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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일기] 일기·수필·문학 - 유학 일기 외에 사는 이야기 혹은 직접 쓴 시와 소설을 게재하는 곳입니다.

유학일기 생존신고를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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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하일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6건 조회 6,114회 작성일 04-06-12 06:43

본문

오랜만에 생존 신고 합니다. 여전히 길다란 전공 붙들고 살고 있는 하일트입니다.

오늘 세미나 조별 토론 시간에 모자란 짓을 했죠. 같은 조원 하나가 어떤 의견 제시를 했는데 꽤 무례하게 '그건 아니잖아'하는 식으로 대답했어요. 그리곤 그 다음에 정작 제가 주제랑은 상관 없이 전혀 맥락 벗어난 데다 그 자체로도 별 쓸모는 없는 소리를 했습니다. 그 조원은 '얘, 우리 지금 그 얘기 하는 거 아니거든?'하고 지적했고요. 게다가 제가 '그건 아니잖아'하고 받은 그 애 의견은 사실은 그리 아닌 것도 아니었어요. 이 비슷한 일이 오늘뿐이 아니었으니 전 얘한테 거슬리는 바보로 찍히게 생겼죠.

바보 취급 받는 것 자체는 슬프지 않습니다. 어차피 지금 조 사람들이랑 그리 친한 것도 아니어서 세미나 끝나고 굳이 또 보게 될 것 같진 않아요. 제 이름 철자를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어떤 인상으로 남을지까지 고민하고 살기에는 하루가 너무 짧죠. 그리고 전 기본적으로 '바보가 바보 취급당하는 건 잘못된 일이 아니다'는 입장입니다. 바보가 똑똑하다고 여겨지는 건 희극이고 사실은 똑똑한데 바보 취급 받는 건 억울한 사연이지만 바보를 바보로 여기는 게 무슨 잘못이겠어요. 전 살면서 과소평가보다는 과대평가를 더 많이 받았고 특히 학업이나 지적인 면에서는 더욱 그랬습니다. 사람들은 연애 안하고 차림새 후줄근하고 비사교적이고 방에 처박혀 혼자 노는 거 좋아하는 인간이 있으면 대뜸 '쟤 공부는 잘하겠다'하고 생각해버리거든요. -.- 하지만 과대평가 받는 게 어떤 가시 방석인지는 앉아본 사람만이 압니다.

진짜 슬픈 건 제가 바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는 거죠. 음...이렇게 쓰고보니 지나치게 우는 소리로 들리는군요. '토론 수업에 자질이 없다'로 바꿔보겠습니다. 원래 한국 학생들이 독일 학생들에 비해 보통 말로 하는 토론이 딸리다고들 하는데 저는 특히 더 그래요. 단지 독일어가 딸려서만은 아닙니다. 한국어로 토론할 때도 주로 가만히 앉아있는 편이거든요. 순발력이 없어서 생각을 빨리 못하기 때문에 남들은 다 다른 주제로 옮겨간 다음에 뒷북치기가 다반사죠. 게다가 주의가 산만한 편이라 남의 말을 오래 못듣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어든 독일어든 말로 하는 토론은 힘들어해요. 온라인 상에서는 글로 하는 거라 남의 글을 차분히 읽어보고 내 생각 정리할 시간도 있으니까 그럭저럭 괜찮지만요.(그래도 온라인에서도 뒷북 많이 침. 정말 천성인 거 같음)

제가 말빨과 순발력이 딸린다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신경은 안썼죠. 첫째, 거의 선천적인 거라 이제 와서 신경쓴다고 발전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둘째, 부족한 게 있으면 다른 걸로 보충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생각하는 게 느리긴 하지만 이해력 자체가 딸리는 건 아니라서 결국 어찌어찌 이해는 하거든요. 사고력도 특별히 뒤질 건 없다고 생각했구요. 설사 이해력이고 사고력이고 기억력이고 다 나빠서 정말 바보가 맞다 해도 노력으로 때우면 되는 거죠. 남들이라고 24시간 공부하는 건 아닐진대 남들 한 번 읽는 거 전 두 번 읽으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오늘 아무래도 내가 전공 관해서는 사고력도 딸리나 -_-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애들 토론하는 거 보면서 '왜 난 저기 생각이 못미쳤을까'하고 속으로 투덜거리기를 몇 번 했습니다. 독일어 딸려서라는 변명은 안통해요. 역시 외국 출신으로 이 세미나에 참여하는 애가 있었는데 걔 역시 버벅은 대지만(그래도 내 독어보다는 낫긴 함) 내용은 따라가거든요.

해결책은 압니다. 토론에 약하면 남들보다 더 많이 준비해가고 더 열심히 공부하면 되는 거죠. 아무리 외국어로 하는 공부라서 남들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해도 지금 스스로 생활비 버는 형편이 아닌 제가 바빠봤자 얼마나 바쁘겠습니까.

...그리고 그게 제일 큰 비극입니다. 딴짓에 열올리느라 전공은 등한시하는 중이거든요. 차라리 지금 전공이 영 안맞고 싫으면 때려치고 딴 길이나 찾겠지만 또 그건 아닙니다. 사실 딴짓이 재밌는 것도 그게 딴짓이기 때문이지 막상 본업이 되면 하기 싫어질거고 지금 전공도 이게 본업이니까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막상 팽개치면 굉장히 미련이 남을 거고 후회할 겁니다. 뭐가 문제인지도 어떻게 해결하면 되는지도 뻔히 알면서 막상 의지력 부족으로 실행만 못하고 있다니 이게 무슨 꼴이랍니까.

