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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일기] 일기·수필·문학 - 유학 일기 외에 사는 이야기 혹은 직접 쓴 시와 소설을 게재하는 곳입니다.

유학일기 볼프람의 에셴바흐에 다녀오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하일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8건 조회 5,905회 작성일 04-12-03 06:26

본문

1. 다녀온 것은 9월이지만 게을러서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야 씀;;

볼프람의 에셴바흐(Wolframs Eschenbach)는 바이에른 주 뉘른베르크 근방에 자리잡은 도시다. 도시 이름이 에셴바흐면 에셴바흐지 앞의 볼프람은 뭐냐고? 그렇지 않아도 원래 이름은 그냥 에셴바흐였는데 20세기 초 마을 주민들이 „우리 도시에서는 어차피 천년 만년 있어봤자 볼프람보다 더 유명 인사가 탄생하지 않을테니 까짓거 도시 이름을 홍보나 할겸 볼프람의 에셴바흐로 바꿔 버립시다“해서 볼프람의 에셴바흐라 불리게 되었다.

거기 „난 볼프람이 누군지 모르는데 내가 무식한 건가“하는 당신, 지극히 정상이다. 길가는 독일인 붙들고 물어봐도 대부분은 모를 것이다. 볼프람은 13세기 초에 활동한 중세 독일 시인으로 파르치팔, 빌레할름(하일트가 구두 시험 본 바로 그 작품이다), 티투렐 등의 서사시와 몇몇 연애시를 남겼다. 바그너의 악극 파르지팔과 로엔그린의 원작자이자 바그너 오페라 탄호이저에는 들러리로 등장하기도 한다.

볼프람이 활동하던 시대부터 그의 고향 도시가 그의 이름을 따서 개명되기까지는 700년의 세월이 흘렀다. 바꿔 말하면 700년 동안 그 도시에서는 볼프람보다 더 유명한 인간이 단 하나도 태어나지 않았고 주민들은 자포자기한 나머지 „지금까지 700년 동안 볼프람보다 더 출세한 인간이 하나도 없었는데 앞으로인들 변변한 놈이 나겠나“해서 도시 이름을 갈아버렸다는 뜻이다.

그리고 하일트가 보기에도 도시 주민들의 믿음은 옳다. 여지껏 ‚도시’라고 쓰긴 했지만 실상은 인구가 몇 백명에 불과한 마을이다. 기차역은 커녕 하루에 몇 번 안다니는 버스마저도 주말에는 끊겨버린다. ‚뉘른베르크’ 근방이라고 쓰긴 했지만 그건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알만한 도시로는 그 주위에 뉘른베르크가 유일하기 때문에 그렇게 쓴 것 뿐, 사실은 뉘른베르크까지 곧바로 가는 차편도 없다.버스를 타고 기차역이 있는 주위 소도시로 가서 거기서 다시 뉘른베르크 행 기차를 타야 한다.
말하자면,

설사 카이사르나 알렉산더 대왕이 환생한다 해도 이 따위 환경에서는 동네 이장 이상의 야심을 품을 수 없어!!

라는 무서운 장소인 것이다.

그러나 평생 도시 촌놈으로 살아서 차편 시간표만 봐서는 이 곳의 무서움을 짐작할 수 없었던 하일트는 비바 선샤인 티켓을 산 기념으로 볼프람 고향에 가서 볼프람 박물관이나 구경하고 와야겠다는 소박한 계획을 세웠다. 독일 체류 기간을 다합쳐 3년이 넘어가는 상황이지만 아직까지 그 곳에 못갔던 것은 베를린부터 거기까지 갈 교통비가 부담스러워서 였는데 도이췌 반에서 여름 특별 상품으로 199유로를 내면 한 달 동안 독일 내 기차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정기권을 내놓았고 그 덕택에 인근 기차역에서 볼프람의 에셴바흐까지 가는 버스비와 박물관 입장료를 빼면 따로 돈 들 것도 없어 보였다. 베를린 동역에서새벽 6시 22분 기차를 타고 오전 11시 경에 뉘른베르크에 도착한 뒤 다시 거기서 완행 열차로 갈아타 Heilsbronn이라는 곳으로 가서 버스를 타면 13시 39분에 볼프람의 에셴바흐 도착. 2시에 개장하는 박물관을 보고 사진 좀 찍은 뒤 오후 5시 5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비슷한 경로로 오면 밤 열 두 시 좀 넘어서 베를린 도착. 따로 숙박비를 물 필요 없이 당일치기 여행이 가능하다…는 것이 짱돌을 굴린 결과였다.

