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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일기] 일기·수필·문학 - 유학 일기 외에 사는 이야기 혹은 직접 쓴 시와 소설을 게재하는 곳입니다.

사는얘기 동창회 유감 (同窓會 有感)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전설인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조회 4,469회 작성일 02-02-15 09:02

본문

♣ 2002/1/27(일) 00:43 (MSIE6.0,WindowsNT5.1) 217.224.28.206 1024x768
♣ 조회:81


■ 동창회 유감 (同窓會 有感)


그리 오래지 않은 세월 이지만 외국 생활을 하다 보면 어느 때는 못 견디게 힘들고 말 못할 고통을 받을 때가 간혹 일어 났다. 그럴 때는 모든 것을 훌훌 털어 버리고 어디로 훌쩍 잠적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러나 막상 차를 몰고 나가 보면 마땅히 갈 만한 곳이 없다.처음 독일 땅을 밟았을 무렵만 하드래도 걸핏하면 라면과 김치를 싸 들고 동서남북으로 국경도 넘어 보고 호기심에 끌려 다녔으나 여러 해 이 땅에 살다 보니 심란한 마음을 풀어 놓고 진정 시킬 마땅히 찾아 갈 만한 곳이 떠 오르지 않고 그렇다고 터 놓고 말 할 수 있는 벗도 없어 결국 라인 강 강변 벤치에 앉아 비행운을 그리며 하늘 높이 떠 가는 비행기를 바라 보며 저 비행기를 타고 동쪽으로 기수를 돌려 열한시간을 날라 가면 김포 공항에 내리 겠지 하는 얼 빠진 생각 만 하고 돌아 오고 했다. 만일 고국 땅 한국이라면 이럴 땐 딱 안성맞춤인 곳 포장마차. 칸델라 불이 가물 가물 졸고 있는 포장 마차에 들려 연탄 화덕에 지글 지글 꼼장어를 구어 놓고 살집 좋은 주모가 딸아 주는 소주 한 잔을 쭈욱 들이 키고 걸쭉한 육담에 신물이 나면 옆 자리에 낯선 손님과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금방 십년지기가 되어 어쭙잖은 시국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사회.문화 예술까지 두루 섭렵하며 목청을 높이 다가 의견이 엇갈려 입에 게 거품을 물고 핏대를 올리는 등 한 바탕 입씨름을 마치고 나면 쌓인 스트레스가 풀리고 답답한 가슴이 시원 할 것 같은데 이 독일 땅 눈 씻고 사방을 둘러 보아도 갈 곳이 마땅치 않다. 그렇다고 맥주 한 잔 시켜 놓고 미륵처럼 앉아 담배나 연방 피워 되는 Bistro(간이 주점)에 가서 독일 말도 시원찮은 주제에 괜스레 객기 한번 잘못 부리다 정신병원에 끌려 가서 망신 당하기 십상이고 그렇다고 하루 이틀도 아니고 허구 한 날 답답한 마음을 가슴에 담고 지내자니 죽을 맛이었다. 정신을 못 차릴 만큼 바쁘게 일에 몰두 할 때는 딴 생각 할 엄두도 없다가 일손이 한가 할 때는 이런 저런 지난 날 잘 풀리던 호시절에 매사에 경솔하고 흥청 망청 절제 없이 살아 오고 백수로 허송 세월을 보냈던 과거사가 발등을 찧고 싶도록 후회막심 이었다. 주머니가 두둑하던 그 시절 말죽거리에 배추 밭 한 떼기 만 눈 찔끔 감고 버려 두기로 사 두었더라면 지금 동녘 하늘 높이 떠 가는 비행기를 울적한 마음으로 바라 보고 있지 않겠지 . 한 숨만 절로 나 왔다.
