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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 안에서 돋보기안경을 쓴 아이와

페이지 정보

작성자 펌돌이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6건 조회 3,788회 작성일 06-03-25 17:25

본문


전차 안에서 돋보기안경을 쓴 아이와
 
 
 
숨통을 턱 닫아버리는 뜨거운 여름이 며칠 되지 않으니, 그럴싸한 함박눈이 차곡 개이는 겨울이 희미하여 어지러이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없는 봄은 고즈넉하기까지 하니, 기억속의 사건을 뒤적여보면 그들 대부분은 한 가지 색감의 계절에 물들어있다. 그날도 엷은 회색의 그림자가 부드럽게 결을 이룬 구름이 하늘을 빈틈없이 뒤덮었을 것이고, 곳곳의 풀밭 위에는 지나치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 토끼들이 하얀 엉덩이를 앙증스레 씰룩이며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을 테며, 침묵의 운명으로 그러나 슬픈 표정 없이 바람의 미소를 전해주는 정류장 옆 가로수 밑에서는 노란 부리를 가진 까만 새가 모래알 속을 열심히 정탐하며 두발을 총총이고 있었을 것이다.
 
깊고 얕은 모퉁이를 돌때마다 전차의 우직한 관절은 끈적한 기름에 걸러진 묵직한 쇠 마찰음이 시리지 않게 울렸다. 1963년이란 제작년도가 자랑이라도 하듯 새겨있는 기숙사의 엘리베이터처럼 삼십년 전에도 같은 모양, 같은 색깔, 같은 속도로 그 길을 달렸을 듯싶은 전차(Strassenbahn)는 하지만 결코 남루해보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그 전차 안에서 나는 그리 두텁지 않은 잠바를 입고 있었던 것 같다.
 
전차의 왼편은 성인 두 사람이 넉넉히 앉을 수 있는 넓이의 의자가 앞뒤의 사람이 서로 마주앉을 수 있도록 장착되어있다. 간간히 서있는 승객도 있지만 자리의 여유가 적지 않게 보이는 전차 안, 창가 뒤쪽 의자에 앉아 날씨에 촉촉이 젖은 창밖 거리 풍경에 눈을 던져두고 있었다. ‘빨리빨리’라는 요구는 도대체 있을 것 같지 않은 독일사회는, 수리로 신호등이 모두 꺼진 사거리, 교통순경 없이도 크락션 소리 한번 울리지 않고 질서 있게 움직이는 자동차의 행렬을 보면서, 사람이 차를 조심하기보단 차가 사람을 조심하는 것이 느껴지는 횡단보도에서, 뒤 따라 나오는 낯선 이를 위해 무거운 유리문을 잡은 채 가볍게 던져주는 미소의 여유를 통해서 느낄 수 있었다. 강팍한 입시의 학창생활을 서울에서 관통하며 번잡한 젊음을 보내다 온 내겐 남들은 생기 없어 보인다고 말하는 독일에서의 생활이 정서적 휴가와 같았다.
 
늘 그렇듯 흔들리는 창가에 살짝 머리를 부딪혀가며 적당히 쓸모없는 상념에 젖어있다 정신을 차려보니 조용히 속삭이듯 문답을 나누는 금발의 독일 모녀가 앉아있었다. 동그랗고 큰 안경을 낀 어린 여아이가 앞에, 그리고 신장이 170은 될 것 같은 마르고 긴 체형의 엄마가 내 옆에 앉아있었다. 여유와 절제가 충분히 베어있는 길고 가는 손가락의 움직임과 고개를 약간 숙이고 시를 읊듯 차분하게 움직이는 입술에서는 연약해 보이는 체형에서와는 달리 실팍하리만큼 강건한 힘이 느껴졌다. 30대 중반을 넘어서 보이는 여인의 차분한 목소리와 구슬이 낮은 층계를 구르듯 또렷한 발음은 포근한 엄마의 느낌과 오연한 교육자의 이미지가 적당히 조화를 이루었다.
 