당일 치기 여행 답게 복잡한 짐은 필요 없고 기차 안에서 읽을 책이랑 디카 정도만 챙긴 뒤 밤을 꼴딱 새고 (기차 시간에 맞춰 일어날 자신이 없었으므로) 베를린 동역에서 열차에 올랐다. 역에서 산 샌드위치를 아침으로 먹어치우고(역 바닥에 한 번 떨어트리긴 했지만 역 바닥이 어차피 내 손보다 깨끗할 거 같아서 그냥 먹었음) 책이랑 조간 신문 뒤적거리다 낙서하고 놀다 꾸벅꾸벅 졸다 뉘른베르크 역에 도착, 기차를 갈아타고 Heilsbronn에 도착했다. 그랬더니…

엘렌딜, 비온다!!

그 전 며칠 날씨가 좋아서 우산을 안챙겼더니 하필 그날따라 추적추적 비가 온다. 게다가 이 Heilsbronn은 명색이 기차역 주제에 따로 대합실도 없는 건지 대합실 문을 잠궈놓은 건지 들어가서 비 피할 데도 없고. ‚나 사실 볼프람 별로 안 좋아하는데…’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아무리 따로 기차값이 안든다 해도 여섯 시간 가량 기차 타고 여기까지 왔다가 ‚비가 와서’ 도로 베를린으로 간다는 것도 억울했다. 짐보따리 역할 하는 책가방을 끌어안고 배타고 밀입국 시도하다 난파되어 해안까지 헤엄쳐온 난민 꼴로 버스를 기다리기 시작.

한 시간만에 도착한 버스는 중고딩 정도 되는 애들로 가득찼다. 아무리 한적한 동네라도 평일 새벽과 점심 , 저녁무렵 하루 세 번은 꼬박꼬박 버스가 다니는 건 이 버스가 아이들의 통학 버스와 어른들의 출퇴근 버스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인구수가 적어 학교도 드문 드문 있다 보니 아이들이 좀 떨어진 곳 학교를 다니는 경우가 많나보다.

여전히 책가방을 끌어안은 채 자리를 잡았더니 자기네 학교 전학생인 줄 알았는지 옆의 중딩 정도 나이 남자애가 ‚너 어디서 내려’ 묻는다.(Sie가 아니라 Du를 쓰는 게 나를 몇 년 꿇어서 좀 삭아보이는 자기네 김나지움 학생으로 본 거 같음) 외부 사람은 거의 없고 주민들만 이용하는 버스인지 다음 정차할 곳은 어디라고 알려주는 표시도 없다. 만약 기사 아저씨에게 미리 나 볼프람의 에셴바흐까지 간다고 얘기 안해놨으면 갈아탈 곳도 놓칠 뻔 했다.

갈아탄 버스 역시 안내 방송 따위 없음. 와글와글한 아이들 틈에 껴서 자리도 못잡고 서있다가 대충 여긴가 싶은 곳이 나타났을 때 운전 기사에게 여기가 볼프람의 에셴바흐 맞냐고 확인하고 내렸다.

아아, 드디어 이 곳이 볼프람의 고향이란 말이지. 주위를 둘러보니 여느 한적한 바이에른 마을같다.(한적한 마을이라도 바이에른과 동독 지역은 분위기가 영 틀리다. 뭔 말인지 직접 가보면 안다) 옛날 성문도 보이고 작지만 성벽 비슷한 것까지 보이는 게 날씨만 좋았으면 꽤 예쁜 동네였을 거 같다.