향수병일까. 치유 할 수 없는 가슴앓이 같은 향수 병을 지닌 채 독일 생활을 하던 99년 봄 오년 여 만에 귀국 할 기회가 있었다. 퍽 오래간 만에 귀국을 하게 되니 나이답지 않게 철부지 시절 수학여행을 떠나는 그런 들 뜬 기분이었다. 옷차림은 늘 입어 왔던 캐주얼이 좋을 것 같아 평소에 즐겨 입던 몇 가지 옷들을 세탁소에 맡겨 손질 했으나 몇 년 만에 귀국하는 아빠의 옷 차림이 궁상맞게 캐주얼이냐는 딸애들의 성화에 못 이긴 척 끌려 신사복 전문 백화점에 들려 애들이 골라 주는 옷을 입게 되었다. 유행과 멋에 감각이 뛰어 난 요즈음 젊은 세대의 취향이 그러한지 아니면 한국 왕래가 잦은 둘째 딸애의 의상감각이 그런지 도통 내 취향에 적합치 않은 옷차림으로 귀국 길에 올랐다. 평소에 정장할 기회가 별로 없었고 생활 하는데 꼭 필요함을 느끼지 않아 간단한 캐주얼 차림으로 지내다 보니 그만 습관이 되어 정장이 내 몸에는 어색하니 남의 옷을 빌려 입은 것 마냥 자연스럽지 못 했다. 그러나 의복이 날개라고 공항 대합실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을 보고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귀를 살짝 덮는 흰 머리카락 만 손질하면 누가 이순을 바라 보는 나이라고 생각하랴. 왠지 싫지 않은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조금은 어색한 모습이었다.
이렇듯 들 뜬 기분과 설레는 마음으로 고국 땅을 밟은 나는 김포 공항을 벗어 나면서부터 내가 멘 처음 독일에 도착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빠져 나오면서 느꼈던 그대로 불안하고 현란했다. 몇 년 동안에 새롭게 바뀐 서울의 광경은 황홀하다 못해 현기증까지 느낄 만큼 호화 찬란한 말 그대로 극치 였다. 물 밀 듯 밀려 오는 자동차들의 행렬 , 고층 건물 옥상의 오색찬란한 전광판. 건물 모습이 보이지 않게 빼곡하게 들어 찬 간판 숲. 그 아래로 많은 인파. 그 많은 모든 젊은 여자가 영화 배우, 탤런트인지 분간 못할 짙은 화장에 아름다운 옷차림. 돌연변이로 태어난 애들 마냥 머리 색이 요란한 젊은이들. 그래도 유럽 땅 유행의 본거지라는 파리를 다녀 오고 외국 땅에서 십년이 훨씬 넘게 살아 온 나를 엄청 촌스럽게 만들었다. 이처럼 나를 놀래게 하고 이방인처럼 낯설게 여겨 지던 고국이 전라도 시골 고향을 찾아 가니 더욱 심했다. 예부터 산천경계가 수려하고 태백산 줄기의 정기를 받아 출중한 인물이 난다는 고향 땅 .섬진강 지류인 적성강이 동내 앞을 흘러 이 맑은 물로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하면 양귀비 같은 미인 나온다는 옥천수 맑은 물이 흐르는 고향 땅. 한국 식품점에 들려 고향 이름이 적인 고추장을 보고도 코 끝이 찡하니 눈시울이 뜨거워 지는 고향. 사진첩 맨 앞장에 꽂혀 있는 누으렇게 변색된 초등학교 졸업 사진 그 속에서 나를 찾아 고향을 찾는다. 그러나 십년이 훨씬 지나 찾아 온 고향은 흑백 사진 속에 내 얼굴 .내 고향이 아니고 천연색 색상이 뚜렷한 칼라 사진이었다.
산 토끼 몰이를 갔던 뒷산을 깍아 내려 고층 아파트가 들어 서고 비좁은 골목 길에는 반짝 반짝 광이 나게 왁스 칠한 자동차가 통행을 막고 단팥 찐빵에 돼지고기 만두로 유명했던 중화식당 곡상집은 흔적 없고 새로 지은 건물에 피자 집 간판만 요란 했다. 조상이 묻힌 선산을 찾아 성묘를 하려 가는 길도 너무나 변해 가슴이 아팠다. 아버지의 뒤를 따라 추석 성묘 길에 이 숲길을 걸어 갈 때마다 다람 쥐 산 토끼가 흠찔 놀래 도망 치고 숲이 울창해서 대낮에도 으스스하니 무서움이 들던 이 산길을 어느 돈 많은 서울 사람이 송두리 째 사들여 전원 주택을 짓는 다고 민둥산으로 만들어 보기에 너무 흉 했다. 단순히 목전에 이익과 편리한 문화 생활만 생각하고 자연 경관을 헤치는 우리나라를 독일과 비교하니 한숨만 절로 나왔다 한해면 많은 사람이 유럽 여행을 나오고 정치하는 사람. 산업 시찰과 유럽의 문화와 체재를 배우려고 유럽에 오는 인재들이 과연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본 받았는지 궁금했다. 성묘를 마치고 돌아 오는 길에 우연히 초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비닐 하우스에서 특용 작물을 재배하여 꽤 재산을 모았다는 말을 들었다. 