은 끝나지 않았다며 민간인을 여전히 탄압합니다. 이 상황에서 일본의 고위층은 독립운동가인 여운형을 뻔뻔하게 찾아가 자신들을 무사히 귀국할 수 있도록 보호해달라고 호소합니다. 당시 여운형 선생도 비록 패전국이지만 일본인들에 대한 보복은 국내 정세를 더 복잡하게 만들것이라는 생각에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일본인들이 무사히 귀국하는 과정을 지원합니다. 슬프게도 이 와중에 독립된 조선에 돌아가려는 일본의 징집자 및 일부 교포들 역시 배를 타고 한국에 돌아오려했지만, 일본측의 모함으로 배가 폭발하여 안에 있던 대부분의 조선인들이 사망했습니다. 아마도 전후 배상 문제에서 그들이 혹시라도 증인으로 불려가게되면 일본의 전후 복구를 논의하는데 있어 성가신 존재가 될 것이라 판단했나봅니다. 결과적으로 한 명의 식민지 시대 증인이라도 없애는 것이 이득이었던 일본에게 이 행위는 일본의 역사왜곡에도 도움이 되었겠죠. 하지만, 그렇게 우리를 폭력적으로 억압했는데도 너그럽게 보호해주고, 재산도 대부분 돌려주면서 안전하게 복귀하는 것을 도운 우리 입장에서는 이렇게 끝까지 파렴치한 모습을 보여주는 일본이 정말 너무도 악랄하고 비겁하게 느껴져 화가납니다.

당시 승전국들이었던 서구 열강들도 일본에 대해서 만큼은 엄격한 반전체주의 교육이나 관련 법안 도입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이전에도 언급했듯이,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한 공산주의 확산의 방지가 최우선이었고, 당시 북한이 공산화된 상황에서 미국은 일본을 동아시아 반공 최후의 보루로 여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일본의 국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그 어떤 요소도 배재해야 했을겁니다. 그렇게 때문에 막대한 보상이나 사죄를 요구할 수 있는 시대적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시대적 상황도 독일과는 다르게 일본에게 매우 유리하게 작용했죠. 

일본이 한국전쟁을 바탕으로 경제성장을 다시 이루어내면서, 미국을 위협할 정도의 강국으로 부상합니다. 70~80년대 전 세계 100대 기업의 절반 이상이 일본 기업이었고, 미국에서도 일본에게 일인자 자리를 내줄 것이라는 위기감도 감돌 정도였죠. 2차 대전 이후 그 형태는 다르지만, 일본에게 위기양양한 시기가 다시 찾아옵니다. 그런데 당시 한국을 포함한 주변 아시아 국가들은 일본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죠. 가뜩이나 냉전으로 예민한 시기에서 배상을 할 필요없이 넘어갔고, 자신이 사과해야하는 상대들이 별볼일 없는 약한 국가들인데 일본의 입장으로써 쓸떼없는 일을 만들어 굳이 사과와 배상을 할 필요가 없었겠죠. 당시 일본은 너무 부유했던 나머지 사람들의 사치가 컸고, 또 그것에 심취해 다른 것을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고 생각할겁니다. 아시아 국가들과 화해해서 사이 좋게 지내며 EU처럼 하나된 아시아를 꿈꾸기 보다는, 상대적으로 약한 국가들 밖에 없는 일본 주변국들과 그렇게까지 해야될 필요를 못 느꼈을 것이고, 그렇게 하는게 오히려 손해라고 생각되었을 수 있습니다. 이 점도 매우 아쉽죠. 만약 아시아에서도 유럽에서 독일을 견제했던 세력인 영국과 프랑스 처럼 대등한 존재가 있었다면, 지금의 일본의 태도나 양상도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아무리 인간적인 가치와 존엄성에 기반해 일본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설파해봐야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국제사회에서는 강대국들이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것들에는 쉽게 콧방귀끼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그리고 워낙 지리적으로 섬나라로써 떨어져있어 대륙에 있던 독일과는 다르게 문화적으로 더 폐쇄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독일과는 다르게 일본은 아직까지도 이민을 잘 받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죠. 사회전체가 정해진 틀을 따르지 않으면 쉽게 낙오하고, 사회도 그런 낙오자들을 챙겨야한다는 책임의식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사회자체가 역동성이나 다양성이 부족하고, 무엇보다도 다름에 대한 포용력이 매우 부족합니다. 워낙 전범 세력이 견고하고, 그 세력이 자신들이 옳다고 설파하며 시스템을 구축해 나갔으니, 거기에 반하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쉽게 내쳐지고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기 힘듭니다. 재일 동포들은 존재자체가 그들에게 반하는 것이니 정말 쉽게 탄압의 표적이 될 수 밖에 없고, 그 예시는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사건부터 비롯되어 그들을 향한 Hate Speech나 엄연한 차별이 아직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반면 전후로 인해 분단이라는 아픔을 겪었고, 경제 성장으로인해 노동력 수요가 많아지면서 외국인 노동자를 받을 수 밖에 없었던 독일은, 점차 장기적으로 다문화 사회로 나갈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죠. 비록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이 존재했고, 아직도 어느 정도 있다고해도, 독일 사회의 다문화 수용성에 대한 성숙도는 일본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좋은 예시가 바로 최근 메르켈 총리의 100만 난민 수용이죠.