많이 잦아졌지만 아직도 찔끔 내리는 비를 맞으며 어느 길이 광장으로 가는 길일까, 나중에 집에 갈 때는 어디서 버스를 타야 하나 살펴보다 ‚내가 새벽부터 수선 떨어가며 여기까지 왔는데 증거 사진이 하나도 없어서 나중에 아무도 내가 여기 왔던 걸 안믿어주면 얼마나 억울할까’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황급히 마을 표지판을 증거 사진으로 남겼다.

Eschenbach1.JPG

이것은 마을 풍경 일부.

Eschenbach2.JPG

이 도시 최대 명사의 박물관 답게 볼프람 박물관은 도시 최대 번화가이자 중심지인 광장에 자리잡고 있었다. 아마 시청 옆에 위치해 있었던 것 같다.

역시 광장에 위치한 Sparkasse 지점. 어디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왠지 귀엽지 않은가?

Eschenbach17.JPG

박물관 입장료는 학생 할인을 받아 1유로. 박물관 입장권 파는 곳은 관광 안내소 역할도 한다. 이 곳을 찾아오는 관광객이라면 볼프람 박물관 이외의 목적이 있을 리가 없으므로. 사진 찍어도 되냐고 물었더니 얼마든지 마음대로 찍으란다. 박물관에 따라서는 아예 못찍게 하거나 따로 돈 받고 사진 허가증을 내주는 곳이 많은데 여긴 인심도 후하다.

본격 전시실에 들어가 봤더니 왜 사진을 막 찍어도 되는지 알 거 같았다. 볼프람은 한 이삼백년도 아니고 칠백년도 더 전 사람이다. 이 날 이때까지 관련 유물이 남아있긴 커녕 생몰연도도 불명이다. 사실은 정말 에셴바흐에서 태어났다는 보장도 없다. 그냥 그가 자신을 ‚에셴바흐의 볼프람 Wolfram von Eschenbach’라고 일컫기에 거기가 고향인갑다 하는 거지 조상 대대로 거기서 살아온 집안인지 어쩌다 거기서 자란 건지 사실은 토박이도 아닌데 그냥 동네 풍수가 마음에 들어서 그 동네 출신이라고 우기는 건지 아무도 장담은 못한다. 볼프람의 무덤이 이 곳에 있었다는 후대의 기록은 있지만 여지껏 그 무덤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고. 따라서 이 도시가 볼프람 고향이랍시고 딱히 관광객 보여줄만한 유물이나 자료를 갖고 있을 리도 없다. 단지 자료 때문이라면 꼭 이 교통 후진 마을에다 박물관을 지어놓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관광객들에게 사실 그대로를 털어놓고 „우리 마을이 볼프람 고향이라고는 하는데 사실 관련 유물은 아무것도 없어. 그냥 ‚볼프람 고향에 와봤다’는 사실 만으로 만족하고 가슈“했다가는 그나마 마을 유일의 관광 자원을 날려버리는 셈. 그래서 박물관 측은 박물관 인테리어를 현란하게 꾸며서 관광객들로 하여금 ‚뭐라고 딱히 설명은 못하겠는데 하여간 볼프람에 관한 무언가를 많이 봤어’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게 했다. 예를 들어 다음 전시물을 보시라.

Eschenbach4.JPG

저 ‚Herre, wie stet iwer not?’라는 문구는(앞부분이 잘렸다;;) 파르치팔에 나오는 대사로 현대 한국어로 옮기자면 „님아 어디 아프셈“쯤 된다. 여기서 파르치팔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파르치팔 아빠는 잘 나가는 기사였는데 기껏 예쁜 여왕이랑 결혼해서 자기 왕국까지 가진 주제에 괜히 심심하다고 남의 왕국 가서 모험하다가 비명 횡사했다. 하나뿐인 유복자 아들까지 그런 꼴이 될 걸 우려한 파르치팔 엄마는 절대 아들은 기사같이 위험한 직업을 안 갖게 하겠다고 아예 숲 속 깊이 들어가 세상이랑 접촉 없이 애를 키웠는데 그놈의 피는 못속이는 법이라서 어느날 숲속을 지나가는 기사들을 본 파르치팔은 그만 필이 꽂혔는지 자기도 저거 되겠다고 대뜸 가출한다.

