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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Demokratie04님의 역사관에 대한 몇가지 문제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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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eduld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5건 조회 2,515회 작성일 04-07-29 05:38

본문

저는 김일성의 세습독재를 미워하고 김일성과 김정일에 반대하는 사람으로서 자유민주주의사상을 갖고 있는 자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그러나 FDemokratie04님의 역사왜곡이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몇가지 수정을 가하고자 합니다.


1. 우선 FDemokratie04님께서는 김일성의 항일유격대가 '팔로군소속의 조선의용군'이라고 하셨는데, 김일성의 항일군사활동은 이미 1932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때는 '팔로군'이란 말이 전혀 없었을 때였습니다. '팔로군'은 나중에 1936년 서안사건으로 국공합작이 이루어져, 모택동의 공산군이 장개석의 국민군에 편입되었을 때 그 편입된 공산군을 가리키는 이름이므로, '팔로군'이라는 이름을 가지고서 김일성의 항일군사활동을 부정하는 님의 주장은 잘못된 것입니다. 물론 김일성이 중국공산당의 하부조직에서 항일군사활동을 펼친 것은 사실이지만, 1935년의 코민테른 제7차 대회를 계기로 소련과 중국의 공산당이 조선인유격대의 주력부대인 김일성의 동만유격부대를 조선혁명의 추진주체로 인정한 이상, 이때부터 김일성은 사실상 김구가 장개석으로부터 받았던 대접보다 훨씬 나은 대접, 이승만이 미국 백악관으로부터 인정받았던 것보다 훨씬 더 확고한 국제법적 지위를 스탈린과 모택동으로부터 인정받고서 항일무장투쟁을 벌인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물론 김일성이 1937년 6월 국내진공전투의 일환으로 감행했던 '보천보전투'는 우리나라 교과서에 전혀 실리지 않아서 그렇지, 일제시대 우리나라 독립군이 일본군에 대해 거두었던 승리 중에 가장 큰 승리였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가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해야 하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2. FDemokratie04님께서는 국제사회가 팔로군에 속한 김일성의 군대를 독립군으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것은 님께서 거꾸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소련과 중국에서 김일성의 항일유격부대를 조선독립군으로서 당연히 인정해줬던 반면에, 미국에서는 김구, 지청천의 광복군을 조선독립군으로 인정해주지 않았고, 김구의 임시정부 역시 대한민국 임시정부로서 인정해주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김일성의 항일유격대에 비해 김구의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산발적인 테러행위 이외에 대일항전에서 뚜렷한 전공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맥아더와 중국의 장개석은 김일성의 항일유격대와 달리 김구, 지청천의 광복군을 제대로 된 군대로서 인정해주지 않았고, 이런 국제사회의 왕따움직임 속에서 김구 선생과 우리 광복군 요원들은 무장이 완전해제된 채 단순히 개인자격으로 뿔뿔이 흩어져 고국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일성이 1945년 9월 19일 자기 부대원 거의 전원을 이끌고서 소련군과 함께 원산항에 화려하게 귀국해 원산시내에서 개선시가행진을 벌인 것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모습이었습니다.


3. 해방후 친일파들이 우파 민족주의진영에 일제히 가담한 것은 일면적으로나마 매우 명백하고도 중요한 사실이긴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친일파 송진우는 우파 민족주의자 김구와 손잡기 위해 임시정부귀국준비위를 결성했고, 친일지주들이 중심이 된 한민당의 의원들도 김구를 자기들의 우두머리로 맞아들이려 애썼습니다. 실제로 김구 선생께서는 귀국후에 친일파들이 마련해준 고급주택 '경교장'에서 경제적으로 윤택한 생활을 영위하셨고, 친일문학가였던 이광수를 시켜서 자신의 일대기인 '백범일지'를 대필하게 하시기도 했습니다. 물론 김구 선생께서 처음에 한민당세력을 친일파라 하며 약간 거리를 두려 하셨던 것도 사실이고 한국독립당이라는 독자적인 당을 세워 한민당과 대립하려 하셨던 것도 사실이지만, 리더쉽의 한계로 신익희를 비롯한 많은 임정출신 부하들이 한민당으로 빠져나가게 되자, 나중에 김구 선생께서는 사실상 친일파 한민당과 반탁문제, 이승만견제문제 등에서 보조를 같이하시게 됩니다. 실제로 김구 선생께서는 귀국 이후에 친일파 지주세력들을 처단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노력하신 일이 별로 없었는데, 그 이유는 초기에 김구 선생께서 철저한 반공주의자로서 여운형 등과 격렬히 대립하셨고, 그런 점에서 여운형, 박헌영 등의 좌파들보다는 우파인 한민당과 정치적으로 이해관계를 더 같이할 수밖에 없었던 데에 있었습니다. 그럼 점에서 친일파들이 해방후에 민족진영에 기회주의적 자세로 가담했다는 FDemokratie04님의 말씀은 별로 정확하지가 않습니다. 사실상 민족진영과 친일파가 서로서로를 필요로 했으며, 임정출신이 같은 우파진영인 친일파진영에 가담한 사례도 많았다고 해야 합니다.