저는 얼마전 독일 회사에 근무할 때 출장을 간 적이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영업을 담당하는 제품에 대한 개발팀의 리더가 신입직원을 대상으로 트레이닝을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루는 트레이닝을 마치고 전세계에서 온 출장인원들이 같이 퇴근 후 저녁을 먹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최근 메르켈이 시행한 난민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독일도 한때는 외부의 도움을 받는 나라였기 때문에, 이제는 도움을 주는 나라로써 적어도 본인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소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자신이 생각하기에 적어도 분단의 아픔을 겪었던 자신의 세대는 난민 문제에대해 자신과 비슷한 태도를 갖는 사람이 많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비록 그의 생각이 모든 세대의 독일인을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으나, 그와 같은 독일인들이 다수라면 분명히 독일은 세계가 존경할만한 성숙한 국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치나 역사관련 이야기만 나오면 무조건 피하기 바쁘고,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잘 이야기하지 않는 일본인들과는 너무도 다른 태도였습니다.

난징대학살등 끔찍한 사건을 겪었던 중국 역시, 한국과 연합해서 일본에게 사과와 배상을 요구해야하는데, 중국은 오히려 동북공정등으로 고구려 및 발해 역사를 왜곡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문제가 얽혀있기 때문인지,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해 크게 배상을 요구하거나 사과를 요구한다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역사왜곡 문제도 같이 드러난다고 보기 때문일까요? 일본에 대항해서 아시아 국가들이 연합하여 요구를 하기에도 까다로운 상황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점차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해야하는 미국의 입장도 있으니, 중국에 대한 견제세력으로 일본을 이용해야하는 미국이 우리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우방인것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죠. 이렇듯 국제 정세는 점점 더 일본에게 사죄와 배상을 받는 것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당시 일본을 둘러싼 국제정세는 독일과는 다르게 일본이 “굳이 반성을 해도 되지 않는” 분위기였고, 이를 악용한 일본은 독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더 전쟁 책임 및 배상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추가적으로 정해진 체계에 순응하면서 쉽게 도전하지 않는 일본인의 성향이 전범 세력들이 굳건히 자신의 세력을 유지하는데 도와주었고, 폐쇄적으로 불편한 것은 쉬쉬하는 문화도 그런 것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를 없애 버렸죠. 혹시라도 현 집권당에 반하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쉽게 사회에서 매장되기 일쑤입니다. 이미 해온 관행에 대해 비판하거나 질문하지않고, 그것에 대해 질문하는 것을 되려 민폐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 게다가 꽤 오랫동안 아시아에서 일본에 대항할 적수가 아시아에서 없었던 상황이 일본으로 하여금 내부적으로 지금와서 사과와 배상을 하는 모순된 모습을 보이기도 어렵고, 주변국 역시 일본에게 그것을 요구하기에도 쉽지 않은 상황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일까요?

