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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대 정신"이 죽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여름신기루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792회 작성일 18-07-26 19:54

본문

같은 날 내가 아는 분들 중 고인이 된 두 분이 있었다. 인간이 가진 생명의 가치는 동등하다고 생각하지만 모든 사람의 죽음을 언론에서 보도하지 않는다. 그러나 언론이 어떤 사람의 죽음을 보도한다는 것은 그의 죽음이 생명 이외의 다른 가치들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 가치들에 대한 평가들은 사람들마다 비슷하거나 또는 다를 것이고 왜곡된 것이 아니라면 존중할 수 있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고인이 된 두 분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들이다. 그리고 故 최인훈 작가보다는 故 노회찬 의원에 대한 의견들이 더 많다. 왜냐하면 그분은 내 삶에 좀 더 깊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故 최인훈 작가의 글들은 고등학생 때 문학 교과서에서 처음 접했다. 사실 문학 교과서에서는 이 소설이 많이 중략되어 거의 뒷 부분만 수록되었고, 나중에 직접 찾아서 읽으니 기대 이상의 내용과 문학적 가치를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소설 <광장>은 남북한 정치 이념에 관한 소설로 기억되지만, 작가가 묘사하는 인물들과 상황들, 특히 기독교와 공산주의의 유사점들에 대한 비유는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어떠한 정치 이념들도 인간의 삶에 행복과 안정을 완전히 가져다 줄 수는 없을 것이고, 특정한 이념 속에서 오랫동안 생활하고 교육 받은 사람들에게 다른 정치 이념들은 참고사항이거나 무시 또는 배격된다. 나는 이 소설의 주인공 명준이 인간이 사는 땅에서는 결코 이념 논쟁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판단한 것과, "크레파스보다 진한" 바다에 자신의 몸을 던진 것이 인상적이었다. 결국 "중립국"은 인간의 땅에서는 있을 수 없고 바다와 하늘에만 있지 않을까? 그가 택한 바다 속에는 살벌한 이념의 삶이 없기를 믿을 수밖에..

  이후 읽은 작가의 소설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었고, 언젠가 이와 비슷한 단편 영화를 만들거나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故 노회찬 의원은 심야 시간에 토론 프로그램들을 즐겨 보던 대학생 때 알게 된 정치인이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정치, 사회적 현상들에 대해 그렇게 자신의 언어로 해석하고 표현한 정치인은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알고 있는 대다수 정치인들의 언어들에서는 개인의 사색이 빠진 단순한 "아우성"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런 언어들은 듣는 맛도 없고 들으면 들을수록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 느낌도 든다. 마치 조선시대의 "붕당정치"에서 어떤 논쟁에 대해 저쪽이 반대하면 이쪽이 찬성을 해야만 하는 것처럼. 그러나 노 의원은 그런 느낌이 적었고 그의 말에는 듣는 맛도 있었다. 급기야 "아.. 나도 저렇게 말하고 싶다"라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그것은 쉽게 나올 수 없는 언어들이었다.

  대학교에서 교수님들은 수업 때 학생들에게 "자신의 언어"로 말하고 글을 쓸 것을 주문한다. 그리고 "자신의 언어"는 창조의 영역에서 일어나기에 소신과 경험, 성찰 그리고 연습이 필요하다. 그것들이 축적되었을 때 자신만의 언어들이 비로소 나오고 글 쓰는 것과 말하는 것에 두려움이 덜하다. 그렇다면 어떤 정세와 상황에 대한 누군가의 해석을 신뢰할 수도 있지만, 내가 먼저 해석하여 다른 해석들과 비교하며 고민해 볼 수도 있다. 이것은 언어로 먹고 사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삶의 태도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노 의원의 언어들은 다른 정치인들의 언어들보다 탁월했다고 생각한다. 

  가끔 노 의원의 말들이 너무 적절해서 듣는 사람들이 과격하거나 불쾌하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흔히 "바른 말"하는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감정들과 비슷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말들이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나 불의, 불법적 행위가 너무 뚜렷하게 공개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부끄러움일 수 있다. 특히 경직된 분위기와 관료제 성격이 강한 곳에서 더욱 잘 느껴진다. 그런 곳에서 누군가 나를 대신해서 "바른 말"을 하면 그런 순결한 용기를 만난 기쁨과 그에 따른 권력자의 응징이 있을 것이라는 걱정, 불안이 동시에 느껴져 복잡한 마음이 든다.

  나는 노 의원에게서 그런 느낌들을 받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알고 있어도 말할 수 없고 말하고 싶으면 자기의 직을 걸어야 하는 일터에서, 노 의원은 자신의 언어들에 대한 반발과 응징으로 인해 국회의원직을 상실했고, 스스로 필요 이상의 청렴하고 서민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압박했을 것이다. 게다가 언제나 자신의 실수와 실족을 기다리고 엿보는 사람들이 "낮의 새와 밤의 쥐"같이 있으니, 노 의원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평안히 쉴 수 있는 시간과 장소는 상대적으로 적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그렇게 살아도 나는 그렇게 살 수 없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는 문장의 의미를 지키기 위해서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럽지 않은 삶"은 적어도 보여지는 곳에서는 지켜져야 했다.

