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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영국 유학생의 죽음…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광장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3,886회 작성일 04-08-17 01:1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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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딴지일보에서 퍼온 글입니다.
4년 전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아직도 영국의 한 병원 냉동창고에 시체로 누워있는
이경운군(당시 17세)의 사연은 다시 여론에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번 만큼은 그의 죽음의 진상이 밝혀지기를 바라면서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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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프리카 연안에서 백 킬로 남짓 떨어진, 대서양 상의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에 위치한 라스팔마스.

19 세기 대서양 항로의 거점으로 번영하기도 했던 이곳은 공업과 농업, 휴양업 등이 발달한 인구 40 만이 채 안 되는 그리 크지 않은 도시다. 그러나 라스팔마스 국제 영화제 등 이런 저런 이유로 다들 한두 번은 이름을 들어봤을 이 지역에 활발한 한인들의 커뮤니티가 있다는 사실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상당수가 수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이곳 사람들은 타 지역에 비해 결속력이 높고 상부상조함으로써 모범적인 한인 사회를 만들고 있으며 고국에 대한 애정 역시 남다르다고 알려져 있다. 이경운 군은 바로 이곳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러나 경운군은 한국계 스페인 인이 아닌 합법적인 한국인이었다. 타국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고집스레 스페인 국적을 취득하지 않고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경운군의 아버지 이영호씨와 어머니 정승미씨, 동생 이경진군 등 가족 전체가 마찬가지이며, 정승미씨는 라스팔마스 한국 학교의 교감으로 일하고 있다. 한국말은 물론 한국 문화, 한국인으로서의 긍지 또한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은 그들의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

... 이런 분위기 속에서 스페인의 여유와 한국인의 심성을 동시에 가진 건강하고 밝은 청년으로 자란 경운군이 학업을 위해 영국에 도착한 것은 2000 년 9 월이었다.
 

X X X


영국의 유서깊은 고장 켄터베리에서 대학생으로서의 꿈많은 생활을 시작한 지 채 열흘이 안 된 어느 날, 경운 군은 켄터베리 세인트 조지 거리의 한 로타리를 걷고 있었다.

그리고 3 일 후, 라스팔마스의 가족들은 경운군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연락을 받는다. 급히 영국으로 달려온 이들을 기다리던 것은 경운군의 싸늘한 시신. 불과 십여일 전에 웃는 얼굴로 가족 곁을 떠난 그의 이런 모습을 보는 것만도 부모와 가족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 벌어진 일련의 상황들은 슬픔과 안타까움을 넘어 의심과 분노로 가족들을 내몰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 교통사고던 뭐던 사랑하는 가족이 죽었다면 그 경과를 사실대로, 상세히 알고 싶은 것이 인간의 당연한 마음이다. 그것은 어디서, 왜, 어떻게 등 기본적인 정황은 물론, 즉사였는지 병원에서 죽었는지, 의학적인 사인은 무엇인지, 경찰이나 응급구조대의 대응은 충분했는지, 가해자는 누구인지, 상황에 대한 법적인 조치는 이루어지고 있는지 등등 그 요소들은 매우 다양하다. 이때 이런 부분들이 불분명하거나 충분히 설명되지 않거나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거나 심지어 거짓이 섞여 있다면, 거기에 마냥 고개를 끄덕이고 가족의 죽음을 그저 피할 수 없었던 사고로서 받아들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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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경찰에 따르면 경운군은 '무단 횡단을 위해' 이 길에 들어서다 사고를 당했다. 그러나 이 도로는 중앙에 1 미터 이상되는 철제 펜스가 설치되어 있어 사실상 아무도 넘어가지 않는 곳이다. 길 너머에 있는 소년들을 기준으로 그 높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경운 군의 죽음은 바로 이러한 입장에 놓여 있다. 스페인에서 영국까지 한달음에 달려간 가족들에게 제시된 것은 불합리하고도 모순적인 자료들뿐이었고, 약소국 대한민국의 국적으로 스페인에서 사는 이 동양인 가족을 대하는 영국 경찰의 행태는 경운군의 넋은 물론 가족의 생활마저 산산조각 내버리는 불성실함과 의심스러움으로 점철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발벗고 나서 도움을 줘야 마땅했을 대한민국 대사관의 무성의한 대응과 일부 공관원의 어이없는 오만함은 이십년 넘게 국적을 유지한 채 한인의 긍지를 지키고자 노력했던 이들을 다시 한 번 짓밟아 버리고 말았다. (최근 김선일씨 사건 등으로 불거지고 있는 재외 한국 공관의 보신주의와 무능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며, 경운군 사건 속에서도 그런 상황은 자주 반복된다.)

그렇다면, 영국 경찰이 단순 교통사고라고 이야기하는 이 사건에 아버지 이영호씨는 대체 왜 이렇게 오랫동안 집착하고 있는 것일까. 4 년이라는 세월 동안 생업도 그만두고, 포기할 수 없도록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죽음의 의혹은 대체 무엇일까.