제가 왜 이렇게까지 독일과 일본의 근/현대 역사적 사실을 이야기하고, 또 그것이 우리의 현실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의아해 하실 것 같습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광복 이후 우리나라의 친일 세력들을 제거하지 못한 이유와 관련이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독일과 대비된 일본의 상황덕분에, 당시 권력자였던 친일 기득권들도 큰 수혜를 보았습니다. 남한에 들어온 미정부는 일본에 대해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친일 및 매국행위를 한 이들에 대해서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이 광복 후 조선의 실상을 잘 알거라는 판단에 그들을 정부 고위직에 임명합니다. 우리 역사의 아주 크나큰 실수가 여기서 시작된 것이죠. <덕혜옹주>라는 영화에서 조선의 마지막 공주를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서 탄압한 인물이 일본이 패전할 것이라는 생각에 잠시 도피했다가, 미군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국가 고위직으로 복귀하고, 덕혜옹주는 자신들의 남한 점령 및 반공 세력 구축을 복잡하게 만들 것이라는 미군의 판단으로 입국을 거부당해 일본으로 쫓겨났던 내용이 기억납니다. 그것이 얼마나 우리 사회의 친일 세력이 처벌받지 않고 온건히 자신의 세력을 유지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이후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으로 초대된 이승만은 남한에 들어와 남한 독자 정부를 세우려고 합니다. 북한과의 대화 없이 말이죠. 마찬가지로 북한도 소련에게 남침을 하겠다며 군수 물자를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처음에 거부했던 소련은 미군이 남한으로 들어온다는 소식에 그 제안을 받아들여 김일성이 이끄는 공산군은 남한을 침입하면서 한국전쟁이 발발합니다. 가뜩이나 식민지 수탈로 폐허가된 국가에서 힘을 합쳐도 모자를판에, 전쟁을 일으키면서 안그래도 뭐 없던 당시 한반도를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전락시켰고, 본의아니게 사과를 받아야할 대상인 일본을 이 기회를 통해 다시 일어서게 해 주면서 남 좋은 일만 시키고 말았습니다. 김구 선생이 분단된 한반도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정체모를 인원에게 암살당합니다. 저는 이 것이 이승만이나 미군 측의 소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않으면 국민의 존경을 받는 김구 선생을 죽을 만한 명분을 가진 존재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습니다. 어쨌든, 미군 역시 수차례 소련과의 회담이 있었으나 제대로된 협상 결과를 내지 못했고, 결국 남한과 북한이 다른 길을 가게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장치는 전쟁이외에는 더 이상 없었습니다.

UN군과 한국군은 처음에 부산까지 밀리면서 공산군에게 완전히 점령당할 위기까지 갔지만,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전세가 완전히 뒤바뀌어 압록강과 두만강 이남까지 진격합니다. 그대로 강 유역까지 점령하면 자유민주세력의 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었겠지만, 연합군의 북진이 게속되면 자신들을 공격할까 두려웠던 중국은 어마어마한 수의 군을 투입하여 전세를 또다시 반전시킵니다. 한반도 중부에서 밀고 밀리는 전투끝에 더 이상 계속된 전쟁을 원치 않았던 미군과 소련군은 전쟁을 잠시 쉬기로하고 이것이 지금까지 3.8도 선을 기준으로 계속된 “휴전상태”로 이어져오고 있죠. “휴전”이란 전쟁을 “잠시 쉰다”는 의미이지 진정한 의미에서 “전쟁을 중단”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종전선언이 우리 정치의 중요한 화두로 남아있는 것이죠. 결국 우리는 아직 전쟁을 공식적으로 종료하지 않았습니다. 70년 넘께 아주 오랜 “휴식”을 취하고 있을뿐이죠. 결국, 무력을 통해서도 한반도의 통일을 이루어내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시민들을 안심시킨 뒤에 한강다리를 폭파시켰습니다. 남아있는 서울 시민들은 곧 점령한 북한 군들에게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자가 거짓말로 국민을 속이고, 자신만 안전하게 대피하려하는 비겁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결코 이자가 존경받을만한 대통령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하버드를 졸업했다고한들, 김구 선생이나 여운형 선생, 도산 안창호 선생등처럼 뚜렷한 민족의식이 없이 자신의 권력욕에만 눈이 먼자가 지도자가 되었을 경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감수해야하는지 보여준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당시에 많이 배운 사람이 그만큼 없었을 것이고, 또 조선의 문화 자체가 문을 숭상시에 높은 학문적 업적을 얻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였기 때문에 초대 대통령으로써 그를 선택했었을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당시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조국과 국민에 대한 사랑이 별로 없는 듯 보이는 그의 모습을 구분해내지 못한 것 같아 그 선택에 대해서는 후손으로써 큰 아쉬움이 듭니다. 도올 김용옥 선생님이 괜히 이 자를 “국립현충원에서 파내야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소련도 비슷합니다. 김일성의 진정한 의도와 지도자로써의 성품을 보지 않고, 그가 단지 연설을 잘한다는 이유로 리더쉽이 있어보인다고 판단하여 그를 한반도 공산세력의 리더로 인정한 것도 크나큰 실수 였죠. 그 역시 자신의 권력이 민생의 안정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지금 3대째 내려오는 독재를 통해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이렇듯 역사적 혼란에서 기회주의자가 득실하게 내버려두고, 그들을 막아내지 못한 것이 우리 근/현대 역사에서 가장 치명적인 실수 였습니다.