기억에 초등학교 시절 맨 앞 자리를 차지 하고 머리에 도장 부스럼이 떠 날이 없이 고생 했던 친구로 기억이 떠 올랐다. 한사코 차 한잔을 대접 하겠다는 그의 호의를 거절 할 수 없어 그를 따라 비닐 하우스에 갔으나 차를 마실 만한 그런 곳이 아니 였다. 이른 봄 아직 철이 이른 탐스러운 딸기가 주렁 주렁 달린 비닐하우스로 우리를 안내한 것이다. 독한 농약 냄새가 심하게 코 속을 휘 볐다. 한사코 사양한 우리를 농약 냄새가 심하게 풍겨 오는 딸기 밭에 안내한 그는 어느 곳인지 핸드폰을 꺼내 연락을 하고 나서 나를 향해 오는 사이 오토바이 굉음이 울리더니 보조개가 복스럽게 생긴 아가씨가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커피 보온병을 치켜 들고 나타났다.
“사장니임! 티켓 한장 끈어 주세요이잉” 코멩멩이 소리에 몸을 비트는 교태에 그는 만원 지폐를 몇 장 손에 잡히는 대로 그녀의 손에 쥐어 주는 광경이 예사롭지 아니했다.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 우리 앞 집에 살던 신애가 아마 이런 광경을 보고 이 노래를 불러 히트 했던 것 같다. 변해도 너무 심하게 변했구나. 이빨 빠진 사기 주발에 철철 넘치도록 뿌연 쌀 막걸리를 딸아 단 숨에 쭈욱 들이키고 난 연후 뚝배기에 담긴 거므죽쭉한 된장 웃 거죽을 걷어 제치고 약이 오른 풋고추를 듬뿍 된장에 푹 찍어 안주 삼아 먹은 풋고추의 매운 맛이 입안에 가득하면 다시 한 사발 쭈욱 들이키고 끄윽 길게 배부른 트림을 시원하게 하던 순박한 농촌도 점점 세계화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신문사 광고국장을 지냈던 珍한테 연락이 왔다. 서울에 살고 있는 초등학교 동창이 봄 가을 두 차례 모임이 있는데 마침 봄 정규 모임이 주말 우이동 xx산장에서 있으니 꼭 참석 하라는 말과 함께 여자 동창도 오니 혼자 참석 하길 원 했다. 학교 동창 모임도 여럿인데 초등학교 동창 모임은 유별나게 친근하고 정이 갔다. 철부지 시절 개울가에 빨가벗은 채 멱을 감던 다정한 친구. 입에 넣고 있던 왕 눈깔 사탕을 나누어 먹던 깨복쟁이 동무. 초등학교 동창들. 이제 이순을 눈 앞에 둔 초로의 인생 . 모두 어떤 모습일까 호기심에 그날이 무척이나 기다려 졌다.
딸애들이 애비 보담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 같다. 캐주얼을 못 입게 하고 신사복 정문 메이커 BOSS로 정장을 하게 하더니 오늘 이런 초등학교 동창회에 아빠의 신사복 차림을 보여 주기 위함이려니 생각하니 독일에 두고 온 딸애들이 대견스러웠다. 귀 위로 희끗 희끗 보이는 흰 머리카락이 신경 쓰여 근처 이발소에 가서 염색을 할까 했더니 집 사람은 오히려 지금 그대로가 품위 있어 보인다는 말을 믿고 거울을 보고 또 보고 했다. 여자 동창도 온 다는데…..
모임을 갖는 곳은 우이동 숲속에 고래등 같은 한옥에 단체로 모이는 연회 손님만을 고객으로 하는지 운치 있게 잘 가꾸어진 정원이며 은은히 들려 오는 가야금 산조가 분위기를 사로 잡았다. 넓은 주차장에는 이 모임에 참석한 자들의 위세 만큼 고급대형 승용차에 낯이 익은 독일 차도 몇 대 눈에 들어 왔다. 야! 이거 독일 촌놈 기 죽이네. 돈을 모을 줄만 알지 쓸 줄을 모르는 자린 고비 구두쇠도 초등학교 동창회 기부금은 거액을 선뜻 희사하는 것이 요즈음 사회 풍토라 했다. 인생 유전이라 할까. 초등학교 시절 점심 도시락 준비를 못 해 점심 시간이면 수도 물로 배를 채우던 그 시절 어렵게 자랐던 동창들이 자수 성가하여 큰 사업체 장이 되고 건물 임대료 만 챙겨도 편히 살 재력가로 변해 초등학교 동창회는 그 들의 찬조로 운영하고 있다는 말에 실감이 갔다.