이제부터 차근차근 알아나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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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경찰에 따르면 경운군은 2000 년 9 월 29 일 오후 3 시 54 분 경, 켄터베리 세인트 조지의 로터리 주변을 걷다가 무단 횡단을 위해 인도를 이탈, 차도에 들어서게 되고 이때 20 마일(약 30 킬로미터) 정도의 속도로 달리던 버스에 뒤쪽에서 치여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고 한다. 이렇게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된 경운군 사건은 그러나 유가족이 도착한 첫날부터 이해할 수 없는 혼란의 연속으로 점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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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군이 건너려 했다는 길의 중앙 펜스는 이와 같이 옷에 묻는 페인트로 칠해져 있다. 따라서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이를 무시한 채 길을 건너는 사람은 드물게 마련이다.

지난 4 년간 너무나 많은 의혹이 있기 때문에 이를 일일히 열거하는 것만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확실한 것은, 경운군의 죽음이 '타살에 의한 은폐 조작' 이라는 의심에까지 이르게 된 각종 정황들은 헤아릴 수도 없이 많으며, 이는 단지 아들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는 아버지의 감정적 집착이라고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점이다. 지금부터 그 면면의 일부를 이영호씨의 주장을 바탕으로 살펴보겠다.


- 사건 전달 경로

스페인에 거주하고 있는 유가족에게 경운군의 사망 소식이 전달된 것은 사망 3 일 후, 스페인 경찰을 통해서였다(켄터베리 경찰서 전화 번호를 구두로 통보받음). 외국인의 신상 변동이 있을 때는 즉각적으로 해당 현지 주재 공관을 통해 소식을 전달해야 하는 비엔나 국제 협약 (제 37조 : 사망, 후견, 재산 관리, 난파 및 항공 사고의 경우에 있어서의 통보)이 있음에도 경운군 사건의 경우는 그 절차가 지켜지지 않았다. 유가족이 켄터베리에 도착한 후에 현지 경찰서는 인터폴을 통해 알렸다고 했지만 그것 역시 사실이 아니었다. 애초 통보된 전화번호는 이후 경찰의 공식 연락처조차 아닌 '검시관' 의 전화번호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결국 경운군의 죽음은 공관 차원의 공식 경로는 커녕 켄터베리 경찰, 그것도 일개 검시관 차원의 사적 경로로 이유없이 3 일이나 지난 후에 가족들에게 전달된 것이다. 국제 관례로 볼 때 이 부분은 단순한 절차상의 하자라고 보기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


- 장소와 사망 일자의 석연찮음

10 월 2 일 유가족이 도착하여 일단 시신의 얼굴을 확인한 후, 영국 경찰은 익일인 3 일 사고 현장 인도, 이어 4 일 상세한 정황 설명 등의 스케줄을 공식적으로 약속을 하였지만 지켜지지 않는다. 기다림 끝에 현장을 찾아간 것은 사고 후 거의 한 달이 지난 10 월 26 일. 이런 단순 방문 일정이 왜 이처럼 늦어져야만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설명도 없었다.

게다가 막상 찾아간 장소에는 어떤 교통사고의 흔적도 없었으며 현장에서 사망한 경우 하게 되어 있는 페인트 표시, 표지판 등 아무 것도 되어 있지 않았다. 이에 대한 이영호씨의 추궁에 담당 경찰은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고 주변 사람들에 대한 탐문 끝에 이영호씨 자신이 직접 찾아낸 사고 위치는 이보다 약 40 미터 아래 지점인 로터리 바로 옆이었다. (결국 영국 경찰도 인정) 불과 한 달 전에 발생한 사고-교통 사고는 정해진 그림 형식에 의해 사건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기록, 경찰서에 보관되게 되어 있음-에 대해 이런 오류가 왜 발생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일체 설명도 없이 유가족은 현장에서 구두로 비공식적인 사과를 들었을 뿐이다. 한편 수개월 후 사인규명회에 교통감식반 자격으로 등장한 증인은 사건이 잘 기억이 나지 않아 도면 등 내역을 재구성할 수가 없다는 극히 비상식적인 증언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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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도로교통법에 의하면 교통사고가 발생한 경우 해당 위치에 이와 같은 노란색 표지판을 설치하게 되어 있으나 경운군 사건에서는 무슨 이유에선지 일체 지켜지지 않았다.

또, 경찰은 사망일자를 29 일로 표기하고 있지만 장의사가 발행한 서류에는 9 월 30 일로 되어 있으며, 특히 후자의 서류는 내용이 두 개의 볼펜으로 다른 시기에 기재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래 사진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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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것은 검시관의 공문, 아래는 장의사의 증명서다.일단 두 문서에 기재된 사망 일자가 일치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흔히 일어나지 않는 매우 심각한 오류다.
한편 윗 서류의 '정밀한 사망 원인' 란에는 '복합 부상' 이라는 전혀 정밀하지 않은 사인이 기재되어 있으며, 아래 서류의 줄친 부분들은 나머지 부분과 다른, 연한 파란색 볼펜으로 기재되어 있기도 하다.