엄마가 문제를 내면 아이가 대답을 하는 식으로 아이와 엄마는 곱셈놀이를 하고 있었다. 아이는 이제 막 곱셈의 원리를 배웠는지 ‘오 곱하기 삼’은 오를 세 번 더하는 식으로 계산하고 있었다. 오를 넘어서는 숫자에서 당혹해하는 모습을 보였고 ‘오 곱하기 이’보다는 이를 다섯 번 더하는 ‘이 곱하기 오’를 더 어려워했다. 긴 머리를 가지런히 뒤로 모아 하나로 묶고 눈이 자신의 손바닥만큼이나 커보이게 하는 크고 두터운 안경을 쓴 소녀는 즐거움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해 온몸으로 표정을 지어내고 있었다. ‘팔 곱하기 삼...’ 7을 넘어서서 8이 나오자 이제 아이의 입은 꼭 다물렸고 안경으로 확대된 커다란 눈동자만이 숨겨진 정답을 쫓듯 구르고 있었다. 그 커다란 아이의 시선이 나의 얼굴에 떨어지자마자 나는 소리 없이 입 모양만으로 답을 알려주었다. 단번에 입 모양만으로 정답을 읽어낸 아이는 하지만 즐거워하지 않았다. 도둑질을 고백이라도 하듯 아이는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엄마를 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양 다리를 앞뒤로 천천히 흔들며  정답을 말했다. 손가락의 무의식적 움직임은 옷을 휘감으려 했으나 힘이 들어가지 않은 손가락에 옷은 감기지 못하고 탁탁 풀리며 천천히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몇 개의 문제를 아이는 어렵지 않게 맞추었고 아이는 웃었다. 엄마만큼이나 조용한 품성을 가진 아이는 웃음도 작고 온화했다. 하지만 다시 큰 숫자의 문제가 떨어졌고, 조용히 집중하여 계산을 시작했지만 문제를 풀지 못한 아이는 힐끗 나를 훔쳐보기 시작했다. 어슷 떨군 아이의 얼굴, 그 큰 눈동자를 향해 입으로 답을 가르쳐 주었으나 아이는 답을 읽어내지 못했고, 이제 아이는 고개를 들어 그 커다란 눈을 나의 얼굴에 고정시킨 채 입술모양을 집중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옆에 앉아있던 여인이 어느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순간 나는 시험시간에 부정을 하다 들켜버린 어린 여아이의 친구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고 어색한 웃음과 그 웃음을 감추려는 안면근육의 긴장이 팽팽히 맞서있었고, 고개가 자연스럽게 떨구어지고는 나를 응시하는 엄마의 눈길을 외면한 채 아이만을 바라보았다. 아이는 엄마의 눈치만을 조심스레 살피며 안절부절 못했고 엄마는 아이와 나를 교대로 바라보며 짧은 침묵을 지었다. 잠시 후 여인은 내게 조용히 경고를 했다. 아이 엄마의 그 부드러운 목소리 속에는 역시 즐거움이 옴폭 담겨있었다.
 

아이와 엄마는 나보다 약 세 정거장을 먼저 내렸다. 세상 모든 어둠 속 감춰진 것까지 들여다볼 것만 같은 커다란 눈의 아이는 내리기 전 조그마한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해 주었다. ‘Auf Wiedersehen'
수줍어보였던 아이는 또롱하고 큰 목소리로 인사를 해주었고 오히려 내 목소리가 수줍게 작아져있었다. 아이의 엄마가 따스한 웃음으로 우리를 구경했고 그 속에서 아이의 웃음이 흘러나왔다. 아이의 웃음은 특별하다. 그 웃음소리는 아무리 작아도 세상을 투명하게 두들기는 공명이 되어 울려 퍼진다.
 
 
 
 
 
 
 
 
 
 
 
 
달님과 글세님께 감사하다는 마음을 표현하며 전에 끼적였던 글 하나 올립니다. 글 속에서 저를 수차례 언급해주신 사과쥬스님께도 감사를.. 감사의 마음으로 올리기엔 글이 초라하지만 머,, 우째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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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돌이님의 댓글의 댓글

펌돌이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엽기유머버전

청년: 엄마에게 걸리지 말아야 한다. 곁눈질로 엄마가 나를 쳐다보지 않는 것을 확인하며..  성공했다. 아이가 욜라 쑥스러워한다. 귀엽다.

엄마: 청년이 아까부터 나를 자꾸 훔쳐본다. 내가 예쁘긴 하지. 못 본 척 해준다.

청년: 엄마는 전혀 눈치 못 챈다. 아이만 바라보고 있다. 이번에도 성공이다. 난 역시 컨닝에 천재야.

엄마: 청년이 계속하여 날 훔쳐본다. 날 아이의 언니로 생각하는 걸까? 고개를 돌려 청년을 쳐다봤다. 귀엽게 생겼다.

청년: 아이에게 답 갈쳐주다 딱 걸렸다.. 엄마가 야린다.. 얼굴이 달아오르는 게 느껴진다. 아, 쩍팔려..

엄마: 얼굴까지 붉힌다. 청년이 내게 한눈에 반했나보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제 딸이 참 예쁘죠?’라고 해줬다.

청년: 엄마가 내게 뭐라 한다. 아이에게 답 갈쳐주지 말라는 것 같다. 그래서 그냥 고개만 끄덕여줬다. 창피해서 고개를 못 들겠다.

엄마. 청년이 많이 상심했나보다, 고개를 푹 숙이고 끝내 얼굴을 들지 못한다. 예쁜 내가 죄지...




아리랑촌 버전

딸아이 손잡고 아인카우펜했다. 물건 담은 튜테 오른손에 들고 왼 손으로 딸 손 잡고, 아이 슈베어. 튜테 안 찢어지나? 슈트라센반 안에서 아지아너가 옆에 앉았다. 야파넌지 코레아넌지 카이네아눙이다. 토흐터에게 구구단 갈쳐주는데 융에가 자꾸 방해한다. 그러지 말라고 말하려 쳐다봤는데.. 아지아너 참 휩쉬하게 생겼다. 아무 말 안하고 누어 쳐다봤다. 결혼만 안했어도 안마흔 하는건데.. 쉭잘이다.






...디디님 죄송합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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