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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일기] 일기·수필·문학 - 유학 일기 외에 사는 이야기 혹은 직접 쓴 시와 소설을 게재하는 곳입니다.

시소설 소설: 실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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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freiheit이름으로 검색 조회 4,242회 작성일 02-01-16 23:53

본문

도착을 몇 시간 앞두고 혼란스러운 꿈으로부터 부산한 소리에 잠이 깨었을 때 기내 텔레비전에서 한국의 방송으로 보이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아나운서의 알아듣지 못할 설명 뒤에 이어지는 화면은 이따금씩 지구의 반대편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이스라엘 군인들과의 심한 몸싸움을 방불케하는 장면이 이어졌다. 짙은 연막이 학생인 듯 해 보이는 무리를 감싸고 뒤이어 방독면에 무장을 한 경찰들이 곤봉을 휘둘러 대고 있었다. 발 밑으로는 뉴스와 대조적으로 거대한 한 도시가 형형색색의 조용한 늦 가을의 산들에 화려하게 둘러 싸인 채 침묵하고 있었다. 옆자리의 본과 메일주소를 교환하고 그녀를 기꺼이 도와주겠다는 말을 뒤로 하며 멜라니는 국내선 청사로 옮겼다.
그녀는 몇해 전 알랙스가 한국에서 밟았을 흔적을 그대로 밟아야 그가 사라진 원인을 알아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우선 종렬 부모님의 고향인 광주를 첫 행선지로 정했다. 물론 잃어버린 부모를 찾는 것이 알랙스에 의해 이루어졌더라면 그가 그처럼 슬퍼하진 않았을 것을 기억하며 그 일이 단조로운 숨바꼭직 정도라고는 생각치 않았다. 하지만 80년 오월 행방불명이라는 서류만으로 사람들은 고개를 저었고 그들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그 부모는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대답이었다. 아마 종렬도 이곳 광주에서 부모가 다시 독일로 돌아오지 못한 이유를 알아 내고는 그들을 더이상 원망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허탈에 잠겼을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독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이 땅에서 어느 누구도 모르는 곳으로 영영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멜레나는 한국 여행을 통해 알랙스가 갑작스레 변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며칠 후 소식을 알아본 본이 그녀에게 보낸 이메일도 마찬가지였다. 해당 위원회에 문의한 결과 종렬의 부모는 생사를 알 수 없이 단지 실종으로만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독일 생활에 실패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시작하려는 가난하고 무지한 사람들이었을 뿐 정치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멜라니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들이 살아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 과정에 희생된 사람들 뿐만 아니라 종렬의 부모처럼 생사가 분명치 않은 사람들이 아직 많은 숫자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전 알랙스가 그녀에게 던진 말을 멜라니는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감상에 빠진 전쟁칼럼을 쓰기보다는 차라리 한국에 가 보라는 그의 말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그녀는 알랙스의 자취를 밟으며 조금씩 알 수 있었다. 그녀가 광주에서 시간을 보내며 종렬, 혹은 알랙스의 부모에 대해 알아본다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음을 알았다.

거대한 모습으로 서울이 그녀의 앞에 다시 섰을 때 멜라니는 사라예보를 떠올렸다. 시간이 지나면 그곳이 서울과 같은 모습으로 꾸며질 수 있을지를 생학했다. 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여인들이 핑크빛 드레스를 입고 웃는 얼굴로 아비를 모른 채 태어난 그들과 다시 한데 어울려 행복하고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지금의 서울과 같은 거대한 모습으로 도시가 서기 위해선 또 다시 많은 희생이 되풀이되어야 할 지 모른다는 생각에 문득 두려움을 느꼈다. 그러나 해방 50년을 맞은 서울도 심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어느 곳에서도 예전의 전쟁과 지배와 그리고 광주의 상처는 발견할 길이 없었지만 서울은 외부 지배에 대한 옛 저항에서 지금은 스스로에 대한 강한 저항을 하고 있음을 느꼈다. 안개처럼 짙게 깔린 최루가스 사이로 날아가는 콘크리트 조각 하나 하나가 그들가 맞선 경찰이 목표가 아닌 다른 골리앗의 모양을 한 거대한 것임을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수많은 원혼들을 등에 짊어진 사람들이 서울에 우뚝 솟아있는 빌딩만큼이나 거대한 골리앗 앞에서 개매떼처럼 모여 돌팔매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날아가던 돌맹이는 연기같은 골리앗을 힘없이 뚫고 나서 가느란 포물을 그리며 땅으로 떨어지곤 했다. 그들은 아무래도 승산없는 싸움을 하는 것 같아 보였다. 골리앗이 마침내 포효를 하고 성큼 그들로 다가설 때 포로가 된 이들은 골리앗이 내품는 연기 속으로 사라졌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밝은 쪽으로 빠져 나가려 몸부림쳤다. 이러한 서울을 본 멜라니는 본이 남기고 간 메일넘버를 찾아 그녀에게 보이는 현상의 혼란스러움을 이야기했다.