그리고 그 세력을 처단하지 않고 이승만이 거의 십년넘게 독재를 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었죠, 결국 국민들의 반대로 물러나기는했지만, 얼마가지않아 군사독재시대를 겪게됩니다. 이때부터 경제성장이라는 것을 명목으로 반대의견을 개진하는 자들은 무조건 탄압받았고, 경제는 발전했을지언정, 민주주주의는 많이 후퇴하게됩니다. 또한 억압적이고 비합리적이며 비인간적인 군문화가 사회 전반적으로 퍼지게되고, 그것이 미덕이 되는 사회가 됩니다. “까라면 까”라는 속어로 대표되는 군문화는 모든 사람에게 강요되어 상사가 불합리하고 비윤리적인 요구를해도 들어줄 수밖에 없는 사회를 만들었고, 계급이 높으면 아랫사람을 매우 쉽게 이용하고 농락할 수 있는 사회구조가 됩니다. 사실 한국의 경제발전은 박정희 대통령이 이루어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계획은 누구나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고, 더 중요한 것은 실제로 그 계획을 실행시킨 이들 즉, 자신의 건강과 삶을 희생하며 이루어낸 우리 부모님 혹은 조부모님 세대의 공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정희 정권은 이때 경제발전을 빌미로 많은 사람들을 세뇌시킵니다. 그 여파가 지금 지역갈등으로 나타나고있고, 특수 지역에서는 박정희 계열의 사람들을 아직까지도 무슨짓을 해도 뽑아주는 이유죠.