우리가 초등학교 이학년 육이오 동란이 일어 났다. 전란의 북새 통에 시골에서 생명 줄인 일년 농사를 제대로 수확을 못 했다. 그러하니 그 피해는 말 할 수 없이 컸다. 도처에는 기아로 아사하는 사람이 많았고 인심은 흉흉해 서로가 불신하던 그 시대가 50년대 혼란기 였다. 세계구호 단체에서 구호물자로 들어 오는 많은 물자가 교회를 통해 분배가 되었다. 서양 냄새가 묻어 나오는 고무 지우게 달린 연필. 앞뒤로 빨강 파랑 색이 다르게 달려 있는 색 연필. 색깔 따라 다른 향과 맛이 나는 돌 사탕. 주기도문을 달달 외워야 이런 푸짐한 학용품과 사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학교 공부는 제쳐 두고 주기도문 외우기에 밤을 세웠다.
학교에서 나누어 주는 처음 먹어 보는 분유 가루에 위장이 놀래 화장실 문 턱이 닳도록 들락거리던 그 어려운 시대에 초등학교를 다녔던 터라 남다른 감회와 잊어지지 않은 많은 추억을 간직한 동창회였다. 서울 근교에 살고 있는 동창 뿐만 아니라 시골에서도 소형 뻐스에 여러 명이 합승하여 온 열성적인 동창들로 어림잡아 남녀 합하여 삼십 여명이 모였다. 널찍한 홀 전면에 재경 xxxx44회 동창회란 현수막이 반갑게 눈에 들어 왔다. 그리고 단상 좌우로 국회의원 이아무개. 지역 출신 유지들이 보낸 화환과 대문 짝 만한 이름 석자가 위용을 과시하고 있는 것을 보니 하찮은 시골 초등학교 동창회로 생각 할 수 없었다. 입구 접수대 뒷면 에는 어느 모임에서나 보았던 것처럼 찬조금 기부자 명단과 찬조금 내역이 수시로 굵직한 메직으로 쓰여 지고 있었다. 찬조금 액면도 거의 십만 단위가 넘는 숫자가 부지기 수이고 백만 단위도 몇 사람 눈에 들어 왔다. 내깐에는 큰 맘먹고 가져 온 금일봉인데 낯이 간지러워 얼굴을 내 밀고 싶지 아니 했다. 이래도 독일에서는 큰 돈인데….
일찍 자리를 잡은 동창들은 벌써 몇 순배 잔이 돌았는지 거나하게 주기가 돌아 나를 알아 보고 손을 내미는 동창이 많았다. 봄철 소풍에서 벌어진 전교 노래 자랑에서 당시 유행하던 –굳세어라 금순아-를 불러 금순이로 이름이 바뀐 자전차포집 둘째 딸. 성자. 여전히 화사한 옷 차림에 짙은 화장이 약간 추하게 보였으나 역시 매력이 있어 보인 그녀가 눈에 띠었고 엿 공장에 고물상을 했던 吉이와 –엿 장수 엉덩이는 찐득 찐뜩-하며 놀려 되는 浩의 얼굴에 활명수 병을 던져 다섯 바늘이나 꿔 메는 불상사를 일으켰던 두 사람이 다정하게 그 때 일을 회상 하듯 술잔을 주고 받고 있었다.
언변이 좋은 雄이. 노래를 잘 하더니 요즈음 유명 대중가요 작곡가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洙. 시장 통 아이스크림 집 외동딸로 자라 일찍 혼자 되었다는 淑. 서대문 모래내에서 구청장 이름은 몰라도 이사람 이름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부동산 재벌에 동창회 회장. 植 . 그리고 이름을 말하면 기억이 떠 오르고 얼굴을 보니 어러풋시 생각이 떠 오르는데 이름을 도통 기억 할 수 없는 동창들. 사십 여년이라는 긴 세월을 지나고 보니 길에서 마주 쳐도 서로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변한 동창도 있고 몇 동창은 지병으로 일찍 저 세상으로 먼저 떠난 동창도 있었다.
말 노릇이 좋은 雄이의 사회로 모임이 진행 – 저 멀리 독일에서 우리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 참석하려 급히 달려온 全xx, 지금 독일 F시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는 우리 동창에게 많은 박수를 보내 주세요. 짝짝…-
많은 시선이 나를 향했다.
-미국에서 살다 온 사람은 기마이 좋게 큰 판을 벌린다는데 이사람 별 볼일 없는 가 봐 . 허우대를 보아 하니 고생한 것 같지 않고. 얼굴이 피둥 피둥 주름살이 없이 훤 한 것이 살기가 편한 모양이지. 옷차림을 보아 하니 우리 보담 훨씬 젊게 보여. 역시 외국 바람을 쐬면 사람이 달라 지는 법인가 보아. 금년에는 나도 세계일주는 너무 힘들고 유럽 구경이나 가서 동창 한테 백마 한 번 태워 달라고 할까. 동상이몽 나를 바라 보고 생각하는 것이 각양각색. 시원찮은 시선으로 조심스럽게 살펴 보는 자도 있었다. 자리가 편치 못 했다.