실제로 미군정은 처음에 이승만이 너무 고집세고 극우반공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승만을 배제한 채 우파 김구와 중도좌파 김규식, 여운형, 중도우파 송진우, 김성수 등이 모두 손을 잡고서 남한정국을 장악하고 또 안정시켜주기를 원했습니다. 왜냐하면 김구는 중국대륙의 대표자 장개석의 후원을 받는 인물이라 무시할 수 없었고, 김규식은 영어와 중국어 모두에 능통한 데다 온건하고 현실적인 인물이었으며 (미군정의 하지 장군이 극우파 이승만보다 중도좌파 김규식을 남한대통령으로 밀고 싶어했다는 자료는 여러군데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운형 역시 좌파지만 중도적인 성향의 명망가였고, 비록 친일파라 하더라도 송진우나 김성수, 장덕수의 대표성 역시 현실적으로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차피 미국의 입장에서 봤을 때 한국인들은 일제를 무너뜨리는 데 공헌했다기 보다는 일제와 손잡고 미군에 대항하는 데 훨씬 더 많은 공헌을 한 민족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이나 국제사회의 입장으로 봤을 때 한국인은 일본인 못지 않은 전범민족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미국은 상당기간 한국을 일본처럼 점령지로 다스리려 하는 게 당연했는데, 이 당시 이러한 미국의 의도와 국제사회의 선입견을 극복하는 길은 오로지 김구, 김규식, 여운형 같은 정치지도자들이 적절한 타협과 제휴로 정국을 공동장악해서 안정시키고 한반도 남반부에서의 민족의 자치능력을 입증하는 길밖에는 없었습니다 (민족자치능력이라는 게 별 게 아닙니다. 결국은 이념과 이해관계가 다른 여러 정치세력들이 평화공존하고 타협조정해서 민주정부와 시장경제를 잡음 없이 원활하게 꾸려나갈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김구 선생께서는 처음에 이승만보다 자기와 먼저 손을 잡으려 했던 한민당세력의 손을 뿌리치셨고, 여운형이 손을 내밀었을 때에도 좌파라는 이유로 제휴를 거부하셨으며, 계속 혼자서 순수우파 민족주의의 노선만을 고집하시다가 정치력의 부재로 이승만, 김성수에게 밀리시게 된 이후에는 갑자기 민족통일을 위해 김일성을 만나러 가신다거나 미군정의 하지 장군을 만나서는 자기 결백을 믿어달라며 자살소동을 벌이시는 등(저도 이런 사실은 솔직히 숨기고 싶지만 엄연한 역사적 사실인 것을 어찌할 수 없어서 밝힙니다)의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물론 김구선생께서는 매우 존경스러운 민족지도자이시긴 하지만, 말년에 정치가로서는 매우 실책을 많이 범하신 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FDemokratie04님께서 말씀하시는 '진짜 독립군'들은 해방전 광복군에 몸담고 있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 중에 상당수는 어처구니 없게도 채성모나 이범석과 같이 이승만의 휘하로 들어가버리기도 하였으며, 또다른 상당수는 김성수의 한민당에 들어갔고, 그래서 일제시대 친일파 관동군출신들(백선엽, 박정희 등등)과 함께 대한민국군을 창설하였던 게 역사적 사실입니다 (김구의 아들 김신도 친일파출신 군인들과 손잡고 대한민국군 창설에 참여한 것은 마찬가지임). 그런 점에서 해방전 지청천의 광복군에 몸담고 있던 사람들보다는 김일성 휘하의 항일유격대에 몸담고 있던 사람들이 더욱 독립군 출신으로서의 순결성과 원칙성, 정통성을 지켰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모든 점을 감안하면 좌익독립운동가들을 '가짜독립군'으로 부르시는 FDemokratie04님의 주장은 매우 편협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4. 청산리대첩의 영웅 백야 김좌진장군께서 공산주의자 박상실의 손에 암살당하신 것은 아마 사실일 겁니다. 그러나 당시는 좌파독립운동가들과 우파독립운동가들이 단지 이데올로기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서로를 일경에 밀고해서 소중한 독립운동조직을 동족끼리 서로 궤멸시키고 있던 어처구니 없는 기간이었기 때문에 아마 그 과정의 오해로 인해서 김좌진 장군께서도 암살을 당하신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참으로 불행하고 안타까운 역사이며, 이런 점에서는 좌파독립운동가들이나 우파독립운동가들이나 똑같이 비판을 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 민족이 해외에서 단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서로 헐뜯고 음해하고 밀고하면서 산산조각으로 분열하는 풍습은 아마 이때부터 시작되고 있었나 봅니다.)