박정희가 암살되고 나서도 전두환이라는 희대의 악마가 정권을 잡게되어, 자유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무참히 살해하는 대통령을 맞이하게됩니다. 당시 상황을 제대로 보도하는 미디어는 거의 없었고, 3S(Sports, Sex, Screen)정책이라는 이름으로 국민들의 관심을 정치에서 돌리기 바빴습니다. 심지어는 민주화 운동이 벌어지는 광주로 가는 길을 원천 봉쇄하기까지했죠. 시위를 진압하는 군대에게 마약 물질을 투여하여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도록 하려고 했다고합니다. 그런 것들이 지금 <택시운전사>같은 영화를 통해서 세상에 알려지고 있으나, 아직까지도 제대로된 사과를 하지 않고, 그 파렴치한 범죄자를 황제 감옥에 넣어 놓기만 할뿐 제대로 처벌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희생을 치루었어도, 시민들은 독재정권을 끌어내리는데 성공합니다. 그 이후로 진정으로 민주선거가 정착되어 김영삼 대통령부터 지금까지 약 30여년간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 곳곳에서 제대로 친일 세력과 기존 기득권들을 처단하지 못한 여파는 사회 곳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박정희 정권을 겪으면서 일본에게서 약간의 배상을 받았을 뿐 제대로 사과를 받은적이 없으며, 이명박 정권을 거치면서 친일 세력으로부터 비롯된 당과 그들을 호위하는 인원들로 메이저 미디어와 언론이 물갈이 되었고, 박근혜 정권을 겪으면서 국사 교과서의 독재 및 민주화 운동 관련 내용이 매우 축소되어 우리의 후손이 독재시대 및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내용을 제대로 교육받지 못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최근 당선된 대통령은 전 정권의 흔적을 지우기만 바쁜 “반대를 위한 반대”의 정권이며, 아무리 동지라도 자신에 뜻에 조금만 어긋나면 내치는 파렴치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그렇다고해서 그 일당들이 훌륭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게다가 나라를 위험에 빠뜨리거나 정치적, 외교적 리스크를 가져올 수 있는 망발을 서슴없이 하면서 국민에게 실망감만 주고 있습니다. 박근혜 시즌2가 아닌가하는 의심이 듭니다. 그런 경험을 했고 탄핵이라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다시 민주주의를 되찾은 줄 알았는데, 5년도 안되어 다시 어리석은 선택을 반복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가됩니다. 제 걱정이 기우가 아니었음을 현 대통령은 애써 증명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최근에는 독립투사의 후손이 그 당의 일원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윤주경이라는 의원인데 무려 윤봉길의사의 후손이라고합니다. 하나 둘씩 친일 세력이 우리나라를 너무 깊게 잠식한 상태에서, 독립운동가의 후손마저 포섭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처럼 여겨져 너무 안타깝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계속 우리의 발목을 잡아왔던 이들을 더 이상 우리사회에서 제거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보입니다. 이들이 진정으로 국민을 위해서 일하기를 바래야하는데 그렇게 변하기를 기대하기가 쉽지않도, 그들을 지지하는 층들도 연령대가 높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워낙 견고해 보입니다. 현 정권에서 초저출생, 초고령화, 빈부격차심화, 노동자 내부 갈등 및 인권 유린의 문제가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친일 세력과 그들을 지지하는 이들에게 권력을 넘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우리 국민 하나하나가 좀 더 깨우쳐서 한 사람이라도 더 역사의식을 가지고, 그 안에서 이루어진 여러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중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올바른 선택을 해야만 나라를 바꿀 수 있으니까요. 다른 방법이 생각나시나요? 저는 현실적으로 그 방법 밖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유일하게 민주적이고, 비폭력적이고, 평화적이고, 합리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국민이 더 이상 온갖 현혹과 왜곡된 뉴스 및 보도에 속지 않고, 정말 자신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능력있는 정치인을 알아보는 눈을 가지고 그 사람이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게 정당한 권한을 부여해주는 것입니다. 