드디어 여흥이 시작되자 내 옆으로 아예 자리를 옴겨 오는 동창 몇이 나타 났다.
:워따 자네가 독일에 살고 있다는 것을 진작 알아 뿌렀쓰면 같이 공도 치고 싸우나도 당겼싸고 재미가 있었을껀데 지금 알아뿐 것이 엄청 나게 섭섭하네” 사업상 자주 독일을 간다는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哲이의 말
“워메 워메 동창생이 독일에 살고 있다닝께 징말 좋아 뿐거. 우리 딸이 콘론(영어 발음. 쾰론) 에서 음악공부를 하고 있어야. 한번 댕기려 가야 겠는디 썩을 놈의 비행기를 못타닝께 괴민이여. 어떠콤롬 해야 자네하고 연락 할 수 있단가.” 압구정 현대 아파트에 산다는 愛의 말
동창회는 옛날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가는 타임마쉰 같았다. 서로 서로 순간이나마 잊어진 고향 사투리를 찾고 싶었고 철부지 시절 격식을 버린 호칭으로 자신을 불러 주기를 원했다. –야! 가시네야 야! 머스메야.- 등으로
그러나 삼삼오오 모여 앉아 주고 받는 대화가 자식 자랑 그리고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는 허세로 진솔한 인정 미를 찾을 길이 없었다. 골프 이야기는 자신의 신분과 재력을 암시 했다. 자랑 할 것이 없고 내 놓을 것이 없는 자는 오늘 동창회에 아예 참석치 않았다. 그러나 체면이고 자존심이고 모든 것을 달관. 입만 가지고 참석해도 배 불리 먹고 경우에 따라서는 용돈에 기념품까지 챙길 수 있기 때문에 얼굴에 철판을 덮고 자리를 차지 하고 있는 몇 사람이 눈에 들어 왔다. 한 쪽 구석진 자리에서 풀이 죽어 말 상대도 없이 술잔만 비우고 있는 동창생. 초등학교 시절 약방집 아들로 검정 운동화에 칼라 달린 학생복을 입고 도시락에는 흰 쌀밥과 멸치 볶음. 소고기 장조림으로 선망의 대상이었던 成이. 학벌도 좋은데 술이 과해 일찍 실직하고 불행하게 상처까지 한 뒤 홀로 살며 이 친구 저 친구 찾아 다니며 손을 벌리다 보니 모두 기피 인물이 되어 상대 없이 술잔만 비우고 있었다. 또 한 사람. 참봉집 외손자로 행여 사고가 생길까 즈레 겁을 먹고 자전차 옆에 얼씬도 못하게 한 탓으로 평생 자전차 한 번 타 보지 않고 늙은 錫이. 그 많은 재산 마작으로 탕진하고 이제 어느 아파트 수위로 근무 한다고 했다. 인간만사 새옹지마라더니 실감이 갔다.
내가 고국을 등져야 할 80년대 삼년 가까이 서울에서 백수 생활을 했다.(그 시절 백수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자.) 시간이 남아 돌아 가자 서울에 살고 있는 초회비를 각출하여 집안 애경사에 서로 돕고 친구간에 우의를 돈독하자는 취지에서 발족 했고 총무를 내가 담당 친구 집에 일어난 대소사의 일을 연락 연결을 내가 맡아 오다 외국 땅으로 떠난 뒤에 손을 떼게 되었다. 그 후 몇 차례 모임이 깨지고 다시 시작 하기를 거듭하다 시대의 조류인가 찬조금이 답지하고 음으로 양으로 모임을 부추기는 힘이 있어 동창회가 활성화되어 간다는 말을 종종 들어 알고 있었다.
순수한 동창들의 모임이 가진 자들의 축제로 변해 가는 것이 마음에 거슬렀으나 모질게 고생을 해 가면 모은 돈을 동창생 모임에 주저 없이 거금을 찬조 하는 박애정신(?)에 그 누가 반기를 들고 왈가 왈부 할 사람이 있을 까. 굶지 않고 배 불리 먹는 것으로 행복했던 시절 친구들의 따돌림을 받고 굶기를 밥 먹듯 어렵게 자라면서 출세하여 어린 시절 가슴에 맺힌 한을 초등학교 동창들 앞에 풀어 보고 싶어 거금도 희사하고 이차까지 자리를 마련하는 등 선심을 쓰는 그를 향해 누가 손가락질을 할까. 뷔폐로 차려 놓은 풍성한 음식은 남아 돌아 가고 독한 양주에 취기가 오른 몇 사람은 삼인조 뺀드의 신나는 반주에 맞추어 구성지게 한 가락 뽑고 남녀 두 동창이 음악에 따라 스텝을 밟는 등 여흥이 점차 무르익어 갔다. 모두 이런 분위기에 익숙한 듯 어색한 분위기가 없었다. 오히려 이런 분위기에 동화되지 못한 내가 어색하니 자리를 차지 하고 있기에 불편 할 지경이었다. 십년이 훨씬 넘게 외국 생활을 하면서 개화 된 눈으로 유럽 문화를 보고 온 내 자신이 이 자리에 어울리지 못한 것이 한 없이 부끄러웠다.