그러나 김좌진장군의 아들 김두한씨가 '의리의 사나이'라는 FDemokratie04님의 말씀은 불충분한 규정이며 잘못된 미화라고 생각합니다. 일제시대 김두한에게 부여할 수 있는 역사적 의미는 그간 동네 룸펜들에 불과 했던 우리 민족의 건달들을 최초로 조직화했다는 사실뿐입니다. 그 이후 김두한은 종로상인들의 수입에서 자릿세를 착취하고 반항하면 쫓아버리는 등의 기생적 행태로 폭력적 악명을 떨쳤으며, 해방후에는 이승만의 사주를 받은 정치깡패로 나서서 조선노동조합 전국평의회(전평)탄압에 행동대장을 했고 용산 철도파업에서 수류탄과 총으로 무장한 3천명의 조폭깡패들을 동원해서 노동자들을 폭사시키고, 살아남은 노조간부들을 생매장하고 시멘트로 발라버리는 등의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그 후 그는 노조간부나 공산당 간부를 죽인 후 기찻길에 놓아서 갈가리 찢겨지게 하는 일을 즐겼는데 그런 식으로 죽인 좌파지도자의 숫자가 72명이나 된다고 하였습니다. (오죽했으면 이승만이 '자네... 사람 좀 그만 죽이게'하고 혀를 찼겠습니까?) 다시 말해 김두한은 민족영웅이라기 보다는 정치깡패 내지 조폭두목의 원조로서 잔인한 살인마라고 부를 수 있는 인물 정도에 해당하기 때문에 김좌진 장군의 아들로서는 완전히 자격미달인 자라고 생각합니다.


