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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일기] 일기·수필·문학 - 유학 일기 외에 사는 이야기 혹은 직접 쓴 시와 소설을 게재하는 곳입니다.

시소설 東과西 (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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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설인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조회 6,180회 작성일 02-01-17 03:05

본문

 

 



동(東)과 서(西)

                                  -전 설 인



“ 초식 동물인 소에게 고기를 먹이고 유전 조작을 하여 새로운 생물을 만들어 내는등 자연과 신의 섭리를 깨트렸으니 하늘이 인간에게 천벌을 내린 거야. 생각들 해보아. 인간에게 인육을 먹인 꼴이지. 무엇 다를 게 있겠어. 선지자의 예언처럼 인류의 종말이 서서히 다가 오고 있다는 증거야. “
교회 집사 직분을 맡고 있는 최씨의 걱정어린 투의 말이다.
“ 걱정도 팔자네. 우리나라 사람 한테는 그 광우병인가 하는 병이 감히 얼씬도 못 한다데야. 마늘 하고는 상극이데야. 잘 먹고 죽은 귀신은 땟깔도 좋다는 데 신경들 끄고 마늘 둠뿍 넣고 몸보신들 하라고 체력이 바로 국력이라네.” 한국식당 고향집 주인 차씨의 말이다.
“국력 들먹 거리지도 말게, 그래 국력이 남아 돌아 스물 일곱살 먹은 귀떼기 새파란 놈이 천오백억 은행 돈을 봉이 김선달 대동강 물 팔아 먹듯 꿀꺽하고 문 닫을 까보아 국민들 세금으로 공적 자금이란걸 덤뿍 밀어 주었더니 해외에 호화 주택을 사들이고 골프나 치러 다니는 썩어 빠진 인간들이 활개를 치는 세상에 뇌물을 주었다는데 받았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이 오리 발을 내밀며 도리혀 표적 수사니 하며 뭣 헌놈이 큰 소릴 치는 세상에 국력은 왠놈의 국력 타령이야.” 선물 가게를 운영하는 한씨가 빈정거리는 말투로 끼어 들었다.
“제2의 환란이 와야 정신을 차릴까. IMF가 터진지 뒤 몇 년인데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흥청 망청 빚으로 들여 온 딸라를 물쓰듯 하는가 하면 외국 자본을 들여 옵내하며 유수한 기업들의 실권을 외국인에게 넘겨 주고 구조조정 바람에 일자리를 놓친 실업자는 한 겨울철에 서울역 지하도에서 노숙을 하는 비참한 현실인데 한쪽에서는 뭐 말라 비툴어진 햇빛 정책이니 하며 생색도 없이 북한에 뭉치 돈 들을 물 퍼 주듯 주고 눈치나 슬슬 살피면서 그 덕에 노벨 평화상을 받고 서 뭐 어쩌고 저쩌고 신선 놀음에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르는 DJ 정부가 YS 때 보담 나은게 뭣 있어. 영감이 늘그막에 망령이 들렸나. 정신들 차려야지.” 여행사를 운영하다 IMF 이후 줄곧 휴업 상태인 박씨의 말이다.
한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12월에는 각종 모임이 많다. 지역 망년회는 물론이고 출신지역에 따라 향우회. 학교동문회. 래독 동기회 심지어 육해공군 삼군별로 갖는 동우회등 망년회라는 명분을 내 세워 모임을 갖고 오래 동안 잊고 지내던 친지 동기를 마나 그 동안 쌓인 이야기 지난 추억을 꺼내 놓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거나 하게 취기가 올라 말소리가 거칠어 지고 주먹 다짐까지 생기는 경우도 종종 일어 났다. 그래도 오랜 외국생활 이런 자리에 참석 동족들을 만나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으로 마냥 즐거웠다.