하지만 여지껏 숲속에서 엄마랑 시녀들이 세상 전부인줄 알고 컸던 애가 칼은 쓸 줄 알 것이며 사람 대하는 법은 알 것인가. 의욕은 넘치지만 머리에 든 게 없어 좌충우돌 삽질하는 파르치팔을 구르네만츠라는 영주가 앉혀놓고 „칼은 이렇게 쥐고 말은 저렇게 타는 거며 다 큰 남자는 엄마 타령 같은 건 하지 않는 거란다. 게다가 너 왜 머리는 빈 게 말은 많니. 누가 먼저 묻지 않으면 제발 입 좀 다물고 있어. 너 얼굴은 쫌 되니까 입만 다물고 있음 그래도 사람들이 ‚오오~ 카리스마~’할거란다“하고 무술과 처세술을 가르친다. 구르네만츠의 진짜 의도는 머리는 텅 비었어도 운동 신경 타고나고 얼굴까지 반반한 파르치팔을 제대로 키워 사위 삼겠다는 것이었지만 정작 중요한 구르네만츠 씨의 딸의 매력이 이 천방지축을 붙들어 놓기에는 약간 모자랐는지 파르치팔은 다시 모험을 떠난다.

여차저차한 끝에 파르치팔이 도착한 곳은 성배왕의 성.(이 작품 속의 Gral은 전설 속의 성배가 아니라 운석같은 돌이지만 그 사연까지 설명하자면 귀찮으니까 그냥 성배라고 부를란다) 성배왕은 마침 앓아누운 참이었는데 그 병은 다른 힘으로는 못고치고 누군가 그 성에 와서 „님아 어디 아프셈“하고 물어봐야 나을 수 있는 신기한 저주였다.(하긴 내가 신의 입장이라도 세상을 창조하고 처음 몇 천년간은 의욕에 넘쳐 좋은 세상 만들어보고 피조물들을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애써보겠지만 세월 좀 지나면 다 심드렁해져서 이상한 저주나 개발하면서 심심함을 잊으려 할 거 같다)

성의 주민들은 하룻밤 묵어가겠다고 찾아온 파르치팔을 보고 ‚오오 이 사람이 저주를 풀어줄 사람이겠군’하고 기뻐한다. 하지만 정작 파르치팔은 왜 신수도 훤한 성주 아저씨가 그리도 끙끙 앓는 소리를 내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몹시 궁금했지만, 대체 뭐가 문제냐고 묻고 싶어 입술이 간질간질했지만, 성주 아저씨의 병명이 뭔지 알고 싶어 환장할 기분이었지만, 원체 교육빨이 잘 받는 체질이다보니 구르네만츠의 훈계를 기억하고 끝끝내 어디가 아프냐고 묻지 않고 그냥 차려진 밥상 깨끗이 비우고 손님용 특실 가서 편히 누워 잤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파르치팔이 성주의 고통에 대놓고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것은 그가 남의 고통에 무관심한 싸가지 없는 인간이어서가 아니라 구르네만츠의 교육 때문이었지만 그 책임은 파르치팔에게 떨어졌다. 이 일이 주변에 알려지고 „파르치팔 저 독한 놈은 자길 그렇게 후하게 대해준 성주가 아파서 끙끙거리는 데도 눈 하나 깜짝 않고 차려진 밥상 비우는 데만 열중했다는군“ „얼굴 값 하네“등등의 비난에 직면한 파르치팔은 다시 성배왕의 성을 찾아 저주를 풀겠다고 길을 떠나고 다시 이런 저런 삽질 끝에 목적을 달성한 뒤 스스로 성배왕이 되어 성을 접수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님아 어디 아프셈’이라는 대사는 파르치팔 작품 전체의 키워드라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대사인데 이 박물관에서는 그 대사를 저렇게 벽의 낙서처럼 독특한 분위기로 표현해놨다.