산신령이 나타나서 세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면 세번째로는 저 자신을 길들일 수 있는 의지력을 달라고 하겠습니다. 첫번째와 두번째 소원이 뭔지는 차마 입밖에 내서 말할 수가 없구요.('세계 평화'같은 고상한 건 아닌가보죠)

덧) 무슨 딴짓 때문에 이 꼴이 났는지는 다음 언젠가 얘기할게요. -.- 지금은 딴짓하러 가야 해서 바쁘거든요...
추천13

댓글목록

쇤~님의 댓글

쇤~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하일트님 일기를 다시 보게 되서 기뻐요.
딴짓(?)에 대해서 언제 갈켜줄껀가요?
아항~ 궁금궁금^^
행복하게 지내세요...

Okdol님의 댓글

Okdol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뒷북이라도 제대로 치시면 됩니다. 한국에서의 토론문화는 목소리 크고 순발력있게 얘기하는 사람이 주도하지만, 사실 토론 중 중요하고 의미있는 질문 하나만 던져도 그 토론에 크게 기여하는 것입니다. 토론문화에 익숙하지 못한 한국학생들은 자신이 주도하며 무엇인가 잘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강박감에 쌓여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토론에 기여한다는 생각으로 좀 패러다임을 바꾸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단 한마디만 던져도 중요한 기여를 할 수도 있고, 또 자신의 주된 관심과 그리 맞지 않는다면 거의 참여하지 않고 단지 경청하며 동감되는 말이 나왔을때 어느정도 동의해주는 제스춰를 보여주는데도 충분히 좋은 토론이 가능하다는 점을 염두해주시면 한결 편안하게 토론에 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유로니님의 댓글

자유로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앞서간 바보로서, 바보 심정은 바보가 안다고 공감하면서 읽었는데요 세번째 소원에서는 조금 어긋나는군요. 길들이려 한다고 길이 들여지는게 아니잖아요, 그게. 왜냐면 바보니까... 다 아시죠?^^  괜시리 자신에게 스트레스 주지 맙시다.
뭐 바보의 미덕이 있을 겁니다. 가령 세상을 훨씬 정직하게 보기도 하지요. 그래서 이해까지 가는데는 느리지만 이해를 하고 나면 남들이 못보는 경지를 볼 수도 있는게 또 그 바보입니다. 이게 너무 거창하다 싶으면 그냥 틈새라고 말해 두지요. 남들이 못보는, 너무나 사소해서 못보고 지나치는 세상의 틈새들...
그래서 나를 바보취급하는 이의 심정이 어떤 것일지는 무지 세심한 곳까지 사실 나는 알겠는데 그이들은 나같은 바보의 심정 모르죠. 알수가 없어요. 바보가 되어 봐야 세상에 대한 연민이 생기죠. 도움이 필요한 바보는 그래서 제 앞가림도 못하면서 타인의 아픔을 보면 그런게 가슴을 파고들고 그냥 잘 못 지나치죠. 그런 연민들이 쌓이다보면 그러면서 세상을 이해하는 깊이도 함께 차곡히 쌓여가는거구요. 부족한게 많은 바보는 똘레랑스 뭐 그딴거 몰라도 타인의 실수에 대한 관용이 저절로 생겨버려요^^ 자갈밭에서 덜커덕거려보지 않은 똑똑한 이들은 자기들이 당연시하는 삶의 많은 부분들이 사실은 단지 세련되게 길들여진 관성일 수도 있다는거... 그 이들은 그런거 잘 모르거 살지 싶어요. 안 그래요?^^ 그들은 많은걸 나보다 앞서가지만 그래서 그 영악함 때문에 또 놓치는게 많은거죠. 그 좋은 머리에 한길밖에 모르는 꽉 막힌 사고의 똑똑이들을 보면 그래서 저는 또 연민이 생깁니다.
어쨌든 저는 예전에 "길들이려는 의지력"같은건 포기하고 살아요. 그렇다고 그냥 대충 막가파로 살지 뭐 그런건 아니지만, 나름대로 정직하게 살면서, 왜 내가 이렇게 생겼는지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이 뭘지, 세상에서의 나의 작은 쓰임새는 뭘지, 조물주의 그 심오한(?) 뚯이 뭘지 그런거 퍼즐퀴즈처럼 맞춰가면서, 나다운 나를 천연히 사랑함에 적응해가면서, 인생을 내뜻대로 즐겁게, 무지무지 즐겁게 살면서 조금이나마 내가 가진거 있으면 주위사람에게 넉넉히 베풀고 그렇게 사는것도 괜찮을성 싶군요. 뭐 그냥 그렇게 계속 생긴대로 갑시다.
말이 길어지네요. 반가운 나머지^^ 하일트님 저 베를린 떠나기 전 함 뵈요. 취스!

나르님의 댓글

나르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푸하하하하하...
답변다는 분들은 적지만, 다들 하일트님의 용기를 부러워할 겁니다.
수업시간에 토론에 참여하는 것을 생각도 못하는 분들이 태반이라구요,
그러니 힘내세요, 그리고 특히 하일트님처럼 용기를 내보신 분이라면 전부 아실겁니다. 자유로니님처럼 바보심정은 바보가 안다는 말씀이 나오는 거죠.
저도 토론할때 뒷북치거나 엉뚱한 질문하고나서 엄청 괴로워했습니다... 뭐, 다 그런거죠. 바보가 아닌 사람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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