  그의 죽음은 절대로 순결하지 않다. 결국 그는 자신의 언어들에 대한 책임을 죽음으로 대신한 것이다. 그 스스로가 인정한 것처럼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죽었기에 어떤 사람들로부터 "뇌물을 받은 정치인"으로 평가되는 것도 만회되거나 상쇄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 공인(公人)의 삶은 원래 이런 것이다. 한번 실족하면 다시 일어서기가 쉽지 않고 다시 일어서도 실족의 꼬리표는 영원히 따라 다닌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들이 그의 삶과 언어들이 가진 의미들까지 완전히 퇴색시키지 않았으면 한다. 별다른 소득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누군가 베푸는 호의와 배려들은, 그것의 불법 여부를 떠나 일단은 고맙고 좀 더 냉철하다면 유혹적으로 다가온다. 그것을 거절하거나 적법을 따지는 것은 그 상황에서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시대를 막론하고 나와 타인 대다수가 돈 없이 살 수 없고 돈 앞에 초라해질 수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이번에도 확인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사실과 함께 그동안 자신이 걸어왔던 삶의 길이 공개적으로 굽어지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송구스러움을, 병든 노모와 아내가 있는 "노회찬"이라는 인간이 법적 절차에 따른 처벌을 받는 것보다 "죽음 외에 다른 선택은 없다"는 소신으로 대신한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노 의원의 정치 행보와 그의 언어들로 즐거웠고 감동받았다. 사람들 사이에서 "진보"와 "좌파"라는 단어들이 사용되는 것이 아직도 낯설고 두려운 한국에서, 그 단어들이 그가 있는 곳과 그와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영향력을 갖고 그 의미에 충실하게 사용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요즘 대한민국을 "자유 대한민국"이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은 "자유"를 말하지만 "진보"와 "좌파", "빨갱이"들은 척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심지어 죽여도 된다고 말한다. 그들이 말하는 자유 속에는 "차이"와 "다름"을 포함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 모두 노 의원이 발의한 법안들과 말한 언어들이 가진 영향력들로부터 혜택들을 받은 사람들이다. 즉 자유의 참 의미 속에서 서로의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고 결국 합의에 이른 결과들로서 말이다. 그래서 "정치인 노회찬"의 죽음은 어떤 "시대 정신"이 죽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 정치계에 "정치인 노회찬"이 등장한 이후로, 국민들의 정치의식은 무척 높아졌고 앞으로 더 높아질 것이다. 그 모든 공로를 그에게 돌릴 수 없지만 그의 존재가 분명 국민들의 정치의식을 성장할 수 있게 한 요인들 중 하나였고, 정치가 지금 내가 겪는 현실들을 가장 빠르게 바꿀 수 있는 수단이자 실존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의 죽음 이후 지금까지 내 마음이 먹먹한 것은 "노회찬의 언어"를 잃은 것에 대한 상실감과, "바른 말" 하는 사람들이 겪고 있을 삶의 무게감이 더욱 실감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결국 자기 꿈을 이룬 사람들은 그것이 정당하든 그렇지 않든 그 꿈 속에서 계속 살고,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부끄러움 속에 탄식하며 버티다가 그 꿈과 함께 사라지거나 급기야 죽어줘야 하는 것일까? 이제야 한국 민주주의의 맛과 희망을 느낀 사람들에게 그의 죽음과 그 윈인이 된 "사실"은, 한 잔 마시고 다시 마시기 싫은 아주 쓰린 "술"처럼 괴롭다. 그리고 그 "취기"를 해소하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나는 이런 방식의 죽음을 원하지 않는다. 어떤 "선례"가 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오래 전 어느 팟캐스트 에피소드에서 노회찬 의원은 "우리나라의 선거제도가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된다면, 어떠한 희생도 감수하겠고 당신은 영원히 국회에 나오지 말라고 해도 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제야 그런 선거제도 도입이 눈 앞에 다가온 것 같은데.. 오늘 그 말이 더욱 나를 안타깝게 한다. 언젠가 그런 선거제도가 논의되어 도입된다면 그러한 과정들과 그 이후에도 노회찬 의원이 가장 먼저 그리고 아주 많이 생각날 것 같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민주주의에서의 삶을 살고 현실에 순응하고 투쟁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한 진지함과 성찰, 타인과의 소통은 쏟아지는 불확실한 정보들과 스스로 나약해지는 상황들 속에서 진정한 "소신"의 실현과 "용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직접 조문할 수 없어 애통한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 

  故 최인훈 작가와 故 노회찬 의원의 명복을 빕니다.
추천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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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stik님의 댓글

Archistik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너무나도 큰 축이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안타깝고요.  앞으로 나아갈 큰 동력이 필요한 시점에 과연 그 거대한 에너지를 만들고 이끌 사람이 이제 누가 있나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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