“야 이 보리문둥이 얼라들이 금새 맛이 확 가쁘렀네”
왠 경상도 말씨가 튀어 나오고 작달만한 체구에 양 어께가 딱 버러진 콧 수염이 나타났다. 그 다부진 체구 뒤로 운전 기사 인성 싶은 젊은 청년이 로얄싸롱 양주 두병과 생선 상자를 들고 왔다.
“야! 김군아 여그 놓고 빨리 주인 오라 카라. 오늘 내사 니 놈들하고 먹을 나코 남아로 전복 가져 왔데이. 봐라 얼마나 싱싱하나. 니 놈들 서울에서는 억만금 주어도 이거 못 먹는데이”
상자 뚜껑을 열자 손바닥 보담 더 큰 전복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야! 누꼬 니 눈사람아이갸. 눈사람 만들어 가꼬 이쁜 여선상 이름 써 놓은게 들통이나 된통 혼쭐이 난 全xx 눈사람 맞제” 콧수염은 나를 알아 보고 내 별명까지. 잊혀진 추억까지 들춰 냈다. 도대체 너는 누꼬? 전라도 토박이가 모인 동창회에 경상도 토박이가 나타나 나를 알아 보다니 한 동안 기억을 더듬어도 생각이 나질 아니 했다.
“야! 임마 니그 옆집에 살던 땅딸구 춘섭이 도 모르나카이”
“그래!! 니가 춘섭이냐 몰라 봐서 미안 하다. 그런디 너 경상도 사람 다 되었구나.”
“맞다.내사 오십년 부산 바닥에 살다 보이 경상도 사람 다 됐다이. 근디 니 독일 산다 카던데 언제 왔노. 하나도 안 변했네. 니 꼭 총각 갔데이”
땅딸구 춘섭. 아버지 때부터 내려 오는 호칭으로 키가 작고 체격이 다부져 땅딸구라는 별명으로 통 했다. 우리 옆집 건너 옆집에 살던 말 구루마 집 둘째 아들. 말 수레를 끌고 시골 장터 곳곳에 물건을 날라 주던 말 구루마 집 복상(일본어로 박씨를 칭함)이라면 좁은 시골 바닥에 모르는 사람이 없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전쟁이 나고 인민군이 쫓겨 가는 판에 말과 수레가 보급품 수송에 강제로 동원이 되어 집안에 재산인 말과 수레에 아버지 까지 잃은 춘섭이네 집은 가난하기 짝이 없었다. 춘섭이 어머니가 남의 집 품을 팔아 받는 돈으로 다섯 식구가 살아 가기에는 힘이 버거워 굶는 날이 더 많았다. 나는 간혹 곡간에 들어가 어머니 몰래 신발 주머니에 쌀을 훔쳐 춘섭이 집 마루에 남모르게 놔두고 했다. 소풍 가는 날 도시락도 내가 누나를 졸라 싸 들고. 그렇게 한 골목에서 친하게 자랐는데 어느날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생선 배달 수레를 끈다는 형이 나타나 집안 식구가 종적을 감춘 것으로 내 기억은 끝이 났다. 초등학교도 졸업 않고 사학년이 되던 해 아마 열살쯤 헤어졌는데 춘섭이 그가 이렇게 변한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 난 것이다.
“ 내사 니 소식 고향 친구 통 해 들어 잘 알고 있데이. 시간 만들어 부산에 오라. 니캉내캉 술 한잔 하제이” 금박이 명함을 한 장 받았다. 해동 물산 대표이사 박 춘섭 부산에서 오늘 초등학교 동창회에 참석 하려 만사를 제쳐 놓고 기사를 대동 동창회에 참석 한 것이다. 제주도 양식장에서 항공 편으로 도착한 전복 한 상자와 고급양주를 가지고 말이다. 하여튼 모처럼 귀국 길에 초등학교 동창회에 참석 많은 것을 얻고 배워 왔다.
지금 책상 명함 꽂이에 수북이 쌓인 금박 명함의 주인공들 지금쯤 무엇하고 있을까. 나처럼 콤푸터 자판기나 두드리며 옛날 빛 바랜 추억이나 회상하고 있을까 . 콤푸터나 배워 인터넷에 들어와 베리에 띄운 내 글이나 읽고 다시 옛날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 가자 구나. 그리고 하!하!하! 시원스럽게 웃어 보자 친구여. 초등학교 동창생이여….