- 시신 처리 및 부검 문제

10 월 6 일 유가족이 경운군의 시신을 보관 유지시키기 위하여 특수 위생처리를 병원 및 장의사와 상의하던 중 병원 당국은 유가족의 동의 없이 임의로 시신을 장의사(C.W, Lyons Funeral Service) 영안실로 옮겨 놓았으며, 유가족이 우선적으로 경찰서 및 병원 측에 사건 관련 서류일체-사망확인서, 앰뷸런스, 기록서, 병원 기록서, 경찰 조서 등?를 요구하자 20 여일 지난 시점에 재차 유가족의 사전 동의나 통보 없이 병원 영안실로 도로 옮겨 놓는다. 사인을 숨기기 위해 시신을 이리저리 빼돌리려 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가능한 대목이다.

또한 이영호씨의 기억에 따르면, 가족이 현지에 도착한 10 월 2 일 오후 2 시 30 분 경 검시 담당자 David Care 에게서 부검을 실시하지 않았다는 말을 직접 들었으나, 약 4 개월 후인 1 월 26 일 벌어진 사인 규명회에서 부검의사 Abdukadir 는 유가족 도착 이전인 10 월 2 일 오전 11 시부터 1 시간 30 분만에 부검을 마쳤다고 증언했다. 이처럼 납득이 안가는 사항을 유가족 측 변호사가 항의하자 판사는 추후 설명 및 질문을 위해 해당 부검의를 법정에서 대기하도록 지시하였으나 그는 30 여분 만에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한편 이 부검의가 발행한 부검 관련 서류 역시 일련번호가 없는 비정상적인 형식이며 서명도 다를 뿐 아니라, 경운군의 엑스레이 촬영 원본을 요구한 후 1개월 후에 돌아온 통보에 따르면 당시 촬영을 했지만 지금은 원본이 없다는 이해할 수 없는 회신을 해 온다. 이어 이들은 경운군의 시신을 2001 년 3 월 2 일까지 강제 임의 매장하겠다는 비상식적인 공문을 보내오고, 그 의도를 의심한 유가족은 2 차 부검을 강력하게 요구하였다. 그러나 유가족의 비용 선지급하에 2001 년 4 월 10 일 실시하게 된 부검은 경찰이 입구를 경비하는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유가족 대표 이영호씨의 부검 입회를 극력 저지함으로써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일반적으로 부검에는 가족 중 1 인의 참관을 허용해야 하는 것이 국제 관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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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있는 듯한 경운군의 모습. 얼굴 확인 때 이영호씨에 의해 촬영되었다.
부검에는 정해진 순서와 원칙이 있으며 여기에는 Y 자 형으로 몸통 전면을 절개하여 내부 장기와 뼈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과 귀 뒤로 두개골을 절개하여 뇌의 상처를 확인하는 것이 포함된다. 이 사진은 경찰이 주장하는 '1차 부검' 이후에 촬영된 것이지만 두개골 절개의 아무런 흔적도 없다.


한편 돌아가는 상황을 딱하게 생각한 영국 천주교 신부가 프란시스코 성인의 각인이 새겨진 묵주를 경운군 손에 쥐어 주겠다고 장의사실로 찾아갔으나 이런 종교적인 차원의 망자에 대한 예식조차도 일체 허가되지 않았다.

결국 처음 얼굴 확인 후 장장 10 개월 동안이나 경찰과 병원 측은 유가족이 시신 전체를 볼 수 없도록 막았으며, 그 무렵까지 버티다가 스페인으로 돌아간 어머니와 동생은 아직도 시신을 보지 못한 상태에 놓여 있다. 현재도 이영호씨는 아들의 시신을 자유롭게 확인할 수 없는 처지이다.

... 이처럼 경찰과 병원 측은 유가족의 권리와 일반 상식에도 불구하고 시신의 외부 노출을 철저하게 꺼리고 있다. 사인이 조작과 은폐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도리어 어려운 상황이 아닌가.


- 기록의 오류와 이유없는 일정 연기

앞서 일부 나왔지만 경운군 사건과 관련된 기록들의 오류는 끝이 없다. 사망 장소와 일자는 물론, 유가족이 보유하고 있는 유품(사건 발생시 경운군이 착용하고 있던 상, 하의, 혁대, 양말, 내의, 신발 등)과 부검서, 앰뷸런스, 병원 기록서 등을 대조한 결과 각 내용이 서로 일치되지 않으며 심지어 부검 기록서 상 기재된 상처 부위 및 사망 시각도 틀리게 되어 있다.