이 박물관의 전시물들은 다들 저런 식이다. 내용을 따지자면 다 책에 이미 있는 내용이지만 그걸 시각적으로 뭔가 다르게 표현해 놓는 것이다. 다른 예를 들자면 앞부분만 전해지는 티투렐이라는 작품은 파르치팔의 사촌 누이 이야기인데 그녀와 남친은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어떤 들짐승 목에 글이 적힌 길다란 띠가 묶여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 글의 내용이 궁금했던 사촌 누이가 남친에게 저 짐승좀 잡아달라고 하는 것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그래서 티투렐 전시실은 그 띠에 착안해서 이렇게 기다란 띠 모양의 전시물을 갖다 놨다.

Eschenbach13.JPG

한편 다음은 Tagelied 관련 전시실 풍경이다. Tagelied는 중세 연애시의 한 장르로 하룻밤을 같이 지낸 연인들이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장면을 다룬 것이다.(대부분은 낮이 무서운 불륜 관계 연인들이 주인공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둘이 누워서 창밖의 새가 밤꾀꼬리인지 종달새인지 토론하는 장면을 연상하면 된다. 볼프람도 Tagelied 장르에 손댔는데 Tagelied 전시실은 다음 사진처럼 연인들이 하룻밤을 보낸 뒤 창문으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을 형상화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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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하일트는 처음 저 탑을 보고 ‚음? 감옥인가?’하고 생각했지만 전시실의 성격을 생각해보니 연인들의 보금자리겠더라. -_- 이 전시실에서는 볼프람의 시를 중세 독일어로 낭송하는 걸 들어볼 수도 있다.

전반적으로 없는 자료지만 그래도 관광객이 입장료 사기 당했다고 울분을 토하지 않도록 눈을 호리기 위해 애쓴 티가 보이지 않는가? 딱히 이 곳에서 볼프람에 관해 무언가 새로운 사실을 배울 수는 없지만(자료 내용은 어차피 책에 다 나와있는 거다) 그나마 이런 박물관마저도 없는 것보다는 덜 허무하다.

박물관 옆에는 파르치팔 이름을 딴 까페도 하나 있다.

Eschenbach19.JPG

까페 근처였던가 옆건물이었던가 가물가물한 곳에는 기념품 가게도 하나 있었는데 영업 시간이었지만 문이 닫혀 있었다. 초인종을 누르니까 주인 아주머니가 나왔는데 손님이 하도 없어 장사가 안되어 그냥 문을 안열었단다. 근데 장사가 안 될만도 한 게 이 아주머니, 그래도 나한테 뭐 보여준다고 가게 문 열더니 그냥 선물이라고 기념 엽서를 막 주신다;; 난 나 때문에 연 가게 문이니까 비싼 건 못사고 그냥 엽서나 하나 살까 했는데 그냥 받아버리는 바람에 따로 돈은 못치르고 대신 한국 열쇠고리를 기념으로 드렸다.(‚엽서말고 다른 걸 사면 되잖아’할 수도 있겠지만…솔직히 다른 기념품은 다 바이에른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거라 기념될 게 없었다. 책 종류는 나도 갖고 있거나 학교 도서관에 다 있는 거고 -_-;;)

이제 볼 거 다 봤으니 이제 차 타고 베를린 오면 되는 일이었지만 그 날 최대 불행이 일어났으니 버스가 안왔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서 한 시간 반을 기다린 다음 버스자 그 날의 마지막 버스도 오지 않았다. 지금도 왜 그 날 버스가 안나타났는지 이유는 모른다. 나중에 그 동네 주민을 붙들고 물어봤는데 자기도 모르겠다더라. 밤이 짧고 따뜻한 여름이라면 노숙도 해볼만하지만 이미 9월인데다 비까지 온다. 결국 정거장 옆의 Gasthof 에 방을 잡고 30유로 가까이 되는 숙박료 내고 들어갔다. 파르치팔처럼 그냥 안면도 없는 성주네 식객으로 빈대붙을 수 있던 시대는 이미 간 것이다.