자유로니: 문득 사는것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는 글입니다. 감사. [01/27-06:25]



♣ 이름:실향민
♣ 2002/1/27(일) 06:58 (MSIE6.0,WindowsNT5.1) 217.226.126.10 1024x768
♣ 조회:13

■ Re..동창회 유감 (同窓會 有感)

당신은 찾아 갈 고향도 있고 그리고 만나 회포를 풀 수있는 동창생이 있어 외롭지 않겠구려.
고향이 있어도 갈 수 없고 지도를 펴 놓고 고향을 찾는 실향민 . 언제 통일이 되어 고향 땅을 밟을 까. 요즈음은 꿈에도 고향이 보이지 않으니 이제 다 산것 같구려. 딸을 앞세우고 고향 찾을 날 기다려 봅니다. 손주가 우연히 당신 글을 보고 알려 주어 감동 받았소. 이역 만리 미국 시카고 에서

♣ 이름:전설인
♣ 2002/1/28(월) 02:00 (MSIE6.0,WindowsNT5.1) 217.224.29.46 1024x768
♣ 조회:17


■ Re..동창회 유감 (同窓會 有感)

전설인: 정말 가슴 아푼 일입니다. 괜히 제 글을 읽고 마음에 상처를 더 받은것 아닐까요.
죄송합니다. 그러나 어느때 쯤 님께서 고향 땅을 밟을 날이 오겠지요. 그때 까지 건강을 지켜 가길 바람니다.

[이 게시물은 자유로니님에 의해 2004-03-11 02:36:41 수필 게시판으로 부터 이동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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