또한 가해 차량 역시 모델, 엔진 넘버, 배기량 등의 기재가 생략되거나 형식에 맞지 않게 되어 있는 등 상당히 미심쩍은 면이 없잖으며, 심지어 사고 버스의 운전사를 버스 회사 사장이 전혀 모르고 있었다. 또한 영국 경찰에 따르면 이 차량은 경운군을 친 후 29 미터나 더 진행한 후에 멈췄다고 하는데, 이는 시속 30 킬로 이하의 저속으로 달리던 버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먼 거리다. 일반적으로 이런 상태에서 사고후 차량의 진행 거리는 5 ~ 6 미터 수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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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호씨가 영국 DVLA (Driver & Vehicle Licensing Agency)에서 발급받은 가해 차량에 대한 서류. 일견 보기에도 별로 공식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 문서에는 model 넘버가 '000' 으로 표시되어 있고 엔진 넘버가 누락되었으며, Vin (차체 넘버)의 형식이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제작 일자(82 년 12 월 31 일)가 등록 일자(82 년 8 월 1 일)보다도 늦은 것으로 되어 있는 등 헛점 투성이다.

이유없는 일정 연기와 늑장 처리가 이해하기 힘들다. 앞서 말했듯 사망 사실 연락부터 3 일이나 걸렸음은 물론, 10 월 3 일로 예정했던 가족의 사고 현장 인도는 약 3 주 후인 26 일에나 이루어졌으며, 11 월 23 일로 예정되었던 사인 규명회는 사전 통보나 사후 통보도 없이 무산되고 사건 발생 후 무려 3 개월 반이 지난 2001 년 1 월 16 일에 가서야 실현된다. 2 차 부검은-그나마 무산된- 4 월이 되서야 허락되고 가족에 의한 시신 전체의 확인은 10 개월을 끌었으며 사고 며칠 후에 촬영했다는 시신 사진은 3 년이 넘어서야 공개되었다. 그 밖에 질문서나 요청에 대한 응답은 기본적으로 한두 달 이상을 끌고 아예 묵묵부답인 경우도 허다하다. 아무리 느린 영국 사회라지만 사람이 죽은 사건에 대해 이런 태도는 극히 비정상적인 것이다.

또한 이 사건이 이경호씨의 노력과 주변의 도움으로 홈페이지가 개설되는 등 세계 곳곳에 알려져 경운군의 죽음을 애도하는 팩스와 전보가 수십여 통 답지하였으나 영국 경찰서와 장의사실은 이를 가로채고 유가족들에게 전달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 사진 조작

경운군이 사망한 지 얼마되지 않아 촬영했다고 하는 시신 부검 사진은-3 년간의 요구 끝에 작년 겨울에야 인도받음- 최근 전문가의 감정 결과 6 건 모두가 조작으로 밝혀졌다.

경찰의 수사보고서에는 가슴과 엉덩이 부분을 버스가 역과-신체 위로 완전히 지나감-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사진상에서는 그런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시신 사진은 고인에 비해 신체 크기가 현격히 차이가 나고, 각각의 사진마다 성기 등 신체 일부분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있는 것은 누구나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한 수준이다. 또한 손과 허벅지 부위에 붕대 같은 흰색 물질이 감겨져 있는데 이것은 그 존재 자체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사고 후 30 초만에 즉사했다는 경운군의 시신에 붕대가 감겨 있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한편 지난 2004 년 5 월 7 일 있었던 공개 모임에 함께 참석한, 50 년 간 미국 디즈니사의 에니메이터로 일한 이영호씨의 양부- 경운군 사건을 계기로 관계를 맺게 된- 영국인 Robert West 씨는 이 자리에서 '여기 사진들은 대부분 온전한 것이 아니다' 라며 '진실은 강력한 것이고 반드시 밝혀질 것' 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이영호씨는 따로 사진 판독 전문가에게 감정을 받은 바, 공식적으로 조작이라는 감정결과를 얻어내기도 했다고 한다. 이 감정서는 이후 은폐 조작에 대한 물적 증거로 요긴하게 사용될 전망이다. (참고로 국장 또한 직접 이 사진들을 확인할 기회를 가졌고, 전문가가 아닌 입장에서도 조작 여부를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 현 단계에서는 공개할 수 없음을 양지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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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조작 설명 모임에서 증언하고 있는 로버트 웨스트 씨. 피부색도 언어도 다른 한 젊은이의 죽음에 대해 양할아버지를 자처하며 돕고 계시다. 우측 서 있는 분이 이영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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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시 상황을 정리해 보자.

경운군은 2000 년 9 월 말경 이유를 알 수 없는 사건에 의해 사망했다. 그리고 영국 경찰은 무슨 이유에선지 사망 통보를 3 일 이상 늦추고, 이후 시신의 전반적인 상태 확인을 10 개월간 거부했다. 사고 지점을 거짓으로 알려줬으며 사망 일자와 상처 부위 등은 각 서류마다 모두 다르다. 1 차 부검 여부도 불투명하고 부검서도 앞뒤가 맞지 않고 유가족이 돈을 댄 2 차 부검은 유가족 참관 문제로 인해 무기 연기되었다. 부검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채 강제 매장을 시도했을 뿐 아니라 시신을 이리저리 빼돌리기도 했다. 사후 촬영되었다는 사진도 조작임이 판명되었다.