“무슨 망발들을 하는 거야. YS가 외화를 바닥낸걸 칠십 먹은 노인네가 절룸 거리는 불편한 몸으로 세계각국을 쫓아 다니며 외화 유치를 한 덕으로 IMF를 벗어 났고 햇볕 정책으로 북한의 철옹성 같은 장벽을 무너 뜨리고 남북 정상회담의 물꼬를 열어 노벨 평화상까지 받은 DJ야 말로 건국이래 역사에 길이 남을 지도자인데 무슨 뚱단지 같은 말들을 하고 있는 거야.” 무대 부근 앞 좌석에서 히포테크라스 선서가 부끄러울 짓만 골라서 하는 M시에 개업의사.仁術을 詐術로 약자의 등이나 쳐 먹는 공박사.(파렴치한 그의 저주 받을 행각은 다음 기회에 밝히기로 하자.) 몇 몇 사람과 한 참 무슨 내용인지 열을 올리던 설회장 (교민 회장을 한 차레 했던 그는 모든 사람이 자기를 회장이라 불러 주길 원했다.)이 언제 나타났는지 한마디 거들며 끼어 들었다.
지금 F시에서 열린 망년회에서 거나하게 주기가 오른 교민 몇 사람이 둘러 앉아 입 방아를 찧고 있는 그 자리에 그가 얼굴을 내 민 것이다. 현란하게 장식한 크리스마스 츄리가 아기 예수 탄생을 기리고 오색 꽃등이 깜박 거리는 무대에는 갈대의 순정이라는 뽕짝을 구성지게 뽑는 오십대 교민의 흥겨운 모습이 돋보이는 흥이 절정을 이룬 망년회 자리 였다.
같이 온 부인네들이 여성 합창단 단원으로 무대에 설 준비를 하느라 자리를 비우자 외톨이 된 사내 몇 사람이 오래 간만에 만난 낯익은 사람을 만나자 무대에서 동 떨어 진 외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들 중에 몇 사람은 주일날 교회 또는 사업 상 자주 만나 지만 그 중 몇 사람은 이런 모임에서 고작 일년에 한 번쯤 만나고 보니 서로 반갑기도 했다. 몇 순 배 술잔이 돌면서 먼저 서로 건강문제로 시작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화두는 남녀 음담으로 돌려져 비아그라가 등장하다가 독일사회 문제로 화제가 모으는 듯 싶다가 말고 본국에 정치로 화제가 바뀌는 등. 순서는 늘 그러했다. 도리 도리 앉아 서로 술잔을 돌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박.임.한.김.차.씨는 독일 F시에서 만난 비슷한 나이 또래에 간호사인 부인을 따라 독일에 정착 독일 직장을 얻고 지금은 정부의 연금을 받는 사람도 있고 또 광부로 독일에 와 현지에서 결혼 자영업을 시작 탄탄한 기반을 닦은 사람도 있는 등 비슷 비슷한 처지에 이런 자리에서 만나면 서로 격의 없이 마시고 이야기 하며 맺힌 울분도 발산하고 큰 소리로 목청껏 웃어 보는 등 화기애애한 자리였다. 그런데 느닷 없이 끼어 든 설회장의 말에 분위기가 약간 험악하게 돌아 갔다. 딴사람이 DJ이를 옹호 하는 말을 했으면 별일이 없이 술자리에서 갑론을박하는 것으로 끝 낼 수 있을 터인데 설회장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자 분위기의 양상이 바뀐 것이다.
