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얘기 로마유적을 발견, 횡재한 벼락부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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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자유로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4,787회 작성일 01-09-04 22:21본문
오늘 아주 재미있는 일화를 하나 들었다. 로마유적을 발견해 벼락부자가 된 쾰른사람의 이야기이다.
쾰른시는 두번의 영화가 있었다. 한번은 쾰른성당으로 대표되는 중세의 영화이다. 그래서 쾰른을 중세의 도시로만 알기 쉽지만 사실은 2천년전쯤에 로마사람들이 건설한 계획도시가 쾰른이다. 그래서 쾰른성당 바로옆에 자랑스럽게 게르만로마박물관이 위치하고 있으며 많은 로마유적을 전시하고 있다. 쾰른은 1평방킬로미터쯤의 지역이 바둑판처럼 구획된 계획도시로서 약 1만명이 살수 있었다. 지금도 그정도의 복지를 누릴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상하수도 시설이 완비되어 있었다. 지금도 쾰른 구시가들 돌다보면 이때의 하수도시설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물은 쾰른에서 약 7-80킬로 떨어진 아이펠지역에서 수도관을 통해 갖다 먹었다.
웃기게도 쾰른이라는 이름은 식민지라는 뜻의 칼러니와 어원이 같다. 도시의 이름치고는 조금 부끄러울 법하지만 그 당시 게르만들의 미개한 문화수준을 생각해보면 로마의 식민지였다는 사실이 일찍 문명세계에 동참했다는 자랑스러운 징표처럼 되어 결국 그 이름이 지금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이렇게 역사가 2천년이 넘는 쾰른인지라 조금만 공사를 하다보면 유적이 나와 공사를 중단한 곳이 시내곳곳에 널려 있다. 그리고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얘기는 이때문에 횡재를 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쾰른에 유독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기집이 비좁은 옛날건물이라서 좋아하는 파티를 치르기에 마땅치 않은 것에 불만을 가지고 집 지하실을 넓히기로 작정했다. 그의 집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어 함부로 증개축을 할 수 없었고 조금의 변화라도 시에 신고를 해야만 했다. 지하실증축을 시가 허가해줄리 없다고 생각한 그는 자기혼자만 알기로 하고 밤에 몰래 지하실을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가 한쪽 벽을 허물고 조금 파들어가자 이상한 딱딱한 것이 잡혔다. 돌이었다. 그는 이상한 느낌이 들어 이 돌의 일부를 가지고 전문가를 찾아갔다. 얼마후 그 전문가는 흥분해서 이 돌은 무척 귀한 로마의 유적이라며 그에게 어디서 구했냐고 물어왔다.
그 전문가에게는 그냥 길에서 주운거라고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둘러대고 그는 매일 밤마다 혼자 지하실에 내려가 벽을 파기 시작했다. 이러기를 약 3개월쯤 그는 마침내 큰 돌덩이를 전부 파내고는 무슨 용기가 났는지 당당하게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제법 쇼맨십이 있는 사람이었던듯 하다.
이 문화재는 생각보다 가치가 있었는지 꽤 비중이 큰 뉴스로 다루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의 한 박물관에서 3백만마르크에 사겠다는 제의가 들어왔다. 그런데 그는 선뜻 백만마르크나 적은 돈을 제의한 쾰른의 게르만박물관에 이것을 팔았다고 한다.
걸작인 것은 그가 벼락부자가 된 뒤로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그는 기쁜 나머지 거의 매일이다시피 그 지하실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파티를 열면서 자신의 무용담을 자랑하곤 했다는데 이러기를 10년만에 결국 2백만마르크를 다 날리고 쫄딱 망했다는 것이다.
쾰른시는 두번의 영화가 있었다. 한번은 쾰른성당으로 대표되는 중세의 영화이다. 그래서 쾰른을 중세의 도시로만 알기 쉽지만 사실은 2천년전쯤에 로마사람들이 건설한 계획도시가 쾰른이다. 그래서 쾰른성당 바로옆에 자랑스럽게 게르만로마박물관이 위치하고 있으며 많은 로마유적을 전시하고 있다. 쾰른은 1평방킬로미터쯤의 지역이 바둑판처럼 구획된 계획도시로서 약 1만명이 살수 있었다. 지금도 그정도의 복지를 누릴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상하수도 시설이 완비되어 있었다. 지금도 쾰른 구시가들 돌다보면 이때의 하수도시설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물은 쾰른에서 약 7-80킬로 떨어진 아이펠지역에서 수도관을 통해 갖다 먹었다.
웃기게도 쾰른이라는 이름은 식민지라는 뜻의 칼러니와 어원이 같다. 도시의 이름치고는 조금 부끄러울 법하지만 그 당시 게르만들의 미개한 문화수준을 생각해보면 로마의 식민지였다는 사실이 일찍 문명세계에 동참했다는 자랑스러운 징표처럼 되어 결국 그 이름이 지금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이렇게 역사가 2천년이 넘는 쾰른인지라 조금만 공사를 하다보면 유적이 나와 공사를 중단한 곳이 시내곳곳에 널려 있다. 그리고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얘기는 이때문에 횡재를 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쾰른에 유독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기집이 비좁은 옛날건물이라서 좋아하는 파티를 치르기에 마땅치 않은 것에 불만을 가지고 집 지하실을 넓히기로 작정했다. 그의 집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어 함부로 증개축을 할 수 없었고 조금의 변화라도 시에 신고를 해야만 했다. 지하실증축을 시가 허가해줄리 없다고 생각한 그는 자기혼자만 알기로 하고 밤에 몰래 지하실을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가 한쪽 벽을 허물고 조금 파들어가자 이상한 딱딱한 것이 잡혔다. 돌이었다. 그는 이상한 느낌이 들어 이 돌의 일부를 가지고 전문가를 찾아갔다. 얼마후 그 전문가는 흥분해서 이 돌은 무척 귀한 로마의 유적이라며 그에게 어디서 구했냐고 물어왔다.
그 전문가에게는 그냥 길에서 주운거라고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둘러대고 그는 매일 밤마다 혼자 지하실에 내려가 벽을 파기 시작했다. 이러기를 약 3개월쯤 그는 마침내 큰 돌덩이를 전부 파내고는 무슨 용기가 났는지 당당하게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제법 쇼맨십이 있는 사람이었던듯 하다.
이 문화재는 생각보다 가치가 있었는지 꽤 비중이 큰 뉴스로 다루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의 한 박물관에서 3백만마르크에 사겠다는 제의가 들어왔다. 그런데 그는 선뜻 백만마르크나 적은 돈을 제의한 쾰른의 게르만박물관에 이것을 팔았다고 한다.
걸작인 것은 그가 벼락부자가 된 뒤로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그는 기쁜 나머지 거의 매일이다시피 그 지하실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파티를 열면서 자신의 무용담을 자랑하곤 했다는데 이러기를 10년만에 결국 2백만마르크를 다 날리고 쫄딱 망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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