한편 오후 3 시 반 경에 일어났다는 교통사고의 목격자라고는 10 대 초반의 어린이들뿐이며, 그것도 직접 본 것이 아니라 '차체의 요동을 느꼈다' 는 식의 매우 간접적인 증언이다. 사고 운전사의 신분도 불명확하고 차적 조회 결과 번호판 형식이나 엔진 번호 등 주요 사항들이 형식에 어긋나거나 누락되어 있다.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 경운군의 시신은 켄터베리 병원 영안실에 4 년째 냉동되어 있는 것이다. 도대체 경운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위의 상황들로 봤을 때 이 사건이 영국 경찰이 말하는 단순 교통사고가 아니라는 점은 거의 확실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 증거들로 경운군이 죽음에 이르게 된 상황의 경로가 무엇인지, 의학적 사망의 원인은 무엇인지 등을 밝혀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현재로서는 오리무중인 셈이다.

다만 위의 사항들을 근거로 나름의 추론을 전개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일단 영국 경찰이 이렇게까지 나서서 은폐해야 되는 사건이라면 그것은 결코 단순한 '사고' 일 수는 없다는 전제가 설정될 수 있다. 차로 인한 것이던 다른 무엇으로 인한 것이던 결국 이 사건은 우발적으로 일어난 불행한 사고가 아닌 '살인' 에 가까운 그 무엇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그리고 마땅히 수사를 통해 범인을 잡아야 할 살인 사건을 경찰이 오히려 은폐하려 든다면 거기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살인의 유형은 어떤 것일까. 물론 수많은 여러 가지 설정이 가능하겠지만 이 사건의 경우라면 다음의 경우들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번째는 유력자나 그 측근에 의한 살인이다. 켄터베리는 그리 큰 대도시가 아니며, 한편 오랜 전통을 가진 곳이다. 따라서 이곳의 커뮤니티는 각종 인간관계로 그물망처럼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지역의 유력한 가문이나 실력자가 연루된 경우, 특히 피해자가 영국 국적은 커녕 스페인 국적도 없는 한국 유학생이라면 이들이 힘을 합쳐 사고로 위장하기 위해 나설 가능성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경운군이 단순 유학생으로서 사건 당시 영국에 도착한 지 열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계획된 살인의 표적으로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두번째는 인종 범죄다. 영국과 같은 다민족 국가에서-흔히 영국을 백인들만의 사회라고 생각하는 경향들이 있지만 지금의 영국은 흑인, 인도인, 파키스탄인, 스리랑카인, 중국인, 동남아인, 자마이카인 등 미국에 버금가는 많은 인종들이 모여 사는 나라임- 인종 범죄는 때에 따라 매우 예민한 이슈가 되며, 따라서 해당 지역의 정치가나 관리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도 단순히 강도나 우발적인 싸움의 결과 등으로 포커스를 돌릴 수도 있기 때문에 경운군 사건처럼 무리수를 두는 수준의 은폐는 쉽게 일어나지는 않는다.

... 그래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이 두 가지가 섞인 경우다.

한 번 상상해 보자. 세인트 조지 로타리 밑에는 상당히 길고 음침한 지하도가 있다. 영국의 지하도는 낮에도 상당히 음습하며 일반인들이나 여성이 다니기에 부담을 느낄 만한 곳들이 많다. 이곳을 지나던 경운군은 구석에 모여 있던 일단의 패거리들에게 인종적인 이유로 공격을 받는다(실제로 이런 공격의 예는 비교적 흔하며, 근년에도 한인은 물론 다양한 외국인들이 피해를 입은 바 있다). 실랑이 끝에 경운군은 그만 그들이 휘두른 둔기, 집단 폭행, 혹은 벽이나 바닥에 머리를 부딪혀 사망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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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현장을 확인 중인 이영호씨와 영국 경찰들. 이 길 왼쪽 끝부터 켄터베리에서 유일한 지하보도가 시작된다. 사건은 그 속에서 일어난 것일까.

그러나 범인들 중에는 우연히 지역 유력자의 망나니 아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당황한 이넘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고, 그때부터는 사건은 윗선의 각본에 의해 은폐 조작이라는 방향으로 움직여간다. 예를 들어 시신을 마치 술취한 친구라도 업고 가듯이 근처 어디로 대충 옮겼다가 인적이 뜸한 새벽 시간에 다시 돌아와 등록서류도 불분명한 정체 불명의 차로 깔아버린 것이라면 어떨까. 그리고 유력자의 자식이 관련된 만큼 경찰이나 관리들 중 일부가 여기에 조직적으로 개입된 것이라면.

어쩌면, 여기까지 해결하고 입을 맞추는 등 일을 대충 정리한 데 걸린 기간이 바로 경운군이 죽은 후 스페인의 가족에까지 연락된 3 일 동안이 아니었을까. (사망 당시 경운군은 여러 가지 소지품이 든 가방을 메고 있었고, 지역의 대학에 정식 등록이 된 상태였다. 경찰이 정상적으로 움직였다면 사고 몇 시간 이내에 경운군의 신분을 파악함은 물론 스페인의 가족에 충분히 연락이 가능했을 것이다. 또, 같은 서유럽 내인 영국에서 스페인에 연락을 취하는 것은 미국에서 한국으로 연락하는 것과는 다르다.)