- 당신이 쓰려는 기사에 도움이 될 지 모르지만 솔직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들은 싸움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말을 하려는 거예요...-
그녀의 메세지를 받는 본은 며칠 뒤 멜라니의 컴퓨터에 다시 메세지를 전해 왔다.
-...전직 대통령들을 구속하라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로 인해 눈 뜬 채 죽거나 갇혀있는 사람들의 말을 대신 전하려는 거지요. 사라진 당신의 입양된 한국 동생의 부모처럼 이유없이 없어진 사람들에 책임을 지라는 걳이고 또 한가지는 책임자들을 처벌하라는 것이지요. 그들은 8년 동안 이렇게 싸워왔답니다. 그래서 그동안 나는 뭘 했느냐고 사람들이 묻는 것이 내가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예요. 사실 도암갔었거든요. 내가 라인강에서 독일 계집과 긴 섹스를 하는 동안 동료들은 끊임없이 싸우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한국에 나오는게 두렵기도 했어요. 하지만 지금이라도 돌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은 듭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성의껏 한국의 실정에 대해 그녀에게 설명해 주려 했다. 물론 많은 부분은 이미 알려진 부분이긴 했지만 본의 설명은 멜라니의 상식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메일을 계속 보내 왔다.
- 많은 독일의 사람들은 미디어를 귀찮아 하더군요. 그들과 이유는 다를지 모르지만 저도 미디어를 믿을 수 없습니다. 사실을 전하는 미디어를 믿지 못한다는 것이 북행이긴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당해 왔습니다. 세계로 비쳐지는 한국의 모습은 순수한 자국인의 시각일 순 없어요. 이미 한국에서 한번 걸러진 내용을 그대로 전하는 것뿐이니까 그 내용이 왜곡되었다면 독일서 보는 것도 왜곡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당신이 미디어를 통해 알고 있는 한국은 존재하지 않는 걸로 해 두는게 좋겠습니다.-
그는 특히 보도의 내용을 전면 불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본 자신만의 병이 아니라 대부분의 한국사람이 가진 후천성 불치병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멜라니가 전후50년의 기사를 정리할 즈음 보스니아 전쟁지역에서는 미국 중재하에 정전의 기본원칙에 합의한 후 전쟁이 약간의 종전의 틈새를 보였지만 유엔의 경제 봉쇄를 받은 신 유고연방의 실업율이 극에 치닺고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계의 총성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지금껏 기사를 써왔던 보스니아전은 그녀가 한국에서 동생의 발자취를 밟는 동안에도 이렇듯 승자와 패자가 서로 엇갈리며 심한 줄싸움을 그치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연합군의 개입 이후 그 사태는 더욱 심해졌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지만 독일과 프랑스를 비롯한 주위의 유럽 강대국들은 여전히 어린 아이의 싸움을 말리듯 이따금씩 강한 압려글 가하기도 했다. 많은 전쟁 난민들이 서유럽으로 쏟아져 나오고 그들은 서방 사회에서 오갈 곳 없이 종종 굶주린 스킨헤드의 먹이가 되곤 했다. 보스니아전은 결국 발칸반도의 예루살렘이라는 사라예보의 문제의 정리를 놓고 마지막 단판을 지으려 하고 있었다. 이렇듯 외부세계도 시비가 엇갈린 채 총성과 죽어가는 사람들의 신음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멜라니는 한국에서 학생들과 경찰들과의 싸움을 해방 50년 이후의 한국 모습으로 상징화하며 그녀의 명목상 한국여행을 정리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한국의 지금 모습이 보스니아전과 같은 민족전을 거쳐 발전된 모습으로 해석하곤 했지만 그녀는 그렇게 해석할 수 없었다. 이데올로기와 정치로 만들어진 체제라는 동질성은 결국 민족전의 양상으로 그 갈등이 계속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 한국전은 결국 해방과 동시에 분단된 이데올로기의 전쟁이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을 통해서 그 분단이 더욱 확실히 되었던 것뿐입니다. 그것은 지금 사라지고 없는, 자본주의에 팔려진 옛 소련과 미국과의 이념 갈등이 한반도에 집약되었던 것이기도 하지요. 당신이 쓰려는 한국의 해방 50년은 결국 분단 이데올로기의 역사입니다. 일제로부터의 해방은 결국 이념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과제를 안겨 주었죠...-
멜라니가 기사를 정리한다고 본에게 전하고 난 뒤 그녀의 메일 주소로 본이 보낸 내용은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았다.