5. 물론 저는 그렇다고 해서 김일성 일당이 세운 북조선인민공화국이 우리 대한민국보다 더 많은 역사적 정통성을 갖고 있다거나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정통성면에서는 북한이 남한보다 낫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마치 동독이 서독보다 반나찌투쟁이나 역사적 정통성면에서는 많이 앞섰던 것처럼.. 그러나 그게 중요한 것은 절대 아니지요. 민족적, 역사적 정통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생, 평화, 민주주의와 같은 기본적, 현실적인 가치들에 있다고 저는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러시아혁명 이래 수천만명의 인민들을 강제노역, 강제이주, 적색테러 등으로 사망의 늪에 몰아넣고, 소수민족들의 독립과 자치를 방해했던 스탈린의 철권독재정치, 제국주의정치를 제대로 목격한 사람이라면 아무리 부의 공정한 분배가 중요한 목표라고 하더라도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심각하다는 인식은 당연히 가졌어야 했을 거라고 봅니다. 또한 해방이후 좌파니 우파니 하는 이데올로기보다 일단은 국내정국을 안정시키며 평화와 민생, 대화와 타협을 최우선적 가치로 삼아 화해와 공존공영을 먼저 추구해야 했던 것이 당시 정치지도자들의 책무였음을 감안해볼 때, 인민공화국노선을 폭력적으로 추진하며 대구와 제주도, 여수, 순천 등에서 농민들을 무리하게 부추겨 무장폭동을 일으킨 박헌영의 역사적 과오와 실책은 도저히 용서해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 후에 대규모병력으로 남침을 시도한 김일성의 잘못 역시도 일제시대 황군이나 순사들이 죽인 숫자보다도 더 많은 숫자의 인명피해를 우리 민족에게 끼쳤기 때문에 그 어떤 독립운동경력으로도 그 과오는 용서해줄 수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친일경력자들을 대거중용하면서 좌파에 대한 살인적 탄압을 지속하고, 민주적 헌법규정을 노골적으로 무시하면서, 공공연한 북진통일발언으로 김일성일당을 자극하고 전쟁을 촉발했던 이승만일당은 김일성이나 박헌영 일당 이상으로 부정의한 정치집단이었음에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해방 이후에는 독립운동경력 유무를 떠나서 극좌나 극우나 모두 문제가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아닌 게 아니라 김구, 김규식 선생의 중도통합적 정치노선이 당시로서는 가장 바람직한 정치노선이었다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6. 그러나 아무리 극좌파들의 정치적 잘못이 엄청났고, 꼭 독립운동경력만이 우리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다가오는 남북화해시대를 생각한다면 북한 김일성 일파나 기타 좌파 사회주의자들의 해방전 항일독립운동경력을 더이상 부정하거나 평가절하만 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만주군관학교에 들어가 관동군 장교로서 항일유격대를 토벌하는 데 참여했다가 해방후 쿠데타를 일으키고 일본 사무라이식의 권위주의적 독재정치를 펼쳤던 박정희의 과오, 그리고 일제시대에 검찰서기로서 부역하고 호의호식하다가 해방후 슬그머니 대한민국 법관으로 변신해 이승만체제를 뒷받침했던 이회창 부친의 과오 등은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에 대한 당사자들의 사과나 반성이 없었던 이상 우리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인 것은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민족 어쩌고 하는 문제때문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절차적 정당성문제를 확립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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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오리지널 국가유공자입니다.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아버지 모두 항일독립투쟁 및 6.25때는 스탈린공산주의를 등에 업은 김일성과 직접 맞서 싸웠습니다. 배고픔도 알고 찢어지게 가난하게도 생활해봤습니다. 한 때 독일에서 언어치료학을 공부하고 싶었던 꿈도 있었습니다만 가정형편때문에 그것은 포기하고 어렵사리 장학금.아르바이트로 공부하여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은 학교의 영어선생님이 되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사람이지만 생각만큼은 정말 반듯합니다.