한 시간 반 동안 떨면서 버스를 기다리다 결국 이 마을에서 하룻밤 지내게 된 나의 소감은 또다시

‚나 볼프람 별로 안좋아하는데 -_-‚

‚내일도 모레도 버스가 안오면 어쩌지? 이 동네 총각이랑 결혼해서 눌러앉아야 하나?’

‚일단 안스바흐까지 가면 기차역이 있댔지. 걷는 거 좋아하니까 십 킬로에서 이십 킬로 정도 걷는 건 상관 없지만 비 맞는 건 싫고 안스바흐까지 가는 길도 모르는데.’

‚히치 하이킹 해야 하나…근데 누가 태워는 줄까…아아, 위기에 빠진 처녀를 지나가던 기사가 자기 말에다 히치 하이킹 시켜주던 시대는 정녕 가버린 것인가…’

등등이었다. 기껏 버스 안 온 걸로 뭔 엄살이냐 싶겠지만 당시의 나는 심각했다. 한국에서도 서울에서 살았고 독일 와서도 대도시 베를린에서 지낸 데다 차가 없어서 기차로 연결이 되는 곳만 구경 다녔던 내게 주말에는 교통이 완전히 끊기고 하루 몇 번 버스가 다니지도 않는 그 동네는 문화적 충격이었다. 대학에서 지방 도시 출신 친구를 만났을 때 „너 내가 서울 촌놈이라고 무시하냐, 세상에 지하철 없는 도시가 어딨냐“하던 난데 이런 곳에 갇혀 생애를 마치게 될 줄이야…orz 아아…나 볼프람 별로 안 좋아하는데…그 작가 정말 별론데…

이 문제 고민하느라, 또 다음날 첫 버스인 새벽 6시 차를 놓치지 않으려고 일찍 일어나자고 다짐하느라 잠은 한 네 시간 정도밖에 못잤다. -.- 덜 잔다고 방값 깎아주는 것도 아닌데.(아침은 안먹겠다고 하고 아침 식사 비용은 깎았다. 아침 식사가 7시 반부터인가 라는데 속히 그 동네를 떠나고 싶었다)

새벽 여섯 시. 한여름이라면 벌써 훤하곘지만 9월 말의 6시는 아직 어둠이 짙다. 어둠과 아침 안개를 뚫고 비추어오는 두 줄기 헤드라이트 빛! 버스다!

…가 아니라…

저건 봉고잖소!(버럭)

분명 버스라고 알고 있었는데 새벽이라 이용객이 별로 없다는 건지 정류장 앞에 선 건 봉고차였다. 하지만 눈치로 봐서 이게 버스 노릇을 하는 거 같아 올라탔는데 요금 내는 데도 없다. 운전 기사에게 안스바흐까지 가는 표 한 장 주세요 하니까 기사가 대답한다.

„!@#@#$@#$“

못알아 들었다. -.- 고백하자면 나 독일 체류 기간 3년이 넘어가지만 아직도 못알아듣는 말 많다. 원래 가는 귀 먹어서 한국말도 잘 못알아듣는데 외국어는 오죽하겠나. 뭐라구요 하고 다시 물으니까 또 아저씨가 대답을 하는데 또 못알아들었다. 하지만 기사 아저씨의 위엄에 눌려 차마 세 번째로 물어볼 수는 없었다. 어쩌면 계속 아저씨를 귀찮게 했다가는 분노한 아저씨가 나를 여기에 버려둔 채 차를 몰고 떠나버릴지도 모르고 그러면 나는 이 마을에서 이 마을 총각이랑 결혼해서 애낳고 평생을 살아야 할지도 모르고 어쩌면 300년쯤 지난 뒤 우연히 이 마을에 들른 다른 한국인 관광객이 자신의 먼 조상 할머니가 한국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주민들을 발견하는 바람에 ‚하일트 폰 코레아, 한국의 잊혀진 딸’ 류의 다큐멘터리나 ‚바이에른의 서울 상인’같은 소설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한국인 관광객들을 마을 탑으로 안내하며 주민들은 말하겠지. „할머니는 이 곳에서 동쪽 하늘을 보며 고국을 그리워하셨다고 해요“ 그래서 더 이상 기사 아저씨를 거역하지 않고 얌전히 자리에 앉아 봉고가 출발하기를 기다렸다.