그렇게하지 않으면, 정치인들은 국민위에 군림하려들것이고, 국민을 기만하며 내려다보는 존재로 여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위선적이고 이기적인 정치인들이 지배하는 나라가 세계를 리드하고 좋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는 국가는 역사를 통해 찾아봐도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이 지금의 독일이 된 데에는 그럴 만한 내/외부적 요인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고, 일본역시 안타깝지만 지금의 일본이 되기까지 그럴 만한 역사적/환경적 요인이 있었습니다. 그 두 국가의 선택이 어떻게 갈렸든, 독일이 아닌 일본이 지금 우리의 이웃인 것이 현실입니다. 그 점을 인지하고 현재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 주변의 강대국들을 이용하여 우리의 안보와 경제를 지켜야 하는지를 고민해야합니다. 우리는 많은 풍파를 겪었어도 잘 이겨내고 적응하면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그렇다면 아직 우리에게는 세계정세를 잘 읽고 그 것을 우리의 이점으로 이용할 수 있는 지혜가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으려면 우리 내부적으로 단결이 되어야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 내부에는 우리 스스로 단합하기 어려운 조건들이 산재해있고, 그 중 가장 큰 걸림돌이 아직 광복 이후 친일 기득권 세력의 대가 계속해서 이어져오고있고, 그들이 꽤 자주 비상식적으로 한국의 국익에 반하는 결정과 행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들을 처단하지 못한 것이 실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변화한 세상에서, 또 그들이 사회 곳곳에 알게 모르게 지도층으로 퍼진 사회에서 그들을 완벽하게 걷어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또한 그들이 알아서 깨우쳐서 진정으로 한국의 국익을 위해 일하고 생각하게끔 바라는 것도 비현실적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제 남아있는 선택은 그러한 사람들이 최대한 권력을 잡고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게끔 국민들이 감시하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저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어쩌면 소위 선진국이라는 나라들(독일, 미국, 캐나다, 호주, 스웨덴, 핀란드 등등)으로 이민을 간 사람들이 만약 한국에서 제대로 된 정치를 경험했다면 굳이 그렇게 자신이 살던 나라를 떠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하고요. 유시민 작가는 자신의 책인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독일에서 독일사람으로 사는 건 물론 좋겠죠. 그런데 독일에서 ‘한국사람’으로 사는 건 또 다른 문제에요.” 그의 말은 곧 아무리 복지가 좋은 나라에서 살더라도 자신의 고향이 아닌곳에서 사는 것은 어느 정도의 고충을 감내할 수 밖에 없다는 뜻이겠죠. 여기 베리에서도 독일에 대해 불평을 많이 하시는 분들을 보면, 여기 계신 분들도 어쩌면 다른 선택이 없어서 한국을 떠나왔지만, 마음속에는 항상 돌아가고픈 마음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의 정치가 잘 굴러갔다면 굳이 이분들이 독일로 이민오는 선택을 하지 않았을텐데라는 생각도 많이 듭니다. 그 상황을 어쩌면 우리가 역사적인 관점에서 막지 못한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제게 타임머신이 있다면 김구 선생님이 광복 이후에 살해되지 않게끔 어떻게해서든 막고 싶고, 이승만이나 김일성이라는 기회주의자가 한국에 발을 딛지 못하도록 막고 싶습니다. 전두환이 어떻게 해서든 대통령이 되지 못하게끔 군에서 쫓겨나게 만들고, 이명박과 박근혜 그리고 현 대통령이 당선되지 못하도록 어떻게 해서든 막았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할 수가 없죠. 그래서 지금의 한국인들이 조금 더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조금 더 고민하고, 조금더 신중하게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행사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저는 독일로의 이민을 심각하게 고려중입니다만, 사실 가고 싶지 않습니다. 자신이 태어난 고향에서 사는게 최고라는 것을 많은 교민들의 삶을 통해 깨닫게 되었으니까요. 그게 가능하기 위해서는 저만 노력해서는 안될 것이고, 사회 전체가 같이 합심해야하죠. 그리고 그 노력이 지속되어야하고요.