교민 사회에서 카멜레온 같은 설회장의 입지를 누구 보담 잘 알고 있는 그들이 반겨 하는 사람도 없는데 불쑥 나타나 언제부터 인지 현정부를 옹호 하는 그의 말에 모두 비위가 뒤 틀렸으나 그와 입씨름을 해 본들 괜히 분위기가 깨질 것 같아 모두 꿀 먹은 벙어리인냥 침묵을 지키고 있는데 유독 다혈질인데다 직선적인 성격이며 광주가 고향인 대규(崔大奎) 만은 달랐다. 그렇치 않아도 해 묵은 일이지만 97년도 국내 대선 때 DJ 후원회를 만들자고 호남 출신 뿐만 아니라 DJ를 추종하는 사람이 뜻을 모아 결성 단계에 이르렀을 때 어떻게 낌새를 눈치 챘는지 공관에서 주재 상사들을 선동해 방해를 하는 바람에 이해 관계가 얼킨 사람이 하나 둘 불참을 하자 후지 부지 끝이 났다. 후에 안 사실인데 설회장이 공관에 발기인 명단을 알려 주어 식당 선물 가게 .여행사 한국 사람을 상대로 하는 업체이기 때문에 그들의 입김이 영향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5.18 광주 사태를 현장에서 몸으로 겪고 그 잔혹상이 아직도 생생하니 뇌 속에 각인되어 있는 그가 고국을 등지고 천신 만고 끝에 독일에 정착을 했으나 오랜 세월이 지나도 그때의 상황이 언제나 머리 속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누구 보다도 DJ를 따르고 그를 존경했다. 국민의 정부가 새로이 집권하면서 바닥난 국가 경제를 IMF에서 탈출케 하고 북한과 정상회담을 갖는 등 노익장을 과시하는 DJ의 탁월한 정치에 흐뭇한 생각을 항상 해 오던 대규는 요즈음 들어 언론에 자주 들먹거리는 비판적인 기사에 늘 불만이 많았다. 검증 없는 인사 정책이며 장마에 논 뚝 터져 오듯 뇌물 비리가 꼬리를 물고 불거져 민심이 이반되는 실책을 거듭하는 정치에 까닭 없이 심사가 뒤 틀려 왔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도 DJ를 비판하는 말들이 화제가 되어 입을 함봉 한 채 자리를 지키고 있자니 마음이 편치 아니 하던 차 설회장이 끼어 드는 바람에 기어코 그의 발끈한 성깔이 터져 나왔다. 설회장이 차라리 DJ를 남들처럼 비판 했으면 심사가 뒤 틀리지 않았을 텐데 DJ를 감싸고 나서는데 그만 열을 받은 것이다.
“당신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어. 오공 육공 때는 전두환 노태우를 우리 민족의 혁명적인 지도자라고 지지하며 삼김은 영원히 지구를 떠라고 떠 별리더니 김영삼 정권이 들어 슬 때는 무슨 이름도 없는 단체의 대표자가 되어 당선축하 광고를 신문에 대문짝 같이 내놓고 지역 감정을 조장하는 DJ이는 대통령 자질이 없다고 하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데 그 입으로 DJ이를 두둔하는 말은 듣기가 거북 한데... 사람이 지조가 있어야지. 말을 바꾸어 타는 것도 한 두 번 이제. 당신이 DJ를 감싸는 데에는 무슨 꿍꿍이 속이 있는가 보군.” 대규의 뼈 돋친 말에 설회장의 얼굴은 금방 터질 듯 붉게 달아 올랐다. 누구 보담 자기 말에 박수를 처 주리라 생각했던 대규의 입에서 불쑥 나온 이외의 말에 설회장은 더욱 흥분을 했던 것이다.
“뭣이라고! 당신 말 다 했어. 터진 입이라고 함부로 말을 막 하는데 명예 훼손으로 당신 고발 할거야. 그 말에 책임 질 수 있지.”
“고발 좋아 허네. 그래 고발 해봐. 더러운 인간 그렇게도 감투가 좋더냐.”
“뭣? 이 자식!” 서로 주먹이 올라 갈듯한 극적인 순간, 탁자에 놓인 맥주 잔과 빈병이 깨지고 탁자가 엎어지는 한바탕 소란이 일어 날듯한 일촉즉발 긴장 된 순간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중용을 지키며 집안에 큰형처럼 어려운 문제나 의견 충돌에 해결사로 등장하는 임씨. 독일에 오기 전에 방송국 성우 생활을 했다는 그의 특유의 제치가 튀어 나왔다.