> 그러나 최근 6.25때 북한 김일성을 지원했던 모택동의 중국공산당군대소속의 '팔로군소속의 조선의용군'을 대한독립군으로 둔갑시키는 천일공노할 사건과 열린당 김희선(지금 미국으로 도망갔음..)같은 가짜독립군후손이 친일청산 어쩌구 설치는 것을 보고 꼭 한마디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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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말하고자하는 것은 '팔로군소속의 조선의용군'은 '우리 독립군이 아니라' 모택동의 '중국공산당의 홍위병'노릇을 한 군대일뿐,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서 싸운 군대가 결코 아닌 것입니다. 당시 장계석의 국민당과 모택동의 공산당이 '국.공합작'으로 '중.일전쟁'을 벌일 때 일본과의 전투가 있었겠지만 그것은 '대한독립의 목표도 없었고 결국은 모택동의 계획대로 중국본토의 공산화에 기인'했지만 국민당의 장계석을 몰아내고 공산사회를 건설할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 그 군대는 8.15해방후에 대부분 북한의 김일성공산군대에 편입되고 일부는 중국공산군대에 일부 편입되었고 국제사회에서는 팔로군을 독립군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군부중에도 정승화장군이 유일하게 팔로군출신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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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중국공산당소속 팔로군의 조선의용군은 6.25전쟁을 일으킬 때 동원되고 미국의 맥아더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후에는 후퇴하여 압록강까지 밀려서 통일을 눈앞에 두었지만 모택동의 중국공산당이 '인해전술'로 개입하여 정전협정및 오늘날 분단의 연속에 이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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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와서 말씀 또 드리지만 공산주의자.좌익들이 주장하는대로 친일과 반공을 동일시하는데요, 그것은 잘못된 이야기입니다.
> 진짜 항일독립운동과 대한독립을 위해서 싸웠던 분들 및 그 후손들은 소련의 스탈린의 영향을 받고 조선공산당(남로당) 박헌영과 여운형을 실컷 이용한 뒤 숙청시켜 몰아내고 등극한 돌연변이 독재자 김일성과 그 아들 김정일의 편에 설 수 없습니다. 당시 친일파들이 해방후에 민족진영에 기회주의적 자세로 가담했기는 했습니다만 그것은 본질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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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청산리대첩의 영웅 백야 김좌진장군도 흑해사변때 팔로군소속의 조선의용군(고려공산당이라고 나옴)에게 암살당해서 돌아가셨습니다. 또 가짜후손인 열린당 김희선이 입에 올렸던 백파 김학규장군은 독립군에서 김구선생과 함께 맹활약하신 분은 맞는데, 그 김학규장군이 당시 만주의 황군으로 있었던 박정희전대통령(당시 소좌)을 독립군으로 받아주셨습니다. 그에 대한 보답은 박정희 전대통령이 후에 김구선생암살사건으로 몰려 있던 김학규장군을 복권시켜주고 또 돌아가실 때까지 보살펴드렸다네요. 당시의 자초지종과 사실규명없이 무조건 정치적 목적으로 친일.친일하는 것같아서 지켜보는 분들뿐만아니라 저도 안타깝습니다. 더구나 근대화로 절대적인 빈곤을 해결해주신 '박정희전대통령'이나 대법관.감사원장.중앙선거관리위원장.국무총리를 역임하며 능력과 도덕성을 인정받았으며 정치권에 들어와서 대통령선거낙선후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감옥을 가겠다고 처음 말했던 정치인 '이회창전총재'는 많은 독립유공자집안에서 친일이라는 생각도 안하거니와 싫어하는 사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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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제발 자기의 '친북.친김일성주체사상.친김정일선군사상'을 가리고 피해가기위해 친일타령을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공평한 것은 친일과 친북을 동시에 모두 정확한 사실규명과 함께 옥석을 가려서 역사의 심판을 받게하여야할 것입니다.
> 그러나 왜 그리 빈깡통이 요란한 것인지 가짜독립군후손들이 친일청산하겠다고하니 정말 진짜 독립군후손들은 지켜보며 코웃음을 짓습니다. 독립군후손들이 친일청산하기 싫어서 안했겠습니까?
> 지금 독립군후손들의 생각은 시기상 친일청산은 해방후 즉시 했어야했는데 현실상 친일청산은 물건너갔다고 보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친일분자들은 죽고죽어 백골이 진토되었기때문입니다.
> 게다가 지금 실체도 없는 친일분자를 찾아내겠다는 요란스러운 것은 순전히 정치적일 뿐만 아니라 돌아가신 항일호국영령을 욕보이는 짓입니다.
> 백야 김좌진장군의 손녀. 의리의 김두한님의 따님인 김을동님이 열린당 김희선처럼 가짜후손이 후손이라고 날뜁니까? 이시영부통령의 손자 이종찬님, 윤봉길의사의 손자인 윤용교수님. 전신민당총재 유진산님의 아드님이신 한나라당의 유한열전의원님. 조병옥박사의 아드님이신 민주당 조순형전의원님이 독립후손이라고 날뜁니까? 저도 근무하는 학교에서는 몇 명빼고 제가 독립후손이라는 사실을 모릅니다. 독립후손이라고 친일.친일하면서 지나치게 떠드는 행위는 결코 조상들의 업적을 빛내는 것이 아니기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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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북행위자처벌법 제정 추진된다
> "좌파세력의 안보.정체성 훼손 처벌해야"