어둑한 새벽, 봉고에 실려 낯선 길을 가자니 이 길 끝에 웬 새우 잡이 배 한 척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겠다 싶었다. 하지만 봉고가 멈춘 곳에는 이번에는 진짜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봉고에서 내린 다른 승객들을 따라 차에 오르니까 버스 운전 기사가 „너 어디서부터 타고 왔냐“고 묻고 요금 계산해서 표를 끊어준다. 그러니까 봉고 아저씨 말은 여기서 말고 갈아탄 차에서 표를 사란 뜻이었나 보다.

안스바흐 역 도착. DB 라는 글자가 이렇게 반가울 데가. 대합실에 들어가(그렇다! 대합실이 있다! Heilsbronn 역 따위와는 차원이 틀려! 아무리 Heilsbronn의 첫 네 글자가 내 아이디 영문 첫 내 글자와 일치한다 해도 싫은 건 싫은거야) 베를린까지 가는 기차 시간표를 알아보려는 순간…

여기까지 왔다가 그냥 베를린 가는 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이에른 남부 쪽은 멀어서 베를린에서 당일치기로 왕복하긴 힘들지만 지금 있는 곳은 같은 바이에른 도시니 훨씬 가깝잖아. 이 참에 다른 데도 돌고 가면 저녁에 천천히 베를린으로 돌아가면 어때.

…해서 베를린 대신 레겐스부르크 가는 시간표를 뽑았고 내친 김에 아예 파사우까지 갔다. 파사우에 도착했을 때는 날씨가 갠 덕택에 아이스크림 하나 들고 구시가지를 어슬렁거리는 호사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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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일트가 파사우서 사먹은 아이스크림. 이만한 아이스크림 하나 들고 서있으면 그 거리의 모든 12세 이하 아동들의 선망과 질시와 동경에 찬 시선을 받을 수 있다.

여건이 되었다면 아예 며칠 바이에른 남부를 돌아도 좋았겠지만 갈아입을 옷도 없고 디카에 메모리 장착도 안되어 있고 해서 적당히 어슬렁거리다 역으로 가서 뉘른베르크 가는 기차를 탔다.(파사우에서 베를린까지 바로 가는 열차는 없고 뉘른베르크에서 갈아타야 한다)

뉘른베르크에서 갈아탄 기차 내 좌석 맞은 편에는 호주에서 온 만 두 살짜리 아이와 그 엄마가 타고 있었고 아이와 나는 같이 빈 종이에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냈다.(두 살짜리 아이라면 내 영어 실력으로도 상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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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일트와 아이가 완성한 작품. 비정형으로 거칠게 뻗은 선이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를 형상화하고 있다. 작품 말고 아이 사진도 찍었는데 아이 엄마한테 허락받은 게 아니라서 여기에는 안올린다.