“워따메. 니기들은 만나면 그놈의 정치 예기로 늘 싸울라 카노. 고마 촤라 그런데 말이다.…가마이 생각해 보이, 니 둘 다 여기에 뭣 땜시로 왔가디 싸울려고 그런디야. 오늘이 다사 다난 했던 이천일년을 보내는 망년회야 쓰잘떼기 없는 일로 이바구 까발리지 말고. 술이나 마시고 즐겁게 놀아 뿔자. 얼쑤!” 영호남을 거처 전국을 왔다 갔다 하는 그의 사투리에 험악한 분위기는 왁자한 웃음으로 변했다. 대규는 슬며시 일어나 그 자리를 빠져 나오며 생각 했다. 설회장의 말이 틀리지 않았으나 그의 입으로 DJ를 운운하는 것이 불결하게 여겨 졌다. 그가 DJ 현정부를 옹호하는 데에는 이면에 이해가 얽인 복선이 깔려 있다는 사실을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새해 신춘에 정부 주관으로 재외동포 평화통일 위원회가 새로이 발족 하는데 유럽측 위원장에 한창 줄을 대고 있다는 설이 파다한 때이니 만큼 설회장의 등장이 예사롭게 여겨 지지 않았던 것이다. 명예 때문에 인간을 저 토록 추하게 할 가. 문득 몇 년 전 일이 떠올랐다.
1998년7월, 유럽에 금년 같은 이상기온은 처음이라고 신문 방송이 연일 떠들어
대고 있었다. 수은주가 30도를 오르 내리는 기온에도 밤이면 엷은 이불을 덮어 쓰고 잠자리에 들어야 할 해발 500미터 타운누스 고지대인데도 연일 기승을 부리는 폭염이 한국의 삼복 더위를 방불케 할 만큼 짜증스러운 날씨였다. 엎치락 뒤치락 실랑이를 하다가 겨우 잠이 들었을까 어렴풋이 계속 들리는 전화 벨 소리에 눈을 떴다. 전광 시계가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런 시각에 전화가 걸려 올 곳은 한국 밖엔 없다. 여덟 시간이라는 시간 차를 아는 사람은 이 시간에는 전화를 하지 않으나 간혹 긴요한 일이 거나 특별한 경우에 만 걸려 오기 때문에 전화 벨이 울릴 때에는 순간이나마 만감이 교차 되었다. ㅡ행여 어머님이..ㅡ 구십이 가까운 노모와 집안 대소 친척들의 모습이 불쑥 떠오르는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휘 졌고 갔다. 수화기를 들자 귀에 익은 목소리가 메아리 쳐 왔다.
ㅡ형주가, 교통 사고로….ㅡ 말끝을 맺지 못하고 울먹이는 형님의 말에 사태를 짐작 할 수 있었다. 철 따라 발간하는 재경 향우회지를 잊지 않고 보내 주는가 하면 누가 요즈음 잘 나가고 누가 죽고 어느 집 딸이 어느 재벌집 며느리로 들어 갔다는 시시꼴꼴한 이야기 까지 꼼꼼하니 챙겨 알려 주던 동네 단짝 친구 형주(朴亨周)가 교통 사고를 당했다 한다. 하필이면 공교롭게도 DJ 국민의 정부가 새로이 집권 할 즈음 평소와 달리 들뜬 마음으로 귀경 길에 오른 그가 호남고속 도로에서 중앙 분리대를 넘어 달려 오던 대형차에 깔려 현장에서 한마디 말도 없이 세상을 등졌다고 한다. 뜻밖의 비보를 전해 받은 대규는 망연자실 잠자리에 들 생각을 잊은 채 베란다로 나가 밤 하늘을 바라 보았다. 두껍게 깔린 구름 사이로 음산한 달빛이 스며 나오고 백양나무 가지 사이로 물기가 벤 끈끈한 바람이 금방이라도 한줄기 비를 몰아 줄 것 같았다.
어릴 쩍부터 골목 단짝으로 지내 왔던 그는 명랑하고 쾌활 한데다 보통이 넘는 재치와 넉살이 좋고 남한테 뒤지지 안으려는 성격 때문에 매번 욕을 보았다.