> 2004-07-28 17:5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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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법 개정안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겨냥했다는 ´정치적 의도´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일부 시민단체와 국민들이 “친북좌익세력에 대한 진상 규명도 하자”며 노무현 대통령 장인과 측근 등을 거론하고 나서 논란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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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노무현 대통령, 권양숙 여사, 한명숙 열린우리당 의원,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이창동 전 문광부 장관.
> 최근 친북반민족반인도행위자처벌법(가칭)을 추진하고 있는 청년애국우파모임 ‘무한전진’ 운영자 박창규씨는 28일 “노빠와 좌파세력들이 최근 반대파 숙청을 위해 친일로 낙인.규정시키는 친일진상규명법을 추진, 자손까지 묶는 연좌제 등 정치적으로 이 법을 악용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그렇다면 좌파 세력들이 국가 안보와 정체성에 해를 끼치는 행위 등에 대해서도 그에 합당한 법이 존재해야 한다”고 친북행위자 처벌법 추진 배경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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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 박씨는 “현재 법률전문가 집단과 국내외 사례를 통해 구체화 시키고 있다”며 “친북행위자 처벌법을 추진할 수 있는 국회의원 등과 접촉해 그들을 통해 입법화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 이런 가운데 일부 시민들도 ‘친일파만 청산할 것이 아니라 친북좌익 세력도 척결해야 한다’며 잠깐 주춤했던 노 대통령 주변 인물들을 재거론하고 있다.
>
> “6.25당시 김일성에게 충성한 악질부역자와 그 가족의 후손 명단도 공개하는 법을 제정하고 특히 노무현 대통령의 장인의 행위는 철저히 규명해라(문상협)”, “6.25당시 공산당에 협조한 사람들도 반드시 색출해서, 반민족 행위를 한사람들도 다시 한번 그 후손들까지 평가하자(이현석)”, “국회의원 누구는 형 3명이 자진 월북했는데도 호의호식하고 있다.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된다(홍성덕)”, “친일진상 규명법은 친일한 사람 죽고 없는데 결국 연좌로 자손들 욕보이겠다는 얘기다. 그럼 6.25때 부역한 사람의 사위와 딸부터 연좌해서 규탄해라. 그래야 공평하다(장옥순)” 등의 글이 인터넷에 오르고 있다.
>
> 한편, [월간조선] 작년 3월호에 게재된 ‘노무현의 레프트 코드’라는 제목의 기사는, 노 대통령 장인 및 당시 핵심 장관 3명이 남로당, 보안법 위반자 직계가족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어 시민들의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
> [월간조선]은 이 기사에서 1973년 발간한 대검찰청 공안부 ‘좌익사건 실록’을 통해 “노대통령의 장인 권오석씨는 6.25때 경남 창원군 진전면에서 이 면의 면장 변백섭씨 등 민간인 11명을 학살한 혐의로 수복 후 체포됐다”고 밝히며 “노 대통령의 장인은 노동당 창원군당 부위원장 겸 반동분자 조사위원장이었고, 허성관 장관의 부친 허도녕씨는 창원군의 치안대원으로 활동, 좌익활동 혐의로 체포되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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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조선]은 “이창동 문화부 장관의 부친도 남로당 간부 출신이었다”며 이 장관이 세계일보와 민족예술이라는 잡지와 한 인터뷰를 인용, 이 장관 스스로 부친이 좌익이었음을 고백한 사실도 싣고 있다.
>
> 또, 열린우리당 한명숙 의원(당시 환경부 장관) 남편 박성준씨도 1968년 발생한 통혁당(북한내 대남 공작부서가 조직한 남한내 지하당) 연루 사건으로 13년간 감옥생활을 한 것과 김근태 보건복지 장관의 세 형이 월북했고, 김 장관도 국가 보완법 위반으로 징역을 선고받은 사실까지 [월간조선]은 밝히고 있다.(월간조선 2003.3 / 2002.6월호 참조)
>
> [변효진 기자]
>
추천22

댓글목록

아람이님의 댓글

아람이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Geduld님, 오늘 공부할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치우치지 않은 그러면서도 확고부동한 자세, 마음에 들었읍니다.앞으로도 좋은글 올려주세요.

팬님의 댓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 글에 대한 FDemokratie0님의 답변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뭔가 새로운 시각과 자료가 나올 수 있을지... 좋은 공부가 될 것같은데... 진심으로 답변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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