- ...독일은 패망이후 경제, 정치의 차원에서 미국, 프랑스, 영국 그리고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지만 독일의 패망에 이은 일본의 항복 후, 해방을 맞은 한국은 아이러니하게도 독일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소련 등 강대국들의 지배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것은 독일과 같은 전범에 대한 경계의 차원이 아니라 무지에 대한 교화의 차원이라고 할 수 있었지요. 한국은 해방 후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된 나라로 인정되었고 미국과 소련의 참정하에 길게는 50년, 짧게는 30년 정도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서방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숱한 좌익과 우익의 싸움 끝에 한국전쟁이 발발했습니다. 그리고 40년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 그 이념의 대립은 지금껏 집권을 했던 독재 정권이 정당성을 위해 내세우는 가장 강력한 보호망이 되어 있었죠.
그리고 한가지, 찾는 동생에 대한 소식이 있습니다. 한국에 머물며 1년 동안 대학에서 한국어를 배우다 돌아갔다고 하더군요. 유가족 모임에서 얼핏 들은 이야깁니다. 피해보상 위원회의 몇몇 사람들은 동생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같더군요.-
그도 그랬을 것이 알랙스가 한국에 머무는 동안 체류허가의 근거로 어학기관에 적을 두었음은 멜라니도 짐작했던 바였다. 그러나 부모의 소식을 전해들은 그가 부모를 생각하며 위원회 사람들과 친분을 나누었다는 것은 멜라니가 미쳐 색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오랜 기간 동안 그에겐 부모의 존재가 그리움이나 혈육의 상징같은 낭만으로 남아있진 않았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단순히 자신의 뿌리를 알기 위해 한국에 왔을 것이라고 멜라니는 생각하고 있었다. 어찌되었던 그녀는 잃어버린 한국에서의 알랙스의 발자취를 다시 찾은 셈이다. 부모의 실종에 대한 알랙스의 심경에 조금 더 가까이 접근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멜라니는 생각했다.
'내가 한국에 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친절했어. 왜냐면 겉모양이 똑같았으니까. 하지만 내가 한국말을 못하는 것을 알고선 나를 마치 장애자 정도로 여겼고, 사정을 이해하고선 동정을 하기 시작했지. 하지만 그들 중 나를 가장 따뜻히 대해 준 사람들이 있었어. 그들은 모두 한국사회로부터 상처받은 사람들이었어. 나는 그래서 그들의 삶에 함께 하고 싶었지. 그것은 나의 또 라는 삶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야. 누나가 쓰고 있는 이스라엘과 보스니아전에 대한 공통점이 뭔 줄 알아? 그들은 모두 정당한 목적을 두고 싸운다는 거지. 이스라엘에선 예루살렘을, 그리고 보스니아에서는 사라예보를 놓고 나름대로의 옳은 목적을 두고 싸우는 거야. 하지만 한국에서의 싸움은 분명 승자와 패자가 있어야만 하는 싸움이야. 그들에게는 예루살렘이나 사라예보가 있는게 아니야. 그들에게는 분명 풀어야 할 과제가 있어. 내가 한국에서 알고 지낸 이들은 그런 싸움에 자신의 삶을 저당한 사람들이었어.'
어쩌면 그의 말이 옳은지 몰랐다. 그들이 수단과 방법을 배제한 채 종교의 성지를 서로 차지하려는 것은 유대인이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거룩한 투쟁임에 틀림없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유대인들이, 유대인들에게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적이다. 그들 모두가 자신이 신봉하는 종교의 계율에 따라 사탄을 처단하는 것은 그들의 율법이자 의무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알랙스가 자신을 따뜻히 대해 주었다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그들을 만나보았지만,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본이 말한 보상위 사람들 틈에서도 종렬의 실종에 대한 자세한 의미를 알 수 없었다. 단지 그가 한국인의 모습을 한 이방인으로, 사라진 부모를 위해 앞서 싸우지 못하는 것을 괴로워했다고 주위사람들이 전했다. 그가 한국에 다녀와서 몸의 일부라도 되는 듯 주머니에 넣고 다녔던 콘트리트 조각도, 아마 날아갈 방향을 잃고 그의 주머니속에 몰래 들어간 그의 갈등일 지 모른다고 멜라니는 짐작할 수 있었을 뿐이다. 최루가스의 연막을 뚫고 콘크리트 조각들이 끊임없이 날아가는 것을 보며,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주머니안에서만 부서진 채로 자리를 지키는 힘없는 돌조각을 떠올리고는 허슬하게 혼자 웃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 그녀도 종렬이 남겨준 콘크리트 조각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알랙스의 실종이 틀림없이 한국 부모와 깉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 외에는 그를 숨게 할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더 이상 종렬의 종적을 밟고 싶지 않았다. 그가 숨으려는 이유를 알게 된 이상 그를 찾는 것은 오히려 그를 괴롭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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