대규와 대조적인 성격을 가진 그가 단짝이 된 것은 대규 바로 밑에 잘 생긴 여동생이 있기 때문 이었는지도 몰랐다. (인연이 아닌지 결혼은 딴 여자와 했다.)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을 포기한 대규는 양품점을 하는 맏형을 따라 전남 K시에 살게 되고 그는 서울 Y대 경제과를 나와 상업은행에 다니는 뒤로 서로 자주 만날 기회가 별로 없었다. 물론 대규의 처지가 편치 아니해 그를 멀리 한 탓도 있지만 자주 만날 기회가 없다 보니 서로 뜨악하니 사이가 멀어 졌고 대규가 광주 사태이후 천신 만고 끝에 독일 땅에 자리를 잡은 뒤로는 전혀 소식을 모르고 지냈다. 풍문에 고향 후배가 하는 사업체에 무리한 대출을 해준 것이 말썽이 되어 은행을 그만 두고 고향 선배인 야당 국회의원 사무실에 자주 얼굴을 내밀다가 사업쪽인 군납업에 손을 된 뒤로 형편이 풀려 졌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런데 우연히 매년마다 열리는 재경 향우회에서 대규의 형을 만나 반색을 하며 연락처를 알아 간 그가 한밤중에 국제 전화를 걸어와 그때도 잠결에 한바탕 야단 법석이 일어났다. 꼭 만나 보고 싶다는 그의 전화에 마침 한국에 나갈 기회가 있어 십여 년 만에 그를 만났다.
서울 파고다 공원 근처 엘리베터도 없는 삘딍 5층 20여 평 됨직한 그의 사무실을 숨을 헐떡이며 찾아 갔을 때가 서울 올림픽이 열렸던 해 겨울철 이었다. 반백의 나이에 서울 생활 수 십년 인데도 투박한 전라도 사투리는 그대로 였고 세련미는 전혀 없는 강인하고 고집쟁이 시골 면장님 같은 촌스러운 그를 만났을 때 대규는 잡은 손을 한동안 놓을 줄 몰랐었다. 여직원 두 명에 운전기사 사무실 직원이 두 명 그리고 사업 파트너라는 경상도 합천 토박이 학사장교 출신 김 대위가 전부였다.
ㅡ야! 인사 혀라. 나랑 사업 같이 하는 파트너랑께. 김전무! 이 친구 내 깨복쟁이 친구요.ㅡ
ㅡ사장님 한테 말씀 많이 들었읍니더, 독일에서 오셨다고요, 저 김동진이라 합니더. 많이 돌봐 주이소.ㅡ
사업 파트너라고 힘주어 소개하는 김 대위는 경상도의 억센 억양에 규율이 몸에 벤듯한 전형적인 군인 타잎 이었다. 사업 파트너라는 두 사람의 대화를 잠간 듣다 보니 몇 년 전 처가 쪽 사람을 만나려 갔다가 지나 치던 길에 처남을 따라 잠간 들려 장어 국밥을 먹었던 섬진강 부근의 화개 장터가 생각이 났다. 경상도 사투리와 전라도 사투리를 가감 없이 사용하는 두 지역 사람이 사업 파트너라니 그 깊은 뜻을 금방 헤아릴 수 있었다. 동과 서의 공생 공존이라 했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정도를 걸어서는 행세 할 수 없는 암울한 시대에 살아 가는 편법이라는 것을 실감 있게 알게 되었다.