경운군이 대한민국 국적이라는 데서 일단 얕잡아 본 이들은-아쉽지만 아직 영국에서 한국의 위상은 그리 높지 않고 아직도 동남아나 중남미 일원과 같은 후진국으로 보는 시각이 팽배해 있다는 점을 상기하시라- 대략적인 얼버무림 만으로 충분히 일반 교통사고로 넘어갈 수 있을 것으로 믿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경운군 아버지 이영호씨가 과거 한국에 있을 때 국비 프랑스 유학생의 물망에 올랐을 정도의 인텔리일 뿐 아니라, 코리아 헤럴드의 기자까지 지냈던 사람이라는 점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이영호씨가 특유의 기자적 감각을 발휘하여 사고 위치를 시작으로 다양한 문제점들을 지적하며 물고 늘어지자 이들은 당황하고, 결국 기왕에 시작된 거짓말을 덮기 위해 경찰과 비호 세력의 교사 하에 끝없는 거짓말과 억지를 이어나가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 위 시나리오는 물론 상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런 식의 사건들은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 실제로 일어나 왔으며, 그들 중 일부는 오랜 투쟁 끝에 진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자마이카 계 흑인인 스티븐 로렌스를 무참히 살해한 다섯명의 백인 청년이 무죄석방을 받게 된 어이없는 사건이 있었고, 이를 장장 9 년 동안이나 물고 늘어진 피해자 어머니와 인권 변호사의 노력으로 결국 진실이 드러남과 동시에 영국 국회에서의 내무부 장관 공식 사과는 물론 영국 경찰 수뇌부 서열 1 위부터 11 위까지 모두의 옷을 벗긴 엄청난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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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스티븐 로렌스. 어머니의 끈질긴 노력에 의해 이제 지하에서나마 편히 쉴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한편 근년에는 런던 남서부의 퍼트니 다리에서 길을 걷던 한국인 신학생이 영국인들에 의해 쇠파이프로 구타 당한 사건이 있었다. 이 경우 사건을 직접 목격한 증인이 있었음에도 영국 경찰은 한국인 신학생이 시비를 걸어 싸움이 붙었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기도 했는데, 사실 이런 예는 끝이 없다. 그리고 경운군 사건이 이런 경우 중 하나가 아닐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이해할 수 없는 각종 미스테리들을 고려한다면 더욱 그렇다.

만약 일이 이런 식의 철저한 은폐 조작으로 진행된 것이라면, 이는 더 이상 경운군 개인의 죽음과 그 가족의 고통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들 중 어느 누구라도 같은 상황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약소국 출신으로서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 4 년이 넘도록 진실에의 접근은 커녕 하소연 할 곳조차 변변하지 못한 상태로, 영국 경찰은 물론 자국 정부와 국민의 무관심속에서 방치된 그 한의 깊이를 누가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설사 당시 상황이 위의 시나리오처럼 진행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부당하게 가려지고 있는 죽음의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 한 의혹과 한은 풀릴 수가 없는 것이다. 혹여 불필요한 의혹이 있다면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가족이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 제시되어야 하고 설사 의도한 것이 아니라 한들 동양인 청년의 죽음을 가벼이 보고 직무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은 영국 경찰 등 관련자들은 거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이 최소한의 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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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을 쓰면서 어려운 부분 중 하나는 독자 여러분께 공개할 수 있는 내용의 수위를 어디까지 조절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사실 위에서 다룬 이야기의 대부분, 특히 사건과 직접 관계된 부분들은 아버지 이영호씨가 직접 만든 홈페이지(http://www.leekyungwoon.com)에 이미 올라와 있는 것들이다. 다만 이 홈페이지의 자료들은 상황이 진행되는 그때그때 산발적으로 기록된 것으로 그 양과 형식으로 인해 전체상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에 본란을 통해 항목별로 정리하여 드린 것이다.

그러나 국장은 이영호씨와 개인적인 만남을 통해 인터넷상에 공개되기 힘들었던 많은 다른 자료를 접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이 글과 홈페이지에 수록된 내용들은 객관적으로 밝힐 수 있는 주요 사항들만을 간략하게 정리한 것으로 사실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특히 영국 체류 중 유가족이 겪어온, 영국 경찰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요원들에 의해 빚어진 조직적인 방해 공작과 기만술은 영화를 방불케 하는 수준이었다.