유토피아는 세상에 없겠습니다만, 그래도 한국의 정치적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앞에서든 여러 예시가 말해주고있고,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나라”로 보는 인구 및 사회학자들의 견해에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한 나라가 분명히 흥망성쇠할 수 있죠. 하지만 그게 살기 힘들어서, 애 낳고 기를 자신이 없는 곳이라서, 경쟁에서 이겨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지 못할 곳이라서 스스로 자멸하게되면 얼마나 안타깝고 부끄러울까요? 마치 꽃이 제대로 얼마마 피어보지도 못하고 스스로 시들어 죽는 것처럼 말이죠. 단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빨리 자연소멸하는 곳은 아니기를 바랄 뿐입니다.
추천11

댓글목록

Archivistik님의 댓글

Archivistik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정치에 대해 글이 올라오면 흔히들 '치우쳤다', '균형이 있어야한다', '극단적이다' 이러면서 어느 누군가가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면 그것에 대해 극도로 거부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히려 그런 '극중주의'가 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극도로 중심을 맞춰야하고 균형을 잡아야만 한다는것은 결국 그어떤 변화도 이끌어내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되었든 분명한 스탠스는 있어야 한다는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때문에 글쓴이님께서 의견을 내어주시는것은 전혀 불편하거나 문제될 것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설령 이것이 제 의견과는 정반대의 의견이어도 말입니다. 다만, 사람이 양극단에 치우쳐서 신념의 노예가 되는것도 문제가 될 것입니다.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와 근대화 과정은 서양과는 다르게 매우 짧고 압축되었으며 그 과정역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세대간의 차이도 심하고 그에따른 생각도 다르며 그 안에서 발생하는 갈등도 꽤 크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크나큰 전쟁과 혁명이 이뤄지며 끝끝내 많은 희생속에 값진 민주주의 국가를 이룩해 내는것이 서양의 역사라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일단 미국의 그것을 먼저 가져온 다음 그 이후 발생하는 문제점과 시행착오를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 나아가고 있는것으로 보고있습니다.
다시말해 우리는, 후불제 민주주의 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시행착오와 많은 격동의 과정없이 일단 민주주의 시스템을 먼저 갖춰놓고 현대사의 역사가 시작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여러가지 문제들이 발생하고있고 그러한 것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아가야만 하는것 같습니다.
말씀해주신것처럼 역사문제(친일파, 일본과의 과거사문제), 군사독제정권의 인권탄압 등등..
그리고 잘못된 대통령을 당선시키는 시행착오 등등..
이런 여러가지 성장통을 겪는게 지금의 대한민국 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박근혜를 탄핵시키는 과정을 보면서 아직 우리나라에는 희망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살아있음을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윤석열이라는 검찰독재정부를 민주적 절차에 따라 우리는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만행을 두눈 똑바로 뜨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윤석열은 전두환보다 기괴하고 이명박보다 탐욕스럽고 박근혜보다 무능한 대통령입니다.
그러나, 2023년의 대한민국입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무너지도록 바보처럼 당하고만 있지 않을것입니다.

  • 추천 13

친절한시선님의 댓글

친절한시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와~ 다 읽었습니다! 술술 잘 읽힙니다^^. 한가지만  말씀드리자면, 다시 직접선거로 제6공화국을 시작한 대통령은 김영삼이 아니라 노태우입니다.

  • 추천 1

jjy08277님의 댓글

jjy08277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글을 읽는 것 만으로도 많은 생각이 듭니다. 우리 나라의 국민으로서 가져야 할 주체 의식이 세대가 바뀔수록 사라지고 있는 것 또한 매우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게다가 한국이 가장 빨리 사라질 나라가 된다는 말이 정말 현실로 다가올까 두렵기도 합니다. 현재 대만을 두고 중국과 미국이 대립 중에 있어 전쟁이라도 일어나는 게 아닌지 걱정도 되구요. 어찌됐든 대한민국에서 살아가야 할 청년으로서 이런저런 걱정과 더불어 앞으로 내가 이 나라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역할을 할 수나 있게 될지 많은 생각을 가지게 되네요.  찬찬히 고민해보겠습니다. 덧붙이자면 저도 윤석열을 버티는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정말 답답합니다. 차기 대통령 선거때도 국민들이 올바른 선택을 한다는 보장도 없지만요.

  • 추천 2

Vitter님의 댓글

Vitter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글을 읽고보니 참 저 희대의 악마 김일성이 한국전쟁만 안일으켰어도 일본이 한국전쟁으로 인한 국제정세의 운을 받을 일도 없었을텐데 정말 화가나네요. 친일세력을 제대로 청산했다면 보수고 진보고 드글거리는 친일후손들이 고개 빳빳이 들고 다니는걸 안봐도 됐을텐데요. 친일사전에 올라가있는 친일파 손자가 민주당의 원내대표까지 하는 상황이니 참. 김대중은 신한일어업협정으로 독도를 한일중간수역으로 포함시켜버리질않나. 역사상 가장 큰 외교참사라고 봅니다. 게다가 군부독재 2인자였던 김종필과 DJP연합까지 하면서 대통령 당선이 되니 군부독재를 욕해야되는건지 덮고가자는건지. 정치인들 참 진절머리나네요

bigbigpark님의 댓글

bigbigpark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우리나라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에 관한 기록은 거의 좌익 빨갱이들이 날조시켜 쓴 책들 밖에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나요? 제대로 된 책을 어느 가정주부가 쓰고 있다니 기대해 보기로 하고 인터넷 산책하다 이승만과 625에 관한 좋은 내용을 발견해 링크 남기니 참조하기 바라며... 이승만과 625  https://blog.naver.com/gabsoon21/222958078091

친절한시선님의 댓글

친절한시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몇 줄 읽지도 않았는데 대한민국 건국이 1945년 8월 15일 이라 그러니 읽을 맛이 안나는군요. 아쉽네요.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을 이렇게 건성으로 취급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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