점심을 하자고 끌리듯 찾아 간 곳은 관철동에 있는 울산옥 이라는 설렁탕 전문식당이었다. 널찍한 실내에는 마침 점심 시간이라 그러한지 많은 사람이 몰려 빈자리 찾기가 쉽지 않았다. 겨우 구석 자리를 잡은 그와 대규는 설렁탕과 안주를 주문 했다. 이외로 식사를 주문할 때 또박 또박 표준 말을 사용하는 그의 양면성에 역시 사업가는 무엇인가 남 다른 데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앞섰다. 한 참 후 삼십대의 일하는 아주머니가 주문한 설렁탕과 반찬 몇 가지 그리고 수육 한 접시와 소주를 가져 다 놓고, ㅡ손님! 맛있게 드시이소,ㅡ 하며 진한 경상도 사투리로 말을 했다. 울산옥이라는 이름 그대로 종업원들의 주고 받는 대화가 경상도 사투리고 식사하려 온 손님도 경상도 말을 하는 것이 대부분인걸 보아 경상도 땅에 온 걸까 착각할 정도 였다. 설렁탕과 안주를 겹 드려 소주잔을 몇 순 배 돌리자 약간 취기가 오른 그는 군대 제대 후 은행에 취직 쫓겨난 과정에서부터 지금까지 살아 온 과정을 육두 문자를 섞어 가며 그 진한 전라도 사투리로 거리낌 없이 장황하니 늘어 놓았다. 오히려 주변 사람이 들으라는 듯 더욱 열을 올려 보였다. 그러나 힐끔 힐끔 훔쳐 보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도 시선이지만 옆 자리에서 식사를 하다 말고 빈자리를 찾아 옮겨 가는 대규 나이 또래의 중년 사내를 본 뒤로 그의 마음은 더욱 불쾌한데다 그렇게 정겹게 느꼈던 고향 사투리가 이토록 역겹게 생각이 들 만큼 그와 동석한 자리가 편치 않았다. 헌데 급기야, ㅡ아짐씨! 여그 말국하고 국시 쬐그만 더 주고 쐐주도 한 병 더 갔다 주쇼.ㅡ 하는 큰 소리가 나자 부지런히 숟가락 젓가락을 움직이던 사람들이 동작을 멈추고 바라 보는 눈초리가 동물원에 원숭이를 보는 듯 희한한 눈초리로 흘겨 들 보고 있었다. 개중에는 말뜻을 알고 있는 듯 킥킥 웃는 소리까지 들렸다. 정장 차림에 풍채도 점잖은 신사의 입에서 TV 코메디 프로에서 듣던 전라도 사투리가 튀어 나오자 뭇 시선이 대규와 그를 향해 쏠려 왔다.
누구는 출세에 지장을 준 다하여 서울 말씨나 특정 지역의 사투리를 독습하는가 하며 행여 사투리를 대화 중에 흘릴 가 하여 하고픈 말도 아낀다는데 그는 아랑곳 없이 천연덕스럽게 듣기 거북한 생소한 사투리를 뱉어 냈다.
분명 자기를 향해 하는 말인데 선뜻 그 말뜻을 이해 못한 성깔있어 보이는 종업원 아줌마는 주변에서 킥킥거리는 웃는 소리에 그만 좋은 말은 아닌 듯해 심사가 뒤 틀렸다. 그리 아니 해도 밤새 술 주정뱅이 남편 한테 시달림을 받고 오늘 따라 까다로운 손님들의 재촉에 신경이 곤두선 그녀는 마침 화풀이 상대를 잘 만났다는 듯 종종 걸음으로 다가와, ㅡ손님! 무신 말 입니껴? ㅡ 금방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였다.
ㅡ허허.. 이 아지메 우리나라 말도 몰라뿌네.ㅡ 능청 스럽게 씨익 웃어가며 여유를 보이는 그와 반대로 대규는 그녀에게 전라도 사투리로 설렁탕 국물과 국수(사리) 그리고 소주를 더 달라는 말이라고 설명을 했다. 마치 콩나물 시루 같이 빼꼭하니 발 디딜 틈 없이 들어 찬 만원 지하철에서 잘못 그녀의 엉덩이에 손이 닿아 치한으로 몰릴 뻔한 그런 상황에서 정중히 사과하듯 말했다
ㅡ손님요. 알기 쉬운 우리나라 말을 해야지 예 그라믄 금방 알아 들을 것 아닙니껴.. ㅡ 그녀의 대답이 더욱 가관이었다. 전라도는 우리나라 땅이 아닌가? 망신만 톡톡히 당하고 어떻게 그곳을 빠져 나왔는지 모른다.