다만 이 내용들은 현재 법적 절차가 준비되고 있는 상황인 데다가-앞서 이야기한 자마이카인 스테판 로렌스 사건을 담당했던 영국 인권 변호사 임란 칸의 도움을 받고 있음- 영국 경찰이 직접 개입되어 있는 은폐 조작의 문제가 관련된 만큼 만큼 아직 일반에 공개하기가 어려운 면이 있다. 오늘 다루어지지 않은 부분들은 이영호씨와의 논의를 통한 수위 조절 속에서 추후 공개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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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로렌스 건으로 CNN 과 인터뷰하는 임란 칸 변호사.
스스로도 소수민족 출신인 그가 경운군 사건에 많은 관심을 갖고 돕고 있는 것은 큰 행운이지만, 이 역시 이영호씨의 끈질긴 노력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 그럼 이제 이 사건의 해결을 돕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이야기해 보자. 물론 이 기사를 통해 많은 독자 여러분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만도 큰 힘이다. 그러나 국장은 이 사건 언저리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것만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하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 물론 국장은 저널리스트이고 어쩌면 단지 이런 사실들을 전함으로써 그 의무를 다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말 필요할 때 행동하지 않는다면 저널리스트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책임을 방기하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뭐 크고 대단한 희생이 필요한 일이 아닐진대, 국장은 개인적으로 이 지면을 통하여 독자 여러분들께 국장과 함께 작은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하고 싶다.

먼저, 경운군 아버지 이영호씨의 처지부터 생각하자. 이 분은 2000 년 10 월 2 일 영국에 입국한 이래 단 한 번도 영국을 떠나지 못한 채 가족과 생이별하고 홀로 사건 해결에 분투하고 있다. 물론 그 4 년 동안 스페인에서의 생업은 완전히 포기한 상태다. 정상적으로 직장을 다니거나 사업을 하는 건전한 생활인들이라면 경제적인 의미에서 이것이 말해주는 바가 무엇인지 대충 상상이 가실 거라고 본다.

그 결과 오십이 넘은 이영호씨는 지난 4 년간 30 번이 넘는 이사를 했고, 그때마다 몇 달 기한으로 온 유학생들의 방 구석 소파에서 새우잠을 자는 삶을 이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하루 두 끼 식사도 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그것도 대부분 컵라면-참고로 한국 것보다 훨씬 맛이 없는 영국산-으로 해결하고 있다.

이것만이 아니다. 극심한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4 년간 머리가 온통 백발로 변해 버렸을 뿐 아니라, 생이빨이 하루 아침에 몇개씩 빠지는 일도 겪었다. 몸무게가 13 킬로나 줄었으며, 한동안은 각종 통증으로 유학생들에게서 진통제를 얻어 하루 수십 알씩 복용해야만 견딜 수 있었다. 전철비가 없어서 아무리 먼 거리도 버스를 타거나 걸어 다닌 지 오래다. 지금 입고 다니는 옷도 전부 얻은 것이며, 국장과 만났을 때도 '기자' 를 만난다는 생각에 주변 사람들의 좀 좋은 양복을 얻어 입고 나왔다면서 겸연쩍어 했다. 그러나 이런 그를 경제적으로 도와주는 손길은 거의 전무한 형편이다(이영호씨의 홈페지에는 이런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나오지 않는데, 본인이 호소하기에는 참으로 어려운 부분일 거라고 본다. 사실 이 이야기도 동석한 다른 분이 전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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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 이후 기념 촬영. 가운데 안경 쓴 이가 이영호씨. 미용 기술이 있는 학생들의 도움으로 간간히 백발을 염색하곤 한다. 왼쪽의 할아버지는 양부 로버트 웨스트 옹.
젊은 학생들을 중심으로 뜻있는 분들이 지속적으로 돕고 있지만 영국 경찰이라는 벽 앞에서 그 힘은 미약하기만 하다.


낯선 외국 땅에서 아들을 잃고 그 진실을 캐기 위해서는 정신력도 중요하지만 끝까지 버틸 수 있는 체력 또한 절실함에도, 위에서 봤듯이 이영호씨는 이를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는 형편이다. 이때 우리가 작은 도움을 모은다면 최소한 식사라도 제대로 챙겨 드실 수는 있는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비록 이영호씨 본인은 국장의 이런 제안에 대해, 만약 성금이 모인다면 본인의 생활보다는 인권 변호사 임란 칸 씨에게 변호사 비용이라도 좀 더 줄 수 있기를 바란다는 뜻을 비추기도 했지만 말이다.

암튼 이런 상황으로 인해 국장의 글을 읽고 계신 독자 여러분들께 부탁드리고 싶다. 아래에 이영호씨의 연락처와 경운군 고모 되시는 분의 은행 계좌가 있다. 액수는 상관 없으니 조금이라도 뜻을 모았으면 좋겠다. 물가가 한국의 두 배에 달하는 영국이지만 여기서도 단돈 천 원으로 컵라면 하나는 살 수 있고, 이런 작은 도움도 이영호씨에게는 큰 위안이다(부족하나마 모범을 보이는 의미에서 국장이 먼저 10 만원을 입금했다).