그 모녀는 밤베르크에서 내리고(내가 베를린까지 간다니까 „그렇게 멀리?“하는 반응을 보였다. 배낭 여행객들에게는 먼 거리도 아닐텐데 거주중인 사람에게는 느낌이 다른가보다) 그 후 베를린까지는 혼자 책보고 졸면서(60시간 동안 네 시간을 잤으니;;) 보냈다. 예정대로라면 자정 전에는 베를린 동역에 도착하는 거였는데 역 거의 다와서 무슨 사고가 생겼는지 한 시간 가까이 늦어졌다. DB에서는 30분 이상 늦어지는 경우가 있으면 승객들에게 10유로짜리 쿠폰을 주는데(그거 있으면 다음에 표 살 때 10유로만큼 깎아준단다) 나는 한 달 동안 비바 선샤인으로 독일을 돌아다니면서 그 쿠폰을 두 번 받았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밤 한 시가 넘었던 거 같다. 옷 벗고 자리에 누우면서 생각했다.

‚남들이 여행담 들으면 내가 볼프람 광팬인줄 알겠다…’

9월 한 달 동안 하일트는 볼프람의 에셴바흐 말고도 독일 내 여러 중세 도시들을 돌아다녔다. 전공이 중세 독문학에 부전공이 중세사다보니 관련 도시들을 다녀보고 싶었던 것. 기차를 잘못 타는 바람에 중세 도시 대신 바로크 도시에 떨어졌을 때는(더군다나 그 전에 이미 세 번 와봤던 도시였다!) 꽤 좌절스럽기도 했지만 이 때 경험 때문인지 나는 내가 훗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면 가장 그리워할 건 독일에서 내가 살던 동네들이 아니라 기차역이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나 한국에서는 한 번도 혼자서 기차여행 해본 적 없어서 표 사는 법도 모르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지…

2. 위에서 썼듯 하일트는 10유로짜리 DB 쿠폰을 두 장 가지고 있습니다. 이거 유효기간이 6개월이라 내년 3월까지는 써야 하는데 전 그 때까지 별다른 기차 여행 계획이 없습니다. 혹시 필요하신 분 있으면 쪽지 보내시거나 멜로 연락 주세요.

아울러 하일트네 집에는 안쓰는 스캐너도 하나 있습니다. 이 놈이 고장난 줄 알고 급한 성질머리에 조금 업그레이드 된 모델로 새 걸 샀는데 알고보니 이 놈은 단지 열을 받아 잠시 맛이 갔던 것일 뿐 근본적으로는 별 탈이 없더군요. 제일 싸구려 모델인데다 관리를 제대로 안해 꽤 지저분해진 녀석이라(유리판을 닦아줘야 하는데 귀찮아서;;) 돈 받고 팔긴 뭣하고 스캐너 필요하신 분 있음 그냥 드려요. 역시 연락 주시길. 전 베를린 사는데 가급적이면 직수령할 수 있는 분이 좋겠지요?(중고 시장에 내놓기도 귀찮아하는 제가 설마 우편으로 부쳐드리기야 하겠습니까?)

3. 요새 하일트의 컴 바탕 화면 모습.

wall.jpg

저거 바탕 화면으로 깔고 나서 웹서핑 자제하는 대신 지뢰찾기에 맛들였음. 차라리 웹서핑이 더 생산적인 거 같음. 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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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베를린님의 댓글

베를린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저두 서울 살면서 혼자서 기차여행 한번도 안해본 사람이지만..독일에선 여기저기 기차타고 싸돌아 다녔어요..하일트님 글 보니 그때가 생각나네요..글을 너무너무 맛깔나게 잘 쓰시는거 같아 정말 한번 뵙고 싶은 생각까지 드네요..^^  왕팬입니다.^^

basic님의 댓글

basic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어, 이일기는 못본일기네요. 작년여름에 하일트님 일기를 첨봤었으니까 못본게 맞는거 같아요 ㅋ
하일트님 일기들의 팬이자 저도 파라미르 빠순이입니다 -.,- 뭐 정확히 말하자면
빠순이라기보다는 원작에 나오는 파라미르-에오윈 커플의 러브모드가 왕의귀환 제일마지막부분에
딱 한장면밖에 등장하지 않았던게 한으로 남은 정도이죠. (사실 이것도 러브모드라고 하긴 뭐한게 겨우 나란히 서있는 정도이니 )
요즘은 일기 안쓰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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