두둑한 배짱과 고집스러운 그도 사업 만큼은 어쩔 수 없었는지 경상도 출신의 사업 파트너와 손을 잡고 그 쪽으로 줄을 대어 사업을 한다고 했다. 어떤 방법을 동원 해서라도 얼굴 마담으로 특정 지역의 인사를 회사 중역으로 앉혀야 만 겨우 명함을 내 밀수 있는 것이 현실의 사업 생리라 했다. 뿐인가 우수한 성적으로 국내 유수한 회사에 합격해도 원적을 바꾸지 않는 한 출생지 때문에 면접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는가 하며 설령 입사 해도 한직에서 만년 평사원으로 일해야 하는 불균등한 사회라고 그는 울부짖듯 비통해 했다.
홍익인간의 참 뜻을 묻는 그의 질문에 바로 답변을 못했다. 고질적인 지역 감정 때문에 고급 인력이 제자리를 못 찾고 고국을 등지는 가 하며 빈익빈 부익부의 형평성을 잃은 정치와 사회풍토가 홍익인간의 이념에 벗어난 현실이라는 것을 역으로 그 뜻을 말하며 이러한 모순 된 사회구조를 과감히 개혁하고 평등 세상을 이룩할 신화적인 인물은 오직 한 사람 우리 성님(?) 밖에 없다고 열변을 토하는 그의 말에 대규 역시고개가 절로 숙여 졌다.
그 후 몇 년 재경 향우회지와 고향 소식을 종종 알려주던 그가 정확히 1998년 12월 성탄절을 몇 일 앞두고 신년 연하장과 편지 한 장을 보내 왔었다.
ㅡ중략,
언젠가 자네와 같이 식사 하려 갔다가 봉변 당한 울산옥이라는 설렁탕 집 기억 하제. 요즈음 그곳에 간혹 들리면 그 주인 여자가, ㅡ아그들아 , 저 손님 설렁탕 말국에 국시 좀 넉넉하게 드려라.ㅡ 라고 전라도 사투리가 대접 받는 세상이 되어 뿌렀제. 우리 성님 덕분이제. 정말 오래 살고 볼일이여. 그런디 원채 뿌리가 실하지 못해 참말로 걱정이란께.. 생략.ㅡ
그가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었다. 그러나 그가 편지를 보낸 지 일년도 채 못 되 칠월 어느날 무더운 여름철 고속도로 중앙선을 넘어 온 트럭에 덮쳐 세상을 등 졌다. 하필이면 호남 고속도로에서 ㅡ내가 죽어야 싼디. 내가 깜박 졸았 써라.ㅡ 울먹거리는 전라도 사투리의 중년 남자가 몰고 오던 트럭에 변을 당했다고 했다.
일년이 넘게 지난 일이 새삼스러이 오늘 F시의 망년회 장에서 한바탕 소란이 지나 간 뒤 떠오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망연한 생각을 하며 대규는 쓴 입맛을 다시며 밖으로 나왔다. 주차장에는 교민들이 타고 온 S크라스 메체데스 벤츠와 고급 승용차들이 즐비하니 흡사 전시장을 방불케 위세를 과시하고 있었다.
오늘 망년회를 참석하기 위해 정성껏 세차를 하고 반질 반질 왁스 칠을 하고 한껏 모양을 냈으나 잿빛으로 덮힌 밤 하늘에 목화 송이 같은 함박 눈이 소리 없이 뿌리고 있었다. 그리고 하얗게 덮혀 가고 있었다.
ㅡ 분수를 알아야지. 체면이 밥을 먹여 주나. 실속 있게 살아야 한다구…ㅡ
한해를 보내고 다음 해를 맞이 하는 교민들의 많은 소원이 구슬픈 유행가 소리를 타고 점점 굵어지는 눈발 사이로 스름 스름 대규에게 다가 왔다.
“고향이이..그리워도오오 못가아는 신세에에 …” ㅡ 2002년 새해 벽두.ㅡ

 

 


 

주홍글씨: 전설인. 당신 글 몇 차례 읽었는데 꼭 꼬집어 한마디하지. 현실감이 없어요. 가슴에 찡하니 와 닿는 글을 써 봐요. 가령 백수이야기. 지난번 간략하게 쓴 백수이야기 무척 좋았어. 기대합니다. 부탁해용 전설인 화이팅.. [01/19-09:53]
추천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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