연락처

한국에서 : 00 44 + 7900512105(핸드폰)
영국에서 : 07900 512 105
이메일 : leeyoungho2@hotmail.com(이영호)
홈페이지 : http://www.leekyungwoon.com

故 이경운 성금 모금계좌

농협: 146-02-259322
실명계좌인: 이영화
계좌인 관계: 이경운 고모

영국 내 성금 계좌
(영국, 미주 등 국외에서 송금 방법 문의하시는 분들을 위함)

-은행명: Lloyds TSB,(Morden Branch)
-은행 주소: 66 London Road, Morden, Surrey, UK SM4 5BB
-Sort Code: 77-30-02( 칠칠-삼공-공이)
-계좌번호: 68646468( 육팔육사육사육팔)
-계좌인: Mr. H.J. LEE

계좌인 관계:
‘젊은교회’ 이훈종 선교사. 현재 이경운 사건에 대해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음. (영국 실정상 직업 없이 주거지를 끊임없이 옮기고 있는 현재 이영호 씨의 처지에서는 은행 계좌 개설이 사실상 불가능함)


또 한 가지가 있다. 경운군 홈페이지(http://www.leekyungwoon.com)에 보면 서명란이 마련되어 있다. 이것은 그저 서명을 위한 서명란이 아니다. 영국법에 따르면 2 만명 이상이 연대서명한 경우에는 법령을 개정하는 것이 가능하다는데, 반드시 영국민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이영호씨에 따르면 이는 경운군 죽음을 둘러싼 각종 정보 열람 및 기타 필요한 부분을 위해 꼭 필요한 작업 중 하나다. 다들 여기에 들러 몇초만 수고하시면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서명시에는 실명과 주소를 반드시 기입해야 한다는 점, 참고하시라.

아 그리고, 이 기사 아래의 리플란이나 이영호씨에게의 개인 메일, 경운군 홈페이지 게시판 등으로 응원해 주시는 건 당근 잊으시면 안된다. 힘들 때 따뜻한 말 한 마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들 살면서 이래저래 경험해 보지 않으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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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유럽총국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임은 물론, 필요시마다 기사화함으로써 독자 여러분들과 진행 상황을 같이 나누며 도움이 될 수 있는 각종 방안을 계속 강구해 나갈 것이다. 객관성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되, 그렇다고 죽은 사람과 가족들의 고통을 냉철함을 빙자한 차가운 시선으로 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편 이 사건에 대해 거의 전적인 침묵으로 일관한 정부는 이제부터라도 관심을 갖고 상황이 더 어려워지기 전에 움직여야 할 것이다. 영국주재 대한민국 대사관은 물론,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야 마땅하다. 사실 이 사건에 대해 일부 현지 공관원이 보여준 행태는 국장 나름의 판단에 의해 본 기사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았다. 그러나 국장은 이와 관련된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으며, 언제라도 필요하다면 지난 4 년간의 과정 속에서 재직했던 외교관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구체적이고도 직설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는 점 확실히 밝혀 둔다. 대사관은 정부의 체면이나 외교관의 경력 관리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만약 잊고 있다면 가르쳐 줘야 할 테니 말이다.

... 얼마전 김선일씨 사건을 통해, 우리는 자국민이 외국에서 비참하게 죽어가는데도 이를 지켜내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초라한 모습을 보았다. 경운군 사건도 마찬가지다. 우리 자신이나 가족, 친구일지도 모를 한 젊은이의 의문투성이의 죽음에 대해 수수방관한 채 4 년을 방치하고 있는 나라에 우리는 세금을 내고 있다.

사건 초기, 대한민국 대사관의 태도에 실망한 이영호씨가 혹시나 하여 스페인 대사관을 찾아갔을 때, 그들은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스페인 국적을 갖고 있다면 발벗고 나서겠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스페인 대사관이 자국민 보호를 위해 미국 정부를 상대로 벌인 노력의 예를 확인하시려면 여기를 누르시기 바란다). 이때 이영호씨가 '한인의 긍지' 를 유지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국적을 유지한 것을 얼마나 후회했을 것인가.

한 마디만 더 하고 끝내자. 경운군과 마찬가지로 스페인에서 태어났으나 한국 국적을 유지한 채 한국말을 익히고 한국 문화를 향유하며 자란 동생 경진군. 그는 사건 초기 학교도 중단한 채 영국에서 8 개월을 체류하며 소위 대한민국의 외교관이라는 사람이 형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 외국에서 고난을 당한 자국민을 대하는 모습이 어떤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이후 이 젊은 친구는 이제 더 이상 한국인으로 살지 않겠다고 한다. 여기에 대해 우리는 무슨 말을 할 것인가. 한국인의 긍지를 잃었기에 그를 욕할 것인가?

우리들의 순수한 관심과 도움, 그것 말고 과연 무엇이 이 젋은이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그럼 다음 시간에 뵙자.

추천10

댓글목록

광야에서님의 댓글

광야에서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은글퍼오셨군요.우리나라 외교부는 자국국민보호가 업무의최우선순위라는사실도 잊고 대체뭐하고 있는지 그저한심할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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